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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을 향한 배려 14:17~27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19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20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21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22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24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
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마음과 나라가 지향할 것 14:28~35
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30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33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5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에게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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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속히 노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나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님을 공경하는 자입니다. 슬기로운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진노를 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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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을 향한 배려 14:17~27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감정을 절제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쉽게 분노하며 악한 행동을 합니다. 그 결과 어리석음이 그의 기업이 되고, 잘잘못을 판단하는 의인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18~19절). 현실에서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 무시당하고 때로 미움받는 반면, 부자는 많은 이가 따르며 친구가 되려 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재물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진실한 증언으로 생명을 살립니다. 그러기에 그가 가진 재물은 면류관처럼 빛납니다. 또한 재물이 있다고 교만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어려움에서 피하고 사망의 위험도 벗어납니다(26~27절). 성도는 재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더 깊은 묵상
●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에게 무엇과도 같나요?(24절)
주변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가 행할 수 있는 배려와 도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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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나라가 지향할 것 14:28~35
쉽게 노하지 않고 조급한 마음을 품지 않을 때 평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분노와 조급함이 깃든 시기는 뼈를 썩게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은 결국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명철한 자의 마음에는 지혜가 있고, 미련한 자의 마음에는 악하고 거짓된 것이 있습니다. 미련한 자의 마음에 담긴 생각은 종종 가난한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명철한 자의 지혜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30~31절). 국가가 어떤 것을 추구하느냐도 중요합니다. 공의를 추구하는 나라는 영화롭게 되지만, 죄가 가득한 나라는 백성을 욕되게 합니다. 성도는 통치자가 지혜롭게 행하고 공의로 다스리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28, 35절; 딤전 2:1~2).
더 깊은 묵상
● 공의가 사라지고 죄가 만연한 나라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34절)
공의로운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며 살필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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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속에서 분노 다루기
우리의 느낌과 감정은 우리 밖에 있는 것들을 판단하기 위한 적절한 기준이 아니다. “저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해.”라는 말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 말의 진짜 뜻은 이것이다. “나는 화가 나 있었고, 그가 그 화를 폭발하게 만들었어.”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화를 인정하지 않고 쉽게 다른 사람을 탓한다.
우리의 느낌은 마치 엔진 뚜껑 아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 주는 자동차 계기판과 같다. 우리 영혼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 주는 영혼의 계기판인 것이다. 아이가 실수로 접시를 바닥에 떨어뜨려 접시가 깨지면 우리는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그 분노는 그 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접시가 깨지는 사건이 영혼 안에 있는 분노를 깨운 것뿐이다.
자녀에게 화를 내야겠다고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아도, 우리의 분노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이렇게 감정이 유출될 때, 우리 영혼 안에 고통과 망가진 것들의 저장고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기도 중에나 삶에서 이런 것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이런 신호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해 주기 때문이다. 분노가 느껴질 때, 다른 사람을 탓하기 이전에 왜 그런 느낌을 받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인지 생각하고, 자비하신 하나님과 대화해야 한다. ‘내 느낌’보다 크신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는 것, 이것이 진짜 기도다.
내 모습 이대로 기도합니다 / 카일 스트로벨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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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잠언 14장 27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성도에게 생명과 같습니다. 물이 귀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샘은 생명과 직결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샘'이라는 말은 경외함이 있는 신앙생활에 풍성한 생명이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사망의 그물, 어둠의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죽음의 막다른 길목에서도 생명의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도를 살게 하는 생명의 호흡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안에서 가능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 고아와 과부, 외로운 한 사람의 편이 되어 주신다. - 하용조
오늘의 기도
하나님, 소유의 넉넉함을 복이라 생각하며 세상 사람들처럼 재물을 좇던 제 어리석은 모습을 회개합니다. 더 많이 가지려고 움켜쥐기보다 더 지혜롭게 섬기기 위해 노력하게 하소서. 욕심 채우기에 조급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412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런 검증이나 사려 깊은 판단도 없이 남의 말을 그대로 믿어 버리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어리석음으로 기업으로 삼습니다(15~16,18절). 결국 악인은 선한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며, 악인들은 의인의 문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19절).
