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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언어에 대하여
∴ 夫斯達 /pasi-tara/
廣平縣 本 高句麗 斧壤縣 景德王 改名今 平康縣;於斯內縣 (一云 斧壤)
'壤'과 '內'의 대응은 앞에서(13) 밝혔으므로 '斧'와 '於斯'의 대응은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즉 '斧'의 고구려말 새김이 '於斯'로 표기된 것이다. 이기문(1968), 박병채(1968)에서는 사멸어로 처리되었고 유창균(1980:307)에서는 일본어 [ono]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였다. '斯'는 앞서(7, 11) 살펴본 대로 지명자료에서나 향찰표기에서나 음차자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며,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i/이다. 그런데, 이 '於'자는 향찰에서 훈독과 음독의 두가지로 사용되고 있는 점에 주목된다.
於冬矣用屋尸慈悲也根古(도천)⇒ 어드릐 올 慈悲야 근고
於內人衣善陵等沙(수희)⇒ 어 사 善陵 사
此地 捨遣只於冬是去於丁爲尸知(안민)⇒ 이 리곡 어드리 가 디
'於'는 한문에서 주로 '위치·방위'를 나타내는 어조사로 쓰이는데, 이에 대한우리말 새김은 <유합>, <석천>, <왜해> 등에 모두 '늘 어(於)'로 나와 있다. 최남희(1997:145∼146)에 따르면 고대국어에 위치자리토씨로 ' /늘'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보고, 다음의 중세국어 자료는 그 화석일 것으로 논의하였다.
蛟龍은 삿기 혀디나가고(蛟龍引子過)<두초七8>
보내여 너 주마(送將來與 )<노下17>
이러한 용례에 따라 '於'의 15세기 새김은 ' '로 볼 수 있다. 이 글자를 새김으로 읽는 관습은 후대에도 이어져서 ' 時調'는 '엇시조'라고 읽지만 사람이름 '李 同'은 '이늦동'으로 읽는다. 또한 서울 효제동의 옛이름 '느릿골'은 '於義洞'으로 나와 있어서 '於'를 새김으로 읽을 충분한 근거가 된다.(성원경 1993:501∼502) 이를 전기고대국어의 음운체계에 따라 열린음절로 발음하면 /n r /가 된다. 이로써 고대국어의 위치자리토씨에 /n r /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斧'의 중세국어 새김은 '도 '이다. 그런데, 같은 뜻을 가진 글자 '斤'이 <자회>와 <유합>에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斧 도 부<자회> 斤 근 又斧斤, 又十六兩爲一斤<자회>
斧 도 부<유합> 斤 도 근<유합>
여기서 '斤'의 새김 ' '은 이 글자의 두 번째 뜻인 '무게의 단위'에 대한 우리말 새김이 아니라, 원뜻 '도끼'에 대한 옛 새김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 '이라는 낱말이 15세기 이전에는 중세국어 ' ㅎ(刃)'이나 지금말 '날(刃)'과는 좀 다른 의미범주를 가졌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자의 새김은 현실언어보다 보수적이어서 이전 단계의 옛모습을 유지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회>가 전한 ' '이라는 새김은 아마도 이전 시기의 유습이 남아 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낱말은 중세 및 현대국어에서는 '도끼'의 뜻이 아니라 '刃' 즉 '칼이나 창 따위의 날카롭게 벼린 부분'을 뜻하는 것이지만 15세기 이전의 국어에서는 그보다 의미범주가 넓어서 '날붙이'를 일컫는 두루이름씨로도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전 단계로 거슬러 가면 확연히 드러나게 되는데, 고려어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속요 '사모곡'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호 도 히언 / 낟가티 들리도 업스니 다.<악장가사>
이를 현대국어로 옮겨보면,
호미도 날붙이건마는(날이 서 있지만) / 낫같이 들 리도 없습니다.
과 같이 되어, 고려어에서 '호 '의 상위어가 ' ㅎ'이라는, 즉 '호 ∈{ ㅎ}'이라는 낱말범주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려어에서 ' ㅎ'은 '날이 서 있는 쇠붙이'를 뜻하던 두루이름씨였으며, 이는 고대국어에서도 그러했을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는 증거이다.
이 '斧'와 '於斯'의 대응은 그러한 새김의 대응인 것이다. '於斯'는 훈차자 '於'의 고대국어 새김 /n r /에 음차자 '斯/si/'가 이어져서 /n r si/를 표기한 것으로, '斧'의 의미를 가진 고구려말이다. 이 낱말이 의미범주가 변하여 중세국어 ' ㅎ(刃)'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n r si>n lsi>n lh'의 음운변화까지 추출할 수 있어서, 중세국어 'ㅎ' 끝소리 낱말들의 'ㅎ'이 고대국어 /s/에서 발달한 것을 증명하게 되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는 고친이름에서 나타난 '廣'의 중세국어 '너르-, 넙-'과도 관계가 있다.
