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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묵
(安重根 義士 遺墨)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旅順監獄)에서
1910년 3월 26일
사망하기 전까지
옥중에서 휘호(揮毫:
붓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한 유묵을
일괄 지정한 것이다.
1910년 2월과 3월에 쓴 것으로
글씨 좌측에
'경술 이(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안중근서
(庚戌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安重根書)'라고 쓴 뒤
손바닥으로 장인(掌印)을 찍었다.
글씨 내용은
「논어(論語)」,「사기(史記)」 구절 등
교훈적인 것이 많으며,
자신의 심중을 나타낸 것,
세상의 변함을 지적한 것,
일본에 경계하는 것,
이밖에 어떤 사람의 당호(堂號)를
써준 것 등이다.
유묵 대부분은
당시 검찰관, 간수 등
일본인에게 써준 것들이다.
그중 제569-21호는
러일전쟁 때 종군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여순감옥에서 근무했던 사람
절전독(折田督)이 받은 것으로,
8.15 광복으로
그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조카 절전간이(折田幹二)에게
넘겨주었고,
그것이 1989년 2월 20일
단국대학교에 기증되었다.
또 569-25호는
안 의사 수감 당시
여순감옥에서 경관을 지냈던 이의
손자 팔목정징(八木正澄)이
2002년 10월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또 제569-22, 23호는
앞쪽에 '야스오까
검찰관에게 증여한다
(贈安岡檢察官)'라고 적었듯이
당시 관련했던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뤼순 옥중에서
순국하기 직전인
1910년 3월 26일까지
200여 점의 신품과 같은
유묵을 남겼는데
현재 이들 유묵 중
알려진 것은 62점이고,
국가 보물로 지정된 것은
최근에 5점을 포함하여
31점이라고 한다.
개인 통산
최다 보물지정 기록이다.
이러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고
생동감이 넘치며
유묵의 내용 모두가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평화를 갈구하는 뜻이
담겨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형이 집행될 때까지
약 40일간
일본인에게
많은 작품을 써줬다고 알려졌으며,
내용 역시 중복된 것이 없다.
대부분 동양 고전을 바탕으로 삼은
교훈적인 내용과
동양의 평화를 방해하는
현실 고발이나 경계를 담고 있다.
특히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기 직전인
1910년 3월에 남긴 유묵
(遺墨: 생전에 쓴 글씨) 5점이
최근 한꺼번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되었다.
이로써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의사 유묵은
모두 31점으로 늘었다.
그 중 안중근의사숭모회가
8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는 평생을 서예가로 살았고
한국사에서 명필로 평가 받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12점,
석봉 한호의 글씨가
4점인 것에 비추어
압도적으로 많은 수량이다.
↑왼손 약지가 잘린 손을 보이고 있는
안중근 의사(安重根義士)
↑안중근 의사 어머니 조 마리아 모습
(1862∼1927)
아들의 사형선고 소식에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는
짧고 단호한 편지를
아들에게 보냈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 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안중근 의사 가족사진
↑안중근 의사 순국 15분전 모습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기 전
안중근 의사의 두 동생
정근, 공근과
홍석구 신부
(프랑스 이름 조셉 빌렘,
Nicolas Joseph Marie Willhelm)에게
전하는 마지막 유언 장면이다.
↑안중근 의사 순국 5분전
어머니가 지은
하얀 수의를 입고 찍은 모습
1910년 2월 14일에
사형 선고를 받았고
이후 3월 26일 오전 10시 15분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안중근(安重根) 의사는
1879년 7월 16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31세의 나이로
1910년 3월 26일
여순 감옥에서
사형으로 생을 마감하신
우리의 자랑스러운 영웅이자
애국자이자,
당시 대한독립군 중장의 신분
이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아침 9시 도착,
러시아의 재무상과
회담 예정의 날 아침에,
불과 5m의 거리에서
7발의 권총사격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했다.
그가 6차례의 재판을 받는 중에,
왜 그를 암살했나는 질문에
15가지의 이유를
명쾌히 설명,
당시 검찰관이나
형무소 헌병도
그를 존경하게 만들었던 사실이
동영상에 여실히 나온다.