사람들은 자신만의 안락한 삶을 위해 많은 것들을 쏟아 붓습니다. 자신이 추구하고, 바라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이루어져 갈 것이라고 하는 착각에 빠져 세상의 어리석음에 지혜를 빼앗긴 채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님 안에 있는 참된 진리를 쫓는 자가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이루어가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이 모래 위에 지어져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외적인 화려함에만 정신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살아갈 동안에만 누릴 작은 유익을 쫓기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 하나님의 지혜가 주는 영원한 유익을 바라보며 인생의 삶을 견고히 쌓아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세상에는 쉽게 분노함으로써 어리석은 일을 행하는 자들이 있고, 악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자들이 있습니다(17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이 주시는 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내 자신의 인생의 삶을 견고히 쌓아가는 비결이 됩니다. 인생의 삶을 견고히 쌓아가는 것이 곧, 행복한 인생을 열어가는 열쇠가 됩니다.
11월9일 퇴근길에 상동역에서 전도
오늘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것은 의인과 악인의 삶의 형태와 그에 따른 보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면류관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면서 의인과 악인에게 필연적으로 따르는 벌과 상을 제시합니다. 두 번째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대한 교훈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누리는 유익을 설명합니다. 세 번 째 것은 왕의 통치에 대한 이야기로, 왕은 지혜를 토대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지만 욕을 끼치는 신하는 진노를 당합니다.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 ‘가난한 사람은 이웃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하지만 부자는 친구가 많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인간의 이기적인 성향을 잘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짐이 되는 사람을 꺼려합니다. 그 이유는 부담이 되어 혹시나 자신에게 손해를 끼칠까 봐서인데, 가난한 이웃이 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부자는 환영을 받습니다. 잘 하면 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친구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때의 친구는 깊은 우정이나 친밀도가 없는 뜨내기 친구입니다.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 ‘인구가 많은 것은 왕에게 영광이 되지만 백성들이 적은 것은 통치자의 몰락이다’는 말입니다. 고대 국가에 있어서 백성의 증가와 번성은 국가의 강함과 더불어 그 치리자인 왕의 권한을 강화시켜 주는 외적 표식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에 있어 자손의 번성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진 바 있습니다. 따라서 인구가 많은 것은 왕에게 있어서는 영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패망’은 ‘소멸하다’, ‘폐허가 되다’의 뜻입니다. 그런 나라는 강대국에 흡수되거나 식민지로 전락하는 수가 있어, 주권자의 패망이라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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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로마 사람이 랍비에게 찾아가 하나님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준다면 자신도 하나님을 믿겠다고 비아냥거립니다. 랍비는 그에게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주문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어떻게 태양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있냐고 반박합니다. 랍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많은 것들의 하나인 태양조차 볼 수 없으면서 어떻게 위대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단 말이오?’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이를 랍비와 로마 사람에게 비유하면 한결 더 실감이 갈 것 같습니다.
