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안내해주신 사가현의 배형주 님과 우레시노시 타다키 상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합니다,
여러가지로 폐가 많았습니다. 서울 오시면 시원한 나마비루 한잔 올리겠습니다. 연락주세요. ^^
우리가 터벅터벅 걸어서 가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바로 이곳이 일본의 도자기문화를 꽃피운 원동력이자 기폭제가 된 이즈미야마 자석장입니다.
일본에서는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받는 도조 이삼평 님이 바로 이곳에 있던 최상급의 도자지용 백토를
1616년 발견하면서 일본 도자기의 역사가 바뀌게 됩니다.
이삼평 님은 정유재란 당시 포로로 끌려간 수많은 조선의 도공 중 한명으로 아무리 제작기술이 좋아도
도자기에 적합한 좋은 흙이 없으면 상질의 도자기 생산이 불가하기에 규슈 섬 전역을 다니며 백토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러다가 18년만에 비로소 이곳에서 도자기 생산에 매우 적합한 흙, 정확하게 말하면
토질을 만나서 이곳에서 도자기를 생산하게 됩니다.
400년 동안 산 하나를 도자기로 바꾸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곳입니다.
산 하나를 다 도자기를 바꾼 것은 물론이고 그만큼 다시 땅 속을 파고 들어간 모습입니다.
일본에서는 이 자석장 자체를 사적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최상급 도자기용 흙은
- 유리질 성분을 가진 '규석' - 도자기의 형태를 이루는 '점토' - 규석과 점토를 붙이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장석'
성분이 적당한 비율을 이루어야 제대로된 자기가 생산된답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처음부터 흙이 아니라 암석 형태의 것을 잘게 부수고,
물과 섞어서 불순물을 걸러내는 수비작업 등을 거쳐야 비로소 도자기의 재료가 됩니다.
또 상황에 따라 다른 흙이나 물질들을 섞기도 하지요.
사진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셨답니다.
이분은 아르미야마 자석장의 신을 모신 석장신사의 이삼평상입니다.
마치 도인과 같은 풍모에 한복 입으신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이곳에서 이삼평 님을 존경하는 마음은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던 이분의
조선식 이름을 일제강점기에 찾아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분 앞에서도 잠시 전체 묵념을 하고 다음 진행을 하였답니다.
도조 이삼평 상은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 자체로도 대단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석장신사에 대한 한글 안내입니다.
다음에 우리가 갈 곳은?
바로 철도 건너편에 있는 곳입니다.
일본 속 한국문화를 찾아 걷는 의미 있는 곳이랍니다.
바로 도조 이삼평 님을 신으로 모시는 도산신사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도자기용 백토를 찾아 일본의 도자기문화를 꽃피운 이상평 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이토록 기리고 있습니다.
5월 아리타축제가 열리는 기간에 별도의 제사를 지낸다고 하네요.
자, 그럼 가보시겠습니다.
여느 신사 처럼 코마이누(고려견)이 신사 입구를 지킵니다.
모든 신사에 자리한 코마이누의 한자 표현을 고려견(高麗犬)이라고 한답니다.
이 역시 고대 한반도에서 넘어온 문화적 상징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입을 벌린 고마이누와 입을 다문 고마이누는 각기 음양, 시작과 끝을 상징한답니다.
도산신사의 마지막 도리이는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신사 중에서도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마을 규모를 생각해보면 더욱 크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도조 이삼평 님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이삼평비를 보러가기 위해 잠시 오릅니다.
지금도 아리타는 400년간 도자기에 기대어 삶을 영위하는 도자기마을입니다.
혹시 신사의 기와도 청자기와인가 했더니 동으로 만든 것이 산화되어 저런 빛깔을 띠고 있더군요.
2005년에 세운 도조 이삼평 비 앞에 있는 내용으로 일본 요업계의 대은인으로 이삼평을 기리고 있습니다.
아리타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세운 도조 이삼평비입니다.
도조 이삼평 비 앞에서 내려다본 아리타마을입니다.
일본이 당신의 은공을 잊지 않기에 당신 역시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술을 귀히 여기지 않았던 조선에서 당신의 위치는 어떠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 궁금함, 가슴에 묻고 발길을 돌립니다.
하산하는 길에 촬영한 도산신사
도자기 기술의 절정이라고 할 백자 두 점이 제단 위에 자리합니다.
좌우로는 코발트로 푸른 빛을 낸 청화백자등이 돋보입니다.
심지어는 코마이누 마저 도자기로 만들었습니다.
이 도산신사(도잔신사)의 내력을 보니 이마리항이 있는 이마리시의 하치만구에서 오진천황의 혼령을
권청하여 이곳에 모시고, 그 후에 나베시마와 이삼평 님을 함께 모시게 되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의 인연을 기려 무궁화 등을 심어 신역을 치장했다고 하네요.
통일신라와 원수지간이던 시기에 쓰여진 일본 최초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따르면 오진천황은
임나일본부설의 주인공 진구황후가 삼한정벌 당시 태기가 느껴져 돌로 배를 누르고 출전했을 당시 뱃 속에
있었던 아들이라고 하는데요. 실존인물인지여부 자체가 의심된다고도 합니다.
다양한 도자기를 감상할 수 있는 아리타 도자기 플라자를 찾았습니다.