∴ 於斯內 /n r si-nu/
赤城縣 本 高句麗 沙伏忽 景德王 改名今 陽城縣
고구려말의 색채어 '赤:沙伏'이 추출된다. 이는 다음 자료에서도 찾을 수 있어서 고대국어에 '赤'을 뜻하는 그림씨가 '沙伏', '沙非', '所比'로 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赤木縣 (一云 沙非斤乙)
赤鳥縣 本百濟所比浦縣
유창균(1980:292)에서는 /sap r/로 읽고 중세국어 '새 '과 이어진다고 하였다. 각 글자의 발음을 알아보겠다.
沙 生歌 sa s sra eai 사
伏 職 b iw k b iuk/- bjw k/- b w k 복
所 生於 sa sio sia a 소
非 滂微 piw d piw r pjw r p w i 비
比 / 脂 b ied b i r bjier b ei/p- 비
'沙'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a/이고, '伏'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p k /였을 것이다. 따라서 '沙伏'은 /sap k /를 표기한 것이 된다. 그런데, 이 표기에서 끝소리 /-k /는 무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같은 표기 '沙非斤乙'과 '所比浦'에서 '斤乙'과 '浦'는 다 /k/첫소리를 가지는 낱말로, 같은 닿소리가 겹치면 앞엣것이 없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非, 比'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다같이 /p r /였을 것이다. 이에 따라 '赤'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의 원형을 /sap r k /로 재구한다. 이것은 지금말에서처럼 '밟-', '읊-'과 같이 고구려말에서도 낱말이 이어질 때 끝닿소리가 탈락되는 현상이 있었음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즉 '沙伏忽'은 /sap -kuru/로 /-r k /가 탈락된 어형이고, '沙非斤乙'과 '所比浦'는 /-k-/가 겹쳐 탈락된 어형이라고 설명되는 것이다.
이는 [계림유사]의 기록 '紫曰質背'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낱말로 해석된다. 송나라 사람 손목의 개봉음 체계상 이 기록은 / i t-puai/를 표기한 것이고(강신항 1980:89), 이는 중세국어 '싯븕-'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沙伏', '沙比', '所比'는 다 같이 /sap r k /의 변이형태로서, '赤'의 뜻을 가진 고대국어이다. 또한 도수희(1984:52, 106)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이는 '沙'와 '伏'의 합성어로서, 중세국어 '새-(東, 新, 陽)'와 이어지는 낱말 /sa/에 '赤'을 의미하는 낱말 /p r k /가 합성된 낱말의 표기로 해석된다.
∴ 沙伏忽 /sap (r k )-kuru/
淸風縣 本 高句麗 沙熱伊縣 景德王 改名今因之
박병채(1968)에서는 /sanj li/로 해독하였고, 유창균(1980:323)에서는 /san li/로 읽었다. 최남희(1995)에서는 '사 -'에 매김법 씨끝 '-이'가 결부되어, '淸風縣'의 고구려말은 '사 리 縣' 곧 '서늘한 縣'이 된다고 해석하였다. 여러 선학들의 연구결과에서 '淸'의 새김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이 '沙熱'로 표기된 것이고, 중세국어 '사 -(凉)'과 이어지는 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沙'는 앞에서(29) 밝혔듯이 고구려한자음은 /sa/였고, '熱'의 한자음을 살펴보겠다.
熱 日月 i t i t njiat at 열
첫소리로 재구된 [ ], [n] 등은 고구려말 닿소리체계상 /n/으로 반영되었을 것이고, 중심홀소리 [a]를 반영하여(최남희 1999ㄷ:174)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nara/였을 것이다. 따라서 '沙熱'은 /sanara/를 표기한 것이다. 뒤에 붙은 '伊'를 맺음법씨끝 '-이'로 본 견해를 좇아 '沙熱伊'는 /sanari/로 해석한다.
∴ 沙熱伊 /sanari/
三嶺縣 本 高句麗 三峴縣 景德王 改名今 方山縣;三峴縣 (一云 密波兮)
'波兮:峴'의 대응을 앞서(25) 밝혔으므로, '密:三'의 대응을 추출할 수 있다. 이기문(1968)에서는 이 자료를 고구려의 독특한 셈씨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이를 고구려만의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 신라지명에서
玄驍縣 本推良火縣(一云三良火)
密城郡 本推火郡
密津縣 本推浦縣
㉡ 백제지명에서
玄雄縣 本百濟未冬夫里縣
우선 ㉠에서 신라말에 '玄'의 뜻을 가지는 말이 '推良', '三良'으로 표기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여기서 '推', '三'은 훈차자로서 그 새김은 '密'의 당시 발음과 같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에서 백제말에서도 '玄'의 뜻을 가진 말이 '玄雄', '未冬'으로 표기되었음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密', '推', '推良', '三良', '玄雄', '未冬' 등으로 표기된 낱말은 고대 삼국에 공히 쓰여지던 것으로, 그 본질적인 뜻은 '三'이 아니라 상징어로서 '玄', '玄雄'의 의미인 것이다. 더욱이 '三'이 나타나는 고구려지명에는 다음과 같이 중세국어 '세, 세ㅎ(三)'에 이어지는 /sa/, /si/로 해석되는 것이 발견된다.(천소영 1990:138)
三陟郡 本 悉直國 景德王 改名今因之;悉直郡 (一云 史直)
'玄'은 단순히 색이 검다는 뜻보다는 '아득하다', '현묘하다', '영검하다' 등의 추상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伊 慶永(永一作玄)<삼사신라>'에서 '永'과 상통하는 의미로도 나타난다. 게다가 백제지명에서 '雄'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龍', '神'(陽物)의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三峴'의 '三'은 단순한 숫자의 의미가 아니라 상장적인 의미로 '신령한 것'을 뜻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密'의 발음을 살펴보겠다.
