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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수필창작 이론모형
▣作隨筆有法不可無法亦不可▣
본격수필 권대근(수필학박사)
인간성의 모습 인간애의 정신
❶인간학, 인문학
구체성 (정) 보편성
일상적 사건 일상 〓 문학 문학적 사건
❷사회의식 → 형이상학
↑ ∥ ↑
개인의식 형이하학
세련된 지성의 성찰 ❸ 성숙한 인성의 표현
교훈성 -- 가치 있는 체험 -- 쾌락성
문학성 ❹ 예술성
↑ 형상과 인식 ↑
전달 차단성 ❺ 복합 통일성
❻정서 지성 상상
암시성, 선명성 서두 ❾ 결말 인상화, 여운화
❼형상성 참신성 함축성 탄력성
제재의 질서화 ❽ 주제의 전략화
제재의 상관성 주제의 구체화
제재의 동질성 주제의 의미화
제재의 용해성 주제의 상상화
글맛 손맛 눈맛
(향) (멋) (맛)
(적절성)일물 일어 문장 문단 의장(다의성)
무형식의 형식 무기교의 기교 무질의 질서
선비정신과 장인정신
‘보이지 않는다’의 ‘눈’ ‘말하지 않는다’의 ‘입’
통일성,연결성 문단 강조성,완결성
단계성의 원리
발견의 원리->상관화의 원리->동화의 원리,
성찰의 원리->결속성의 원리
본격수필창작 이론 모형 해설
Ⅰ. 열며
수필은 '누구나'의 문학이 아니라, '누군가'의 문학이 되어야 한다. 수필을 살리는 길은 수필을 고급문학화하는 수밖에 없다. 수필은 독자의 기호에 맞게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와 관계없이 독자를 이끌 수 있도록 본격수필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수필이 누구나 쓸 수 있는 신변수필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씌어지는 문학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은 오직 한 길밖에 없다. 그것은 수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시대적 변화에 따라 수필에 대한 인식도 변해야하겠지만, 그 방향성은 수필의 대중화나 수필 인구의 저변 확대가 아니라 본격 문학으로서의 장르의식을 바르게 수립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먼저 수필이라는 영토의 변화와 확장이 문제가 아니라 수필의 경지 정리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을 말하자면 문학적 명수필이 어떠한 수필을 가리키는가 하는 수필문학의 가치 척도가 확고히 정해져야 한다. 이것이 정립되지 않고는 언제까지나 수필은 혼미를 거듭하게 되어 있으며, 이러한 상태에서는 혼란만 더 부추길 뿐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수필문학에 있어서의 잡문성 시비를 불식시키기 위한 방도로 그 형식 모형의 구체적인 제시를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문학 창작에 어떤 틀이 있다면, 그 하위 부류에 속하는 수필 장르에도 무슨 법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수필을 쓰면서, 수필 이론을 가르치면서 '본격수필'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가, 수필의 '문학성'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것이 본격수필이다' 했을 때,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나 요건이 이론적으로 뒷받침되어야 우리 수필이 당당하게 문학의 영역에 설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우리 수필계에 시급히 요구되는 본격문학의 판단 척도를 만든 셈이다. 수필에 있어서의 구성, 즉 틀이란 서술하는 순서를 정해 나간다거나 사실을 진실로 승화시키는 미적 여과과정, 그리고 소재에서 걸러낸 제재를 효과적으로 배열한다거나 조립하여 질서화시키는 과정을 말한다. 이 질서화된 구성틀이 마련됨을 계기로 해서 수필의 문학성이 보다 확고히 구축되고, 이것이 수필창작에 있어서 일종의 교본으로서 또 필법으로 이해되었으면 좋겠고, 나아가서는 본격수필의 판단 기준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Ⅱ. 펼치며
1. 주제의 지향성
수필은 넓은 의미에서 인간학이다. 본격수필은 독자의 기호나 충족시키기 위해 글이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대로 끌려다니기보다 독자를 문학의 길로 이끌고 시대를 앞질러 예지할 수 있어야 한다. 수필에 있어서도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는 일차적인 관심사는 작가가 말하고 싶어 하는 내용이다. 그 말의 내용이 어떠한 차원의 것이며, 어떠한 용기를 차지함으로써 가치가 주어지느냐가 관심사라 할 수 있다. 수필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다. 수필은 총체적이고 추상적인 현실을 보다 심미적 가치를 지닌 삶의 실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가슴이 서늘하거나 후끈한 인간미가 배어 나오지 않는 글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더 이상 '개성적'이라거나 '자기 고백적'이라는 사실에 머물러 일체의 예술적 모색이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한 현실은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비록 개인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글이 출발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 발견의 문을 연다면 수필의 가치는 그만큼 확고해진다.
