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탄의 참소를 덮는 은혜 (슥2-3)
2026년 9월 4일 (금요일)
찬양 : 나의 죄를 씻기는
본문 : 스가랴 3:1-10절
☞ https://youtu.be/kUmId9la0BY?si=2zc4rS-bmsrxTjW-
어제 하반기 첫 목회사관학교 강의를 마쳤다.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전도서를 묵상교재로 제작하여 금번 강의에 함께 나누고자 준비했다. 말씀 앞에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말씀을 사랑하는 것인지, 그 말씀을 통해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이 왜 필요한지를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요즘 마음의 열정은 다시 솟아나고 있는데 육체가 매우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 체력이 약해져 그런 것인지 나의 건강 상태를 조심스럽게 체크하게 된다.
오늘은 주일 사역을 준비하고, 내 삶의 울타리를 정돈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간 나를 내려놓느라 돌보지 못한 나의 울타리를 정돈하며 후반전 사역을 위한 최종적인 정리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에는 스가랴 환상의 네 번째로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선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모습이 나온다. 3절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서 있는지라’
아마도 이 모습은 이스라엘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자화상일 것이다. 16년간 방치된 성전의 터를 바라보며 자책하는 그 마음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죄로 얼룩져 있고 실패했는데,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자격이 있는가?>
네 번째 환상을 통해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주저앉은 정체성을 어루만지며 이 실상이 왜 그런지를 보여주시는 환상처럼 보여진다. 1절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수아는 아마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상을 통해 주님은 그의 눈을 열어 그가 그렇게 정체성을 잃고 주저앉는 이유가 사탄이 그를 대적하고 있음을 알게 하신 것이다.
16년의 멈춤에서 다시 일어나도록 하나님은 먼저 우리의 실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눈을 열어 보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는 놀라운 환상을 통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향해 대적하는 사탄을 책망하신다. 2절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하나님은 여기서 사탄을 두 번이나 책망하신다. 여호수아가 여전히 하나님 앞에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에 사탄의 고발은 정당해 보인다. 그럼에도 왜 하나님은 두 번이나 책망하시는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책망을 앞두고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표현이 오늘 아침 큰 울림을 준다.
보여지는 현실은 분명 똑같다.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
그런데 사탄은 그 일로 대적하며 고발했지만, 하나님은 택하신 자라고 선포하시며 두 번이나 강조하며 책망하신다.
사탄의 참소 앞에서 죄인인 여호수아는 스스로 한마디도 변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더러운 옷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있는 여호수아를 대신해 하나님께서 친히 두 번이나 불같이 사탄을 꾸짖으신 것이다.
이는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과 그 후유증에 시달리며 16년을 멈춰서 방황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여호수아를 <그슬린 나무>라 칭하시며 사탄이 더 이상 짓밟지 못하도록 철저한 보호막을 치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사탄을 책망하신 것에 사용된 단어는 히브리어 ‘가아르(גָּעַר, Ga'ar)’로 군사적, 법적 용어로 재판장 되신 하나님께서 사탄의 고발을 기각할 뿐만 아니라 법정에서 당장 쫓아내는 판결을 하신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의 어원적인 의미로는 짐승이나 적을 향해 위협적으로 소리쳐 상대를 마비시키는 사자후와 같은 의미다. 마치 예수님께서 풍랑을 향해 잔잔하라 명할 때 바다가 잔잔해 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는 놀라운 말씀을 이어서 하신다. 4-5절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령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천사는 곁에 섰더라’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지금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계시는 장면이다. 그리고 환상에 나오는 주인공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이다. 하나님은 사탄이 쫓겨난 다음 천사들을 명하여 더러운 악취나는 옷을 벗기라 하신다.
여호수아가 스스로 벗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죄의 옷을 벗는 일이 우리가 결심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됨을 분명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나님의 은혜는 죄악의 옷을 벗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기를 원하신다.
그렇다. 우리의 더러운 옷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입혀져 심판받았고, 예수님이 완벽한 순종으로 지어 놓으신 '그리스도의 의'라는 아름다운 옷이 우리에게 입혀진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사탄은 더러운 옷을 가리키며 "너는 자격이 없다"고 정죄했지만, 하나님은 아름다운 옷을 덧입혀 주시며 "너는 내 사랑하는, 의로운 자녀다"라고 정체성을 분명하게 확증해 주시는 장면이다.
이때 갑자기 스가랴가 등장한다. <정결한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소서>
묵묵히 환상을 지켜보던 스가랴 선지자가 이 벅찬 은혜의 광경을 보다가 흥분하여 튀어나와 외친 것이다.