密 明質 miw t miet miw t m et 밀
상고음 제8류 '脂質眞'부의 중심홀소리 [-e-]는 고대한자음에 / /로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끝소리가 혀끝소리일 때는 이의 영향으로 조음점이 앞으로 당겨져 /i/로 반영되므로,(10) 이 글자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miri/였을 것이다. 이는 <조선관역어>의 '龍 米立 壟' 및 중세국어 '미르(龍)'에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된다.
∴ 密波兮 /miri-paki/
車城縣 本 高句麗 上(一作 車)忽縣 景德王 改名今 龍城縣;上忽 (一云 車忽)
'上'과 '車'의 대응에서 두 글자의 새김이 같았으리라는 것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유창균(1980)에서는 '峰, 上, 車'의 새김이 고구려말에서 같았을 것으로 보고 /sul/로 읽었다. 또한 천소영(1990:34∼43)에서도 '수리'는 '높은 곳, 존장자' 등을 뜻하는 말로 중세국어 '수릿날(端午)', 현대국어 '봉우리(峰)', '정수리' 등에 이어지는 어휘라고 하였다. 이 글자들의 중세국어 새김을 찾아보겠다.
上웃 <유합上21, 석천14, 아학下2>, 上 우희라<월석序17>
車술위 거<자회中26, 유합上29>, 술위 챠<광천22>, 車 술위라<월석二28>
이 새김이 고대에도 같았다면 '上:車'의 대응은 성립되지 않는다. '車'의 새김은 다음의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국어에서도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俗以端午 爲車衣<유사2>
端午俗名戌衣 戌衣者 東語車也<동국세시기>
'車衣'는 '훈차자+끝소리덧적음'으로 표기된 것이므로 '車'의 고대국어 새김은 /surV/ 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 '衣'의 발음은 일연의 당대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온당하므로, 앞서(13) 살펴본 향찰표기의 소릿값에 따라 / i/로 본다. 따라서 '車'에 대한 고대국어 새김은 /sur i/로 밝혀진다. 고구려말에서도 이와 비슷한 발음의 낱말이 /sVrV/ 형태로 있었다고 본다.
이 /sur i/가 '上'의 고구려말 새김과 대응되고 있으므로, '上'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sVrV/를 추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지명자료에서 '높은 곳'을 뜻하는 고구려말을 찾아낼 수 있다.
峯城縣 本 高句麗 述 忽縣;述 忽縣 (一云 首泥忽)
'峯'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이 '述 ', '首泥'로 표기된 것을 알 수 있다.
首 書幽 io sio st j w u 슈
述 船物 d iw t diw t zdjiw t w t 슐
日之 nier -- njier ei
泥 泥脂 nied nier ner niei 니
우선 '首'의 첫소리로 재구된 [ ], [s], [ ]는 고구려말 닿소리체계상 /s/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자와 '述'자가 일차적인 대응을 보이고 있으므로 '述'자의 첫소리도 역시 /s/로 보아야 한다. 즉 고구려말에서는 상고음 '船'모에 해당하는 닿소리를 발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가장 유사한 닿소리 /s/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首'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u/이고, '述'은 /suru/로 추정된다.
' ', '泥'의 첫소리로 재구된 [ ], [n]은 다 고구려말 닿소리체계상 /n/으로 반영되었을 것이고, 중심홀소리 [e]는 / /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만일 상고음 끝소리 [r]류를 반영했다면 이 글자들은 다 같이 /n r /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결국 '述 ', '首泥'는 각각 /sun r /, /sur n r /를 표기한 것이 되며, 이는 '峯'의 의미를 가진 고구려말로 중세국어 '수늙(嶺)'에 이어지는 낱말임이 드러난다. 이것은 /surV+n r /의 합성어로 해석될 수 있는데, 그것은 '述 :首泥'의 대응이 /r /가 그 사이에서 탈락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한 흔적을 말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上'의 뜻을 가진 낱말로 '述/suru/'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종합해 보면 '上忽(一云車忽)'에서 '上:車'의 대응은 동훈대응이며, '上'을 뜻하는 고구려말과 '車'를 뜻하는 고구려말이 동음어로서 /suru/였음을 결론할 수 있다. 이는 중세국어 '수늙(嶺)', '술위(車)'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낱말이다.