2. 문학작품의 의식
우리 문학사의 흐름을 전통 지향성, 낭만주의 지향성, 모더니즘 지향성, 리얼리즘 지향성의 네 갈래로 나눌 때, 리얼리즘 문학은 의식 쪽에 쏠려 있다. 문학작품 의식의 위상은 넷으로 갈린다. 개인의식의 형이상학적 지향, 사회의식의 형이상학적 지향, 사회의식의 형이하학적 지향, 개인의식의 형이하학적 지향이 그것이다. 수필은 본디 일인칭 자아의 자기 고백 문학이며, 그 자아가 곧 작가 자신이라는 점에서 다른 문학의 양식과 성격을 달리 한다. 그럼에도 수필은 개인의식의 형이상학적 지향과 함께 사회의식의 형이상학적 지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다행이 우리 사회는 개인의식의 형이상학적 영역을 고수하여 왔다. 본격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의식의 형이상학적 영역에 크게 관심을 보여야 한다.
3. 수필의 품격
중국의 시법 '격약 불노'格弱不老에 의하면 문학은 격을 유지해야 오래 간다고 한다. 인간정신의 자양으로서 보다 좋은 수필, 보다 훌륭한 수필을 위해 반드시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품격이다. 수필 창작에서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련된 지적 성찰과 성숙한 인성의 표현이 요구된다. 깊은 우물에서 시원한 샘물을 길어 올리듯, 깊은 생각에서 수필다운 수필이 탄생되는 것이다. 품위 있고 고상한 생각, 이것이 어느 정도 정돈되어 잡혀 있느냐가 문제된다. 기교라는 세련된 솜씨는 성숙한 인성의 표현이어야 한다. 심오한 인생의 관찰 태도와 모든 사물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작가의 자질이 준비되고 여과되어 있지 않은 글은 수필이 될 수 없다. 문학적으로 격조 있는 수필에는 삶의 지혜가 서려 있다. 그것은 단아하고 무리가 없으며, 질박하고, 삶의 희열과 생에 대한 강한 의지 같은 긍정적 의미가 서려 있다.
4. 가치 있는 체험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성찰한다. 이러한 성찰을 문학적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면 감동과 공명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문학적 표현이란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창작한다는 것은 '가치의 창조'이다. 수필은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이다. 사실의 기록으로 문학이 되지는 않는다. 가치 있는 체험을 바탕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철저한 집필 의도가 있어야 한다. 여과되지 않은 감정의 노출은 수필의 재료가 될 수 없다. 세련되지 않은 표현이나 심미적 가치가 배려되지 않은 소재는 문학적 의의가 없다. 수필이 고백 문학이라고 했을 때는 그 고백에 흥미를 갖고 귀기울일 만한 가치가 견지되어야 한다. 수필이 문학 장르로서 확고한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는 기쁨을 주는 높은 차원의 쾌락성과 교훈을 주는 교시성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의 심화와 확대는 수필의 문학성을 높이는 데 필요 불가결의 것이다.
5.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
문학은 글과 말로 이루어진 예술이며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은 형상이라는 점에서는 일상생활에 쓰이는 실용적인 말과 구별되고, 인식이라는 점에서는 말장난과 구별된다. 무엇을 만들어서 내보이면 형상이다. 형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 또는 현실에서 떠나는 즐거움을 갖게 한다. 인식은 모르고 있던 진실을 알아차리는 행위가 인식이다.
인식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 또는 현실을 만나,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는 보람을 누리게 한다. 형상이면서 인식인 문학은 현실을 떠나면서 현실로 돌아오고, 떠나는 즐거움과 발견하는 보람을 함께 경험하게 하는 것을 그 구실로 삼는다 하겠다. 그러나 문학은 형상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형상으로써 관심을 끄는 정도가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는 아니다. 형상이 중요하다는 데 머문다면, 수필을 놀이의 한 가지로 오해하고 말 염려가 있다. 형상이라고 해서 다 문학일 수 없듯이, 인식이면 문학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도 아니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인식만 전하는 글은 형상을 만들지 않아야 뜻하는 바를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어 문학과는 거리가 멀다. 일상에서 사실을 알리는 데 쓰이는 글도 형상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문학은 아니다. 문학은 인식 내용을 제시하면서도 변동 불가능한 사실 이상의 것을 이해하고 상상하게 하며, 진실 발견의 체험이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나게 해준다. 개인생활을 다룬 글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조건을 갖추었으면 형상이면서 인식이니까, 문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전달 차단성으로써 문학성을 추구하고, 복합적 통일성이라는 예술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예술로서의 문학은 반드시 미적 형상화 과정을 필요로 한다. 미적 형상화 과정에서 첫 번째로 요청되는 것이 상상력의 발휘다.
6. 미적 정서와 지성, 상상
인간의 마음에는 지적인 욕구와 정적인 욕구, 그리고 의지적인 욕구가 혼용되어 있다.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욕구는 진리를 추구하고, 정적인 욕구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의지적인 욕구는 선을 추구한다. 수필은 정서와 지성과 상상의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이루어진다. 감정이 여과 없이 표출되면 미적 정서라 하지 않는다. 상상은 과거 체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지성은 인생관, 세계관의 반영을 의미한다. 수필은 정서뿐만 아니라 지성이 바탕이 된 문제까지도 섭렵할 수 있는 장르다. 문학의 일부로서 요소로서의 상상력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경험의 재구성을 통해 가치 있는 진실을 창조하는 일이다. 문학적이라는 말은 정서적이고, 상상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수필을 창작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시나 소설에서처럼, 그렇게 생산적 상상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생산적 상상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더러는 있을 수 있겠다.
