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의 꿈은 비행기 조종사입니다.
이제 고2가 되는 아들이 작년에 문과, 이과를 결정할 때였습니다.
남편은 당연히 이과 가야지라고 했고, 과학중점학교를 다니는 아들은 과학중점반(이하 과중반)에 가면 세특을 잘 써준다며 과중반 신청을 하였습니다.
과중반에 가면 물리,화학,지구과학,생명과학 4과목을 모두 들어야 합니다.
고등학교 과학이 만만치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기말고사가 끝난 후 물리,화학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밥을 먹다가 아들이 우리 반에 어떤 애가 문과였는데 과중반으로 옮겼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 물리 학원에 가는 날인데, 아침부터 나 오늘 학원 안 갈거라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동안에도 물리 너무 어려워, 오늘 안 갈래 소리를 밥 먹듯이 하는 아들이었지만, 오늘은 느낌이 영 안 좋았습니다.
하루 종일 나 오늘 진짜 안 갈거야 하는 소리를 하더니, 숙제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아들이 꼭 학원 가기 전에 숙제를 하는지라)
저녁을 먹는데, 자기 문과로 바꾸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다음 주면 교과서를 받는데 이제 바꿀 수 있겠어(당연히 못 바꾸지) 하는 생각에, 그리고 네가 정 원한다면 시도라도 해봐야 원이 없겠지 하는 생각에 담임 선생님께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힘들거라는 말과 함께 이제는 내 손을 떠났으니 학교로 전화해 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엥, 이게 아닌데)
아들은 문과로 바꾸겠다고 하며 학원에 가질 않았습니다.
내 머리에 순간 스치는 생각은 아니, 학원비가 얼만데, 여태 힘들게 학원 다니며 공부한 건 또 뭐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한테 아들이 문과로 바꾸겠다며 학원에도 안 갔다고 톡을 보냈습니다.
좀 있다보니 아들의 큰소리가 들렸습니다.
톡을 확인하고 남편이 바로 아들한테 전화를 했나 봅니다.
대화가 결렬(?)되자 나한테 전화를 했고, 남편은 답답한 마음에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며 문과에 가도 과학을 안하는게 아닌데,공부하기 싫다고 하면 포크레인 기술이라도 가르칠까, 아들 고등학교 졸업하면 독립하라고 바로 내보낼거라는 등의 극단적인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내일 학교엔 나더러 전화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담임샘과 통화를 했더니 어제와 똑같은 답변이 와서, 학교에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 받으신 선생님은 담임샘한테 연락을 해보라는 얘기를 했고, 나는 담임샘으로부터 학교로 연락해 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얼마 전에 과를 바꾼 애가 있다는 얘기도 곁들여 했습니다.
선생님은 부장님께 전달은 해보겠다고 하고 통화를 끝냈습니다.
좀 있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반 편성도 끝나고 교과서도 나와서 원래는 안되지만, 주말 동안 잘 생각해 보고 정 바꾸고 싶으면 부장님이 출장갔는데 월요일 3시에 오니 그 때 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나도 같이 가야하냐고 물었더니, 학생만 와서 서류를 작성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아들은 좀 마음이 편안해지는거 같았고, 어차피 과학 1과목은 해야하니까 화학은 계속 하자고 하였습니다.
남편은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이, 대신 영어랑 사회 과목들 열심히 하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아들은 내 꿈은 비행기 조종사가 아니라며, 그건 아빠가 은근 강요(?)한 거라고.
자긴 매니지먼트나 기획 쪽 일을 잘 할거 같다고, 자기가 공부를 안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화학 학원도 가질 않더군요.
드디어 월요일이 되어 아들은 학교엘 갔습니다.
그런데 아들한테 전화가 와서는 부장 선생님은 회의에 들어가서 안 계시고, 엄마 도장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회의 들어가서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며, 부장 샘이 나와봐야 정확한 걸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부장샘이 나오시면 통화를 해서,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날 따라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려 아들은 비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돌아와서는 딱 문과로 바꿔서 뭘 해야겠단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담임샘을 만났는데 뭐하러 문과로 바꾸려고 하냐는 얘기도 하고, 아빠는 나중에 후회할거라는 얘기를 하니까 자기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못 내리다 시간이 흘러 버렸습니다.
과학 학원에 같이 다니는 애들은 숙제를 해오면 다 맞았는데, 자기는 몇 문제씩 틀려서 애들이 싫어하는거 같다는 얘기도 했습니다.(실장님으로부터 같이 하는 애들이 다 1등급이란 얘기를 듣긴 했는데)
그냥 과중반에 있기로 하고, 과학 학원은 그만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뭐 과학 점수가 그리 중하다고...
남편으로부턴 무슨 계획이 있는거냐며 한소리 들었구요.
예전에 아들이 안경에 기스가 많이 나서 바꿔야겠다며 테도 바꾸고 싶다고 해서, 어제는 시간을 내서 안과에 다녀왔습니다.
시력 검사를 해보더니, 시력이 변하질 않아서 그대로 써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바꿔주겠다고 안경점에 가자고 했는데, 아들은 괜찮다며 그냥 쓰겠다고 합니다.
나는 나온 김에 중학교에 입학하는 둘째 교복 명찰 달러 체육사에 갔다 오겠다며, 점심 사줄까 했더니 집에 가서 알아서 먹겠다고 그냥 혼자 집으로 가더군요.
이런 애가 아닌데...
풀이 죽어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습니다.
오늘은 교과서를 받으러 학교에 갔습니다.
좀전에 카톡이 오더군요.
엄마, 나 자퇴할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다행히 장난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다시 톡이 오더군요.
얼마 전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을 읽는데 이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입시 공부가 갖는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공부를 싫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곳에 입학하기 위해 공부가 싫어지는 체험을 해야하는 역설이 대학 입시 공부에 있다.
첫댓글 마지막 김영민 교수의 글이 뼈때립니다. 계속 곱씹게 되네요. 공부하기 위해 공부가 싫어지는 체험을 해야 하다니... ㅠ
상대평가 때문에 과학, 수학 못하면 문과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것도 이상하지만, 아이의 진로가 달린 문제인데, 반배정이나 교과서 문제 조정하기 힘들다고 아이와 부모를 이리저리 돌리는 학교행정도 화가 납니다. 그래도 아들은 기획일을 잘 할 거 같다고 생각하니 다행이에요. '공부 안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는 말, 너무 맞는 말이네요. 우리 아이들은 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참 어려운 문제네요 ㅠㅠ
쌤글을 읽고 아이를 믿어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또한번 하게 됩니다. 근데 학교도 안해주고 정부는 더더구나 안하고…..부모만 아이를 믿어준다고 해결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정말 우리 아이들 어쩌면 좋을까요….. 반성모드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읽고 나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우짜나요. 우리 애들..
(그건 그렇고 저도 정책언니님 처럼 아이의 진로문제를 행정처리 때문에 아이와 엄마에게 뺑뺑이 돌리는 학교행정에 화가 납니다. )
10대 때 문과냐 이과냐 이걸 꼭 정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미 이 자리에 취직의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하잖아요. 아직 잘 모르겠다는데 말이죠. 선생님 큰아이는 정말 착한 것 같아요. 학교의 뺑뺑이 행정에 되돌이 걸음하고 비를 맞고 오다니 제 가슴이 다 아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