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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8장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3)
사기궁을 지은 이후 진(晉)나라의 권위는 눈에 띄게 떨어졌다.
진평공에 이어 진나라 군위에 오른 진소공(晉昭公) 역시 큰 포부를 품은 군주는 아니었다.
그는 무사제일주의(無事第一主義)였다.
진소공(晉昭公)은 지난날의 업적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 예전의 진(晉)나라가 아니다.
진나라를 한 번 다녀온 중원의 제후들은 한결같이 이런 생각을 품었다.
이런 미묘한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진나라 세력을 거머쥐고 있는 귀족들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천하는 다시 사분오열될 판이었다.
다행인 것은 경쟁국인 초나라의 내분이었다.
- 초(楚)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 다시 중원을 추스려야겠다.
진소공(晉昭公)은 중원을 둘러보았다.
한 나라가 눈에 띄었다.
그 나라는 제(齊)나라였다.
최근 들어 제나라는 부쩍 강성함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과 손을 잡고 영향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제나라 군주를 초빙하는 것이 어떨까?"
"좋은 일입니다. 제(齊)나라가 순순히 우리 뜻에 따라만 준다면 우리는 남방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진소공(晉昭公)은 제경공에게 사자를 보냈다.
- 먼 길이지만 특별히 오셔서 우호를 다짐이 어떠하겠습니까?
그 무렵, 제(齊)나라는 내정을 완전히 다지고 군사력 증대에 온 힘을 쏟아붓고 있던 때였다.
제경공(齊景公)은 자연히 타국의 움직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초나라와 진나라에 많은 세작들을 파견하여 세세한 것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확실히 예전과는 다르다.'
눈에 띄게 진(晉)나라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 이제 우리 제(齊)나라도 천하 패업을 도모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중에 진소공(晉昭公)으로부터 사자가 도착했다.
'진나라 사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좋은 기회다.'
제경공(齊景公)은 진소공의 초청에 응했다.
곧 모든 채비를 갖췄다.
재상 안영을 대동하기로 했다.
새로이 등용한 고야자(古冶子)라는 장사를 호위무사로 삼았다.
거창한 행렬이 임치성을 출발했다.
수행원만 수백 명에 달했다.
여행은 순조로웠다.
제수(濟水)를 건너고 황하에 이르렀다.
모두들 배를 탔다.
그런데 여기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제경공(齊景公)의 수레를 끄는 말 중 좌참(左驂)에 해당하는 말은 제경공이 유독 아끼는 명마였다.
좌참이란 수레를 끄는 왼쪽 말을 말한다.
곁들여 말하면, 당시 수레는 이두마차와 사두마차가 있다.
이두마차의 경우 왼쪽 말을 참(驂)이라 하고, 오른 쪽 말을 비(騑)라 한다.
사두마차인 경우에는 왼쪽 바깥 말을 좌참, 왼쪽 안쪽 말을 참, 오른쪽 안쪽 말을 비(騑), 오른쪽 바깥 말을 우비(右騑)라고 한다.
제경공(齊景公)의 어자는 좌참(左驂)이 제경공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말인 것을 알고 따로이 뱃머리에 매어두었다.
그런데 배가 황하 중간쯤 건넜을 때였다.
별안간 비가 쏟아지면서 큰 파도가 일었다.
금방이라도 배가 뒤집힐 듯 요동쳤다.
바로 그때 강물 위로 괴물 하나가 머리를 쳐들고 나타났다.
다름 아닌 자라였다.
그 자라는 어찌나 큰지 수천 년은 묵은 듯했다.
그것을 뱃머리에 매어두었던 좌참(左驂)이 보았다.
말은 놀랐음인지 앞다리를 번쩍 치켜들었다.
배가 기우뚱하며 좌참(左驂)은 그대로 강물에 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 자라와 말은 한덩어리가 되어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사랑하는 말이 죽게 되었구나."
제경공(齊景公)은 어쩔 줄 몰라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곁에 있던 호위무사 고야자(古冶子)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공께선 아무 염려 마십시오. 신이 주공을 위해 말을 찾아오겠습니다."
고야자는 옷을 벗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거친 파도에 휩쓸리며 물 위를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며 아래로 떠내려갔다.
배는 그런 고야자를 따라 10리쯤 내려갔다.
어느 순간부터 고야자(古冶子)마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흔적조차 없었다.
