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시도다.
이번엔 ‘용기(그릇)를 내미는 용기’가 성공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시도는 찜찜한 뒷맛이 남았다. ‘조금 불편해도 환경보호를 몸소 실천할 수 있다면!’ 의식있는 모습에 우쭐했다. 뭘 그리 바리바리 싸가냐는 식구들의 핀잔에도 당당했다. 왜냐? 난 생활 속 환경 영웅이니까. 하지만!! 가게 사장님은 달랐다. “갖고 온 용기에 포장해주세요” 당당하게 내민 용기들을 보며 당황해하던 그 분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의기양양하던 용기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참 별나다’하는 사장님의 눈빛을 한껏 받으며 음식을 받아왔다.
첫 술에 배부르랴. 두 번째 시도는 좀 더 가벼운 음식에 도전했다. 다행히 사장님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가져온 용기에 자연스럽게 음식을 담아주셨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한 말씀을 했다. “가져온 용기로는 양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담기가 좀 어렵네요.” 이 말을 들으니 지난 번 가게에서 보인 사장님 반응이 이해가 됐다. 그래도 두 번째 시도가 나쁘지 않아 세 번째는 좀 더 거창한 음식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바로 감자탕!
이번엔 사전준비도 철저히 했다. 사장님이 덜 당황하시게 미리 전화해 용기를 가져가도 되냐고 물었다. 흔쾌히 그러라고 하시길래, 기쁜 마음으로 그릇을 챙겼다. 왠지 칭찬도 들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감자탕 담을 큰 들통, 반찬통 몇 개, 카트를 끌고 아이와 함께 감자탕집으로 향했다. ‘생활 속 환경보호 실천 현장을 눈으로 보게 해야지. 이런 게 바로 산 경험 아니겠어?’
감자탕집은 정신이 없었다. “용기에 감자탕 포장해 가려구요.” 당황한 사장님 표정. 내가 전화한 것을 잊어버리신 것 같았다. 그래도 군말없이 용기를 받아주셨다. 감자탕 포장을 기다리며 다른 반찬들도 챙겨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홀에 신경쓰느라 내 반찬통은 찬밥 신세였다. 한참을 멀뚱 하니 서 있었다. 기다리다 못한 나는 셀프반찬코너에서 깍두기를 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갑자기 소리치는 사장님. “여보세요! 깍두기 많이 담으면 안돼요!” 아마 내가 가져간 용기가 커서 그 용기에 깍두기를 다 채울거라고 생각하셨나보다. 나는 그 때 겨우 깍두기 세 개를 담았는데.. 나를 반찬도둑취급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확 나빠졌다. “기다려도 안 해주시니까 담으러 온 거죠. 그리고 저 깍두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산 교육은 개뿔. 사장님의 홀대와 도둑취급을 받으며 기분 팍 상해서 툴툴 거리며 나왔다. 집까지 가는 동안 감자탕 국물도 질질 흘렸다. 집에 와서 카트에 얼룩진 감자탕 국물을 닦다보니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내 생각엔) 사장님한테 마이너스가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환경보호 실천을 한다는 이유로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싶었다. 가게의 일회용품도 안 쓰게 하지, 계속 반찬 리필해달라고도 안하지, 쓰레기봉투에 버릴 감자탕 뼈도 내가 치우는데 도대체 왜 사장님들은 용기를 내미는 용기를 불편하게 생각하는걸까?
화난 마음에 폭풍 악플을 달까 하다 이 문제는 단순히 누군가를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바닥 썼던 악플을 지우고 곰곰히 따져봤다. 일회용품이 그렇게 문제라면서 왜 용기를 가져가는 행동이 정착되지 않는걸까? 칭찬은 듣지 못할 망정 민망하지는 말아야 하는데 용기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왜 되려 힘들어야 할까? 가만 보면 요즘 세상의 기본값은 ‘배달(포장)=일회용품’으로 설정되어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이 기본값은 더욱 공고해졌다. 누군가 이 설정을 흔든다면, 그는 프로불편러가 된다. 프로불편러의 삶은 고달프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되기가 어디 쉬우랴.