7. 형상성, 참신성, 함축성, 탄력성
자기가 겪은 체험을 수필로 표현할 때는 형상성, 참신성, 함축성, 탄력성 등의 속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형상성은 쉽게 말해서 '산'이나'옷차림'처럼 움직이지 않는 대상의 모습이 '어떠하냐'라는 물음에 대하여 '이러저러하다'고 대답하는 방식을 말한다. 즉, 형상화는 사물의 모습으로부터 받은 인상이나 느낌 등을 감각적으로 가능한 한 생생하게 재현함으로써 대상을 파악하게 하는 방식이다. 주로 사물에 대한 공감에 역점을 둔 것으로 심미적인 태도가 요구되는 방식이다. 참신성이란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해석하며, 그 대상조차도 새로운 것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참신한 표현을 쓴다는 것은, 남이 쓰지 않던 말을 새로이 만들어 낸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쓰던 말도 남들이 쓰지 않던 뜻이나 용법으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표현은 새로운 느낌을 주게 되므로 곧 개성적인 표현이 된다. 함축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사전에 나와 있는 의미로만 쓰지 않고 그 언어를 통해 연상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지시적인 표현보다는 감정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내포성을 지닌 함축적 표현을 쓰는 것이 좋다. 적은 말로도 많은 뜻을 갖게 해준다. 고무줄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탄력성을 지니고 있듯이 글도 변화를 통해서 탄력을 지닐 수 있다. 늘 대하는 일상적인 글보다는 탄력이 잇는 글이 읽는 사람의 흥미를 더해 주고, 나아가 의미를 새롭게 해 준다. 수필에 탄력성을 주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생략과 확장으로 글에 일정한 리듬을 주는 것이다.
8. 제재의 질서화와 주제의 전략화
언어가 일상생활에 쓰일 때에는 지니지 않던 긴장된 질서를 갖추고 있어서 그 때문에 관심을 끌어야 한다. 여기서 제재의 질서화는 대상적 사물이 문제가 아니라 그 대상적 사물을 바라보는 주체적 자아의 눈, 그 심오한 사상이나 정서 등의 심미안에 따라서 작품의 가치가 주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본격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제재를 질서화해야 하고, 주제를 질서화해서 주제를 구체화하고,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에서 의미를 캐어내는 의미화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수필은 주제 중심의 글이다. 무엇보다도 본격수필은 주제를 내면화해야 한다. 수필가는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종류의 주제를 택하여 자기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택해야 한다. 주제를 문학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전략화가 필요하다. '전략'은 원래 목적을 달성하는 군사적 방법을 뜻하는 군사과학 용어였다. 이 용어는 매우 복잡한 상황을 조절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의미 때문에 수필 작법에 도입되었다. 전략의 개념 속에는 '목적' '적절성' '선택성' 등의 세 가지 하위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수필을 창작한다는 것은 목적 지향적 행위이다. 따라서 전략의 수행에 있어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목적'을 결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적절성'의 개념인데, 이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안을 모색하고 그 중에서 가장 적절한 노력을 들여서 최고의 성과를 얻는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선택성'은 가장 좋은 대안을 결정하고 고르는 것이다.
제재의 상관성이란 사물을 바라보는 주체적 수필가가 나타내려는 주제의식과 대상 사이에 얼마나 참신한 유사성이 있느냐를 말한다. 한마디로 제재는 주제가 요구하는 적재여야 한다. 이것은 유추 능력과 관련이 있는데, 주제의식을 나타내는 데 관련된 재료와 유사한 재료를 선택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주제를 미루어 헤아리게 하는 것이다. 주제의식을 유사성에 근거한 재료를 통해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나타내면 작문이 된다. 제재의 동질성이란 물아일체의 동질화 현상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수필가와 사물 사이의 교감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주체와 대상 사이에 동질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어서 상호교호작용이 전개된다고 하는 상사성의 법칙이다. 제재의 용해성은 제재의 인간화를 의미하는데, 제재적인 재료들이 수필가의 생활 속에 여과되어 사람의 냄새를 풍겨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가의 체취랄까 내면 풍경이 드러나야 한다는 의미다. 일종의 자기 노출의 진솔성이다. 물상을 사랑하는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객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수필가는 삶에 대한 자유로운 사유, 내밀하고도 다채로운 정신의 정경을 독자들이 흠뻑 맛보게 해주는 것이다. 이는 수필가의 잔잔한 사색의 파동을 따라가 보는 즐거움을 준다.
