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들린 도서관
시월 초순 수요일이다. 전날 아침 무점마을에서 동판지 둑길을 걸어 가술로 가면서 길섶에 핀 코스모스꽃 열병을 받았다. 새벽에 ‘무점 꽃길’을 남겼다. “동판지 둑길 따라 심어둔 코스모스 / 폭염이 대단하고 혹심한 가뭄으로 / 생장이 예년 못해도 제철 꽃을 피운다 // 뒤늦게 단비 맞고 서둘러 세를 불려 / 기온이 서늘하자 수 많이 맺은 송이 / 나팔꽃 덩굴 덮쳐도 제 임무를 다한다”
주중 수요일은 대산 나눔문화센터에서 지역 해설사 강좌를 수강하는데 하루 쉬어 가는 날이다. 휴강이 아니라 수강생들은 과제로 마을 지도 작성을 위해 개별로 현장 답사를 하는 날이다. 나는 그쪽 지역을 훤히 꿰뚫고 있어 굳이 마을로 찾아가지 않아도 구석구석까지 잘 알고 있다. 마을 이장을 비롯한 현지인 인터뷰는 면담에 한계가 있어 후일 해결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다.
근래 연일 갯가 트레킹과 텃밭 물주기로 피로감이 누적되어 몸살이 날 정도다. 주중 하루 안식으로 삼아 도서관에 머물 작정이다. 거기는 9시가 되어야 열람실이 열러 이른 아침 창원천 수변 산책로 운동 기구에서 몸을 단련했다. 요새는 해가 점차 짧아져 새벽같이 어둠이 남은 시간에 먼저 운동을 하고 떠난 이가 있고 나중에 나타나는 이들도 있어 시간대별로 얼굴이 달라졌다.
나이 지긋한 사내들도 있지만 부녀들도 다수 나와 각자 취양 따라 여러 가지 운동 기구에서 몸을 풀었다. 나는 자가발전 입식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오래도록 저었다. 몸풀기를 마치고 잠시 창원천 천변으로 내려가 보니 가을이 이슥해진 서정을 느낄 수 있었다. 수크령은 이삭이 나와 계절감이 드러나고 고마리는 여뀌와 같은 자잘한 꽃을 피웠다. 흰뺨검둥오리와 백로도 보였다.
창원천 천변에서 외동반림로를 따라 원이대로로 가니 초등학생과 중학생 등교 시간과 맞물렸다, 교차로에는 교통안전 도우미들이 신호등에 따라 깃발로 안내해 학생들이 안전하게 건너도록 했다. 생태천으로 복원된 반송 소하천에는 꽃이 핀 갈대와 고마리가 무성해 습지 공원을 연상했다. 유조 티를 갓 벗어난 한 마리 백로는 물웅덩이에서 먹잇감을 겨누느라 시선을 집중시켰다.
폴리텍대학 구내에서 고목 벚나무가 나목이 되어가는 교육단지 보도를 걸어 창원도서관으로 갔다. 엊그제 개천절은 국경일 휴관인 줄도 모른 채 도서관을 찾아 대출도서는 무인반납기에 투입한 바 있다. 업무가 시작된 9시 맞춰 열람실로 들어 읽고 싶은 책을 검색하니 대출 중이라 예약도 밀려 더 받지 않았다. 창비 신간 소설로 열람자들이 다수 찾아 나는 서점에서 구해야겠다.
신간 서가 코너에서 다른 책을 다섯 권 골라 내 지정석이 되다시피한 창가 구석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열람자는 도착순으로 자리를 고를 수 있어 내가 마음에 드는 자리다. 방학이나 주말이 아닌 평일이라 도서관을 찾은 이가 적어 열람 여건이 좋았다. 베른트 하인리히가 쓴 ‘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를 펼쳤다. 숲으로 들어간 구순의 노학자가 평생 관찰한 이야기였다.
점심때가 되어 휴게실로 건너가다가 1층 현관 출입구에서 중문 유리에 이마가 부딪힌 일이 있었다. 바깥 문짝에 붙여둔 시월 휴관 일정표를 보려다가 앞문은 자동으로 열리는 줄 알고 그냥 나서다 투명 유리와 정면으로 맞닿아 이마가 아팠다. 1층 사서도 놀라 다가와 걱정했는데 겉으로 상처는 나지 않아 다행이다. 학교 교실처럼 도서관에서도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구나 싶다.
못다 읽을 책은 대출받아 늦지 않은 시간에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왔다. 집에서는 베란다 화분을 돌 볼 일이 있었다. 블루펜시아와 줄란에 배양토를 채워주고 지난봄 꽃을 피운 수선화 사프란 종구를 심었다. 두 꽃은 백합처럼 비늘 뿌리인데 여름에 휴면 처리시켜 가을에 심어두면 겨울을 넘겨 봄에 잎맥이 나와 꽃을 피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꽃을 보기 쉬운 화초가 아니었다. 26.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