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많이 낮네요. 어머니 너무 낮으면 학교에서 자존감 떨어져요.”
영어학원 원장선생님이 막내아이의 영어테스트를 평가하는 그 한마디 말에 기분이 확 나빠진다. 나는 속으로, 이제 시작했으니 당연한 걸 꼭 그렇게 말해야 하냐고 중얼거리고 있다.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지금껏 큰아이 둘째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학교 밖에서 시작했던 영어 공부를 막내아이는 3학년 들어가면서부터 시켜보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큰아이들을 통해 늦더라도 동기를 가지고 영어공부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는 경험을 하고도 말이다. 막내아이의 동갑내기 고종사촌이 영어로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 하면서 넌 이것도 모르냐며 핀잔을 줄 때도, 둘째아이가 막내아이 친구가 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하는데 엄청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기분이 상한다거나,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사실 학원을 안보내긴 했지만 집에서 자막 없는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보여준다던가, 영어책을 읽어주려고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막내아이는 왜 영어로만 봐야 하냐며 영상을 볼 때는 자막을 켜주던지 더빙된 영상을 보여달라 하고, 영어책을 읽어줄 때는 번역해서 읽어달라 했다.
원장선생님께 미리, 하나도 공부를 안했다고 말씀 드렸는데도 요즘 아이들의 기본적인 실력이 너무 높아서일까? 막내가 풀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들이다. 간단한 회화를 듣고 해당하는 지문의 그림을 찾는다던가, 영어로된 지문을 읽고(?) 밑줄친 곳에 들어갈 적당한 단어를 고르는 문제들이었다. ABC를 아는 정도의 테스트일거라 생각했던 것은 내 바램이었던 것이다.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넌 지금 시작했으니까 잘 모르는 게 당연해. 앞으로 지금의 너와 비교하여 앞으로 잘 해나가면 되니까 주눅들지 마."
"엄마, 난 그렇게 생각한 적 없는데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더 이상해."
아차차, 아이와 나 자신에게 내 깊은 생각을 들켜버린 것 같아 민망하다.
집에 돌아와서 전에 1/3 정도 읽다 말았던 "단단한 영어공부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유유 출판사, 2019) 이 눈에 띈다. 우리는 왜 영어를 공부하는가? 나는 왜 아이에게 영어를 공부시키려 하는가? 답을 찾고 싶었나보다.
이 책은 2020년의 그해의 책으로 선정된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의 공동 저자인 응용언어학자 김성우님의 저서이다. 책 욕심은 많아서 진작 샀으나 조금 읽다가 책장에 꽂혀있길 1년 하고도 반년이 지난 즈음 다시 펼쳐들었다.
이 책의 앞 부분은 왜 우리가 영어 공부를 하는가라는 이야기와, 영어가 우리 삶에 어떻게 왜곡되어 있는지를 말하고 있고, 중반이후에는 실질적으로 영어에 접근하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끝으로 갈 수록 철학적인 내용이 깊어지다 결론에서 우리의 삶을 위한 영어를 해야 한다고 마무리 한다.
책 곳곳에 보석같은 말들이 있지만, 몇 군데를 스포하자면,
저자는 인풋 중심의 1만시간의 법칙을 부정한다. (크리센의 가설을 예로들고 있다.) 아무리 많이 들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소화할 수 없다면 소음일 뿐이다.
또한 원어민을 따라가려는 영어에 대해 비판을 하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영어 사교육시장이 우리에게 어떨게 잠식되었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우리가 영어를 배웠으나 말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마지막 즈음에 "이 사회에서 영어는 사회문화 계층과 특권의 대변인이 되어버린 듯합니다."라는 말이 뼈를 때린다.
전에 내가 스승으로 여기는 어떤 분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본인은 미국 유학을 하면서 느낀 바 얼마나 유창하게 말을 하느냐보다 얼마나 깊이 생각하느냐가 중요했다고 한다. 말을 하는 언어보다 생각을 하는 언어가 중요한데, 원어민이 아닌이상 우리는 생각은 모국어로 하게 되고 모국어의 어휘와 깊이가 결국 그 사람의 생각의 수준이 된다는 말이다. 중학교 때 미국에 가서 영어 발음이 더 좋은들 모국어의 어휘가 중학생 수준이라면 거기까지밖에 사고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 이야기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들었던 강의들과 지금 소개하고 싶은 “ 단단한 영어공부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 책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영어에 대해 조급해지고 마음이 흔들릴 땐 앞으로도 한번씩 읽어야겠다.
아이의 영어를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내용을 더 알고싶어하는 아이에게 의미가 없을 소리를 강요하지 말고 생각을 키워줄 수 있는 우리말과 생각이 더욱 풍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자.
아이는 그렇고, 나는 왜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가?
조금은 우스운 동기일 수도 있지만 BTS영상에 달린 수많은 해외 아미들의 댓글들을 불편함 없이 읽고 싶다. ㅎㅎㅎ 이 책에서 조언하고 있는 영어 학습법도 참고해서 노력해봐야겠다.
첫댓글 중학교 때 셰익스피어랑 인도랑 안 바꾼다는 얘길 듣고, 셰익스피어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아직까지 이루진 못했네요.ㅋ
아, 정말 100퍼 공감되는 말씀이에요. 무엇을 말하느냐,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영어는 아무 때나 자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 시작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LA살던 제 후배는 한국이 영어공부하기 더 좋은 환경 같다고 하더라고요. 성인영어학습 시장도 너무 발달해 있어서요.) 사실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책 읽기엔 좀 도움이 될까 시험용 영어잖아요. 그리고 학원 상담하는 분들은 다 그런 식이더라고요. 레벨테스트하고, 엄마 겁 주고, 예외가 없어요.
생각을 얼마나 깊이하느냐가 유창하게 말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 면에서 대학에서 전공수업을 영어로 하는 것도 저는 이해가 안되어요. 전공에 대한 지식을 익히는데 영어보다는 우리말이 훨씬 이해하기 빠를텐데 누구를 위해 어떤 목적으로 영어로 수업을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은중쌤 읽으신 책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이 책 제가 정말 좋아해서 한 세 번은 읽었어요 ㅎㅎ
책 표지가 정말 재밌네요. 우리 집도 영어 정말 못하는데요. 학원도 한번 안 다녔으니까요......근데 영어를 못하면 그 뭐랄까............수학 못하는 거랑은 다르게........뭔가 계급적으로다가 낮은 그런 기분 나쁜 느낌을 받아요. 수학은 공부의 영역이지만, 영어는 좀 해외물을 먹는다든가 주변에 영어 소스가 많다던가 하는 경험의 영역이 함께 들어가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절망적이었답니다. ㅠㅠ
우주 대스타 성훈샘이 세번이나 읽고 좋아한다고 하니 관심이 더 생깁니다^^ 책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