9. 서두와 결말
수필은 한마디의 문학이다. 한 마디로 독자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켜야 한다. 글의 첫마디는 매우 중요하다. 처음의 한 줄이 글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서두의 몇 마디에 글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두는 떡잎이다. 갈림길이다. 강물의 시원과 같다. 격조와 향취는 서두부터 풍긴다. 서두가 밝으면 밝은 글이 되고, 서두가 어두우면 어두운 글이 된다. 수필의 서두는 첫인상으로서의 '선명성'을 잃지 말아야 하고, '예보적 기능'으로서의 '암시성'을 생명으로 해야 한다. 지창에 서리는 은은한 달 그림자처럼, 수묵화의 여백에 번져오는 여운 같은 게 깔리도록 작품의 주제를 암시해야 한다. 수필에서의 서두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필에서는 마지막 부분, 즉 결미 역시 아주 중요하다. 작품은 서두에서 실패하고, 결미에서 성공한다고 한다. 서두와 결미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결정된다. 수필의 결미는 문학성과 예술성이 있으며 감동적이어야만 그 글을 처음부터 읽어온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이나 호소력, 또는 공감이나 감동을 안겨 줄 수 있다. 따라서 수필에서의 결미는 감동과 공감, 가벼운 충격이나 여운 등을 창출해 내는 구성법의 묘미가 들어 설 수 있는 핵심 부분인 셈이다.
10. 글맛, 손맛, 눈맛
수필은 세 가지 맛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수필 유삼'이다. 향기와 멋 그리고 맛이다. 이 말들은 개념의 내포가 너무 넓고 막연할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풀이하는 정도가 달라 좀더 구체화할 수 있는 용어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적절한 말을 골랐는데, 글맛, 손맛, 눈맛이다.
글감은 글의 재료가 내는 맛이다. 글감이 좋으면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은 글맛의 비중을 중시하는 말이다. 어떤 글감이냐에 따라 향기가 나느냐 안 나느냐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글맛을 내려면 무엇보다도 진실하고, 타고난 소박, 그리고 독자와 손 마주 잡을 눈물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수필은 인간의 냄새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 가슴 찡한 사연은 이미 표현 이전에 감동의 씨앗을 잉태해 있다고 할 것이다. 손맛은 정서의 문학적 형상화 즉 표현의 기교를 말한다. 같은 이야기라도 그것을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하나의 대상이나 사건은 작가의 손에 의하여 형상화 과정에서 내용이 변질된다. 그것은 작가의 기교가 무엇보다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 수필은 주제 전달 과정, 즉 형상화 과정에서 문학성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맛은 멋을 낸다. 멋이란 사물의 진미다. 손맛으로 사물의 진미를 느끼게 하려면 언어를 감정 그대로 노골적으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부드럽고 윤택하게 각색해서 함축성있게 표현하는 데서 풍기는 분위기다. 수필은 삶의 체험에서 우러난다. 지식과 체험과 사상이 용해되어 예술적인 문장으로 표현될 때, 한 편의 멋진 수필이 탄생한다. 수필의 눈맛은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데서 나온다. 수필 창작에 있어서 손맛을 내는 중요한 사고 유형은 창의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다. 위트, 유머, 세타이어, 아이러니, 패러독스 등은 눈맛을 내는 재료들이다.
11. 무형식의 형식 무기교의 기교 무질서의 질서
수필의 특징은 무형식의 형식, 무기교의 기교, 무논리의 논리라 할 수 있다. '무형식의 형식'은 어떠한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그 나름대로의 골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느끼게 하고 감명을 준다거나,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 '무엇'을 가리켜 주제라 한다면,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조립을 구상하게 되는데, 그 구성의 형태가 확연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수필은 일정한 형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형식이 내재되는 형태로서 그 '무형식의 형식'이 요구되는 장르라 하겠다. '무기교의 기교'라는 것은 수필에는 기교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기교가 요구되는 기교가 따른다는 것이다. 자기의 사상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기교를 요구한다.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설명의 나열에 그쳐서는 안 되고 표현되어져야 하는 바, 그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서는 기교가 없는 듯하면서도 실은 없는 듯한 기교가 내재되어야 한다.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통념으로 인해서 자칫 질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질서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엄연히 질서가 존재하고, 또 그러한 무질서의 질서가 요구되기도 하며, 논리에 구애됨이 없이 그저 붓이 나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쓰면 될 것 같으면서도 그 가운데는 언어의 논리적인 질서가 요구된다는 점을 간과할 수가 없다. 수필뿐만 아니라 모든 문학 형식은 언어의 질서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이란 잡다하고 무질서하기 이를 데 없다. 그 잡다하고 무질서한 사물이나 사건들은 어떠한 주제 아래 질서화하는 게 문학 형태라 할 수 있다. 수필 장르도 여기에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질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거나 아예 질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질서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문단이 모여서 수필 작품을 이루는 형식도 질서화를 위한 방편이다.
