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에 출전할 엔트리가 발표되었고 대회에 참가할 선수단이 호주로 떠나면서 대회가 임박했음을 알리고 있다. ‘축제’로 인식되는 월드컵과 달리 조용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모양새이지만 축구팬들의 마음은 설렌다. 드디어 아시아 최강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지가 관심을 끌고,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첫 국제 대회라는 점에서 관심이 간다. 해외 언론 혹은 도박사들은 우승 후보로 일본, 이란 등을 꼽고, 우리 대한민국은 4강 정도 전력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예측은 예측일 뿐이다. 우리가 일본이나 호주, 이란을 이긴다고 해서 ‘이변’이라고 표현할 사람은 없다.
해외의 예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국내에서도 슈틸리케 호의 아시안컵 우승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아니 대표팀의 실패를 미리 신경써주는 사람이 많다. 이전과 달리 언론에서도 대한민국의 우승 가능성에 대해 왁자지껄 떠들어대지 않는다. 지난 평가전 중계방송 중 박문성 해설위원이 슈틸리케 감독에게 아시안컵에서 당장의 성적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발언을 하면서 그런 여론이 형성된 것 같다. 우승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4년을 보고 선임한 슈틸리케 감독에게 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적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장기적인 시도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선수, 감독을 비롯한 팀 전체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슈틸리케 감독에겐 시간이 부족했다. K리그 선수들을 시즌 후에 모아 동계 훈련을 치르면서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이제 막 직접 확인해 보았고, 해외파 선수들도 A매치 기간에 소집하여 한두번 정도 실제로 확인했을 뿐이다. 선수단을 완전히 장악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박 해설위원은 우리나라가 아시안컵 우승에 부족하다는 의미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닐 것이다. 대회에서 탈락한다는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대회에서 탈락을 하고나면 팬들이 쏟아낼 너무도 심각한 비난들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이 받아야 했던 비난은 어떠했는가. 그 역시도 불과 1년의 기간을 두고 월드컵을 준비해야 했다. 홍명보 전 감독이 잘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팬들의 자세도 그렇게 성숙하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떤 대회에서 탈락한다고 해도 우린 앞으로 대표팀의 미래를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 학원 한 달 가서 배우는 정도로 공부를 잘할 수 있으면 세상에 공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일단 선생님에게 맡겼으면 어느 정도라도 기다려봐야 하지 않겠나. 이번 중간고사를 좀 망치면 어떤가. 다음 시험에선 나아질 가능성이 있고 끝내는 수능만 잘 치면 된다. 분명 지난 쪽지시험에선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도 어떤 감독이 오더라도 차분히 시간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가 슈틸리케 감독에게 과도한 기대를 걸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실망하여 비난 여론을 만들지는 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시안컵의 목표는 단연코 우승이 되어야만 한다. 이번 대회가 월드컵이 아니라 아시안컵이란 점을 생각하면 그리고 우리가 가진 전력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우승을 노려야 한다.
전력을 고려해보면 우승후보로 손색이 없다. 최근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기성용을 비롯하여 이청용, 손흥민의 공격력은 어느 팀에게라도 위협적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기성용을 중심으로 대표팀 전체의 전술을 잘 조직해왔다. 평가전에서 보였던 각 포지션의 다양한 변화와 전방에서 가해지는 압박, 빠른 템포의 공격은 아시아권의 밀집 수비에도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평가전에서 드러냈던 수비 불안, 중앙 공격수의 부재라는 약점은 이미 상대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약점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수비 출신으로 훌륭한 커리어를 보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수비 불안은 서서히 나아질 것이라 생각되고, 정통 스트라이커의 부재는 이미 슈틸리케 감독이 제로톱 전술을 실험해 본 적이 있고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앞으로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특히 이란과의 지난 평가전을 복기해보면 세밀함만 더했더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승부였다. 조직력을 다지기에 절호의 기회를 맞은 만큼 이번 대회에서의 선전은 충분히 기대할만 하다.
현재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일본, 이란, 호주 정도가 강한 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게 유난히도 강한 이란, 객관적 전력이 너무나도 튼튼한 일본, 홈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은 호주까지 만만한 상대는 없다. 하지만 상대를 너무 높게 평가할 필요도 없다. 어느 새인가부터 아시아권 팀들을 인정하면 마치 ‘개념 팬’인 것 같은 이미지를 풍기기도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들이 우리보다 딱히 뛰어난 팀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상대를 무시하지 않는 자세는 어느 팀과의 경기든 갖춰야 할 자세이다. 결국 비슷한 팀들과의 경기는 ‘자세’가 많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아시안컵에 임해야 한다. 어떠한 팀과의 승부도 질 생각으로 들어가서 제대로 된 경기를 할 순 없다. 지나친 자만이 문제이지 자신감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일본, 이란, 호주에게도 우리나라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슈틸리케 감독이나 현재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이 승부욕이 강한 만큼 이번 대회에 우승을 목표로 도전할 것이라 믿는다.