∴ 上(車)忽 /suru-kuru/
安市城 舊 安十忽(或云 丸都城)
유창균(1980:345)에서는 '安十忽'이 '安寸忽'로 나와 있고 /an-t n-k l/로 해독하였다. 그러나 판본에 따라 '寸'은 '十'으로 기록된 곳이 많으므로 '十'의 잘못적음으로 보고자 한다. '安十忽(或云 丸都城)'에서 '安十'이 '丸'의 새김에 대응한다. '都'는 '도시'라는 뜻으로 붙은 한자식 이름의 뒷가지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또한 '在遼水之北 遼水一名鴨 今云安民江<유사1>'이라는 기록에서 미루어 볼 때 이는 '鴨 '이라는 강이름과 관계 깊은 땅이름일 것이다. '안시성'은 고구려 말기에 당나라 침략군과 큰 전투가 벌어진 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舊安十忽'이라고 기록된 것은 고구려 말기보다 더 오랜 시기의 지명이 '安十忽'이라는 설명이 된다. 그러나 이는 이름이 바뀐 것이 아니라 단순히 표기가 변한 것으로 판단된다. '安十'의 발음을 살펴보겠다.
安 影元 an n an an 안
十 禪緝 i p i p dji p p 십
'安'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ana/였을 것이다. 그러나 차자표기자료에서 이 글자의 /-n-/이 변화를 겪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安賢縣 本阿尸兮縣(一云阿乙兮) 景德王改名 今安定縣
㉡ 道安縣 本刀良縣
㉢ 咸安郡 法興王以大兵滅阿尸良國(一云阿那加耶)
위의 예 ㉠로부터 安=阿尸=阿乙…安定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고, ㉡에서는 '安:良'의 대응으로부터 '安'이 /r/ 음소를 보유한 소리의 표기로 쓰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더욱이 ㉢에서 安=阿尸=阿那 의 대응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서 '安'은 /ara/를 표기하는 데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향찰 표기자료에서도 '安'은 '알/ '로 읽힌다.
安支尙宅都乎隱以多(우적)⇒ 알지 尙宅 모돈이다
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찬기)⇒ 구룸 주 간 지하
이에 따라 '安'은 /ara/의 표기인 것으로 인정한다.
다음으로 '十'은 첫소리로 재구된 [ ], [ ], [dj], [ ] 등은 고구려말 닿소리 체계상 /s/로 받아들여지고, 중심홀소리 [ ]는 / /로 반영되어서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 p /였을 것이다. 그런데, '安市'의 '市'와 대응되기 때문에 끝소리 /p /는 무시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安十'은 /aras /를 표기한 것이 된다.
'丸'의 새김에 대응되므로 고구려말 '安十/aras /'는 중세국어 '알ㅎ(卵, 個)'에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된다. 여기서도 중세국어에 '-ㅎ' 끝소리를 가진 낱말이 고구려말에서 /sV/로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고구려말의 강한 생명성을 웅변해 주는 자료로서, 중세국어에 나타난 '-ㅎ' 끝소리 낱말의 원형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준다.
∴ 安十忽 /aras -kuru/
兎山郡 本 高句麗 烏斯含達縣 景德王 改名今因之
신지명의 '兎'의 새김에 '烏斯含'이 대응된다. 이기문(1968)에서는 /osaxam/으로 읽었고, 박병채(1968)에서는 /osaham/으로 읽었다. 또한 유창균(1980)에서는 / s r am/으로 읽고 일본어 [usa i]와 연관된 낱말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이 '烏斯含'의 '烏'는 잘못 쓴 글자일 가능성이 크다. 박병채(1968)에서는 다음의 자료들에서 '烏'는 '鳥'의 잘못일 것으로 논의하고 그에 대한 한자음을 재구하여 밝힌 바 있다.
津臨城縣(一云 烏阿忽) → tjoa 중세국어 '닿-(臨, 接)’
猪足縣(一云 烏斯逈) → tjos 중세국어 '돋(猪)’
猪 峴縣(一云 烏生波衣 一云 猪守)
猪 穴縣(一云 烏斯押)
이 '烏'와 '鳥'는 글자의 모양이 비슷해서 서로 섞갈릴 위험이 많고, 또 실제로 그렇게 잘못 쓴 예도 문헌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예컨대 [계림유사]의 고려어에 대한 기록에서 '斧曰烏子蓋<304>'의 '烏'는 '鳥'를 잘못 쓴 것이고, '來曰鳥 '<322>의 '鳥'는 '烏'를 잘못 쓴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더욱이 [삼국사절요]에는 이 '烏斯含達'이 '鳥斯含達'로 기록되어 있다. 원전의 잘못을 따져 고치는 일은 물론 함부로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보는 이유는, '烏斯', '烏生' 등이 [삼국사절요]의 기록을 증거로 '鳥'의 잘못으로 해석함으로써 중세국어 '돋'과의 연관성이 입증된다면, 마찬가지의 논지로 해석함으로써 중세국어 '톳기(兎)'에 이어짐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삼국사절요]의 기록을 올바른 표기로 인정하고 '烏斯含'의 '烏'는 '鳥'의 잘못으로 본다.