로마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랑 삼아 막말을 합니다. 하지만 랍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영광의 면류관을 삼습니다. 또한 본문에 ‘지혜는 명철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랍비의 마음에 있던 지식도 드러나고, 로마 사람 마음에 있는 어리석음도 다 드러난 것입니다. 지식 중에 최고의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일 것입니다. 피조물로써 창조자를 알아가는 것만큼 고상한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랍비는 로마 사람에 비하여 월등히 명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성경 몇 번 읽고 그분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무한하신 지혜와 다함이 없는 능력, 알 수 없는 깊이, 우리 짧은 이성으로 도무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겸손히 그분을 알아가기를 원해야 할 것입니다. 아는 것만큼 경건해줄 수 있고, 알아갈수록 세상으로부터 자유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자신을 더 알리기를 원하십니다. 무지한 인간에게 자신을 알려주지 않으시면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양하게 자신을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곧 계시, 환상, 꿈, 선지자의 메시지 등을 통해서입니다. 이제 그 방법은 정형화 되었다고 봅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나서 구약성경과 더불어 신약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단순한 읽기뿐만 아니라 묵상해야 합니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함이고, 이해가 되면 무언가 깨달아지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감동 또는 부담으로 올 수 있습니다. 좋은 반응이라고 봅니다. 적용한 만큼 우리의 신앙이 성장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분의 은혜를 입은 건 만큼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고, 체험해 가며 더 나아가 지어진 그분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해 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11월9일 청라호수공원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0,21,31절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자기를 멸시하는 것으로, 궁핍한 사람을 돕는 것을 자기를 공경하는 것으로 여기십니다(마 25:31-46). 대부분의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부자들의 친구가 되려고 애쓰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연약한 이웃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줍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22,32절 선을 추구하는 사람을 인자하고 신실하게 대하십니다. 잠시 악인이 흥하고 의인이 고난을 겪더라도, 결국 악인은 심판을 받고 의인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만이 의인의 소망입니다.
26,27절 하나님을 견고히 믿으며 경외하는 자들에게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그들을 죽음과 절망의 그물에서 건져주시며, 그들의 자녀들에게도 그리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변치 않는 은혜를 베푸십니다(신 5:10; 7:9).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4절 재물은 지혜로운 사람에겐 면류관이 되지만, 미련한 사람에겐 더욱 미련하게 하는 독이 됩니다. 재물 자체는 복이 아닙니다. 재물을 복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입니다.
28,34,35절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나라가 되려면, 왕은 백성이 번성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신하들은 정의로운 왕의 뜻을 슬기롭게 이행함으로써, 온 나라에 공의가 바로 서야 합니다. 국가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가 평화롭고 정의로운 곳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29절 상황이 급박하거나 억울할 때, 지혜로운 사람은 조급해하지 않고 쉽게 화를 분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30,33절 지혜는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주고, 마음이 안온하면 육신도 건강하게 됩니다. 반면 마음에 미련함이 자리하면 마음과 몸이 모두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전인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명약입니다.
세상은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깁니다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잠14:20)
그러나 가난하다는 이유로 업신여기는 것은 범죄입니다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잠14:21)
가난한 자라고 업신여기는 것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잠14:31)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업신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울부짖을 때에 들으십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시22:24)
하나님은 부한 자만 아니라 가난한 자의 하나님입니다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잠22:2)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
그러므로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시41:1)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잠14:31)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고 인자와 진리가 있을 것입니다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잠14:21~22)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그러므로 주께 하듯이 지극히 작은 자를 섬겨 주의 날에 칭찬과 복을 받기 원합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4~36)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은 무엇입니까?
➲ 선을 도모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20~25절).
자기 자신에게 별 유익을 주지 못할 것 같은 가난한 자를 멸시하고, 부자에게는 유익을 구하기 위해 갖은 친절과 아첨으로 친구처럼 대하는 사람의 이기적인 성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20절). 그러므로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21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악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도모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겉으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실제로는 전혀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22~23절).
즉, 땀 흘려 일하는 자는 풍성한 소득을 얻는 반면에 말만 앞세우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자는 빈곤을 면치 못한다는 것(23절)입니다. 그렇게 진실을 행한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남의 생명을 건지게 됩니다. 반면에 미련한 사람의 소유는 미련한 관을 쓰고, 남을 해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24~25절).
