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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행하리라 / 한서노회
구약의 열왕기는 하나의 역사책입니다. 이스라엘에 왕정국가가 형성되는 과정과 이 왕정국가로서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의 왕정국가로 기틀을 마련하는데는 다윗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초대 왕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다윗은 7년간 유다 지파의 왕으로 통치했고, 이어서 33년 동안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렸습니다. 성공적으로 정복 사업을 완수했고, 국가의 기틀도 반석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아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 있었고, 아들은 그 아들에게, 또 그 아들은 그 아들에게 왕위를 대물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왕조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왕조는 약 400여 년간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열왕기는 바로 이 400여 년간의 다윗 왕조의 역사 이야기입니다. 물론 분열 왕국시대에 북왕국 역사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열왕기는 다윗의 인생 말년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왕상 1:1을 보면 "다윗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 지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나이 70이 되었습니다. 골리앗과 용감하게 맞섰던 소년 시절의 용맹도, 사울의 박해를 당당하게 견뎌내던 청년시절의 인내도, 전쟁터를 호령했던 장년 시절의 능력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어느새 기력이 쇠하여 죽음을 기다리는 쓸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열왕기 기자는 이 모습을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 지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제 다윗도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질 때가 된 것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떠날 때가 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왕상 1장은 다윗의 왕위 승계에 얽힌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사건 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다윗의 실수입니다.
다윗의 실수는 한마디로 자신의 왕위를 계승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나이 늙어 기력이 쇠해지도록 후계자를 지명하거나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왕으로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후계자도 정해놓지 않게 되자 권력의 공백 상태가 형성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들 가운데 왕이 되기를 꿈꾸던 야심가 아도니야가 이 기회를 놓질 리 없었습니다. 다윗의 오른 팔이었던 군대장관 요압을 포섭했습니다. 다윗에게 가장 신임을 받고 있던 제사장 아비아달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아도니야는 이들과 모의해서 반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반란이 일어나자 왕자들 사이에 암투가 생겨났습니다. 신하들 사이에 줄 서기와 편가르기가 생겨났습니다.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 나오는 이조 초기와 같은 정치적인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태평성세를 누리던 이스라엘에 엄청난 소용돌이가 불어닥쳤습니다.
다윗은 군왕으로서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국내적으로 국외적으로 산적한 복잡하고도 어려운 문제들을 잘 해결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업적이 자칫 자신의 당대로 끝날 판입니다. 다음 세대를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실수입니다.
다윗의 실수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다윗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왕위를 넘겨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 미리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한 가정 불화와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습니다.
이솝 우화가운데 [이빨 가는 산돼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봄날 여우는 굴에서 나와 숲 속 길을 혼자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날씨도 좋고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행복에 겨워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산돼지가 한 마리가 바위에 이빨을 갈고 있었습니다. 여우가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딱하다는 듯이 충고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봄날 왜 놀지 않고 쓸데없이 이빨만 갈고 있느냐고. 산돼지가 말을 받았습니다. "내게 늘 이렇게 좋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닐세, 사자를 만날 날이 있을 것이고, 사냥꾼을 만날 날이 있을 것일세. 그 때 이빨을 갈려하면 때가 늦지 않은가?" 여우는 비웃고 산돼지 곁을 떠났습니다.
여우는 그저 행복하고 즐거운 따뜻한 봄 날 밖에 볼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산돼지는 행복한 봄날 뒤에 힘겨운 날이 올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날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이빨을 갈아 놓았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오늘만을 생각합니다. 오늘의 행복에 만족 해 합니다. 또 오늘의 불행해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내일을 생각합니다.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의 행복을 절제합니다. 내일을 바라보며 오늘의 불행을 견딥니다. 내일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다윗은 때를 놓쳤습니다.
아도니야가 반란을 꾀하자 서둘러 솔로몬을 후계자로 세우고 수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때가 늦었습니다. 반역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한 뒤였습니다.
겨우 아들 아도니야는 죽음을 면했지만 자기의 오른 팔이었던 요압은 죽음을 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었던 제사장 아비아달이 쫓겨나 유배를 가게 됩니다. 나라가 온통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때를 놓친 결과입니다.
중국 고사성어 가운데 "갈이천정"이란 말이 있습니다. 목이 말라야 비로소 샘을 판다는 뜻입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생긴 뒤에 서둘러 봐도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일이 있습니다. 제게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해 주신 선배 목사님이 계십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찾아 뵙고 인사를 드렸을 때 그 분이 제게 한 가지 당부를 하셨습니다. 중국어를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중국은 공산치하였습니다. 중국과 교역하고 왕래할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 목사님 말씀이 앞으로 중국의 시대가 올 것이고, 중국 복음화가 한국교회의 큰 과제가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당시 그 말씀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유학에 대한 꿈과 서구 기독교 국가에 가서 공부할 생각 때문에 영어와 독일어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중국선교에 저를 참여케 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중국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중국어를 할 줄 모릅니다. 그 목사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때가 늦었습니다.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매사에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면 후회하게 됩니다. 때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다윗은 가정 교육에 실패했습니다.
