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이책이 유행할 때는 그 방대함에 위압되어 2권짜리 남부군으로 대체했다.
그러다 6-7년전인가 읽기 시작했는데, 조정래의 서정적인 글빨에 감탄하며 읽다가 절반쯤에서 관뒀다.
이 소설은 실제 역사적 사건들을 바탕으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여졌다.
분명 역사는 이 소설에 서술된대로 흘러갔는데 그 역사속 인물들이 상당히 전형적이다.
김범우, 정하섭, 염상진, 심재모, 소화등 우익, 좌익, 군/경, 무당등 가리지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심하게 완벽했다. 그 조그만 벌교에 대통령을 하고도 남을 훌륭한 인격과 판단력을 지닌 사람들이 넘쳤다.
저자는 인물들의 완벽함을 손상시키지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예를 들면 초반에 심재모가 이끄는 군인들이 빨치산의 본거지를 기습해 작은 전투가 벌어졌는데 두 진영 모두 완벽하게 공격하고 방어해 비긴걸로 끝난다. 심재모, 염상진 둘 다 완벽해야했기때문이다.
심지어 친일파, 청년단장 염상구등 악당들도 자신들이 나쁜 짓을 한다는 걸 인식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너무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읽으면서 인물들의 행동/생각에 감탄은 했지만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그들은 마치 초인같았다.
예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다룬 “대망”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인물들이 심하게 합리적이다. 원래 역사 소설이란게 이런지 아니면 태백산맥이 일본소설에 영향을 받은건지는 소설을 별로 안읽는 나로서는 알도리가 없다.
요즘 유행하는 “이태원 클라쓰”를 보자. 인물들이 심하게 평면적이다. 그래서 난 그런 드라마를 안본다. 거기 나오는 인물들 같은 평면적 일관성을 보이는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지않기에 현실감이 느껴지지않아 드라마라기보다 순정만화나 판타지라는 느낌이 들기때문이다. 그런 애매한 판타지를 보느니 차라리 Lord of the rings같은 진짜 판타지를 본다.
이제 나이가 좀 들어 사람에 대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완벽하지도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근거없는 열등감/우월감을 숨기고 표출하고 있고,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것을 인정하기는 커녕 합리화시키려 노력한다는 것을 알 게 된다. 게다가 일제시대, 한국전쟁, 군사정권등을 거친 부패한 사회에서 태백산맥에 나오는 그런 인격들은 사실 기대하기 힘들다.
소설이지만 역사소설이기에, 역사속 인물들은 좀 더 현실적이었으면 한다.
첫댓글 맞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감추고 싶은 부분이 존재하고 반대로 아주 쓰레기같은 존재도 의아한 면이 있습니다. 저는 집중력이 약해서 긴 소설은 못읽겠습니다 ^^
저도 장편소설은 딱 한번 읽어봤는데, 주로 단편을 좋아합니다. 너무나 완벽하거나 평범한 이야기들은 재미가 없겠죠. 그래서 그런지 한국드라마를 보면 그럴싸 하지만 말도 안되는것을 주제로 하더군요. 왜 한국에는 그리 희귀한 병들이 많은지, 고부관계는 100% 나쁘고, 언제나 바람피우는것이 당연하고, 등등. 마누라는 그걸 요즘 한국이 다 그렇다고 믿는것 같더군요.
제일 신기한건... 아무리 잘나보이는 놈들도 의외로 열등감 많더라구요.
이 책 제목 太白山脈 한자거든요. 한 장군이 시찰 나왔다가 내무반에 있는 이 책을 집어들더니 "태백산파"라고 읽어 내무반 군인들 웃지도 못하고 죽는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재미있네요 ^^ 장군쯤 되었으면 그래도 교육 좀 받은 사람일텐데 실수인건지 모르겠습니다.
@강성찬 송추방위 있던 친구가 얘기해준건데, 한자는 잘못 읽을 수는 있는데 그 책이 너무 유명했던 때라 책 이름을 다들 알기에 보통 그런 실수는 안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