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으로 비행을 다닌다고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어디가 제일 좋았냐는 것이다. 이 질문은 가장 어렵고도 나를 고민스럽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는 곳마다 나름의 다양한 문화와 색채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을 콕 집어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다닌 곳을 살펴보면 나의 여행 취향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내가 유독 지중해 국가들을 편애한다는 것이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튀니지(Tunisia)와 모로코, 유럽의 이탈리아, 그리스와 남 프랑스 그리고 정말 지중해에 떠 있는 몰타와 같은 나라들은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곳이다. 프랑스 남부의 니스(Nice)는 비행 내내 가장 많이 간 곳이기도 했지만, 언제나 내 비행 스케줄의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다. 니스를 통과하는 코트다쥐르(Côte d'Azur; 남동부 프랑스 남부 해안)의 작은 마을들은 언제 가도 좋았다.
프랑스 남부의 해안, 코트 다쥐르. 니스.
처음엔 지중해의 파란 바다와 부서지는 햇살. 형형색색으로 만발한 꽃과 나무, 모래 사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반나체의 사람들, 그 자유로운 모습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지중해 지방 곳곳에서 다른 듯 비슷한 문화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동일한 로마 시대의 유적을 가지고 있었고, 기독교문화의 흔적과 동시에 이슬람문화가 함께 섞여 있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지중해를 사이로 많은 이야기가 그들 속에 있었다. 지중해를 여행하면서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지중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로마 시대의 지중해는 지금과 같이 서로 다른 국가들을 가로지르는 먼 바다가 아니었다. 지중해는 유럽과 터키, 시리아와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을 포함하여 북아프리카까지 뻗어 있던 엄청난 면적의 로마제국에 둘러 쌓인 내해(內海)였다. 한 마디로 로마의 영해였던 것이다. 하지만,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나서 이 바다를 사이로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가 충돌하였다. 해적이 출몰했고, 남유럽의 해안 사람들이 북아프리카에 노예로 끌려갔다. 그들을 구출하겠다고 기사단이 생겨났고,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다.
지중해의 속내를 알게 되자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남부 해안에 우뚝 서 있는 망루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요새 같은 도시구조와 가파른 절벽에 떨어질 듯이 지어진 집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저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였던 그 속에 진한 슬픔이 배어 있었다.
중세 유럽의 지중해 지도와 절벽 위에 지어진 아말피 해안의 집들을 그린 타일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의 깎아질 듯한 절벽에 지은 집들.
어두웠던 중세 시대가 지나고 지중해는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앙드레 지드는 튀니지의 ‘시디부사이드(Sidi Bou Said)’에서 좁은 문을 집필했고, 피카소와 샤갈 같은 화가들은 프랑스의 ‘프로방스’와 ‘코트 다쥐르’에서 그림을 그렸다. 찬란한 햇살과 부서지는 파도에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게 하는 지중해의 매력은 시대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고 계속해서 아름다운 작품이 만들어지게 했다.
지중해를 사랑한 것은 비단 과거의 그들만은 아니었나 보다. 친구가 건네준 무라카미 류의 책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곳은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니스에 도착해 찾아가겠다고 나섰다. (책 내용은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끝까지 읽지 않았지만, 모든 음식을 여자와 성을 연관 지어 묘사 하는 그의 탁월한 능력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코트 다쥐르의 니스에서 모나코로 가는 길은 너무나 아름다워 꼭 버스를 타고 가기를 추천한다. 절벽 위를 달리는 버스에서 내려다보는 지중해는 눈물 나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의 중간 어디쯤에 에즈 빌라쥐(Eze Village)가 있다.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지도 하나만으로 보물을 찾은 영웅마냥 혼자 신이 났었다. 이 작은 마을은 그야말로 보물 같은 곳이었다.
코트 다쥐르의 구석구석에는 작은 마을들이 있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알려져 찾는 사람이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작은 마을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 같아 아쉽다. 영화제가 열리는 칸느(Cannes)나 모나코 (Monaco)같이 유명한 곳이 아니더라도, 향수제조로 이름난 그라스(Grasse), 바닷가의 작은 마을 앙티브(Antibes), 해마다 레몬 축제를 하는 망통(Menton) 등 크고 작은 마을들이 열댓 개가 넘는다. 나는 매번 니스 비행을 할 때마다 이 작은 마을들을 방문하곤 했는데, 마을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지중해 마을들의 작은 골목들; 에즈빌라쥐, 몰타의 발레타, 프랑스 니스, 튀니지의 시디부사이드
매번 유럽에서 바라보던 지중해를 아프리카에서 바라볼 때에는 눈앞에 있는 이 바다가 동일한 지중해라고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저 광활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지중해라면 의당 유럽인들의 그것이라는 어쩔 수 없는 서양사가 내 머릿속에 잠재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튀니지 ‘시디부사이드’의 하얀 벽과 파란 대문의 집들은 이국적이긴 했지만, 그리스의 그것과 닮아 있어 그런지 나에겐 조금 애달프게 느껴졌다. 아름답긴 했지만, 누군가에 의해 이식된 듯한 약간의 이질감도 느꼈었다. (실제로1920년대에 프랑스의 화가이자 음악학자인 루돌프 데를랑게르(Rodolphe d’Erlanger) 남작이 파란색과 흰색을 주제로 도시를 꾸미는 작업을 시행했었다.) 하지만, 시디부사이드는 고유의 문화와 함께 그들만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냈고, 지금도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시디부사이드의 흰 벽과 파란 창문, 대문의 집
로마 제국의 내해였을 때에도, 중세의 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을 겪을 때에도,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을 학살하러 바다를 건널 때에도, 지중해는 묵묵히 그곳에서 그들의 역사를 지켜보았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일어난 역사의 사건은 지금은 한낱 빛 바랜 무너져가는 건물 속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그 모든 일을 겪고도 지중해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코코 샤넬의 별장이 있던 코트 다쥐르의 작은 마을에는 할리우드 스타와 부호들의 별장이 있다. 반대편 시디부사이드에도 유명인들과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하다. 단지 지중해만이 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리 없이 들어주고 있을 뿐이다.
어느덧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겨울 바람이 가을을 저만큼이나 밀어내고 성큼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지중해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여유를 부리고 싶은 날이다.
지금 내일 있을 회의에, 곧 있을 발표에, 밀린 업무에 한 숨을 쉬고 모니터를 보고 있다면, 잠시 손을 놓고 눈을 감아보자. 지중해의 파도소리가 당신의 마음속으로 지나갈 수 있도록.
- 신혜은의 ‘Fly in the heaven’
- [북뉴스 북토리언 1기] 6년 5개월간 외국항공사 스튜어디스 생활을 마치고 막 고국에 돌아온 ‘당분간은’ 즐거운 백수한량. 세계 곳곳을 비행하며 천국과 같은 세상을 만나고 배우며 철들어 가는 중. 여전히 세상은 따뜻하고 착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라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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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교보문고 북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