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구가 작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거의 없는 선수다. 슈팅력 스피드 기술 패싱력 시야가 모두 좋다. 한마디로 갖출 건 다 갖췄다. 특히 순간적인 스피드가 좋고 머리가 영리하다. 경기전 잠깐 얘기해주면 금방 알아듣고 응용을 할 줄 안다. 유고전을 앞두고 “키 큰 선수들하고 겨룰 때엔 가까이 가지 말고 방향전환을 많이 하라”고 주문했는데 그대로 따라줬다. 가장 맘에 드는 대목은 훈련태도가 아주 성실하고 진지하다는 것이다. 어린 선수가 야망이 크고 튀더라도 결코 나쁜 쪽으로는 튀지 않는다. 그래서 발전 속도도 아주 빠른 것 같다.
‘세상 밖’으로 나온 이천수. 지난해부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더니 유고와의 친선경기를 계기로 완전히 떴다. 누구보다 이를 흐믓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낳아 준’ 부모님과 이천수를 ‘키워 준’ 임종헌 고려대 코치다.
일화와 울산에서 8년 간의 프로생활를 마감하고 96년 부평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임종헌 코치는 신입생 이천수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하고 조금은 당돌하기까지 한 신입생 이천수. 그러나 임종헌 코치는 이를 밉게 보지 않았다. 소위 감독과 선수 사이의 ‘궁합’이 맞아떨어진 셈.
속마음을 토로할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난 이천수는 사춘기 시절을 별다른 방황 없이 극복하며 ‘야생마’처럼 그라운드에서 쉽게 흥분하는 단점을 고칠 수 있었다.
임종헌 코치도 ‘천하의 영재를 만나 가르치는’ 즐거움을 맛보며 지난해 부평고에 3관왕을 이룰 수 있었다. 올해는 고려대 코치로 발탁, 고려대로 진학한 이천수와 끈끈한 인연이 이어졌다.
임종헌 코치는 “한마디로 근성이 징그러운 선수”라고 이천수를 평가한다. “어떻게 저런 플레이를 해낼까 깜짝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는 임코치는 “지나친 승부욕이 유일한 흠”이라고 지적한다.
심지가 굳은 아버지 이준만씨도 이천수의 성장에 보이지 않는 힘이 됐다. 부평고 시절부터 짬짬이 숙소에 들러 궂은일을 거리낌없이 했고 선수단 버스 운전까지 자처하며 음양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일부 학부형과는 달리 ‘아들이 운동 잘한다’는 티를 좀처럼 내지 않았다.
고려대와 의리를 앞세워 연고 구단인 안양 LG의 스카우트 공세(신인최고대우 보장, 4억원이상 제시)를 막아낸 것도 아버지. 이천수가 프로행에 마음이 흔들릴 때 “안양에 가거라. 대신 호적도 함께 LG로 옮기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최근에 어떤 분이 ‘아시아의 다람쥐’라는 별명이 어떠냐고 물어보데요 .다람쥐처럼 머리카락에 물을 들여볼까도 생각했지만 영 마뜩지 않네요.근사 한 별명 하나 지어주실래요?” 애늙은이처럼 진지한 태도로 일관하던 그는 인터뷰가 끝나가자 예의 익살 스럽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던진다.얼굴을 맞대다보면 어쩔 수 없이 흠뻑 빠 질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타 이천수의 표정은 팔색조 같은 그의 축구기량만큼이나 다양하고 발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