12. 선비정신과 장인정신
수필은 선비정신과 장인정신을 필요로 하는 글이다. 선비란 학덕을 갖춘 이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다. 어질고 순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수필은 정서를 요구한다. 그러므로 수필가는 정이 풍부해야 한다. 된 사람은 정서가 풍부한 사람을 말한다. "글은 정이다"는 말이 있듯이 메마른 정감, 건조한 정서는 수필에서 배격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의 삶의 원초적인 동기는 무엇보다도 이 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상이나 철학, 그리고 가족까지도 그 밑바탕이 되는 것이 정이고 보면 인간세계에 있어서 인간을 가장 절대적 존재로 인정하게 하는 바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난하지만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던 것을 고집하던 우리 선비 사상은 돈보다 정을 앞세웠다. 그래서 인정머리 없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고 미워했던 것이다. 수필다운 수필을 창작하기 위해서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전제할 때, '선비정신'이나 '장인정신'은 문학 형식 이전의 내용으로서 관심을 가질만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13. 보이지 않는다의 '눈' 말하지 않는다의 '입'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하여 보려는 눈을 소설가 이규정은 '제2의 눈이라 했다. 수필을 쓰려는 사람은 곤충학자 파브르와 같은 열정과 집요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제재를 찾는 작가의 자세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데서 어떤 진실을 관찰, 확인, 포착하려는 의지는 작가에게 필수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작가는 '제2의 눈'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비하여 '보지 않는다'의 눈, 즉 '제1의 눈'은 아예 어떤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규명해 보려는 의욕도 의지도 그리고 신념도 없는 자의 눈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는 어딘가 숨어 있는 것에 대하여 기필코 찾아내겠다는 의지의 눈이며 '보지 않는다'는 눈앞의 현실을 항상 있는 그대로만 수용하고 인정하고 이에 타협해 보려는 안이하고도 비굴한 눈임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눈이란 현실세계에 상응하는 작가의 자세이다. 그러나 현실을 바로 보고 투시할 줄 아는 작가의 눈은 일석 일조에 연마되는 것은 아니다. 흔한 말로 항상 깨어있는 의식, 언제나 팽팽한 긴장미를 잃지 않는 안목, 이런 자세가 작가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4. 단계성의 원리
본격수필 창작의 5차원 단계적 원리는 따로 학문적으로 정립된 항은 아니다. 이는 다만 필자가 이제껏 강의해온 수필창작 과정을 다섯 단계로 정리한 것이다. 좀더 쉽게 말하면 좋은 수필이 갖추어야 할 내적 요건에 해당한다. 본격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내적인 자질로서 다섯 가지 개념이 단계적으로 결속성을 가져야 한다. 루이스란 비평가는 시 창작의 과정을 1.시의 씨앗을 얻는 단계, 2.씨앗의 성장과 발전의 단계 3.구체적 표현을 찾는 단계로 나누었는데, 필자는 여기에 두 가지 과정을 더 첨가해서 다섯 단계로 정리하였다.
이는 필자의 <현대수필창작론> 교재에서 밝힌 바 있지만 정답일 수 없다 수필을 쓰는 사람마다 수필 창작 과정이나 그 방법은 천차만별이며 천인천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각양각색의 수법이 모두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란 전통적 수필론에 따른 변형 또는 모방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필자는 문학이 갖추어야 할 외적 조건과 동시에 수필의 내적 요건들이 구조적으로 통일성을 이루어야 본격 수필로서의 특성을 유지하게 된다는 차원에서 수필창작의 5단계 결속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가. 발견의 원리
김소월은 그가 죽던 해, 1925년 <개벽>지에 “시혼”이라는 시론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에는, ‘평범한 가운데서 사물의 정체를 보지 못하고, 습관적 행위에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발견의 차원에서 상당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루이스는 시 창작의 첫 단계를 시의 씨앗을 얻는 단계로 말하고 있다. 시의 씨앗 얻기를 가리켜 "그것은 어떤 감정, 어떤 체험, 어떤 관념, 때로는 하나의 이미지나 한 행의 구절일 수도 있다"고 말하였다. 그 외에도 불현듯 스쳐오는 영감, 무의식 속에서 툭 하고 떨어져 나온 하나의 생각, 강력한 심리적 충격이나 어떤 인상들일 수 있겠다. 또는 일상생활 속에서 뭔가 모를 충동에 의하여 시를 쓰고 싶다는 욕구를 생기게 하는 것들이 모두 시의 씨앗이 될 것이다.
수필 창작에서는 이것을 ‘발견’이라고 말한다. 원래는 인식 작용이란 개념을 도입했지만 이해하기 쉽도록 ‘발견’이란 용어를 썼다. 인식은 개념이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다른 의미로 오용할 수가 있다. 그래서 쉬운 말로 ‘발견’이라고 했다. 문학을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라고 했을 때, 발견은 인식의 파트다. 인식이란 모르고 있는 진실을 발견하는 정신적 행위다. 일차적으로 수필은 무엇을 발견했느냐에 수필의 성공이 달려 있다. 문학은 발견된 것을 제시하면서도 독자가 그것 이상의 것을 상상할 수 있도록 형상화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필을 한 편 보고 살펴보자. 최시병의 수필 중에 <진열장 속의 왕세자>란 작품이 있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이 사진관, 저 사진관에 진열된 아이들의 돌 사진 속의 아이들은 전부 임금님의 용포를 입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한 어떤 것을 알아내었다. 돌 사진의 용포에서 우리 한국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심리가 숨어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그러면 최시병은 어떻게 이 수필의 씨앗을 얻었을까? 이렇듯 수필의 씨앗은 우리가 실제적으로 체험한 데서 얻을 수 있긴 하지만,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연적으로 생기는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 좀더 의도적이며 집중적인 태도로 씨앗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모임에서 산행을 하더라도, 그저 옆 사람과 재잘재잘 이야기만 하고 올라가거나, 이야기도 하지 않고 앞만 보고 올라갔다가 밥 먹고 술 먹고 그냥 내려와서는, 수필을 쓰기 위해 고민하며 무엇인가 떠올리려 해도 쉽지 않다. 늘 강조하지만 훌륭한 수필가는 구경꾼이요, 방랑자요, 게으름뱅이다. 반드시 메모할 만한 연필과 노트를 가지고 가서 작은 풀꽃의 이름을 동행에게 물어서 적고, 그것들의 상태도 메모하는 것이 좋다. 고목에 왜 꽃이 피었을까라든지, 봄도 아닌데 새잎이 나타났을까라든지, 꽃 향기가 천리는 갈 것 같다든지, 꽃 이름을 모르면 그려 가지고라도 오는 것이 좋다.
