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장의 여인』(작사 반야월, 작곡 이재호)은 1957년 발표한
「권혜경」의 데뷔 곡이자 그녀를 대표하는 곡 중의 하나입니다.
1955년 미8군 무대로 노래를 시작한 「권혜경」은 이후 1957년
『산장의 여인』으로 데뷔한 뒤 한때 가수 생활과 일요 신문사의
기자직(記者職)도 겸업(兼業)한 화려한 이력의 가수였습니다.
1950년대를 풍미한 「권혜경」(1931 ~ 2008)은 당대의 톱 스타,
눈 높은 독신녀(獨身女)였습니다. 가냘픈 체격의 청순미로 사내들
마음을 뛰놀게 했고, 은행원이라면 누구나 알아주던 시절 조흥
은행을 그만두고 1956년 당시 서울 중앙 방송국(현 KBS) 가수
모집에 응시, 전속 가수 3기생으로 발탁됩니다.
그러나 그녀는 뭇 남성 팬들에게 "꿈만 먹고사는 공주님"으로
비쳤지만, 사실 그녀도 아팠던 첫사랑의 상처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 연인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였으나, 지닌 것이라 곤 가난
밖에 없어서 데이트하느라 커피를 마시고 나면, 자기의 두 무릎
사이에 작게 접은 천 환 짜리를 끼워 탁자 밑으로 전달 했고,
그는 그 돈으로 찻 값을 내며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첫 연인에게는 집안 어른들이 어린 시절 정해준 배필이
있었고, 어느 날 그 여자가 「권혜경」을 찾아와 그 사이의 모든
사정을 알리고 간 뒤,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등을 돌려야 했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권혜경」의 집 앞을 서성거렸지만 그녀는 더는
그를 받아 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이 첫사랑의 얘기가 "사랑은 가고 노래만 남아"란 제목으로
'아리랑 잡지'에 실린 뒤, 「권혜경」의 팬들은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 들여졌다고 합니다. 「권혜경」하면『산장의 여인』이었고
『산장의 여인』하면 「권혜경」 으로 통할만큼 「권혜경」의 대표
히트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장의 여인』은 영화 화 되고 영화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작사자 반야월 선생이 '마산 방송국'에 재직 시 '국립 마산 결핵
요양소'에 위문 공연을 갔을 때, 한 모퉁이에서 흐느끼고 있는
미모의 여성에게 눈이 끌렸다고 합니다. 공연 후 그 사유를 알아
본 즉 결핵 환자로서 '외로운 산장(山莊)'에서 회상에 잠긴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알았고, 이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여 지은 것이
이 노래였습니다.
당시 이 슬픔의 노래는 특히 화류계(花柳界)에서 크게 유행했었죠.
유흥업소의 여성들이 자신에게 낙착(落着)된 어둡고 슬픈 운명을
『산장의 여인』이라는 대상을 통해 발견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 이 노래를 부른 「권혜경」도 노랫말 처럼 병마(病魔)로 인해
고독한 세월을 홀로 보내는 쓸쓸한 삶을 살았기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곡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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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 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 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풀벌레만 애처로이 밤새워 울고 있네
행운의 별을 보고 속삭이던 지난 날의
추억을 더듬어 적막한 이 한밤에
님 뵈 올 그날을 생각하며 쓸쓸히 살아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