鳥 端幽 tio tio te w tiu 됴
含 匣侵 m m m m 함
상고음 제2류 '幽'부의 중심홀소리 [io], [iu], [ u] 등은 고구려말 홀소리체계상 /u/로 받아들여서, '鳥'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tu/였을 것이다. '斯'는 앞서(7) 밝혔듯이 /si/이고, '含'의 첫소리로 재구된 [ ], [ ] 등은 고구려말 닿소리체계상 나는 자리가 같은 /k/로 반영되어서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k m /로 추정된다. 따라서 '鳥斯含'은 /tusik m /로 해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중세국어 '톳기(兎)'에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된다. 임병준(1997)에서는 말머리닿소리떼의 통시적인 연구를 위해 중세국어에서 끝소리의 'ㅅ'이 지금처럼 [t ]로 중화되지 않고 제 소리대로 갈이가 일어나 /s/로 발음되었음을 논증한 바 있는데, 이에 따라 중세국어 '톳기'도 /t oski/로 발음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고구려말 /tusik m /는 '>*tusik wi>*tusk i>t oski'의 변화를 거쳐 현대국어 '토끼/t ok i/'에 이어져 온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 烏(→鳥)斯含達 /tusik m -tara/
翊谿縣 本 高句麗 翼谷縣 景德王 改名今因之;於支呑(一云翼谷)
'谷:呑'의 대응은 앞서(9) 확인하였으므로, '翼'의 새김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의 표기 '於支'를 추출해 낼 수 있다. 유창균(1980:332)에서는 '於'를 새김으로 읽어 /narki/로 해석하고 중세국어 ' 개(翼)'에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최남희(1997ㄴ)에서도 이어져서 '於'는 훈차자로서 고대국어 위치자리토씨 ' '로 읽어야 함을 밝혔다(28). 이 견해를 좇아 '翼'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n r ki/를 재구한다. 이는 선학들의 논의에서 밝혔듯이 중세국어 ' 개'에 이어지는 낱말이다.
∴ 於支呑 /n r ki-t r /
交河郡 本 高句麗 泉井口縣 景德王 改名今因之;泉井口縣 (一云 於乙買串)
앞서(3) 논의하였듯이 '口'는 '串'와 대응하여 '古尸/kusi/'로 읽는다. 따라서 '泉井:於乙買'의 대응을 찾아 낼 수 있다. 이는 다음의 자료에서도 나타나서 그 대응 관계가 더욱 명확하다.
井泉郡 本 高句麗 泉井郡 景德王 改名今 湧州
泉井郡(一云於乙買)
여기서 '買'는 '水, 川'을 뜻하는 고구려말 /m i/의 표기에 쓰였으므로 '於乙'을 떼어내어 볼 수 있는데, 이기문(1968)에서는 이를 / l/로 읽고 '泉'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로 보았다. 박병채(1968)에서도 같은 견해로서, 중세국어 '우믈(井)'에 이어지는 말로 보았으며 나아가 고친이름 '交'와 관련하여 중세국어 '어르-, 얼-(交, 合)'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이같은 견해는 유창균(1980)에서도 이어져 於乙買/ l-m r /에서 첫홀소리 / /가 뒤의 입술소리 /m/의 영향으로 /u/로 닮아가고 /l/이 탈락되어 중세국어 '우믈'이 형성된 것으로 논의되었다. 또한 천소영(1990:106∼107)에서도 '於乙買'는 '泉'에 해당하는 고구려말 / rV/ 혹은 / rV/에 '買'가 합성된 낱말로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구려말 '於乙買'는 모두 음차자로만 쓰였으며, '於乙+買'의 합성어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즉 '於乙買'가 중세국어 '우믈'의 뜻범주를 가진 낱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於乙'이 '泉'과 관계가 있음은 다음의 고구려말 표기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高句麗大臣 淵淨土<삼사6>;蓋蘇文弟淨土<신당서220>
有蓋蘇文者, 或號蓋金, 姓泉氏, 自云生水中以惑衆.<삼사49열전, 신당서220>
大臣伊梨柯須彌[irikasumi]弑大王<일본서기24>;大臣入霞<太子傳曆>
즉 연정토라는 사람이 개소문의 동생이라는 <신당서>의 기록에서, 개소문의 성이 '淵'씨였음이 확인되는데, 여러 기록에서 '泉'으로도 썼고, 그것이 [일본서기]에 [iri]로 전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성으로 쓰인 한자 '泉'을 고구려사람들은 한자음으로 읽지 않고 고구려말 새김으로 읽었다는 증거가 된다. 한편 이기문(1968)에서는 '淵'과 '泉'이 모두 훈차자인 것으로 보았으나, '淵'은 '깊은 연못'을 뜻하고 '泉'은 '물이 솟아나는 곳' 즉 '샘'을 뜻하므로 두 글자는 의미상 거리가 있다. 그래서 지명자료 '…高句麗 泉井郡…今 湧州'에서 고려초 지명이 '淵州'가 아니라 '湧州'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淵'은 의미의 유연성을 지닌 음차자였을 것이다. 이는 다음의 고구려지명자료에서도 그 대응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酒泉縣 本高句麗酒淵縣
즉 원래 이름의 '淵'은 '泉'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의 음차표기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지금까지의 증거로 '泉:於乙:淵:iri'의 대응이 성립된다.