쇼핑하는 시간이기도 하지요.
헌데 가격이.. 헐...
한눈에 봐도 고급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자기세트에 음식을 담아 먹으면 풍미가 더 살아날 것 같은 느낌... ^^
일본의 도자기는 17세기 유럽에 중국풍 도자기를 대량으로 수출하며 더욱 성장했기에
상당부분 중국풍 스타일을 지금도 따르고 있습니다.
14~17세기 유럽은 동양의 신비로운 문화,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중국의 문화에 흠뻑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중국식 옷을 입고, 중국에서 수입한 도자기에 중국 녹차 마시는 일이 귀족과 왕족들에게는
큰 인기였다고 합니다.
헌데 중국이 임진왜란 후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되고 나서는 유럽과의 교역을 완전 금지했고,
전쟁의 여파로 인해 도자기 생산여력도 모자랐지만 기본적으로 쇄국정책을 유지해 수출의 길이 막혔답니다.
거꾸로 보면 유럽 동인도 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도자기 수입선이 없어져서 막막하던 차에
마침 도조 이삼평의 백토 발견과 포로로 끌려간 조선 도공들의 노력으로 고급 도자기 생산이 가능해진
일본 규슈의 아리타가 도자기 주문서를 넣으면 만들어준다고 하기에 이르릅니다.
이시기에 일본과의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중국에서 수입했던 도자기 샘플을
일본에 전달하면서 주문서를 넣었고, 아리타에서는 샘플과 유사한 도자기를 생산해서 납품합니다.
이게 17세기 중반의 일입니다.
유럽의 동양 도자기 인기가 어느정도였냐하면 도자기를 실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이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면 유럽 전역에서 귀족과 왕족들이 도자기를 사기 위해 몰려 들어 이곳이
북새통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느 왕족은 도자기를 사 모으느라고 파산을 했을 지경이라고 합니다.
도자기를 두고 일명 '하얀 금'이라고 했을 정도로 고가로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시 독일 작센 지역의 영주였던 아우쿠스투스2세는 1707년
연금술사였던 뵈트거를 성안에 강금하고 도자기를 만들어내라고 지시합니다.
최초에는 황금을 만들어내라는 지시였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도자기로 바꾸었다고 하네요.
뵈트거는 3년만에 4만번의 실험을 거쳐 드디어 도자기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이 도자기는 결국 세계 3대 도자기 중에 하나인 독일 마이센 도자기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뵈트거와 같이 성에 갇혀서 일하던 사람들이 7년 만에 성을 탈출하여 오스트리아 빈으로 갑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오스트리아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황실 도자기를 만들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무늬 시리즈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이후로 유럽의 도자기 기술은 제작 방법을 꼼꼼히
일지에 남기는 실용주의의 날개를 달고 유럽 전역으로 확산됩니다.
동양의 도제방법으로 기술을 전하던 방식과 달리 유럽은 제작과정을 일일이 일지로 정리하였던
바람에 도자기 제조기술이 단시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되어 프랑스의 세브르 도자기는 로열블루라는 프랑스 고유의 컬러를 도자기에 입히고,
마늘즙을 이용한 금채장식을 성공시키면서 도자기 기술을 한층 끌어올립니다.
아울러 영국의 웨지우드사는 소뼈 가루를 섞어서 만든 본차이나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
산업혁명에 따른 도자기 생산공정을 일부 자동화하는 단계까지 발전시킵니다.
결과적으로 도자기는 동양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 고급 도자기 시장의
90%를 유럽의 도자기들이 석권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도자기는 이 사이에서 현재는 고전하고 있으나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해봅니다.
아리타 도자기플라자 어느 매장의 백자 화병은 우리나라 환으로 230만원이네요.
가격이 후덜덜합니다.
이천이나 여주로 저는 가야할 듯 하고요. 여기서는 감상하며 눈높이만 올려봅니다.
이 청화백자 작품들의 가격들은 각각 4백만원 정도 하네요.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되는 각종 기술이 집대성된 이 청화백자는 무려 4천5백만원입니다.
가격표를 보면서 작품의 퀄리티를 살펴보는 것도 좋은 눈을 키우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저 뒤에 있는 접시도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작품입니다.
저 뒤의 액자도 도자 타일로 만든 작품이네요.
저는 특가로 나온 그릇 몇개를 구매해서 나왔습니다. ^^
첫댓글 이번 문화를 찾는 테마 여행을 통해 도지기의 기본 상식도 조금 배운 답사 여행 부분도 아주 좋았습니다^^
보면 사고 싶고 짐 될까봐 구경도 제대로 안한 도자기제품들~ 사진으로 보니 멋진게 많네요 ㅠㅠ
조금은 이상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도공 이삼평의 흔적을 이렇게 고스란이 남겨놓아 두는 일본사람들의 준비성이 부럽기만 하군요.
우리도 이런 마음은 많이 배웠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도공 이삼평씨의 반개 한 눈으로 명상에 든 모습을 보고 잠시 울컥했더랬어요.ㅜㅜ
그리고 그 분의 공적을 잘 간직하려는 일본 사람들의 노력은 배워야 할 점이기도 했고요~~
일본 도자기 역사에대한 얘기를 들으며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