동양평화론은,
그 당시 아무도 생각지 못한
명쾌한 새로운 세계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한중일 3개국이
경제통합하고,
통화도 단일 통화를 채택하면
더욱 번성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동영상의 하부에서는
일본의 학자도,
1910년 8월 22일의
한일합방은 지나친 것이었다고
시인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간 것은,
한일합방과 만주 이권을
러시아와 담판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1. 보물 제569-1호
백인당중 유태화
(百忍堂中 有泰和)
백 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
중국 당 고종이
운주 장공예(張公藝)의 집 당호(堂號)로,
9대가 한 집에 화목하게 산 것을
칭찬하며 지어 준 글이다.
2. 보물 제569-2호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
3. 보물 제569-3호
년년세세화상사
(年年歲歲花相似)
세세년년인부동
(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계절 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같지 않네.
4. 보물 제569-4호
치악의악식자 부족여의
(恥惡衣惡食者 不足與議)
궂은 옷, 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인용
5. 보물 제569-5호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련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 慷慨
政略不改眞可憐)
(동양 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뜻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자리
평화 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정략(침략전쟁)을 고치지 않으니 참 가엾도다.
6. 보물 제569-6호
견리사의 견위수명
(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논어』 헌문(憲問) 편에서 인용
7. 보물 제569-7호
용공난용 연포기재
(庸工難用 連抱奇材)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큰 재목을 쓰기 어렵다.
『통감(通鑑)』에
자사(子思)가 위왕(魏王)에게 말한
내용에서 인용
8. 보물 제569-8호
인무원려 난성대업
(人無遠慮 難成大業)
사람이 멀리 생각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논어』 헌문(憲問) 편에서 인용
9. 보물 제569-9호
오로봉위필 청천일장지
삼상작연지 사아복 중시
(五老峯爲筆 靑天一丈紙
三湘作硯池 寫我腹中詩)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푸른 하늘 한 장 종이 삼아
뱃속에 담긴 詩를 쓰련다.
10. 보물 제569-10호
세한연후 지송백지부조
(歲寒然後 知松栢之不彫)
눈보라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이울지(시들다/쇠약해지다)
않음을 안다.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인용
안중근 의사의 며느리
정옥녀 여사가
소장하던 것으로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옥중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추사 김정희
1786(정조10)∼1856(철종7)가
제주 유배 시에 그린
세한도(歲寒圖)에도
이 글귀가 인용되었다.
11. 보물 제569-11호
사군천리 망안욕천
이표촌성 행물부정
(思君千里 望眼欲穿
以表寸誠 幸勿負情)
임 생각 천 리 길에
바라보는 눈이 뚫어질 듯하오이다.
이로써 작은 정성을 바치오니
행여 이 정을 저버리지 마소서.
12. 보물 제569-12호
장부수사 심여철
의사림위 기사운
(丈夫雖死 心如鐵
義士臨危 氣似雲)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그 기풍은 구름 같도다.
13. 보물 제569-13호
박학어문 약지이례
(博學於文 約之以禮)
널리 글을 배우고
예법으로 몸단속을 한다.
『논어』 옹야(雍也) 편에서
공자가 한 말이다.
14. 보물 제569-14호
(지정일: 1972. 08. 16.)
제일강산(第一江山)
폭 96.6cm × 길이 38.6cm.
원 김양선 목사 소장으로
숭실대학교 한국 기독교
박물관에 기증 함.
15. 보물 제569-15호
(지정일: 1972. 08. 16.)
청초당(靑草塘)
37.6㎝×67㎝(가로) ×37.6㎝(세로)
민병기 소장.
16. 보물 제569-16호
(지정일: 1972. 08. 16.)
고막고어자시(孤莫孤於自恃)
스스로 잘난 척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크기: 74.9㎝(가로) ×39.7㎝(세로)
한중호 소장.
17. 보물 제569-17호
(지정일: 1972. 08. 16.)
인지당(仁智堂)-
어질고 지혜로운 집
크기: 67㎝(가로)×37.6㎝(세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18. 보물 제569-18호
(지정일 1972. 08. 16.)
인내(忍耐): 안중근은 어려움을 참고
견딘 남자이다.
크기: 26.8㎝ × 72.1㎝,
김성섭 소장.
19. 보물 제569-19호
(지정일 1972. 08. 16.)
극락(極樂): 지극히 즐거운 곳
크기: 68.2㎝(가로) × 33.2㎝
강신종의 소유로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기증 되었다.
20. 보물 제569–20호
운재(雲齋):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 있을 때,
공부하는 건물 이름의
재호를 쓴 것임.
크기: 67.8㎝(가로) x 32.8㎝
안중근의사기념관 소장.