사람을 외형적인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의 중심, 곧 마음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그래서 편견 없이 어려운 우리의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섬기고, 돌보라고 보내신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곧 우리 주님께 행한 것(마 25:40)이라는 것을 마음에 품고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재물을 모을 때에는 언제나 정당한 방법을 사용해서 얻도록 힘써야 하겠고, 그렇게 모은 재물을 영혼을 살리는 일에 즉,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한 교회와 성도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구체적인 섬김과, 실천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선을 도모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주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26~3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견고한 요새가 되어 주실 것이고, 그 후손에도 그로 인해 피난처가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명의 샘이 되고,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때문...’(26~27절)입니다. 백성이 많으면 왕이 통치 하는데 큰 힘이 되어 왕의 영광이 됩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왕은 노하기를 더디 하여 생명에 이르지만, 어리석은 왕은 성질이 급하고 경솔해서 자신의 미련을 드러냅니다. ‘...뼈를 썩게 하느니라...’(30절). 육체적 기능도 저하되고, 삶의 의욕도 잃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물질은 내 자신을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진정한 보호와 안전망은 결코 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자신의 안정된 인생은 권력의 힘과 재물과 인간관계 등으로 내 인생의 성곽을 쌓아 간다고 해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할 때, 내 인생에 산성이 되어 주시고, 요새가 되어 주시며,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오늘 내 자신이 움켜 쥐고 있는 것들에서 벗어나 진정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인자로써 맡겨진 교회와 성도를 잘 섬기는 리더십을 갖추는 사역자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에 이르도록 내 자신을 인도하는 원동력은 하나님의 경외함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의를 실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31~35절).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받는 지혜로운 생활은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고, 궁핍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31절)입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는 삶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재앙이 오면 악인은 망하지만, 의인은 죽을 자리에서도 피난처를 얻게 됩니다(32절). 공의로운 통치는 한 나라를 영화롭게 하지만, 왕의 죄악은 백성을 수치스럽게 만듭니다. 아울러 슬기로움 역시도 신하의 중요한 덕목으로 나라의 공의를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34~35절). 그러므로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은 침묵으로써 하나님의 계명을 받지만, 입이 미련하여 떠드는 사람은 무지하기 때문에 멸망하게 된다(33절)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궁핍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리더십의 의무를 다하여 정의를 실천해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입은 자답게 일상의 삶에서 만나는 약한 사람들을 돌보며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잘 섬기는 충실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어떠한 곳에 있든지 하나님이 내 자신을 온전히 다스릴 수 있도록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부족한 내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온 땅에 드러날 수 있도록 영적인 민감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교회 리더십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주변에 드러낼 수 있도록 지혜롭고, 의로운 삶을 살아감으로 의를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세상을 향한 성도로써의 책임과 의무를 사랑과 섬김과 나눔을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 나타내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삶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상황이 어려울 때도 평안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잠 14:20~35절)...
17.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
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19. 악인은 선인 앞에 엎드리고 불의한 자는 의인의 문에 엎드리느니라
노하기를 속히 합니다.
악한 계교를 꾀합니다.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습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정보를 가려서 듣습니다.
들어야 할 것과 듣지 말아야 할 것을 압니다.
자기의 감정을 조절합니다.
행동을 조심합니다.
두려워하여 악을 떠납니다.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습니다.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자기의 행위로 보응을 받습니다.
행한 대로 받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대하는 태도
20-21절
20.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21.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집 나간 둘째 아들이 생각납니다.
돈이 많을 때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다 탕진하고 나니까 도와주는 사람 조차 없었습니다.
세상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 하십니다.
그들도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있는 자가 그들을 돌보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을 함부로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대조적인두 길 22-25절
22. 악을 도모하는 자는 잘못 가는 것이 아니냐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23.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어도 입술의 말은 궁핍을 이룰 뿐이니라
24.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
25.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
한 절 한 절이 다 귀한 말씀입니다.
모두가 선과 악에 대한 대조적인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강조되었던 것이 또 강조되고 있습니다.
입술과 재물에 대한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악을 도모하는 것은 잘못 가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 미련한 것입니다.
거짓말은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정당한 수고와 노력 없이 말만 하는 것은 선이 아닙니다.
궁핍을 이룰 뿐입니다.
선을 도모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습니다.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습니다.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입니다.
재물을 지혜롭게 잘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합니다.
두 길 중에 가야 할 길은 확실한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만이 소망입니다.
