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5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그날에 사람의 아들이 나타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6-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죽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사람들에게는 많은 기억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도 있고, 끔찍한 기억도 있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죽음을 체험하는 것은 정말 끔찍한 기억일 것입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유난히도 죽을 고비를 많이 넘긴 나는 자주 죽음을 체험하였으면서도 조금도 겸손해지지 않고, 아직도 죽음은 내가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만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언제 불러 가실지 전혀 모르면서도 준비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내 멋대로 살고 있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내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외가에 가서 그 얘기를 전하고 어머니 약을 사려고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급경사를 따라서 내려가는 길인데 90도로 꺾어진 길에서 급히 커브를 도는데 자전거가 돌에 튀었습니다. 나는 자전거와 같이 높이 튀어 올랐고, 길옆에 심어놓은 뽕나무 사이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약 6-7m의 절벽으로 거꾸로 떨어지며 하천 바위위에 박혔습니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바닥을 짚었는데 다행히 산 것 같았습니다. 일어나려니까 손이 움직여지지 않고,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새마을모자 챙에 피가 흘러내리는데 정신이 가물거리며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생질을 보내놓고 쏜살같이 내달리던 조카를 조심스럽게 바라보시던 외숙께서 펄펄 뛰어 오시고, 근처에서 빨래를 하던 부인이 빨래를 집어 팽개치고 달려와서 모자를 벗기고 응급처치를 하는데 왼편 정수머리가 크게 다쳤다고 했습니다. 아주 독한 소독약으로 피를 멎게 하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시면서 외숙께서 나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 때 뽕나무 사이로 떨어지면서 나는 가루가 되듯 깨어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살려주세요. 하느님 어머니!”하고 기도한 것 같습니다. 다행하게도 자전거는 뽕나무에 걸려서 나와 같이 떨어지지 않았고 뾰족한 바위에 떨어지지 않고, 편편한 바위에 떨어져 내가 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날 내가 살아난 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이 조카를 사랑하셨던 외숙이 한 없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에어 포켓을 만나 갑자기 뚝 떨어질 때면 그 때 떨어지던 그 느낌이 그대로 생생하게 기억이 되 살아나 현기증이 나고 아찔하답니다. 그 때 태어난 막내가 벌써 육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머리에 난 상처가 지금은 1cm정도의 상처로 남았지만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죽음을 앞두고 어떤 기분이 들까 혼자서 생각하게 한답니다. 그리고 그날과 모든 나날을 살려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죽음은 정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순식간에 일어나며, 우리에게도 그렇게 종말이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답니다. 그렇게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니 내가 무슨 준비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나라와 지옥은 정말 백짓장 한 장의 차이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순식간에 갈림길로 갈라질 것입니다. 시체를 보고 독수리가 달려들듯 천사와 악마가 달려들 것입니다. 헛된 세상의 것에 눈길을 돌리고 살았으니 초미지간(超微之間)의 차이로 천사와 악마의 쟁탈전이 벌어질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나”를 두고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악마가 승리할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을 털어버릴 수 없습니다. 내가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산속 동굴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동굴을 가득 메운 보물과 보석들을 발견하고 서둘러 자루에 집어넣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 보물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마술의 시간이었는데, 시간이 아주 제한되어 있으니 빨리 보물을 꺼내야 했던 것입니다.
보물을 당나귀 등에 잔뜩 실은 나그네는 다가온 행운을 기뻐하며 동굴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문득 동굴에 지팡이를 놓고 왔다는 것을 알고 동굴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동굴이 사라질 시간이 되어 그는 동굴과 함께 사라져 버렸습니다. 1년이 지나도록 그 사람을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은, 나귀에 있던 보물들을 다 팔아 불운한 사나이의 행운이 가져다준 혜택을 입게 되었습니다.
참새가 숲에 둥지를 트는 데는
나뭇가지 하나면 족하다.
사슴이 강물에서 목을 축일 때는
자기 양만큼만 먹는다.
우리는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에
물건을 그러모은다.
[앤소니 드 멜로 / 황애경 옮김 개구리의 기도 2]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 요한 2서의 말씀입니다. 4-9
선택받은 부인이여,
4 그대의 자녀들 가운데, 우리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기뻤습니다.
