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 소리가 요란하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우리 집의 위층에 사는 남자가 흥분하여 소리친다.“지금 심한 연기가 올라옵니다!” 아파트 복도에는 어느새 매캐한 연기와 뭔가 타는 냄새로 가득하다. 아래층 쪽에서 검은 연기가 푹푹 솟아오르고 있다. 그는 여러 집의 초인종을 연속으로 눌러댄다. 놀라 뛰쳐나온 주민들이 허둥댄다. 위층 남자는 연기의 진원지가 우리 집의 바로 아래층이라고 짚었다. 비상사태다. 그때가 저녁 식사 후 한 시간이 지난 즈음이다.
“119에 신고부터 하세요!” 위층 남자가 현장지휘자로 바뀌었다. 나는 얼떨결에 119 신고를 평생 처음 했다. 당직 경찰은 건물 가스 시설부터 차단하라고 했지만, 주민 누구도 그곳을 몰라 허둥댄다. 경비원이 가스관 잠금 시설을 찾아내었는데 레버는 녹이 슬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발만 동동거렸다. 금세라도 아래층에서 뻘건 불꽃이 창밖으로 넘쳐 나올 것 같다. 신혼 시절 독거 할머니가 살던 꼭대기 층에 화재가, 나서 검붉은 불꽃이 창밖으로 널름거리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긴박한 시간이 흘러간다. 소방차가 출발했다는 문자가 오고 5분이나 지났을까, 불자동차들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철모와 누런 제복 차림의 소방관들이 들이닥쳤다. 소방관들은 연기 나는 집의 초인종을 연속으로 눌렀다. 연기는 쉼 없이 문틈으로 솟아 나왔다. 나중에는 쾅쾅 발로 찼지만, 응답이 없다. 맞은편 집 주민이 “그 집에는 연로한 할머니 혼자 산다”고 증언했다. 아파트 주민들, 중 그 할머니를 아는 사람은 두어 사람뿐이고 아무도 얼굴을 몰랐다. 앞집의 주부는 그 할머니를 인텔리라고, 소개했는데 평소에도 주민들과 교류가 없고 며느리가 한 번씩 보살피고 간다고 일러주었다.
타는 냄새는 그침이 없는데 안에서는 잠잠했다. 사람들은 할머니의 난청 증세를 상상했는데 소방관들은 지켜보고만 있다. 소방팀장은 불꽃이 밖으로 나오는 기미가 없어 강제 개방하지 않는다고 우리의 의아함을 풀어준다. 소방관은 불이 가장 잔인한 정점일 때 그 상황과 마주한다. 그러나 주민들은 소방관이 불고 마주하는 모습을 원하지 않는다. 할머니 신변에 일어난 불안감이 몰려와 가슴만 조였다.
안에서 아무 기미가 없자, 난감해진 소방관들은 데드라인을 넘겼다고 발표하고 판단하고 위층인 우리 집 거실로 들어왔다. 소방관이 줄을 타고 아래층 베란다로 들어가는 순간 7층 현관문이 열렸다. 소란 중에 누군가 할머니 집과 통화가 된 모양이다.
문이 열리자 소방관 몇이 일시에 몰려가서 집안 점검을 마치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바깥의 소란에도 할머니는 모른 체하고 불탄 냄비만 천연덕스레 씻고 있었단다. 그건 냄비 태운 흔적에만 신경을 썼다는 증거다. 아파트는 낮, 시간에 초인종이 자주 울렸다. 가스계량 확인, 종교 전도, 신문 세일 등으로 방문한 사람들이다. 안에서 묵묵부답이면 제풀에 지쳐 돌아간다. 할머니도 이를 귀찮아했을까. 하지만 이날 밤 할머니의 태도는 엉뚱하기는 했다.
소란이 가라앉자 할머니가 집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분은 쑥스러운 듯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했는데 우리가 걱정하던 중세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분을 처음 보았다. 이사 온 지 10년째다.
아파트마다 반상회보다 가정 프라이버시를 우선 내세워 이웃 사람 만나기는 더 힘들다. 소방관들은 대형 화재가 아님에 안도하고 천만다행함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방 경찰이 철수한 뒤, 지구대 경찰은 내 휴대전화에 메시지를 보냈다. “신속한 신고에 감사드립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신고하면 언제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자상하고 친절한 문자였다. 소방 경찰은 이번 사건으로 다시 주민들의 구세주임을 확인해 주었다. 그들은 아이들이 울 때 ‘순사가 잡아간다,’고 겁주던 이미지가 아니었고 경각에 걸린 일에는 신속히 달려와 준 마을 기둥이었다. 그들이 떠난 때 주민들은 1층까지 내려가 손을 덥석 잡아주고 파월장병 전송하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불은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가졌다. 강아지 대하듯 감싸주면 어둠을 밝히고 음식도 익혀준다. 춥지 않게 온기를 주고 횃불처럼 신이 나면 격정과 정열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러나 유익하고 편리한 앞 얼굴만 보다가 뒤쪽 얼굴을 망각하면 그만 난폭성을 드러낸다. 화상을 입히고 인간들이 아끼는 소유물뿐 아니라 집까지 재로 만들어 만사 휴의가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바람을 친구 삼아 너울너울 춤추다가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불은 사람들이 TV, 휴대 폰에 넋 놓고 있을 때 무서운 얼굴로 덤벼들지만 아기 보듯 달래면 온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100세대가 사는 우리 아파트에는 툭하면 연기가 피어나온다. 음식 조리하다 다른 일에 몰두하여 냄비 얹은 걸 잊은 게다. 그때마다 주민들은 혼비백산한다. 우리 집도 그런 적이 몇 번 있기에 긴장을 풀지 않는다. 이웃이 현관문을 두드릴, 때에야 실수를 자백하고 민망해한다. 외부로 빠져나가는 연기와 타는 냄새를 막을 수가 없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날, 주민들은 벌통 같은 집을 나와 소통한다. 눈, 인사만 나누던 사이였다가 그때는 걱정하는 사이로 바뀐다. 몇 년 만에 인식하는 사람을 보면서 속으로 주억거린다. ‘아, 저분이 저 집에 사는구나!. 나는 할머니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할머니 바로 위층 사람입니다.” 프로메데우스가 가여운 인간을 위해 선사한 불은 본연의 임무 외에 이런 만남을 주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