몇 년을 퇴행성관절염으로 고통받고 살아온 세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소진되어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뇨병이 있으니 수술 후 그 부위가 괴사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에 그동안 미루고 있었다.
고도로 발달된 의학 기술 덕분에 당뇨병이 있어도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워낙 큰 비용이 드는 수술이고,
내 두 다리가 걸린 수술이니, 병원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다.
아무래도 큰 대학병원이 낫지 않을까, 그래도 딸네 집에서 가까운 게 좋지 않을까.
인공관절 수술은 로봇 수술이 좋다던데... 로봇수술을 하는 전문 병원이 낫지 않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오락가락, 팔랑 귀가 되어 결정이 쉽지 않았다.
결국 인공관절 로봇수술로 정했다. 비용이 좀 많이 들긴 해도 고통이 덜하고 회복이 빠르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큰 딸네 집과 가까운 인공관절 수술 전문인 강북 힘찬 병원을 찾아 수술 날짜를 잡았다.
한달 이상 입원하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기에,
당분간 시어머니는 맏동서네 집에서 모시기로 했다.
그동안 지지고 볶고 한 정 때문인가.
막상 어머니와 헤어지려니 자꾸만 눈물이 난다.
빨리 수술하고 나으면 모시러 가겠다고 약속하고, 떠나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데 너무 애잔하다.
이젠 잔소리 하는 어머니가 안 계셔서 티브이도 마음껏 틀고, 전기도 마음 놓고 켜놓고.
오만 간섭, 잔소리 안 들어 편할 줄만 알았는데, 막상 가시고 나니
왜 그렇게 마음이 짠하고 애처로운지. 그 빈자리가 크기만 하다.
남편도 막상 어머니를 보내려니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다.
편할 줄만 알았는데 사람 마음이 참 요상하다.
어쨌든 이제 병원에 입원해서 한 달쯤 주부의 멍에를 벗고,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서 남이 해주는 밥 먹고, 놀면서 책이나 보고
신선놀음(?)이나 할 생각을 해보지만...
과연 한 달 동안 편하기 만한 내 일상이 될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주부가 한 달을 집을 비운다고 생각하니 그리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집에 혼자 있을 남편 밥걱정도 된다.
나 없을 때 마음껏 해방되어 보라고 하지만 젊을 때 말이지
늙으니 갈 데도 없고 곁눈질이라도 할 기력은 더욱 없고
어쩌다가 늙고 보니 참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되었다.
조금만 젊었어도 아내가 없으면 룰루랄라 하면서
곁눈질이라도 할까 걱정했겠지만, 늙으니 그런 걱정은 안 된다.
그래도 한 달 집을 비울 생각을 하니 그냥 마음이 착잡하다.
사실, 이 병원은 TV에도 자주 출연하시고 시골 어려운 사람들을
무료로 수술 해주시는 이수찬 원장님이 운영하신다.
수술날짜가 되어 병원에 가니 내 수술을 담당한 신동협 원장님이 대기자 숫자가
가장 적어 마음이 불안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분이면 인기가 많아 대기자도 길 텐데. 이분은 실력이 별로인가 싶다가도
그래도 로봇 수술인데, 사람 기술이 뭐 그리 중요할까. 위로도 해보았다.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 없이 수술해야 하고 가족 면회, 간병 모두 불가해서,
수술 전 입원실까지도 같이 가지도 못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남편과 작별 인사를 하니,
서로가 너무 애틋하다.
간호사들의 보호 아래 수술을 받고 집중치료실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마취가 덜 깨었는지 한 이틀은 지난 것 같다.
산소 부족으로 호흡기에, 소변줄, 링거줄... 줄을 줄줄이 달고 지내는 3일은
정말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내 정신이 아니었다.
그런데 딱 3일이 지나고 나니, 소변줄도 떼고, 간호사들 보호 아래
화장실에도 갈 수 있으니 좀 살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신체 변화가 신기하고 경이롭다.
하루는 복도 게시판에 붙어있는 게시물을 보고 마음이 뛸 듯이 기뻤다.
조선일보 기사가 붙어 있었는데...
바로 나를 수술해주신 신동협 원장님이 신문 한 면을 다 차지하도록
유능한 교수님으로 소개된 것이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니, 매스컴이 뭐라고 그 기사 하나로
마음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기분에 산다는 말을 실감한다.
일주일이 지난 후 나머지 한 쪽 다리 수술이 시작되었다.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원장님의 신문 기사를 보고
그 이후 원장님 보는 눈이 달라졌다.
나의 수호천사처럼 느껴지며 그저 고맙고 기분 좋고 회복도 더 빠른 것 같다.
인공관절 전문병원을 택한 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 통합 병원이라 개인 간병인을 안 쓰니 여러모로 좋다.
간호사 선생님이나 간호조무사님들이 항상 웃는 얼굴로 환자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니 그냥 편했다.
공주님 대접을 받는 것 같다.
평생 이렇게 호강해보기는 처음이다.
세숫물, 양치물 다 떠다 주고 머리까지 3일에 한번씩 퇴원하는 날까지 감겨주고
시스템이 이렇게 잘된 병원은 처음이다.
이수찬 원장님의 배려로 개인 TV가 한대씩 있어서 채널로 마음 상하는 일이 없어서 좋았다.
같은 병실 환우들과도 하하 호호 웃으면서 화기애애하게 지내다 보니,
개인 커튼을 오픈하고, 언니 동생 하면서 재밌게 잘 지냈다.
자식들이 가져온 음식을 간호조무사들이 병실까지 배달을 해주니,
서로 나눠먹으면서 매일 입호강이다.
하루는 TV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에서 나물에 고추장 쓱쓱 비벼서
먹는 모습을 보고 내가 맛있겠다고 했다.
내 옆자리 이웃이 고추장을 구해 와서 여행 온 것처럼 맛있게 비벼 먹으며
우리 병실이 제일 재밌고 잘 지낸다면서 좋아서 난리였다.
옆 자리라서 그런지 얘기도 더 많이 나누고, 먹을 것이 있으면 나를 특히나 더 살뜰히 잘 챙겨줬다.
그러던 어느 날.
옆에 환우가 갑자기 춥다면서 패딩을 입고 기침을 두어번하니
병원에서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
아뿔싸! 결과가 코로나 양성.
그 후 병실에는 비상이 걸렸다.
도수 치료, 꺾기 치료 갔던 환자들은 빨리 병실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병실에 다 모여서 우리는 바로 격리됐다.
병실 문은 굳게 닫혔고, 개인 커튼도 모두 다시 쳤다.
그리고 우리도 모두 PCR 검사를 받았다.
잠시 숨쉬기도 힘든 정적이 흘렀다.
인간의 마음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게,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이웃인데.
막상 코로나에 걸렸다고 하니, 그 사람 걱정 보다는
아침까지 고추장에 멸치까지 나눠 먹었는데, 나한테 전염이 됐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잠시, 숨 막히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