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업계 강자 '이온 리얼리티' 대표 댄 레저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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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종찬 기자
"애플의 아이폰은 우리 삶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은 필요할 때마다 주머니에서 꺼내야 하니까 번거롭죠. 앞으로 몇 년 후엔 길을 걷다가 어떤 건물·사물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면 가상현실(VR) 기기가 우리 안구에 직접 그에 대한 정보를 투사해주는 시대가 올 겁니다. 더 편리하고 빠르게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차 방한한 댄 레저스카(Dan Lejerskar·52·
사진) 이온 리얼리티 대표는 위클리비즈 인터뷰에서 "가상현실은 인간이 지식을 얻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구글 검색 서비스가 정보를 공짜로 빠르게 전 세계인들에게 제공하면서 정보를 범용 상품화(commoditize)했다면, 이온 리얼리티는 지식을 범용 상품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현실 업계의 구글'이 되겠다는 것이다.
1999년 미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창업한 이온 리얼리티는 가상현실 소프트웨어와 교육 콘텐츠 분야의 강자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 "가상현실 산업에서 가장 큰 수익을 올릴 소프트웨어 기업은 이온 리얼리티와 넥스트VR"이라고 보도했다. 가상현실 산업 규모는 2020년 1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온 리얼리티는 현재 보잉, 인텔, 도요타, 지멘스, 엑손모빌, 삼성전자 등 대기업과 대학교 등 450여곳, 55개국 정부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산업·교육 현장의 훈련, 응급 상황 대처 등을 가상현실로 재구성, 근로자·교사 등을 위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레저스카 대표는 "항공기 조종사들을 위한 비행 시뮬레이터가 있듯이, 교사, 광부, 공장 근로자들을 훈련시키는 가상현실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를 만든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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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업계의 구글이 될 것"
―가상현실이라고 하면 게임 등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산업적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높다는 겁니까?
"가상현실 업계의 가장 큰 흐름이 바로 근로자 훈련 분야입니다. 전 세계 생산 가능 인구 30억명 가운데 실제 지식 근로자는 5억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25억명은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없는 미숙련·저숙련 근로자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가상증강현실 기기를 이용하면 미숙련 근로자들이 빠르고 손쉽게 숙련도를 갖출 수 있습니다. 근로자가 기계 앞에 서면 무엇을 해야 할지 순서대로 표시가 됩니다. 잘못 조작하면 실시간으로 문제를 잡아낼 수 있습니다. 대처 방법까지 가르쳐줍니다. 숙련 근로자의 경우에도 실수할 가능성이 있는데, 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하면 이를 막아줍니다. 근로자의 실수나 숙련도 미숙으로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엄청납니다. 엑손모빌의 경우엔 전체 비용의 40%라고 합니다. 전 산업 분야로 넓혀서 생각해보면 가상현실 산업의 발전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가상현실은 당신이 가상 이미지들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는 환경을 말합니다. 반면 증강현실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에 관한 정보가 글라스 등 기기를 통해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의 접근법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구분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는 AVR(Augmented Virtual Reality ·증강가상현실)이라고 부르는 접근법을 쓰고 있습니다. 가령 탁자 위에 어떤 사물, 예를 들어 사원(寺院) 미니어처가 있다고 치죠. 그 사원을 보는 순간 관련 정보가 표시되는 건 증강현실에 그치지만, AVR은 버튼 클릭 한 번으로 당신이 그 사원 안으로 다이빙해 들어가서 사원 곳곳을 둘러볼 수 있게 합니다. 미래에는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점점 더 결합될 걸로 봅니다."
이온 리얼리티는 '유니버설 플랫폼'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데이터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거의 모든 형태의 가상현실 하드웨어에 운용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레저스카 대표는 "보잉, 레이시온, 노바티스, 엑손모빌 등이 이온 리얼리티를 선택한 것은 우리 솔루션이 다양한 기기들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상현실 하드웨어를 개발할 계획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우리 전략은 다양한 포맷에서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겁니다. 우리는 120개 포맷에서 데이터를 가져올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습니다. CAD(컴퓨터 지원 설계), 의료, GIS(지리정보시스템) 등 다양한 포맷에서 데이터를 뽑아내서 가상현실·증강현실 포맷으로 가공한 뒤, 현재 나와있는 모든 대중적인 가상현실 기기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우리 소프트웨어는 오큘러스, 삼성기어 VR 등 다양한 가상현실 기기에서 운용 가능합니다. 우리 회사 내부에선 이런 전략을 '크리스마스 장식'이라고 부릅니다. 시즌마다 새로운 포맷을 추가하고, 우리 소프트웨어를 발전시키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모든 가상현실 포맷에서 작동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공급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가상현실 산업의 표준을 스스로 정하려고 하는 겁니까?