21. 보물 제569-21호
욕보동양 선개정략
시과실기 추회하급
(欲保東洋 先改政略
時過失機 追悔何及)
동양을 보호하려면
먼저 정략을 고쳐야 한다.
때를 놓쳐 실기하면
후회한들 무엇하리요.
22. 보물 제569-22호
국가안위 노심초사
(國家安危 勞心焦思)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유묵 오른쪽에 증(贈) 안강(安岡)
검찰관이라 씌어져 있다.
이는 친절하게 대해 준
당시 뤼순법원 검찰관
야스오카에게 증정한 것이다.
야스오카 사후 장녀 우에노(上野)가
소장하다가
1976년
도쿄 국제한국연구원을 거쳐
남산 안중근의 사기념관에 기증했다.
22. 보물 제569-23호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 의사를 경호했던
일본군 헌병
지바 도시치(天葉十七)에게
써 준 유묵이다.
제대 후 지바는
안 의사의 인품과 사상에 감복하여
이 유묵을 일본에 가지고 가
사진과 함께 정성으로 모셨다.
그의 사후
미망인과 양녀 미우라(三浦)가
봉안하다가
구리고마의 다이린지(大林寺)를 거쳐
1980년
도쿄 국제한국연구원을 통하여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되었다.
24. 보물 제569-24호
천여불수 반수기앙이
(天與不受 反受其殃耳)
만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게 된다.
『춘추』 의전(春秋義戰)의
‘天與不取 反受其咎’
(천여불취 반수기구)와
같은 뜻이다.
25. 보물 제569-25호
언충신 행독경 만방가행
(言忠信 行篤敬 蠻邦可行)
말에 성실과 신의가 있고,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비록 야만의 나라에서도
이를 따르리라.
26. 보물 제 569-26호
임적선진 위장의무
(臨敵先進 爲將義務)
적을 맞아 먼저 전진하는 것이
장수의 의무이다.
2007. 11월 보물지정,
진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
27. 지사인인 살신성인
(志士仁人 殺身成人)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편에
'지사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룩한다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소장.
2022년 6월 23일 보물 지정.
28.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
황금 백만 냥이라도
자식에게 하나를 가르침만 못하다.
『명심보감』 훈자(訓子)편에
‘황금 한 궤짝이
자식에게 경서 한 권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
(黃金滿盈 不如敎子一經)’와 같은 뜻이다.
재일교포 김주억이 일본에서 확인했으며
뤼순감옥 경수계장 나카무라(中村)에게
써준 것으로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2022년 6월 23일 보물 지정.
29. 인무원려 필유근우
(人無遠慮 必有近憂)
사람이 멀리 생각지 못하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 근심이 생긴다.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
나오는 말로
중국 대련 세관의
세무관으로 있던
카미무라 주덴(上村傳)이
안중근으로부터 직접 받은 유묵이다.
현재 국내 개인 소장.
2022년 6월 23일 보물 지정.
30. 일통청화공
(日通淸話公)
청나라말을 할 줄 아는 일본인 통역관.
(날마다 맑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오른쪽에 ‘증 키요타(淸田) 선생’이라고
쓰여 있다.
국내 개인 소장.
2022년 6월 23일 보물 지정.
31. 세심대
(洗心臺)
마음을 씻는 대.
국내 개인소장.
2022년 6월 23일 보물 지정.
32.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순국 직전 뤼순 감옥에서 쓴
유묵 ‘경천’
33. 독립(獨立)
시타라 마사즈미 소장
獨立(독립)
34. 담박명지 영정치원
澹泊明志 寧靜致遠
(담박명지 영정치원)
담백한 밝은 뜻이
편안하고 고요하여 오래 전수된다.
박원범 소장
35. 빈이무첨 부이무교
貧而無諂 富而無驕
(빈이무첨 부이무교)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는다.
일본 동경 도립 로카기념관 소장
36. 계신호기소불도
戒愼乎其所不睹
(계신호기소불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간다.
일본 죠신지(淨心寺) 소장
37. 백세청풍
(사토 가즈오 소장)
百世淸風(백세청풍)
백세에 걸쳐 부는 맑은 바람
'충절과 곧은 절개'의 상징으로서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37. 천당지복 영원지락
天堂之福 永遠之樂
(천당지복 영원지락)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
안중근의사숭모회 소장
옮겨온 글 편집
첫댓글 노 선생 참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이 귀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수집하셨는지
귀한 자료 잘 봤습니다. 우리 카페의 보물로 오래 간직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