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 장 < 2 >)
성경말씀 읽기는
반드시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대화로 연결 되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의 지식 없이는 믿음은 결코 생겨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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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예수님을 열심히 믿으면 뭔가 달라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열심히 잘 믿으면 예수님이 자신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대우해서 세상에서 높여주는 그런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기 전이나 믿은 후나
사는 것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신앙이 있음으로
해서 천국과 지옥을 알게 되고, 세상을 심판받을 땅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절실히 원하는
자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달라질 뿐입니다. 결국
달라지는 것은 환경이나 형편이 아니라 우리의 속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인간적으로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그야말로 33년 동안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비참한 모습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연하셨습니다.
비록 세상적으로 눈에 보이는 큰 업적은
남기지 못했어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예언되어진
선지자의 예언을 좇아 살았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되어 진 모든 일들도 성경의 말씀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어둠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으셨고 자신에 대하여
예언된 것을 하나,하나 검토하시더니“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족한 일생을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의 궤도를 사셨기에 인간적으로는 초라한
최후를 맞으면서도 승리의 외침,"다 이루었다" 만족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1.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요한복음 19 :23-24)
예수님을 맡은 군병들은 네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넷으로 나누어 하나씩 가졌습니다.
그의 속옷은 통으로 짠것이어서 제비를 뽑아 그것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 22 :18-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십자가 위에서 겉옷과 속옷을 벗기운 채 수치스런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2.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신 일.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한복음 19 :25-27)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곁에는 그 어머니
마리아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여인들은
끝까지 예수님의 십자가 곁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는 요한이 옆에 있는 것을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가리키며 어머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또한 요한에게는 어머니를 가리키며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제자 요한이 마리아를 모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동생들이 있었지만 어머니를
동생들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동생보다 제자 요한을 신뢰하였습니다.
제자들을 가족같이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이 어머니를
모시도록 요한만큼은 순교를 당하지 않고 장수하게 도와 주셨습니다.
"이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포도주를 머금은 해융(海絨0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한복음 19 :28-30)
예수님께서는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
하신 후에 자신에 대한 성경의 예언이 모두 이루어진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도 시편 69편 21절 말씀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예수님은 초(신포도주)를 마시게 하려고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거기에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룻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말씀대로 신포도주를
해면에 적셔서 우슬초 장대에 매어서 예수님의 입에 대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하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야에 대한 성경 말씀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실 때에 감격하고
만족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시고 영혼이 떠나가셨습니다.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달라 하니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요한복음 19 :31-33)
예비일은 유월절-무교절 주간의 안식일의
예비일 즉 금요일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요청
하기를 안식일에 죄수들의 시체를 십자가 위에 두지 않으려고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그 시체들을 치워달라고 했습니다.
사형수들의 다리를 꺾는 것은 그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좌우의 죄수들의 다리를 꺾은 군병들은
예수께 와서 그가 이미 죽은 것을 보고 그의 다리는 꺾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9 :34-35)
다리를 꺾는 대신 군병 중 한 사람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옆구리에 창으로 찔림까지 받으셔서 물과 피를 다 흘리셨습니다.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요한복음 19 :36-37)
예수님을 찌른 자들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죽인 죄를 회개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자신의
죄에 대해서 애통하기를 독자가 죽었을 때에 애통하듯이 애통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십니다.
3. 장례를 치른 숨은 두 제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 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 가니라"
(요한복음 19 :38)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식은
특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드러나 있지 않았던 두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고
다른 하나는 니고데모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상한 때에 비상한 방법으로 그의 일을 행하십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이지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그 사실을 숨기며 은밀히 처신한 자입니다.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그는 부자요 존귀한 공회원이었고 선하고
의로운 자이며 예수님을 정죄한 유대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은 자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자였습니다.
그는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당돌하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시체를
받아 세마포를 사서 그것으로 싸서 자기의 새 무덤에 장사 하였습니다.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요한복음 19 :39-40)
예수님의 장례식을 수종든
다른 한 사람은 수년 전에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 거듭남에 대한 말씀을 들었던 니고데모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섞은 것을
한 백금쯤 가지고 와서 요셉과 함께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예수님의 시체를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예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요한복음 19 :41-4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아래 아직 아무도 장사하지 않은 새 무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자의 무덤에 묻었습니다.
이것은 신기하게 이사야 53장 9절에 그의 무덤이 악인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후에도 하나
하나가 성경의 말씀을 다 이루시고 우리의 죄값을 다 청산하셨습니다.
구원역사를 완성하시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은혜 속에서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은 후에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합니다.
우리도 임종의 순간에 다 이루었다고 말하고 죽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두 제자들의 주님께 대한 사랑의 장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남이 두려워 할 때
자기가 나타나고, 남이 기피할 때 스스로 위험한 일을
담당하며, 남이 주저하는 일을 자신이 선 듯 나서는 일은
주님께 대한 진실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인 줄 믿습니다.
주님께 거짓이 없는 사랑, 이들처럼 희생적인 사랑을
드릴 수 있는 우리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두 도망친 후에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를 감당할 충성스럽고
경건한 사람들을 남겨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죽음과 비난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장사
지낼 수 있도록. 담대한 믿음을 허락 하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하나님 임재하시어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 우리를 위협속에 처하게 할지라도 결코 주님을 멀리하는
망령된 삶을 살지 않도록 은혜를 베푸시고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복인줄 깨닫는 우리 모두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6. 25.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