다윗은 부인을 여럿을 두었습니다. 그 소생들이 많아서 다윗에게는 자녀가 많았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잘 날 없다고 그 많은 자녀들 사이에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삼하 13장에 보면 장남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강간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은 크게 화를 내기만 했지 정작 암논에게 아버지로서 책망을 하거나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이 이에 불만을 품고 2년이 되던 날 암논을 청해 살해하고 도망을 치게 됐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다윗에게 반역을 꾀하다가 결국 요압에게 죽음을 당하게 됐습니다. 이 때도 다윗은 압살롬을 불러 책망하거나 아버지의 권위로 가르치거나 말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다윗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아도니야를 야단친 일도 없었고, 더욱 매를 든 일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아도니야가 다윗에게 반기를 들고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은 문제아들이 많았습니다. 이복누이를 강간했던 맏아들 암논, 형을 죽이고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었던 압살롬, 그리고 아버지의 왕위를 강제로 빼앗으려 했던 아도니야. 이들 모두 문제아였습니다.
아들들이 이처럼 문제아가 된 것은 까닭이 무엇입니까?
바로 다윗이 가정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신앙 교육도, 인격교육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1월 13일 히로뽕을 복용한 혐의로 5번째 검찰에 적발됐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 달에 2번씩 서울 보호관찰소로부터 마약복용여부에 대한 정기 검사를 받는 중에 적발된 것입니다. 다른 때는 몰라도 보호관찰소로부터 검사를 받는 중인 것을 알면서도 마약을 복용한 것입니다. 이제 마약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구제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박지만씨는 91년 3월, 94년 3월 두 차례 구속된 뒤에 공주의 치료 보호소에 보내져 7-9개월간 치료를 받았습니다. 사창가에서 윤락녀와 히로뽕 투약한 것이 발각돼서 96년 11월 세 번째 구속됐습니다. 법원의 선처로 200시간 사회 봉사명령을 받고 풀려나 장애인 복지 시설에서 봉사하면서 재활의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작년 3월에 이어 또 다시 적발된 것입니다.
그를 도우려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나서서 애를 썼습니다. 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앞장 선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고, 심지어 김대중 차기 대통령도 한몫을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두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저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가정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지만씨가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정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탓입니다.
자녀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잘 교육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잘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다윗의 본받을 점입니다.
국가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위기를 맞았지만 다윗은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았고, 자신이 했던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늦게나마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했고 대관식을 치르게 했습니다.
다윗의 본받을 점을 보다 자세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문제가 터지자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찾았습니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일찍이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는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주의 종이었습니다. 밧세바를 범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라는 것을 생명을 걸고 충고해 주어서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던 장본인이었습니다.
또 다시 어려운 때 자신을 찾아준 선지자가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이 힘겨운 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의 말을 들었습니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27절을 보면 "왕께서 내 주 왕을 이어 그 위에 앉을 자를 종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다윗에게 삼하12:24-25 말씀을 기억나게 해 주었습니다. 즉 다윗이 밧세바와 사이에서 솔로몬을 낳자 나단을 보내셔서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지어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윗은 나단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밧세바를 불러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것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다윗은 어려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이런 자세가 늦게나마 불행한 사건을 바로 수습하게 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을 세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둘은 알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셋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은 중요합니다.
이 사람을 유신론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유신론자이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시는 분들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어떤 새로운 일을 계획하십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계획하십시오. 어떤 결단을 하셔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결단을 내리십시오. 이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다윗은 사람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찾아 온 밧세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날 그대로 행하리라"
다윗은 사랑하는 아내 밧세바와 오래 전에 약속한 바가 있었습니다. 바로 밧세바의 소생 솔로몬을 자기 후계자로 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10번째 아들이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솔로몬을 왕으로 삼겠다 약속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동안 잊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밧세바를 다시 보는 순간 그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킬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오늘 날 그대로 행하리라." 확인해 주었습니다.
다윗은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신의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과의 약속을 지킬 줄 모르는 사람 그를 훌륭한 신앙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일전에 신문의 독자 투고란에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길거리에서 밤을 구워 파는 노점상인이 시골의 한 농가에서 필요한 분량의 밤을 샀습니다. 밤이 크고 질이 좋아 며칠 후에 다시 올 테니 남은 밤을 딴사람에게 팔지 말 것을 구두로 약속했습니다. 돈을 마련, 다시 들렀을 때 그 농부는 사가겠다는 사람이 있어 팔아버렸다고 했답니다. 하루 장사를 걷어치우고 만원 기차 타고 왔는데 무슨 일이냐고 위약을 항의했으나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올지 안 올지도 모르고 또 입으로 약속한 걸 가지고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그렇게 법석을 떠느냐고 오히려 이 밤장수를 탓했다는 내용입니다.
사람과의 약속이 존중되는 사회 그곳이 성숙된 사회입니다. 사람과의 약속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성숙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과의 약속을 존중하고 지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약속은 신중히 하고 한 번 한 약속은 꼭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대로 행하리라"
출처 한서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