"우리 분야에선 그렇습니다. 하지만 가상현실 산업에는 여러 분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게임 분야에선 다른 강자가 있고 우리는 경쟁력이 약합니다. 이온 리얼리티가 강한 분야는 '지식 이전(knowledge transfer)'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학습하게 할 수 있을지, 더 오래 기억하게 할 수 있을지 등의 분야에선 우리 회사가 업계 선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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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이온 리얼리티가 개발한 ‘아이큐브(icube)’에 구현된 가상현실 수족관. (아래) 이온 리얼리티가 개발한 가상현실 기기인 ‘아이큐브(icube)’ 안에서 한 학생이 가상 제트엔진을 분해하고 있다. / 이온 리얼리티 제공
가상현실 산업,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업체가 지배할 것
레저스카 대표가 자신의 가방에서 가상현실 헤드셋을 꺼냈다. 이어 자신의 휴대폰에 '이온 익스피리언스 VR' 앱을 실행한 뒤 휴대폰을 헤드셋 안에 끼워 넣었다. 헤드셋을 착용하자 가상현실 세계가 펼쳐졌다. 바닷속이었다. 주변을 유영하는 돌고래에게 눈길을 주자 돌고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헤드셋에서 흘러나왔다. 이온 리얼리티는 과학, 역사, 지리 등 각 분야의 지식을 가상현실로 설명해주는 앱 7000개를 축적하고 있다.
―이온 리얼리티는 소프트웨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PC 시대 초창기 소프트웨어에 집중했던 마이크로소프트를 연상케 합니다. 가상현실 산업에서도 하드웨어는 범용 상품이 되고 소프트웨어가 시장을 지배할 거라고 보십니까?
"크게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로부터 독립된 제품입니다. 그게 우리의 접근법입니다. 또한 우리는 콘텐츠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출시한 '이온 스포츠'란 앱이 좋은 예입니다. 이온 스포츠는 어린 선수들에게 야구나 미식축구를 연습할 수 있게 해주는 가상현실 앱입니다. 휴대폰에 이온 스포츠 앱을 다운로드한 뒤 구글의 카드보드 헤드셋에 휴대폰을 끼워 넣고 착용하면 가상현실에서 미식축구 훈련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당신에게 영감을 준 사람은 빌 게이츠인가요, 아니면 스티브 잡스인가요?
"제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건 구글입니다. 구글이 한 일들을 보면 놀랍습니다. 그들은 정보를 범용 상품화했습니다. 카트만두에 살든, 보고타에 살든 누구나 공짜로 빠르게 거의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했습니다. 정보와 달리 지식은 아직도 사치품입니다. 우리는 구글이 정보를 범용 상품으로 만든 것에서 영감을 얻어서, 지식을 범용 상품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 세계 모든 이가 지식을 값싸고 손쉽게 획득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겁니다. 그 첫 단계가 7000여개에 이르는 우리의 앱 도서관입니다. 우리는 나사(NASA) 엔지니어들, 하버드 의대 교수 등 각 분야 세계 최고 전문가들의 지식을 압축해서 가상현실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식을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 '인터랙티브 디지털 센터(IDC)'를 세웠습니다."
이온리얼리티는 가상현실 전문가 교육기관인 IDC를 영국 맨체스터, 프랑스 라발, 러시아 모스크바,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 카타르 도하, 포르투갈 산타 마리아 다 페이라, 오만 무스카트, 미국 던컨빌에 설립했다.
―한국에도 IDC를 설립할 계획이 있습니까?
"올해 안에 한국에 IDC를 설립하기 위해 협의 중입니다. 이를 위해 이미 회사 예산도 책정해놨습니다. 우리는 대개 정부나 정부가 설립한 기관 및 대학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IDC를 설립해왔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런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훌륭한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엄격한 규율과 대담한 아이디어의 결합이 이뤄지고 있는 곳입니다. 한국인들은 미지의 분야에 발을 들여놓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휴대폰으로 게임만 하기보다 유용한 것을 얻기를 원합니다. 모든 면에서 볼 때 한국은 IDC 설립에 최적의 입지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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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댄 레저스카 이온 리얼리티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진행된 위클리비즈와의 인터뷰 도중, 자사의 가상현실 스마트폰 앱을 시연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37세에 고국 떠나 캘리포니아서 창업
레저스카 대표는 37세에 고국 스웨덴을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잘나가던 사업체를 팔고 '혁신가들의 꿈의 땅'을 찾아간 것이다.
―어떻게 가상현실 업체를 세우게 됐습니까?
"전 로켓 과학자였습니다. 스웨덴 출신이며 스웨덴 찰머스대에서 컴퓨터 과학과 기계공학 석사를 취득했습니다. 제 첫 직장은 볼보 에어로였습니다. 아리안5 로켓 개발에 참여했죠. 엔진 노즐 디자인 시뮬레이션을 맡았는데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이후 시뮬레이션 업체 등을 창업해서 경영하다가 1992년 제 생애 처음으로 가상현실 헤드셋을 써봤습니다. 그 순간 내 상상력을 사로잡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상현실 세계에 들어가 있다는 게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죠.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미래에는 가상현실을 이용해서 간호사, 교사, 화학자 등이 현재의 파일럿들처럼 훈련을 할 수 있겠구나'라고요."
―스웨덴 출신인데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창업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미국의 다양성 때문이었습니다. 수많은 문화가 공존하고 그 다양함 속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들이 나옵니다. 또 미국 문화는 모험을 좋아하죠. 실패를 관용하는 의식과 풍부한 자본, 문화적 다양성 등이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협업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선 경쟁력을 가진 작은 회사들과 대기업 간 협업이 활발합니다. 이런 요인들이 합쳐지면 좋은 사업 기회가 만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