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허리 곧추 편 눈밝은 납자*
하늘에 경배하는
영혼의 눈빛 참으로 곱다
뼈마디 시린 고독 속 피워낸
붉은 혼불
*운수납자(雲水衲者)의 줄임 말, 누더기를 입고 구름 가듯 물흐르 듯 떠돌아 다니면서 수행하는 승려를 말함
[시작(詩作)노트]
이른 봄에 아직도 냉기 서린 지표면을 뚫고 나왔던 푸르른 잎의 모습이 어제처럼 푸른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그 언제 잎이 지고 모습을 감췄는지 모르는 사이에 흘러간 봄과,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문턱에서 기다림의 목을 길게 빼고 선홍색의 꽃을 피우는 상사화를 만난다. 본디 상사화라는 꽃은 여름에 피어나는 노랑에 가까운 주황색 꽃이다.
꽃무릇도 이 상사화와 마찬가지로 꽃과 잎이 서로 함께 안핀다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생태적 공통점 때문에 통상 상사화라 부른다. 꽃대가 마늘처럼 이파리 하나 없이 밋밋해서 석산(石蒜)이라고도 한다. 한자로 직역하면 돌마늘이 제격이다. 여섯 장의 가늘고 긴 꽃잎과 더 길고 더 붉은 여섯 개의 수술과 암술이 우산처럼 펼쳐지면서 한 송이 꽃을 이룬다.
그런 꽃송이가 줄기 끝에 다발로 피면 마치 폭죽이 터지는 듯하다. 수천 수만의 군락을 이루어 붉은 물감을 확 뿌려 놓은 듯 장관이 따로 없다. 이렇듯 무리지어 핀다고 하여 꽃무릇이란 애칭으로 부른다. 기실 상사화는 칠월칠석을 전후로 해서 잎이 진 뒤에 연분홍이나 노랑꽃이 피고, 석산, 꽃무릇은 백로와 추석사이를 전후해서 꽃이 피고 잎은 꽃이 진 후에야 나온다.
꽃무릇은 피고 지는 생태가 현생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의 세계에 드는 것 같다하여 피안화(彼岸花)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꽃과 잎이 평생 한 번도 만날 수 없다는 슬픈 꽃이라 하여 이별초라 하기도 한다. 한 양가집 규수가 출가한 젊은 스님을 연모하다 상사병이 나서 죽은 후에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이라 하여 상사화란 명칭이 붙었다는 애절한 전설이 깃든 꽃이다. 이 꽃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모두들 이처럼 이 꽃을 보고 외롭다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기실 이 꽃은 비록 꽃과 잎이 만나지는 못해도 잎은 꽃을, 꽃은 잎을 배려해 주어진 시간을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꽃이라 할 수 있다. 잎이 피어난 어느 날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지는 이유는 땅속의 알뿌리를 위해 왕성한 광합성을 한 뒤 부식토가 되기 위함이요. 그 자리에서 홀연히 피는 꽃은 잎의 헌신을 기리는 노래이다.
잎도 없이 한 송이 꽃을 피워내는 꽃무릇은 순수하고 눈부시며 장엄하다. 깊은 고독 속에 묻혀 깨달음의 꽃인 양 저토록 붉은 혼불을 피워 놓았는지, 그것은 곧 순결한 소망을 위해 타오르는 촛불 같고 하늘에 경배하는 수행자의 자태 같기도 하다. 여느 꽃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만이 아닌 선각자의 깨달음과도 같은 엄숙함과 영혼의 눈빛이 느껴지게 하는 꽃이다.
이 꽃은 예로부터 절집에서 알뿌리의 전분을 얻으려고 많이 심었다. 이것을 즙을 내어 탱화나 단청 그릴 때 쓰거나 또 제본할 때 강력 접착제로 썼는데, 살균력도 뛰어나 이 풀로 붙인 한지는 오랜 시간 지나도 좀이 쓸지 않는다고 한다. 언제나 혼을 쏙 빼는 선남선녀는 조심해야 한다던데 이 꽃무릇 역시 독성이 강하다. 그러나 민방에서는 거담이나 구토, 기관지염, 폐결핵, 해열제 등으로 다른 약제와 함께 곁들여서 쓰여 왔다.
이 꽃빛 쏙 닮은 붉은 색조의 노을이 솜털처럼 내려앉고 있는 가을날이다.
우리네 삶 우리의 일상 시간 역시 유장하게 또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