노워리기자단 선생님들과 함께 읽은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고금숙>란 책에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p19)개개인의 삶을 바꾼 덕후들이 있어야 사회가 조금이나마 움직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텀블러에 손수건에 반찬통에 수저, 이 모두를 보따리장수처럼 싸 들고 다니긴 무겁다.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세계의 무게가 버겁다.”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평범한 사람들이 참여하기 어렵다. 문제에 대해 특별히 의식을 갖고 있거나 덕질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참여하게 된다. 그렇기에 평범한 사람들을 변화로 끌어들이려면 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 즉, 세상의 기본값을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작가는 이를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긴 시간에 걸쳐 켜켜이 쌓인 거대 시스템을 개인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혹시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일은 아닐까? 고금숙 작가는 ‘연대’에 그 해법이 있다고 말한다. 비주류와 약자는 혼자가 아닌 ‘우리’로 존재할 때 부당한 기준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행동이 서로 연결되어 우리가 되고, 그 우리가 사회적 변화와 총체적 시스템을 변화시키도록 연결망을 만드는게 중요하다.
나는 여기에 더해 정책적/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실례로 2002년 약 200원의 비닐세를 부과한 아일랜드는 1년 만에 비닐봉지 사용량의 90퍼센트를 줄였다고 한다. 10년 간 2번씩이나 비닐봉지 사용 규제에 실패한 케냐는 2017년 비닐봉지를 소유하기만 해도 4천만원 이상의 벌금과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내리는 세계에게 가장 강력한 법을 시행한 뒤 일거에 비닐봉지를 몰아냈다. (p151) 개인의 선한 행동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적 지원이 있을 때 공고했던 기존 시스템은 무너지고 새로운 기준값이 만들어진다.
결론적으로 용기를 내는 용기가 성공하려면, 깨어있는 개인들의 연대와 더불어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정책적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조금 다른 방향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사걱세가 해 온 활동은 세상의 기본값을 바꿔 온 모범 사례로 칭할 수 있을 것 같다. 경쟁과 평가로 얼룩진 거대한 교육문제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개인들을 엮어내고 나아가 정책적, 제도적 변화를 끊임없이 이끌어 온 점이 훌륭하다. 사회 시스템 변화를 고민하는 정부 기관이나 여타 단체에서 사걱세가 해온 활동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이 글의 마무리는 사걱세 칭찬으로 훈훈하게 마무리!!! :D
첫댓글 와, 같은 책을 읽었는데도 개인의 경험과 책의 주요 내용을 잘 정리하시는 것 보면 진희 샘 정말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 책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연습을 많이 하신 걸까요? 물개박수!!! (근데, 감자탕 집 사장님 너무 하셨네요. ㅠ 그럼에도 악플을 안다신 것에 한 번 더 조용한 박수를. )
맞아요, 연대와 제도적 뒷받침.
그리고 플라스틱을 생산함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 사교육 시장에서 일해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들어요. 도대체 사회는 이렇게 저렇게 얽혀서 너무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며, 내 머리도 복잡해지려 해서...여기까지.
마지막에 칭찬까지! 잘 읽었습니다. ^^
책 읽고나서 정육점에 가서 살짝 물어봤습니다. “담엔 용기를 가져와도 될까요?” 흔쾌하고 호탕한 네!를 바랐지만 찜찜하고 당황스런 “네…..”라는 대답을 들었네요. 정육점을 바꿔야 하나….. 상인분들이 왜 그러시는지 궁금하네요.
음.. 새로운 시도는 낯설 수 있으니까요.. 본능적으로 잠시 머릿속 계산기가 돌아가는 걸까요~ ㅎㅎ ㅜㅠ
이제는 강력한 정책과 제도적 뒷받침이 정말 절실해 보입니다. 다들 하기 싫어하는 것(귀찮아서)을 하도록 하려면 일관적이고 강력한 정책이 필요해요.
오,, 처음에 닉네임이 바뀌어서 누군가 했어요!! 역시 임진히쌤~ 멋진 글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