<주님! 기왕 입혀주시는 것, 정결한 관도 그의 머리에 씌워 주옵소서!>
여기 '관(Turban)'은 그 전면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금패가 붙어 있는 대제사장의 공식적인 권위와 직분을 상징하는 관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믿음으로 기왕이면 정결한 관을 씌워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스가랴의 요청대로 기꺼이 그 관을 씌워주시며 이스라엘의 현재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환상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이유는 천국에 데려가기 위함만이 아니다. 16년 동안 실패감에 젖어 사명을 잃어버렸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다시 대제사장의 정결한 관을 씌워주시며 "너는 여전히 나의 거룩한 제사장이다. 가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지으라"고 사명의 자리로 파송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8-9절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라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참으로 놀라운 비전을 보게 하시는 장면이다. <내가 내 종 싹을 나게 하리라.>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베어져 버린 밑동(그루터기)과 같았다. 16년 동안 성전 터마저 방치된 이 비참한 현실에서 하나님은 '싹(히브리어: 쩨마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신다.
이 '싹'은 이사야 11장에 예언된 '이새의 줄기에서 날 한 싹',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대표적인 메시아 칭호다. 세상의 눈에는 볼품없고 연약해 보이는 작은 싹이지만, 이 싹은 죽음의 땅을 뚫고 올라와 마침내 온 열방을 덮는 거대한 생명나무가 될 것이란 말이다. 생명의 싹을 내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
이 '돌'은 성전의 기초석이자 훗날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일곱 눈'은 요한계시록(5:6)에도 등장하듯, 성령의 완벽한 지혜와 통찰(전지하심)을 뜻하는 표현이다.
구약의 대제사장(여호수아)은 매년 대속죄일마다 짐승의 피를 흘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 제사는 죄를 영원히 없애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하나님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단 하루>만에 이 땅의 모든 죄악을 도말할 것이라고 영광스러운 십자가 사건을 예언하신 것이다.
오늘, 네 번째 환상을 묵상하며 이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보여진다.
우리의 더러운 옷을 입은 죄악에 무너진 모습들, 그리고 그런 우리의 오른 편에서 무자비하게 정죄하고 고발하는 사탄의 공격들 그러나 오직 은혜로 선 우리를 그슬린 나무라고 하며 사탄을 책망하며 그들의 모든 고발을 기각하고 사자후를 발해 쫓아내시고는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는 모습
그때 등장한 스가랴 선지자, 이제야 은혜의 정체성으로 구할 마음을 가지고는 정결한 관을 씌워달라고 요청하자 기쁨으로 관을 씌워주시고는 여호수아를 향해 놀라운 비전을 보여주시며 너는 <예표의 사람>, 즉 앞으로 일어날 하나님의 구원을 미리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씀하시며 분명한 사명의 자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말이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우리가 사는 삶은 주님 앞에 선 삶이며, 또한 대적하는 사탄의 고발이 난무하는 법정과 같은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삶에서 우리 힘으로 벗을 수 없는 더러운 옷을 가지고 고발하는 사탄의 참소에 무너진 정체성으로 살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며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을 입히려 하신다는 예표를 분명히 기억하며 은혜를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의 정체성을 입고 살아야 함을 다짐하게 된다.
나아가, 스가랴가 구했던 '정결한 관'을 내 머리에도 씌워주심을 믿고, 주저앉았던 자리에서 일어나 십자가의 은혜를 세상에 보여주는 '예표의 사람'으로 오늘 하루 묵묵히 사명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주님, 이 하루 정체성을 무너뜨려 16년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치하고 있던 여호수아를 일으켜 예표의 사람이 되게 하신 그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 종이 예표의 사람을 통해 믿음으로 오늘도 새로운 피조물로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사탄의 참소가 난무하는 삶의 법정에서, 주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나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예표의 사람'이라는 사명의 관을 씌워 주십니다.>
적용 질문 :
1. 사탄이 내 과거의 실패나 현재의 연약함을 들먹이며 "너는 자격이 없다"고 참소할 때, 나는 주로 어떻게 반응하며 무너집니까?
2. 내 힘으로 결코 벗을 수 없었던 더러운 옷을 주님이 강권적인 은혜로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셨다는 사실은, 오늘 나의 죄책감에 어떤 자유를 줍니까?
3. 주님은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세상에 보여주는 '예표의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은혜의 징조를 어떻게 흘려보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