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새 죽다
이홍사
동쪽 하늘 모퉁이에서 줄기 내린 천생산 너머 대가리마저 붉게 내미는 해 굴뚝새는 새벽에 발산되는 아침노을을 쪼아먹고 그날의 문장을 토해내는데, 부리마저 샛노란 새소리 청각 예술의 범주를 벗어난 오래전 해체된 시를 두고 추상화라 억지 부리는 찰나, 새소리는 시각예술에 들어섰고 부서진 자음과 모음의 조립해 시를 수태하는 세상 모든 새는 그 행간에 깃든 미학을 쪼는데 새소리의 형태 새소리의 색상이 지닌 격조, 격조에도 급수가 있다는 걸 알기에 굴뚝새는 언제나 태풍의 눈에서 서식했다 거대한 파고의 분지 그 문장의 바다 지친 날개를 접고 잔잔한 수면에 내려앉아 문단을 쪼아대는 굴뚝새 가끔 세상을 향해 충고를 던지기도 하는데 부조리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아랫배가 적당히 나오도록 살라고
굴뚝새가 죽는다
시가 혁명이라는 진부한 외침에 밴 녹슨 냄새 혀에 감기지 않는 언어의 반란은 언제나 달콤한 초콜릿 냄새 고요한 태풍의 눈에서 굴뚝새 초콜릿 냄새에 눈을 뜨는 굴뚝새 환장하게 그리운 냄새만으로 주위를 둘러싼 태풍의 산맥을 건너지 못했고
굴뚝새가 죽는다
단어 하나를 물고 물의 산맥을 건너려고 날개를 펼치는 순간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다 문장에서 주어가 완성되면 태풍의 눈에는 굴뚝새가 없다 굴뚝새의 무덤은 하늘이 아니라 바다에 있는데 태풍의 눈을 따라서 서서히 이동하지 못하고 더 넓은 행간으로 날겠다는 비상의 욕구로 굴뚝새는 언제나 왜소한 한 편의 시를 물고 죽는다
한 소절 돌아갈 길
샛노란 부리로 물고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