대회를 치르면서 조직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대회의 우승 가능성 자체를 높여준다. 브라질이 대표적으로 토너먼트에서 강해지는 성향을 보여주는 팀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조직력이 강하지 않은 브라질 대표팀은 월드컵 조별 예선 기간에 불안한 경기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대회가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예선 세 경기는 연습 게임인 것처럼 선수들이 호흡을 맞추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 대표팀도 조별리그와 토너먼트를 치르면서 강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상대를 얕보거나 편하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지만, 그런 의미에서 호주에 비해서는 부담이 적은 오만, 쿠웨이트 경기를 먼저 치를 수 있다는 점은 행운이다. 손발을 맞출 기회가 부족했던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들이 실전을 통해 조직력을 가다듬기에 최고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아시안컵 우승은 대한민국 축구의 명예와 실리 모두를 취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다. 명예의 차원은 모두가 알고 있듯 ‘아시아 최강’이라는 타이틀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지만, 아시안컵에서만큼은 너무도 오랫동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면서 최강이란 수식어에 적합하지 않았다. 일본이 근래의 아시안컵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면서 일본이 아시아 최강이라는 모양새가 되었다. 사실 K리그의 위상을 보면 이런 부진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지난 수년 동안 AFC챔피언스리그에서 가장 강한 리그는 K리그였다. 유명 선수들이 해외로 이적하고, 뛰어난 외국인 선수들도 타 리그로 팔려갔지만, 여전히 K리그는 아시아 최강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아시아 축구팬들에게 한국 축구의 위상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가장 강한 리그와 가장 강한 국가대표팀을 가진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이런 명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실제적 이득이다. 아시안컵 우승으로 받는 상금 정도를 실리라고 할 수는 없다.(상금 역시도 중요하지만.) 우승으로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아시안컵에 우승하면 2018년 월드컵을 앞두고 열릴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할 수 있다. 2018년 월드컵 티켓을 따내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되어야겠지만, 2018년에도 월드컵에 진출했다면 실제 월드컵이 열릴 경기장에서 각 대륙의 챔피언들과 실전을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도움이 될 일이다. 평가전 상대를 구하느라 고생할 필요도, 경기를 어디서 치를지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개최지인 러시아에서 각 대륙의 강호들과 경기를 치르면 된다.
아시안컵에서의 선전은 2018년 월드컵을 목표로 장기 레이스를 치르는 대표팀에 있어 부담감을 줄여줄 수 있다. 출범 초기 아시안컵이라는 메이저 타이틀을 손에 넣으면 팀을 이끄는 감독 입장에서도 그리고 선수들 입장에서도 부담을 덜 수 있다. 출범 초기부터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팀 운용에 있어서 슈틸리케 감독에게 더 많은 자율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 입장에서도 팀 동료들 간의 유대감 형성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동고동락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좋으면 더 사이가 좋아지는 법이다.
게다가 아시안컵은 조직력을 다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아시안컵은 각 구단에서 의무적으로 선수를 차출해줘야 하는 대회이다. 해외로 진출한 선수들이 많아진만큼 ‘완전체’로 모이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아시안컵은 23명의 선수가 모여 조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이다. 앞으로도 선수들의 구성에 변화가 있긴 하겠지만, 지금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는 선수들은 러시아에서도 핵심 선수들이 될 것이다. 슈틸리케 식 한국 축구를 실험하고 실제로 적용하기에는 최고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대회를 끝까지 치르게 된다면 약 3주간 6경기를 치르게 되는데 A매치데이 기간에 고작 1주일 간 2경기 정도를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한 기간이다. 상위 단계로 진출하면 할수록 우리나라의 조직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더 얻을 수 있다.
아시안컵이 4년에 한 번씩 열려 대륙의 최강을 뽑는 비중 있는 대회임에도 크게 이슈가 되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사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축구적 측면에서 보자면 나이 제한이 없는 아시안컵의 비중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시안컵에 대한 관심도, 기대도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 오히려 이번에야말로 우승이라며 언론에서 먼저 설레발치던 시절이 그리울 정도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 임하는 선수들과 감독의 각오는 남다를 것이라 믿는다. 우리 축구팬 역시도 이번 대회를 어차피 우승 못하는 대회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직 팀을 만들어가는 중간인 슈틸리케 감독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봐주길 바란다. 물론 우승에 도전하는 모습 자체를 아름답게 봐주길 바란다. 내가 시험을 못 쳤다고 우리 부모님이 날 아들로 여기시지 않는 것은 아닌 것처럼, 우리나라 대표팀을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길 바란다.
http://blog.naver.com/hyon_t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