먼저 '於乙'의 발음에 대해 살펴보겠다. '乙'의 고구려한자음은 /iri/로서 주로 약음차자 /ri/를 표기하는 데 쓰였던 글자임은 앞서(10) 이미 논의되었다.
於 影魚 ia io ja a 어
상고음 제5류 '魚'부의 중심홀소리 [a]를 /a/로 받아들이는 원칙에 따라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을 /a/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과는 달리 향찰에서는 /u/, / /로 읽히는 것으로 보아, '魚'부의 운모가 홀소리만으로 음절을 이루는 글자들은 상고음 홀소리가 달리 반영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컨대 '阿[a]'자같이 오로지 한 홀소리만으로 이루어진 글자와 '於[ia]'자처럼 여는홀소리가 있는 글자들의 발음이 고대국어에 전사될 때, 겹홀소리를 명확하게 따라서 발음할 수는 없었겠지만 분명한 차이를 인식하기는 하였을 것이다. 여기서는 향찰표기의 해독례에 따라 / /로 읽혔을 것으로 추정한다. 즉 '於乙'은 / ri/를 표기한 것이 된다. 이는 '淵'의 한자음을 살펴봄으로써 '於乙:淵'의 음대응도 확인할 수 있다.
淵 影眞 wen iwen wen iwen 연
상고음 제8류 '眞'부의 중심홀소리 [e]에 혀끝소리가 이어지므로, '淵'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ini/ 정도였을 것이다. 앞서(9) 지명표기에 나타난 /n/ 끝소리 글자들이 /r/의 표기로 쓰인 예를 찾아 논의한 바 있는데, 이에 따라 '淵'의 고구려한자음을 /iri/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於乙/ ri/'와 유사음 대응으로써, 곧바로 [일본서기]의 '伊梨[iri]'와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종합하여 보면 '泉'에 대응하는 고구려말이 / ri/, /iri/의 두 가지로 있었으며, '於乙買'는 / rim i/를 표기한 것으로 해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계림유사]의 기록 '井曰烏沒'과 <조선관역어>의 '井 五悶 整' 및 중세국어 '우믈(井)'로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된다.
∴ 於乙買串 / rim i-kusi/
夫城 本 肖巴忽
이 자료에서는 옛이름의 '肖巴'가 고친 이름의 '豊夫'에 대응한다. 우선 뒤에 붙은 '巴'와 '夫'에 대해 살펴보겠다.
巴 魚 pwa p prwa pea 파
夫 / 魚 b iwa /p- b iwo/p- bjwa /p- p wa/b- 부
고구려말 닿소리에는 울림과 안울림의 대립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첫소리가 [p]든 [b]든 상관없이 /p/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따라서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두 글자가 다 같이 /pa/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巴'와 '夫'는 음 대응이 된다. 그것은 다음의 고구려 지명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屑夫婁城 本 肖利巴利忽
이에 따라 신지명 '豊'의 새김에 옛지명 '肖'의 발음이 대응한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다시 '夫'가 '巴'에 음 대응을 하고 있으므로 이는 끝소리덧적음으로 해석된다. 즉 '豊'의 의미를 가진 고구려말이 두 음절로 '肖巴'의 발음에 해당하는 것이다.
'豊'은 지금에는 '풍년 풍( )'자의 약자로 쓰이지만 원래 '禮'의 옛글자로서, 제사에 쓰이는 굽 높은 그릇을 뜻했고, 따라서 '술(酒)'과 관계가 있는 낱말을 새긴 표기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 학계에서는 이를 '醴(단술 례)'의 약자로 보고 있다.(류 렬 1990:205 및 김수경 1989:180) 또한 '豊'의 고대국어 새김에 대하여 또하나의 실마리를 주는 자료가 있다.