혹시 절에 갔다하면 약수나 마시고 대웅전 부처나 보고 오는 것보다는 절의 내력을 적고, 부처님이나 문의 무늬, 풍경의 소리, 노거수의 내력, 절에 있는 전설, 절의 뜰에 자라는 꽃들, 기타 우리가 그냥 흘러 지나가버리는 여러 가지 메모장을 빽빽히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부끄러워할 것 없다. 집 안에서 일을 하다가도 문득 창 밖을 내다보다가도 정말 갑자기 수필의 씨앗이 툭 튀어나오면 바로 적어놓으라는 것이다. 물론 그 즉시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곧바로 메모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 있다 써야지 하고 일이 끝난 다음엔 이미 기억은 사라지고, 내가 무엇을 시로 쓸려했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미 늦다.
그런데 그 발견은 단순한 의미를 알아내거나 남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 아닌 자기만의 발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늘 보는 것일지라도 애정을 가지고 갖고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사물은 달리 보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애정 부여가 스파크를 일으키게 되면 이것이 글감이라는 감이 오게 된다. 송명화는 단 한 줄짜리 대학생이 굶어 죽은 사건에 관한 신문기사를 놓치지 않고 작품에 대한 착상을 얻게 된다. <고도>라는 작품에서다. 주인공은 몸은 움직일 수 없는데, 아무에게도 요청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가 눈물만 흘린다. 이런 상상이 작가에게 방 안은 물이 흥건한 바다가 되고 죽어버린 시신은 움직일 수 없는 섬이 되어 나타난다. 이웃과 단절된 현대 사회의 모순과 비정함을 ‘고도’라는 제재로 잘 형상화한 것이다.
나. 상관화의 원리
제재와 주제의 상관성이란 사물을 바라보는 주체적 수필가가 나타내려는 주제의식과 대상 사이에 얼마나 참신한 유사성이 있느냐를 말한다. 한마디로 제재는 주제가 요구하는 적재여야 한다. 이것은 유추 능력과 관련이 있는데, 주제의식을 나타내는 데 관련된 재료와 유사한 재료를 선택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주제를 미루어 헤아리게 하는 것이다. 주제의식을 유사성에 근거한 재료를 통해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나타내면 작문이 되고 만다.
이 과정은 부단히 인식적 사고를 가짐으로서 쉽게 해결할 수가 있다. 중국의 시법에 ‘이단불심’이란 게 있다. 제재와 주제의식의 관계를 연상 관계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사고가 필요하다. 좋은 글을 쓰는 데 삼다를 주장했던 구양수는 다독, 다작보다 다상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다상량은 생각을 깊고 풍부하게 많이 하라. 사유를 많이 하라는 뜻이다. 그 당시의 젊은 학생들이 구양수더러 묻기를 나랏일에 그렇게 바쁜데 무슨 틈을 타서 그렇게 훌륭한 글을 줄줄 써느냐하니, “나는 정말 시간이 없다. 나의 시간은 전부 억지로 짜낸 시간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어떻게 시간을 짜내는가 묻는 학생들에게 아주 솔직히 대답한다. “첫째는 말을 탈 때, 둘째는 잠 잘 때, 셋째는 화장실에서 일 볼 때 시간을 짜낸다”고 하였다.
그는 자기 업무외의 시간은 모두 체험과 사물을 연관지우는 데 썼다. 우리도 수필을 쓰는 데 따로 조용히 눈을 감고 기다리는 것이나 책상 앞에 백지를 펴놓고 시험 보는 듯하는 것은 오히려 생각을 막는 일이다. 정말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필을 생각해야 한다. 필자는 어딜 가나 메모지를 들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이 흉을 보던, 손가락질을 하던 일일이 메모하곤 한다. 자다가도 발상이 떠오르면 얼른 일어나서 단 한 줄의 아이디어라도 적어놓고 잠을 잔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그 아이디어의 연상 작용으로 수필평론을 쓰곤 하였다.
평론 같은 글은 관점이 중요하다. 제목이 대충 관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좋다. 이를테면 엉터리 수필을 ‘벼’와 같은 ‘피’로 의미화하기도 하고, 명수필과 맹수필의 대비라든지, 누구나의 문학에 누군가의 문학을 대비시킨다든지 하는 건 꾸준한 사물의 연상 작용의 결과다. 이런 상관적 사고는 무수한 체험들과 상상력이 가장 큰 힘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부분이다. 조태일은 "과거의 체험들이나 또는 앞으로 겪게 될 체험들이 적당한 햇빛과 물, 바람이 되어 문학의 씨앗들에 싹을 틔우게 하고 성장하게 하며, 상상력은 여러 체험들을 유기적으로 조직하면서 질서를 부여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만들게 한다.“고 하였다.