5 부인, 이제 내가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써 보내는 것은 무슨 새 계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지녀 온 계명입니다. 곧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6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그 계명은 그대들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7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8 여러분은 우리가 일하여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고 충만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살피십시오.
9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축일11월 15일 성 알베르토(대) (Albert the Great)
신분 : 주교, 교회학자
활동 연도 : 1200-1280년
같은 이름 :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성 알베르투스(Albertus, 또는 알베르토)는 독일 남부 슈바벤(Schwaben) 지방에 있는 도나우 강가의 작은 도시인 라우잉겐(Lauingen)에서 그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223년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던 그는 당시 도미니코회 총장이었던 복자 작센의 요르단(Jordan, 2월 13일)을 통해 성소를 깨닫고 가족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했다. 쾰른(Koln)에서 수련 기간을 보내고 신학을 전공한 성 알베르투스는 1220년대 말 힐데스하임(Hildesheim)을 비롯하여 프라이부르크(Freiburg),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그리고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신학을 강의했다. 쾰른으로 돌아올 즈음 그의 지식과 강의에 대한 명성은 날로 치솟고 있었다.
1243년 혹은 1244년에 파리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획득한 그는 1245년부터 파리 대학의 교수로 강의하였다. 이 시기 그의 제자로는 훗날 위대한 신학자가 된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가 있었다. 그는 성 토마스의 천재성을 일찍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토마스는 지적으로 나의 좋은 동료이자 친구이다.” 이말 그대로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1274년 선종할 때까지 그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로 지냈다. 여러 수도회 대학과 파리 대학에서 성경과 신학을 강의하던 그는 1248년 도미니코회가 쾰른에 ‘수도회 대학’(Studium Generale)을 설립할 때 초대학장으로 임명되었다. 여기서 그는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으로 강의 영역을 넓혀갔다. 철학과 교수로서 그는 전공자들을 위한 각종 주해서를 학생과 교수에게 제공하는 등 왕성한 학문 활동을 전개했고,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 전집”(Corpus Aristotelicum)의 강의와 체계적 주석에도 큰 공을 들였다.
1254년에 성 알베르투스는 독일 관구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어 로마에 갔는데, 그곳에서 생타무르(Saint-Amour)의 빌리암(William)의 공격에 대항해 탁발 수도회를 옹호하는데 진력하였다. 빌리암은 그 후 교황 알렉산데르 4세(Alexander IV)에 의해 단죄되었다. 그는 로마에 머무는 동안 교황의 신학 고문으로서 봉사했다. 성 알베르투스는 1257년 관구장직을 사임하고 학업에 전념하다가 1259년 타렌타시아의 베드로(Petrus)와 성 토마스 데 아퀴노와 더불어 도미니코회의 새로운 교과 과정을 작성하였다. 1260년 그의 소망에 반해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2년 만에 사임하고 쾰른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며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1274년의 리옹(Lyon) 공의회에서 크게 활약했는데, 특히 로마와 그리스 교회의 일치에 공헌하였다.
그는 또한 1277년 파리의 스테파누스 탕피엘 주교와 그 대학의 신학자들에게 대항하여 성 토마스 데 아퀴노와 그의 입장을 옹호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1280년 11월 15일 쾰른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선종한 성 알베르투스는 현재 쾰른의 성 안드레아 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살아생전 성 알베르투스는 소위 만물 박사로 통한 듯하다. 그의 저서에는 성경과 신학은 물론 설교학,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까지 두루 섭렵한 논문들이 많이 있고, 관심 분야 또한 천문학, 화학, 생물학, 동물학, 지리학, 지질학 그리고 식물학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는 특히 인간 이성의 자율성과 감각-경험으로 얻는 지식의 유효성 및 조직 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가치 확립 등에서 더욱 돋보였다. 그의 제자인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이런 종합을 완성한 신학자이다. 이렇듯 당시 모든 학문을 섭렵한 그는 ‘보편적 박사’(Doctor universalis)라고 불렸으며, 그의 학문 영역이 방대하다 하여 이름 앞에 ‘위대한’ 또는 ‘큰’(大)이라는 뜻의 ‘마뉴스’(Magnus)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성 대 알베르투스는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31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교회 학자 칭호와 더불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특히 자연 과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알베르토(대) (Albert the Great)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