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란 영활봤다.
느낌이 좋다.
영화보는 중에 웃다 울다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그 영화 보면서 한 친구가 갑자기 생각나는 건 왜 일까?
고등학교시절 같이 그림을 그리던 단짝 친구였다.
미술부 부원일 땐 톰버 연필을 살 돈이 없어 부원들이 쓰다 버린 몽땅 연필을 주워다 뎃생을 하곤 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지만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산 하나를 넘어 학교에 다녔고 3년 내내 같은 신발을 신고 다니던 친구였다.
친구 집은 감천항이 바라보이는 산꼭대기에 살고 있었다. 처음 그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나는 어떻게 이런 높은 산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친구는 날 산 정상으로 데리고 가서 바다를 보여주었다.
힘들거나 슬퍼질 때면 항상 여기 와서 바달 본다고 했다.
우린 대학을 가는 대신 취업을 했다.
월급 40만원을 주는 목공소였다. 낮엔 일하고 저녁엔 선배가 하는 A플러스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힘은 들었지만 참 재밌던 시절이었다.
목공소에서 화실로 걸어가면서 사먹던 호떡이며 첫 월급으로 바바라붓을 샀을 때의 그 행복감이란.
어느날 친구가 자동대패기에 오른쪽 손가락 3개를 잃었다.
손가락을 찾으려 했지만 톱밥이 너무 많아 찾을 수 없었다.
친구가 병원에 실려가던 날 나는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다. 목공소에 취직하자며 녀석의 손목을 억지로 끌고 간 게 나였기 때문이다.
이틀 뒤 병원을 찾아간 나는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만 아니었으면 손가락 3개를 잃지 않았을 거라고 눈물을 흘리는 내게
친구는 말했다.
"어쩌면 나 대학갈 수도 있겠어. 그게 너무 기쁘다."
내 어깨를 두드러던 그때의 친구 표정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미소며 보조개. 눈에 맺히던 물방울을.
정말, 녀석은 산재로 받은 보상금으로 미대에 들어갔다.
야간 전문대학에서 편입해서 3학년으로...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는 대학에서부터 직장생활을 병행했다.
부산에서 인천으로 직장을 옮기고 다시 서울로 옮겼다. 그리고 올해에 독립을 했다.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던 인천의 반지하 셋방에서 19평짜리 아파트로, 다시 24평 아파트로 옮겼다.
쉽게 좌절하는 나와는 달리 그 친군 늘 한결 같았다.
언젠가 친구에게 너의 그 성격이 부럽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친구는 내게
"난 한 번도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 내 뒤엔 항상 든든한 빽 - 친구는 교회에 다닌다 - 이 있고 가난하지만 착한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었거든. 아내와 아이들은 언제나 내 편이었지. 난 항상 우리를 생각해. 내 자신이 아닌 내 가족을... 그 뿐이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앤딩 장면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몇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인생이여. 다시!
어쩌면 나도 지금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살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거면 족한 거 아닌가?
비록 지금 힘들다 할 지라도.
힘내자.
아자!
첫댓글 거 참, 힘나네...^^
이 영화 보면서 ...21그램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어요..구성이 너무 흡사해서 ..그런데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영화라 저도 괜찮게 보았답니다 ../
영화 보는 내내 행복했었는데.....
거참 나도 힘나네..잃은 손가락앞에서도 다행이라며 웃을 수 있는 친구... 참 좋다.
나도 이 영화 보고 싶었는데.. 나도 힘 바짝 땡겨야지
몇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인생이여. 다시!
다시금 푸근해지는 가슴을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