집 잃은 아이를 달팽이와 연결시킨 서채영의 <에스카르고>, 정이 필요한 인간 세계를 인큐베이터에 비유한 노현희의 <인큐베이터>, 인간불가지론의 비애와 안타까움을 최후의 순간에도 기록을 남기는 비행기 ‘블랙박스’에 결부시킨 박영란의 <블랙박스>, 딸의 부모 걱정이 큰 힘이 되는데 착안하여 그것을 ‘부적’으로 연결시킨 정성화의 <부적>, 자신의 것이긴 하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다리 때문에 절망하는 사람들의 비애를 소금쟁이에 비유시킨 정성화의 <소금쟁이>와 장인정신의 가치와 긍정적 측면을 야인정신과 매치시킨 송명화의 <야인시대>는 주제의식과 대상 그리고 제재가 절묘하게 상관화된 작품이라고 하겠다.
다. 동화의 원리
동화란 물아일체의 동질화 현상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수필가와 사물 사이의 교감이 있어야 함을 말한다. 주체와 대상 사이에 동질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어서 상호교호 작용이 전개된다고 하는 상사성의 법칙이다. 물아일체를 노리는 수법은 원래 시적 법칙이다. 그러나 서정의 세계를 다루는 수필 쓰기에도 주제를 내면화하고, 인간화하는 데 있어서 세계의 자아화가 필요하다.
수필적 자아와 세계가 만나면서 서정이 꽃을 피운다. 그 만남은 아주 특별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그 만남의 반응을 시적 접근이요, 언어화되면 시적 표현이 되는 것이다. 수필을 잘 쓰려면 반은 소설가가 되어야 하고, 반은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수필 쓰기에서 동화의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외부 세계에 반응하는 유기체의 반응이 단순한 수동적인 반응이 아니라 그 외부 세계를 자기가 갖고 싶어 하는 세계로 변용시켜 자아와 세계가 동일성을 이루게 할 때, 수필에서 동화가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다.
수필의 문장에서, “내가 여자로 태어난다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겠다”(나도향의 그믐달), “나는 죽어서 나무가 되고 싶다. 무슨 나무가 될까? 이미 나무를 뜻하였으니 진달래가 될까. 소나무가 될까는 가리지 않는다”(이양하의 나무), “시간을 잘게 채 썰어놓고, 채 한 조각에 자장면을 비벼 넣고, 또 한 조각엔 저녁밥을 짓고, 또 다른 몇 조각에다는 파트 타임 일을 하는 이런 숨찬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나는 가오리연이 되고 싶다”(정성화의 가오리연) 등은 사상과 감정이 동화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필적 자아가 세계와 만나는 태도와 논술적 자아가 세계를 만나는 태도는 다르다. 논술적 자아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며 객관적으로 반응할 뿐이다. 그 결과 최대한 객관적으로 세계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필적 자아는 세계를 극히 주관적으로 반응하며 만나는 것이다. 나아가서 세계는 수필가와 영적 교감을 나누는데, 이때 제재적인 재료들이 수필가의 생활 속에 여과되어 사람의 냄새를 풍겨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가의 체취랄까 내면 풍경이 드러나야 한다. 일종의 자기 노출의 진솔성을 드러내어야 한다. 물상을 사랑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객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수필가는 삶에 대한 자유로운 사유, 내밀하고도 다채로운 정신의 정경을 독자들로 하여금 흠뻑 맛보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라. 성찰의 원리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기 원하며,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성찰한다. 이러한 성찰이 문학적 방식으로 변용되어 표현되면 감동과 공명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문학적 표현이란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찰’은 경험을 위주로 하는 수필가들에게는 필수적인 일이요,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해야 되는 일이다. 세 번째 단계를 거쳐 네 번째 단계에서 자기 삶을 주제와 관련하여 되돌아보고, 자신의 체험을 감동적이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보다도 수필을 읽는 독자들의 기대가 작가의 체취와 내면 풍경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수필의 구상에서부터 창작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떤 유기적인 프로쎄스가 존재함을 볼 수 있는데, 그 과정 중에서도 전개부 말미쯤에서 다룰 ‘성찰의 원리’는 네 번째 순서에 해당한다. ‘발견’을 거쳐 ‘상관화 작업’을 마치면 ‘동화’의 단계에 접어들고 난 다음 수필가는 자기 삶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이 단계는 수필문학의 장르적 특성인 진솔함으로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으로써 수필 창작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수필 쓰기의 본질적 특성이 삶의 성찰적 반영에 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므로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삶을 돌아보고 내다보게 된다. 삶을 돌아보는 일은 자기 성찰이며, 삶을 내다보는 일은 인간다움의 모색이다. 그러하기에 수필은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모색과 성찰을 주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삶을 뒤돌아보는 성찰에는 시간과 거리가 요구된다. 그러나 요즘의 현대생활에는 이런 것들이 스며들 틈이 없다. 너무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 속도는 능률이고 능률은 경쟁의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시간을 갖고 성찰한다는 것은 그만큼 지체되고 낙오되는 결과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속으로 달리는 자동차에서는 밖의 풍경을 감상하거나 옆 자동차와의 질서를 고려할 겨를이 없다. 오히려 자칫 과속은 사고로 연결되기 일쑤다. 수필은 이처럼 무엇보다 속도에 저항한다. 체코의 저명한 작가 밀란 쿤데라는 '느림'이라는 소설을 냈다. 그는 수필은 속도가 아닌 느림의 산물이며, 느림은 곧 삶을 찬찬히 성찰하는 일임을 밝히고 있다.