제경공(齊景公)은 탄식했다.
"말을 찾으려다가 고야자(古冶子)마저 잃었구나."
그러는 중에 별안간 풍랑이 멈추고 누런 강물 위로 끊임없이 피가 솟아올랐다.
뱃전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여 숨을 죽이고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소용돌이가 일며 고야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
모두들 탄성을 내질렀다.
단순히 그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야자(古冶子)의 왼손에는 말 꼬리가 쥐어져 있었고, 오른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라의 목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제경공(齊景公)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참으로 고야자는 신력(神力)을 지닌 용사로다. 지난날 제장공이 용작(勇爵)이라는 벼슬을 두었지만, 어찌 그들 중에 고야자만한 용사가 있었으리오."
제경공은 입 안에 침이 마르도록 고야자(古冶子)를 격찬하고 많은 상을 하사했다.
그 후의 여정은 다시 순탄했다.
얼마 후, 제경공(齊景公)은 진나라 도성인 강성으로 들어갔다.
진소공(晉昭公)은 잔치를 베풀고 제경공을 환영했다.
연회가 끝나갈 무렵, 진소공(晉昭公)이 제경공에게 청했다.
"여흥으로 투호(投壺)놀이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투호란 작은 항아리에다 화살을 던져넣는 놀이를 말한다.
주로 궁중에서 즐겨했다.
좌우 사람들은 뜰에다 호(壺)를 설치하고 진소공과 제경공에게 각각 화살을 바쳤다.
진소공(晉昭公)이 먼저 화살을 던질 자세를 취했다.
곁에 서 있던 진나라 대신 순오(荀吳)가 덕담을 올렸다.
"술은 회수(淮水)만큼 많고, 고기는 산처럼 쌓였습니다. 주공께서는 부디 화살을 호(壺) 속에 던져넣으시어 천하 제후를 통솔하소서."
진소공(晉昭公)은 화살을 던졌다.
화살은 정확하게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
진소공은 의기양양하여 나머지 화살을 버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진나라 신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외쳤다.
"우리 주공 천세(千歲)!"
다만 양설힐(羊舌肹)만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다음은 제경공(齊景公) 차례였다.
그는 진소공의 흉내를 내어 주변 사람들이 다 들리도록 축원했다.
"술은 황하만큼 많고, 고기는 태산만큼 쌓여 있도다. 이 화살을 호(壺)에 넣어 과인이 진후(晉侯)를 대신하여 천하를 일으키리라."
화살을 던졌다.
그 화살 역시 정확하게 호(壺)속에 들어갔다.
제경공(齊景公)은 껄껄 웃으며 나머지 화살을 땅바닥에 버렸다.
동시에 제나라 수행원들이 땅에 엎드리며 외쳤다.
"우리 주공 천세!"
순간 진소공(晉昭公)의 안색이 변했다.
순오(荀吳) 역시 굳은 표정으로 제경공에게 항의했다.
"군후의 말씀은 잘못입니다. 오늘 군후께서 우리 나라에 오신 것은 우리 주공이 천하 제후들의 맹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공을 대신하여 천하를 일으키겠다는 것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안영(晏嬰이 제경공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맹주란 어느 한 나라에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오. 오직 덕이 있는 분만이 천하를 통솔하게 되어 있소. 옛날에 우리 제(齊)나라가 패업을 잃었을 때 진나라는 우리 나라를 대신해서 천하 패업을 이루지 않았소? 진(晉)나라가 덕이 있다면 어느 나라가 따르지 않겠소?"
"그러나 만일 진(晉)나라가 덕이 없다면 남만인 초나라나 오나라인들 천하 패권을 잡지 못할 이유가 없소. 하물며 우리 제(齊)나라가 어찌 패권을 잡지 못하리오!"
그러자 양설힐(羊舌肹)이 나서서 순오의 경솔함을 타박했다.
"우리 진(晉)나라는 이미 천하 맹주국이거늘, 설사 주공께서 화살을 호(壺)에 넣지 못하더라도 패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소. 애초에 그런 축원을 하는 것이 아니었소."
순오(荀吳)는 얼굴을 붉히고 한구석으로 물러섰다.
진소공과 제경공의 친선 회담은 그렇게 끝이 났다.
며칠 후, 제경공(齊景公)은 호기롭게 제나라로 돌아갔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