比豊郡 本百濟雨述郡
즉 '豊:述'의 대응에서 '豊'의 백제말 새김이 '述/suru/'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豊'의 의미범주를 '酒'의 고대국어 새김으로서 중세국어 '수울(酒)'와 관련지어 해석하고자 한다. '肖巴'는 두 글자 다 음차자로 쓰인 것이 분명하므로 '肖'의 발음을 살펴보겠다.
肖 心宵 si sio sjiaw s au 쇼/쵸
이 글자의 상고음 첫소리에 따라 고구려한자음에서도 첫소리 /s/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최남희(1999ㄷ:57∼62)에 따르면 이 글자의 운부로 재구된 홀소리 [au] 등은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상 /u/로 반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글자에 대해서는 신라 인명표기에서 /a/로 반영되었다고 논의하였다. 그러나 앞에서(27) 살펴본 '夫斯', '扶蘇'의 발음과 지명 표기자료의 용례에 따르면 이 글자의 홀소리는 /u/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위에 제시한 재구 상고음에서도 '肖'의 중심홀소리는 [ ], [o], [aw], [au]로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이 글자의 상고음 중심홀소리를 [a]로 명확하게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령 뒤의 두 분의 재구음을 인정하여 이 글자의 홀소리를 [au]로 본다 하여도, 이러한 중국음의 홀소리 [au]는 현대중국어에도 존재하는데 이는 현대한국한자음의 /o/와 대응한다. 한자음의 차용과 반영의 입장에서 볼 때 고대국어의 음운체계에서 [au] 식의 홀소리는 /u/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肖'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u/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이러한 분석에서 '肖巴'는 '酒'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supa/를 표기한 것으로 해독해 낼 수 있다. 이는 다음의 신라말 자료와도 비교할 수 있다.
酒多後云角干<삼사1신라>
大角干(或云大舒發翰)<삼사38직관>
太大角干(或云太大舒發翰)<삼사38직관>
伊伐 (或云伊罰干 或云于伐飡 或云角干 或云角粲 或云舒發翰 或云舒弗邯)<삼사38직관>
즉 '酒'와 '角'의 고대국어 새김이 동음어로서 신라말에 '舒發' '舒弗' 등으로 음차표기된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구려말에서 '肖巴/supa/'로 나타나고, 백제말에 '述', 신라말에 '舒發' 등으로 나타난 고대국어 낱말은 [계림유사]와 <조선관역어>의 다음 기록에 이어지고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 계림유사
酒曰 <187>
飮酒曰 李麻蛇<197>
煖酒曰蘇 打里<198>
㉡ 조선관역어
酒飯 數本把 主半<396>
酒 數本 主<498>
黃酒 努論數本 主<510>
凉酒 燦數本 兩主<511>
熱酒 得本數本 耶主<512>
이러한 자료들은 중세국어 '수을, 수울, 슈을, 술(酒)' 등이 그 전 단계에는 /sVpV(r)/ 형태로 존재했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된다. 따라서 고구려말 /supa/는 이 기록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肖巴忽 /supa-kuru/
海曲(一作 西)縣 本 高句麗 波旦縣 景德王 改名今未詳;波旦縣 (一云 波豊)
고친 이름의 '海曲'은 고구려 지명의 '波旦', '波豊'과 대응한다. 즉 '海'를 뜻하는 고구려말의 표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자료는 고구려 지명 자료 '海利縣 本 高句麗 波利縣'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신라말 표기자료 '波珍 (或云海干)<삼사38잡지>'에서도 나타나서, 고대국어에 '海'를 뜻하는 동일한 낱말이 공존했음을 알 수 있다. 박병채(1968)에서는 이를 /pari/, /padan/으로 해독하고 중세국어 '바 , 바다(海)'에 이어지는 낱말의 표기로 보았다. 유창균(1980:340)에서도 이를 /par r/, /pat n(r)/로 해독하고 중세국어 '바 , 바 '과 연관된 낱말로 논의하였다. 또한 천소영(1990:148)에서도 이 자료는 고대국어에서 '海'를 뜻하는 낱말 /par r(<*pat r)/의 표기로 해독하였다. 여러 선학들의 연구결과, '海:波旦, 波豊, 波利'의 대응에 대하여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글에서도 이를 수용하여, '海'의 의미를 가진 고구려말의 표기로 '波旦', '波豊', '波利'가 나타난 것으로 보고자 한다. 이제 이들의 발음을 추적하여 보겠다.
'波'의 고구려한자음은 앞서(25) 논의한 것처럼 /pa/이고, '旦'은 '9'에서 논의한 대로 /t r /였다. 따라서 '波旦'은 /pat r /를 표기한 것이 된다.
다음으로 '豊'은 앞서 (37)에서 밝혔듯이 '풍년 풍( )'의 약자가 아니라, '禮, 醴'의 옛글자이다.
