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의 페스트
작가 ; 알베르 까뮈(1913-1960)
초판발행 ; 1947
줄거리
알제리의 오랑 시에 페스트가 만연하자 오랑 시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다. 모든 것이 봉쇄된 한계 상황 속에서 역병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시내는 커다란 혼란에 빠진다. 이 혼란을 틈타 돈을 벌려는 무리도 날뛴다. 의사 리외와 지식인 타루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질병과 싸움을 벌이며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파리에 아내를 남겨 둔 채 아랍인의 생활상을 취재하러 오랑 시에 들렀던 신문사 특파원 랑베르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리외와 함께 페스트 퇴치 작업을 벌인다.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를 신의 형벌로 생각하고 기도에 전념하지만 결국 페스트에 감염되어 사망한다. 그리고 타루도 페스트에 희생되고 만다. 이어서 리외는 그의 아내도 병사했다는 전보를 받는다. 드디어 목숨을 걸고 페스트와 싸운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페스트는 완전히 퇴치되고 오랑 시는 해방의 기쁨에 휩싸인다. 열차는 다시 들어오고 랑베르의 아내도 오랑 시를 찾아와 그와 플랫폼에서 감격의 재회를 한다.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카뮈에게서 ‘반항’ 개념이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조리’와 더불어 ‘반항’은 카뮈의 작품과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반항’ 개념과 관련하여 카뮈가 ‘집단적 반항’ 개념에도 큰 관심을 표명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카뮈의‘코기토’로 여겨지는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요약되는 이 ‘집단적 반항’이 문학적으로 가장 잘 형상화된 작품이 1947년에 출간된 『페스트』가 아닌가 한다. 이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이 글에서 우리는 특히 『페스트』에서 페스트를 물리치기 위한 투쟁 중에 형성된 ‘자원보건대’의 구성원들, 그 중에서도 리외, 타루, 그랑, 랑베르의 활동에 주목해보았다. 실제로 이들 네 명은 페스트라고 하는 공동의 적과 맞서면서 ‘집단적 반항’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를 형성한다. 그런데 이 ‘우리’는 정확히 카뮈의 ‘형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르트르가 ??변증법적 이성비판??에서 제시한 ‘융화집단’으로서의‘우리’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다 구체적으로 『페스트』에서 자원보건대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이들 네 명은 모두 ‘너’, ‘나’의 구별이 없는 ‘동지들’이고, 이들 사이의 관계는 ‘완벽한 상호성’에 의해 규정되고, 그들의 관계는 ‘편재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며, 이들에 의해 형성되는 ‘우리’는 ‘페스트’라고 하는 공동의 적과의 투쟁, 곧 ‘실천’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만 그 존재이유를 가질 뿐이다. 아울러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이들 네 명이 각자 부분적으로이기는 하지만 ‘카뮈’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하지만 『페스트』에서 볼 수 있는 자원보건대로 대표되는 ‘집단적 반항’, 그리고 이 반항을 통한 ‘우리’의 형성은 지나치게 낙관적임과 동시에 구체적인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결여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점 또한 지적했다.
해설
페스트는 종종 ‘삭막한 실존주의’라는 비난을 받지만, 이런 비난은 까뮈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가감없이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작가가 이 작품에서 진정으로 최우선시 하는 것은 바로 보통 사람이라는 인간이다.
물론 수천 마리의 쥐가 죽는 도시(알제리 해안 도시인 오랑)의 거리를 묘사한다. 돈만 밝히는 시 공무원은 페스트의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우왕좌왕하기만 한다. 흑사병의 발생은 기정 사실화되고 사람들은 죽어 나간다. 도시 전체는 엄격하게 격리된다. 폐쇄된 도시 안의 공간에 갇혀지게 된 사람들은 고독과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공동체를 이루었던 고리들은 하나씩 하나씩 끊겨 나간다.
그러나 암흑의 정점에서도 희망은 죽지 않는다. 절망과 외로움에 빠져들어가는 중에서도 몇 몇 사람들의 노력과 설득으로 그들 앞에 가로막는 재앙을 이해하고, 서로 손을 잡는다. 주인공이 보여주는 노력을 이해하면서 도시 전체가 생명을 부여 받는다.
이것은 까뮈의 ‘이방인’과는 다르다.
'이방인'에 이어 1947년에 '페스트'를 발표한 카뮈는 매우 지적이고 상징적인 문체가 특징이다. 전쟁 체험을 깊이 내면화하여 압축된 문체, 무감정의 서술로 독자의 당면 과제를 인식시켜 주는 뛰어난 리얼리즘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성에 호소하기보다는 고도의 지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작품의 주제는 페스트의 상징적 의미에 모아진다. 페스트는 죽음, 병, 고통 등 인간의 본질적인 원리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온갖 종류의 부조리한 제도나 일을 상징한다. 의사인 리외의 객관적인 서술을 통해 이 온갖 악과의 처절한 싸움을 그렸다는 점에서, 작가의 첫 작품 '이방인(異邦人)'에서 발전하여 연대감의 윤리를 확립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즉, '이방인'에서 전후의 모순된 인간상을 보여 주었다면, '페스트'에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윤리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몇 가지 유형의 전형적 인물을 만나게 된다. 카뮈는 인간 사회의 축소인 오랑 시를 배경으로 하여 개인의식과 집단의식 사이에서 인간이 어떠한 행동을 보이는가를 실험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