삶을 성찰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반성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음미, 즉 천천히 맛을 본다는 의미다. 수필가는 삶을 살아가지만 대체 삶이 무엇인지 맛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목적 없는 인생을 살면서 그 생을 마치는 순간 당혹과 회한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소화능력과는 무관하게 주어진 정형화된 틀 속에 자신을 맞추며 힘겨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기도 한다. 자신을 바르게 살피지 못하고 앞만 보고 간다. 수필은 죽음에 이르기 전의 삶을 맛보는 것이다, 아니 나아가 죽음을 넘어선 세계까지도 상상력의 힘으로 그 맛을 보는, 느리게 인생 살기다. 느리게 거닐다 보면 보이는 것들이 많다.
마. 결속성의 원리
수필은 단계적 결속성의 원리에 의해 구성되는 글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수필을 완성시키는 데 있어서 제일 마지막 요건으로 결속성의 원리를 들고 나왔다. 결속성이란 일정한 길이로 통일된 전체를 이루는 의미단위로서의 구조를 단순한 문장들의 연쇄가 아니라 유기적 총체로서 기능하게 하는 것이다. 결속성이 있는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을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왜 그러한가를 설명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결속성은 단순히 있다 없다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있는지에 대한 정도성에 기초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결속성의 여부 기준은 다음 열거하는 요목에 대한 존재나 수용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 주제의식의 구현에 충성하는 각 단락의 종속주제의 존재 여부
․ 문단의 예시와 일반화, 일반화와 예시 구조 존재 여부
․ 스토리 전개와 전개부 결미 또는 결미에서의 주제의미화 존재 여부
․ 내용과 주제 사이의 일관성에 대한 독자 수용 여부
결속에는 외적 결속과 내적 결속이 있다. 외적 결속은 작품을 이루는 관점으로서 수필을 이루는 제재와 주제의 응집력을 말한다. 반면 내적 결속은 작품의 구조적 질서를 말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단순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 총체라는 것이다. 수필의 구성 요소가 전체의 일부로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세 가지 상호 작용적 특질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1) 주제의 내외면화 여부, 2) 종족 주제와 제재 사이의 관계, 3) 작품 내용과 주제의 독자 수용성 여부가 있다.
결속성의 원리에 따라 주제를 찾아나가고, 작품의 구조를 이해하고, 내용이나 작가의 정신적 반응에 발전적으로 대응해가도록 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 있으니, 이런 것을 우리는 결속의 브레이크라고 한다. 브레이크를 자꾸 밟아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면 제대로 운전을 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작품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브레이크’가 자꾸 걸리면, 결국 독자가 꼭 찾아야 하는 수필의 주제를 찾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 상상과 연상 작용에 의한 마음의 움직임이란 감동의 순간을 놓치고 만다. 무엇보다도 기본적으로는 바른 문장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결속성의 개념은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한 가지는 작품을 구성하는 문장들간의 연결 관계에 기초한 작품 중심의 논의이고, 또 다른 관점은 작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독자 중심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작품 주제와 관련하여 결속성은 주제의식 사이의 기저 관계를 지시하고 이론적 구성체로서 각 부분들이 전체적인 작품 주제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자질로 정의된다. 아울러 결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세 가지 상호작용적 특질로서 작품 주제, 종속주제나 제재 사이의 관계, 작품의 내용이나 주제를 독자로 하여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정보 구조다.
Ⅲ. 나가며
수필을 잘 쓰려는 사람은 수필가가 되기보다는 문장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수필을 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접근하는 아카데믹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수필은 ‘누구나’의 문학이 아니라 ‘누군가’의 문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고도 그런 차원에서 작성되었다. 경험을 펼쳐 놓는다고 결코 수필 창작이 되지 않는다. 고도의 세련된 지적 성찰이 수반되는 품격 높은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5단계 결속원리가 창작 과정에 적용되어야만 한다.
지금까지 수필창작의 이론모형도를 중심으로 본격수필의 요건들을 살펴보았다.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요건을 나름대로 제시하여 숙명처럼 수필을 괴롭히는 잡문성을 내몰고자 했으나 주어진 분량, 시간 관계 등으로 본문에 소개된 주요 개념들이나 과제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하거나 논증하지 못했다. 부족한 부분은 더 연구하고 보완해서 완벽한 창작이론모형을 되도록 노력하겠다. 이 수필창작이론모형도가 본격수필의 판단 기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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