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축구의 매력에 빠져 발이 근질근질하다. 물론 태어나서 축구공을 차본 적은 없다. 아직은 남들이 하는 축구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시작은 <골때녀>였다. 여러 명이 한 팀이 되어 몸으로 부딪쳐가며 부상과 실패와 실수를 용납해가며 동지애를 쌓아본 경험은 여자들의 세계에서 흔한 일이 아니었던지라 골때녀는 나에게 묘한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감동을 넘어, 축구 기술을 더 보고 싶어진 나는 <뭉쳐야 찬다 시즌2>를 찾아보고 있었다. 각 스포츠 종목에서 최고점을 찍은 남자 국가대표들이 모여 축구를 배워서 한다는 콘셉트.
그런데 골때녀에서는 볼 수 없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모두 자기 분야에선 뛰어난 선수들인데 그들을 데려다가 축구로 약점을 공격하고 있었다. 땀을 많이 흘리면 체력이 그것밖에 안되면서 뭘 여기까지 왔냐며 한참이나 그 얘기를 물고 늘어졌고, 축구공이 빗맞기라도 하면 여기저기서 큭큭큭 웃으며 멘탈을 흔들었다. 처음에는 남자들이란~~ 하며 혀를 끌끌 차며 봤는데 한참을 보다 보니 어떤 패턴이 보였다. 약점을 공격해도 의연한 사람들이 있었다. 금세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배움의 자세를 취하는 공통점이 보였다. 그들에겐 한두 번의 약점 공격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데 약점 공격에 발끈하는 사람이 있었다. 멘탈이 흔들리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그래도 내 분야에선 최고로 잘한다고 칭송받는데 여기 와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라는 속마음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만하면 잘하는 거라고 자만하고 있었다.
스포츠랄 것을 모르고 살다가 탁구를 치기 시작했을 때 나도 약점 공격을 당했다. 특히 남자들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일부러 내 약점을 큰소리로 말하거나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경향을 보였다. 처음엔 기분이 나빴다. 금메달 따는 경기도 아닌데 굳이 내 약점을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릴까 싶었다. 그것이 내 멘탈의 한계였음을 지금은 안다. 기분 나빠했던 나를 보며 상대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으리라. 그리고 실제로 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그 게임에서 졌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그 덕분에 내 약점을 알게 되었고 약점을 보완하게 되었고 나름의 발전이 있었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이 맞다. 이제는 약점 공격을 받으면 빠르게 수용하려고 애쓴다. 아직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가 더 많지만, 그러면 또 내가 자만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없이 겸손할 때만이 약점 공격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스포츠의 기본은 멘탈 관리라고들 한다. 탁구관장 김관장도 나에게 항상 강한 멘탈을 요구한다. 나는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의외로 대범하다. 그래서 나는 멘탈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 또 문제였다. 이만하면 됐다는 자만이 시작되는 순간, 김관장은 어김없이 “당신은 그런 유리 멘탈로 뭘 하겠다는 거야.”라는 말로 나를 자극하고 나는 또 발끈하고 말았던 것이다. “난 멘탈이 좋은 편이거든?”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또 깨달았다. 인정해야 하는데 또 발끈했구나. 나의 약점을 인정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첫댓글 중년을 훌쩍 넘어 아직도 멘탈관리가 안된다는 점에 속상해 하고 있는 중에 에그썬님의 글을 읽고 크게 공감했습니다. 급흥분, 욱할 때 어떤지점에서 내가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되돌아봐야겠아요. 그 지점이 나의 약점일테니.
멘탈은 대체 어떻게 관리하는 건가요ㅠ 약점을 인정하는 게 시작이란 건 알겠는데, 계속 약점인 채로 수십 년을 살아와서;;
수요일마다 글을 정기적으로 쓰시는 게 참 대단합니다! 기자단 선생님들 모여서 축구 한 번 해보셔도 좋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