여호와를경외하는 복26-27절
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여호와를 경외할 때 그 자손들에게도 복을 주십니다.
천 대까지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생명의 샘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망이 그를 삼키지 못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왕의 영광28절
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사람이 많으면 지도자에게는 힘이 됩니다.
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공동체가 그렇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길 원합니다.
번성하기를 원합니다.
왕은 나라가 번성할 수 있도록 백성의 안전과 생명을 잘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가 왕에게는 더욱 영광일 것입니다.
마음과 육신29-30절
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30.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자기의 기분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긴박한 상황을 만났을 때 조급해 하지 않고 쉽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기에 당황하지 않고 조급해 하지 않습니다.
감정에 쉽게 휘몰리지 않습니다.
마음의 상태는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평온한 마음이 육신의 생명이라 말씀하십니다.
시기하는 마음이 뼈를 썩게 한다고도 하십니다.
결국 마음을 다스림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주가 주시는 평화를 가져야 합니다.
지혜와 공의가주는 유익 31-35절
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33. 지혜는 명철한 자의 마음에 머물거니와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것은 나타나느니라
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5.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에게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가난한 사람은 어느 곳에나 있습니다.
그들을 무시하고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를 지으신 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는 도움을 줘야 할 대상입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자가 주를 공경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다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영생의 보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습니다.
죽음이 절망이 아닙니다.
끝이 아닙니다.
더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지혜롭고 슬기롭게 행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입니다.
나라에도 공동체에도 가정에도 선한 영향을 끼칩니다.
미련함과 어리석음은 진노를 불러올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임을 거듭 깨닫게 됩니다.
내게 주시는교훈과 다짐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를 무시하지 말고 살펴 도움을 줘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마음에 기쁨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육신의 건강까지도 주는 은혜임을 명심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휘말려 성급히 굴지 않기를 다짐합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외면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으로 사람을 죽음의 덫에서 건져 낸다(27절).’
물질적, 지식적 풍요함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 풍성함도 지혜의 샘으로부터 어떻게 공급받고 그에 따라 어떻게 반응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과거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었던 가난과 무지, 연약함과 죄성으로 가득했던 이 땅 한가운데 조건 없이 찾아온 도움의 손길과 헌신의 발걸음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로부터 건짐 받았고 이은 믿음의 선진들의 지극한 수고와 땀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이들로 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직 먼저 은혜받은 빚진 자로서의 결단이 아니고서는 옮겨질 수 없는 발걸음이었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순종하는 행함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결과인 것입니다.
당장의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고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유혹과 악의 손길을 거절하고
영원한 생명의 지혜로부터 공급함을 받는 이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그 삶을 통해 많은 이들을 여호와께로 돌이키게 하는 손길이 되도록 돕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에 날마다 겸손하고 신실하게 거하는 주님의 제자로 걸어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평온한 마음은 육체에 생명이 되지만 질투심은 뼈를 썩게 한다(30절)’
만약 인간에게 잠자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고, 회복을 위한 어두운 밤의 시간이 없다면,
인간의 욕망과 교만은 그 연약한 육신을 섞게 하기까지 하고
그 소중한 영혼을 태우기까지 죄악의 구렁텅이로 돌진하게만 할 것입니다.
인간에게 이러한 한계를 두신 것,
왕과 같은 세상 통치자들도 그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멸망의 존재가 되게 하신 섭리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돌아봅니다.
잠시 허락된 이 땅의 삶 가운데 하나님만을 높이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감으로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평안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마르지 않는 은혜를 누리도록 하신 뜻을 기억하고 날마다 그 놀라운 사랑과 손길을 온전히 의뢰하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으로,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강으로 채워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교만과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실 여호와의 강한 팔을 의지하며
우리 삶의 본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나아가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북녘땅에서 지금도 눈물로 기도하고 두려움 가운데 소망하는 이들을 찾아가 만나주시고 자유와 평강으로 덮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한없는 지혜와 평안 가운데 거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