利 來脂 lied li d li r l ei 리
豊 來脂 lied li r ler (liei) 례
이 두 글자는 상고음 재구음도 같은 음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상고음 제8류 '脂質眞'부의 중심홀소리 [e]는 / /로 반영되는 원칙(7)에 따라 이 글자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r /로 볼 수 있다. 만일 이 글자의 상고음 운미 [d], [r] 등이 반영되었다면 이 글자의 고구려한자음은 /r r / 정도였을 것이다. 즉 '波利', '波豊'은 다 같이 /par r /를 표기한 것으로 해독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말의 '海'에 해당하는 낱말은 /pat r /, /par r /의 두 가지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 이는 방언적인 차이를 반영하거나, 자체 내의 변화를 반영한 표기로 해석된다.
∴ 波旦 /pat r /
潢川縣 本 高句麗 橫川縣 景德王 改名今復故;橫川縣 (一云 於斯買)
'橫'의 새김과 '於斯'가 대응한다. 이기문(1968) 및 박병채(1968)에서는 이를 / s/로 해독하고 중세국어 '엇(橫)'과 연관지어 논의하였으며, 유창균(1980)에서는 / s r/로 읽고 이의 축약형이 / s/라고 했다. 이에 따라서 '於斯買'의 '於斯'는 두 글자 다 음차자로 쓰인 것으로 본다.
앞서(7, 36) 분석한 이 글자들의 고구려한자음에 의하여 '於斯'는 / si/를 적은 음차표기로 해독할 수 있다. 이는 선학들의 논의에 따라 중세국어 '엇(橫)'에 이어지는 낱말로 본다.
∴ 於斯買 / si-m i/
金壤郡 本 高句麗 休壤郡 景德王 改名今因之;休壤郡 (一云 金惱)
'壤:惱'의 대응은 앞서(13) 논의한 바 있으므로, 이에 따라 '惱'의 고구려한자음 /nu/로 읽는다. 이 자료에서는 고친 이름의 '金'과 고구려지명의 '休'가 대응하고 있다. 이것은 '休壤郡 (一云 金惱)'에서 다시 확인되고 있는데, 이는 두 글자가 새김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다음의 자료에서도 근거를 찾아낼 수 있다.
諱斯由(或云釗)<삼사18고구려>
眞智王立 諱舍輪(或云金輪)<삼사4신라>
省良縣 今金良部曲<신라지명>
鐵冶縣 本百濟實於山縣<백제지명>
즉 '金'을 의미하는 고대국어 낱말이 삼국에 공존했다는 것인데, 고구려말에서는 또한 '休'의 새김과 동음어였거나 유사한 발음을 가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천소영(1990:150∼151)에서는 이를 /*s ri>sui/로 재구하였고, 도수희(1999:31)에서는 /*siri>*sori>soj/의 변화를 추정하였다. 고구려말의 '休壤郡(一云 金惱)'를 유창균(1980:338)에서는 /s r-nar/로 해독하여, 고구려말의 '金'을 뜻하는 낱말은 /s r/로 보았다. 이 글에서는 위에 든 자료 중에서 고구려말의 표기에 가장 가깝다고 판단되는 '諱斯由(或云釗)<삼사18고구려>'로부터 이 자료에서 나타난 '金'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을 복원하여 보고자 한다.
'釗'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고유한자로, 중국의 전고에 없으므로 이 글자의 상고음은 아예 있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이 글자의 발음은 그 시대의 '金'의 새김에 해당하는 낱말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동음대응이 '斯由'로 나타나 있으므로, 고구려말의 '釗'에 해당하는 낱말의 발음은 '斯由'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斯'의 고구려한자음은 /si/이고, '由'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由 餘幽 dio dio ri w iu 유
상고음의 '餘'성모로 재구된 [d], [r], [ ] 등은 고대한자음에 /r/로 반영되었음을 앞서(22) 논의하였으므로 이 글자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ru/ 정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斯由'는 /siru/를 표기한 것이 된다. 이로써 '休', '金'을 뜻하는 고구려말 /siru/를 복원해 낸다. 이는 도수희(1999)에서 '鐵冶縣 本百濟實於山縣'을 근거로 '鐵'에 해당하는 고대국어 원형을 /*siri/로 재구한 것과 매우 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또한 천소영(1990:151)에서 지적되었듯이 [계림유사]의 '金曰那論歲(207), 銀曰漢歲(209), 鐵曰歲(211)'와, <조선관역어>의 '銀 遂 引(479), 鐵 遂 迭(483)'에 이어지는 낱말이며, 중세국어 '쇠(金, 鐵)'로 이어지는 말로 볼 수 있다. 또한 도수희(1999:31)에서의 언급과 같이 현대국어 '떡시루, 시루(熟鐵)'에서 그 옛모습이 남아있다. 더욱이 중세국어 '쉬-(休)'와도 밀접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이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 休壤(金惱) /siru-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