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예상대로 히오스에서 철수한 로디나군은 1개월 간 최소한의 정비를 마친 뒤 즉시 타스 군단의 영토로 진격했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출격한 것이었기에 진격 과정에서 많은 부대가 보급 부족을 겪었지만 내 판단에 로디나는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고 여겨졌다.
타스 군단의 마지막 함대가 다닐로프와의 전투에서 궤멸된 직후였기에 로디나는 방공포의 산발적인 저항 외의 어떠한 저항도 없이 타스의 영토를 점거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는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로디나는 남아있는 3개의 인류 자치국가 중 가장 믿을만한 국가지만 본질은 군국주의, 전체주의적 독재국가이므로 내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로 사귈 친구에게 선물을 줄 계획도 있었다.
나는 옵쉬나 측에 타스 군단에 대한 협동 군사작전을 제안했다.
우주전은 연합함대가 담당하되 지상전은 전부 소비에트 연방이 담당하며 작전이 끝난 후 소비에트 연방 측이 4개 행성, 옵쉬나 측이 2개 행성의 지배권을 갖는 쪽으로 협의되었다.
필히 대규모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상전을 내가 담당해서 불필요한 옵쉬나인들의 희생을 막고자 하는 내 의지와 육군성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는 이시카와 총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어떻게 보십니까? 이시카와 총감."
"만족스러운 조건이군요.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하지만 연방 건에 대해서는 확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일단 저는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제 임기는 얼마 남아있지 않고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차기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총감 동지는 93% 확률로 차기 총감 선거에서 당선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나머지 7% 정도의 확률은 옵쉬나 기독당의 왕 제독의 당선 가능성이었다.
왕 제독은 천국 난민 출신으로 천국의 마지막 남은 분함대 중 하나를 이끌고 옵쉬나에 귀순해오면서 제독의 지위를 얻게 된 인물로 천국 난민들의 리더 격 인물이었다.
이 인물이 당선될 경우 옵쉬나는 천국처럼 종교국가화될 가능성이 높기에 내가 경계 중인 인물이다.
나와 옵쉬나군은 동시에 타스의 영토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 전쟁에서 제대로 된 우주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전쟁 초기의 단 한 번 뿐이었다.
다닐로프 혹은 로디나와의 전투에서 손상을 입고 후방에서 수리 중이던 함선들로 급조되어 만들어진 함대는 연합함대와의 전투 한 번에 전멸되었고 이후 어떤 성계에서도 타스의 함선은 거의 관측되지 않았다.
요격 명령을 받고 출격한 옵쉬나의 어뢰정들은 어떤 목표물도 찾지 못해서 그냥 귀환하는 일이 흔했다.
지상전 또한 간단했다.
완전한 제공권 장악으로 행성 전체를 폭격으로 갈아엎은 후에 내 드론들이 상륙하여 잔존하는 하이브들을 수소폭탄으로 파괴하면 될 뿐이었다.
인류 동맹과의 전쟁에서처럼 민간인 피해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전혀 없었기에 그런 거침없는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많은 드론들이 작전 중 파괴되었지만 지상전용 드론들은 우주전용 함선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고 사람의 목숨에 비하면 더욱더 저렴했다.
9개월만에 작전은 종료되었고 타스의 영토는 결국 다닐로프, 소비에트 연방, 옵쉬나, 로디나에 의해 갈가리 쪼개졌다.
난 즉시 점령한 행성들에 남아있던 이 흉측한 곤충들을 제거했다.
몇 가지의 방안이 떠올랐지만 제일 합리적인 것은 내 미친 쌍둥이가 무고한 사람들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생체 전기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아이디어를 준 놈이 그 자식이라는 것이 불쾌하기는 했지만 외계인들을 죽이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새로 지배하게 된 4개의 행성들은 인류를 위한 또다른 낙원들로 만들 계획이다.
수백억의 인간들을 희생시키고 여러 국가를 멸망시키며 한때 은하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타스는 단 한 개의 성계에 세력권을 유지한 채 순식간에 몰락해버렸다.
남아있는 잔당들은 더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으며 이제 히오스와 다닐로프만 정리된다면 인류의 이름 아래에 다시 은하계가 통일되는 것도 머지않아보였다.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파라 공화국은 히오스에 또다시 선전포고를 한다.
나는 파라 공화국이 승리하여 또 하나의 위협을 제거하기를 바라며 물자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전후 처리가 다 되어갈 무렵 실시된 옵쉬나 총선에서는 내가 우려하던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타스와의 전쟁에서 우주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이유로 옵쉬나의 영웅이 된 왕 제독의 인기가 급상승하며 기독당이 집권하게 된 것이다.
합동작전이 옵쉬나 내부의 최대 위험요소였던 왕 제독을 키워줄 수 있다는 고려를 하지 못한 내 실수였다.
총감이 된 지안 왕은 내가 보낸 축전에 대한 답장에서 소비에트 연방과 옵쉬나의 우정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이며 모든 조약과 논의들은 그대로 존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지만 지금은 그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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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쁘고 힘든 일이 있어서 연재를 멈췄다가 몇 달이나 지났는데 누가 볼까 싶어서 다시 할 생각을 못했는데 어떤 분이 얼마 전에 다시 올려달라고 댓글을 달아주셔서 다시 올리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스샷 찍어둔 건 남아있었네요. 이전 이야기는 Антиутопия, Imperial convoy, утопия 연대기에 있으니 갑자기 이건 왜 9편부터 올라오냐 하시는 분들은 제목으로 검색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