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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 외곽에는 주차용 도로가 있다. 그 너머에 있는 왕복 2차선 도로마저 양쪽 차선에는 어지럽게 주차되어있다. 중앙선 쪽으로 남은 도로는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만큼이다.
중앙선을 물고 양쪽에서 진입한 승용차 두 대가 길 가운데에서 만났다. 자신의 차가 먼저 도로에 진입했다고, 상대방 운전자에게 후진해야 한다고 악을 쓴다. 하지만 굽은 도로에 서로가 상대 차량을 발견했을 때는 둘 다 도로에 진입하고 한참이 지난 후라 누가 먼저 진입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법을 만들고 규칙을 만들어 서로 지킬 것을 약속하지만 이런 경우는 해결할 방법이라고는 없을 것 같다. 둘 다 중앙선을 침범한 중대한 교통법규를 위반하고 있질 않은가.
어떻게 해결해서 소통되는지 궁금하지만 나는 산책을 위해 오른쪽 산길로 접어든다. 산 쪽으로 나 있는 산책로에 접어들면 가파른 계곡, 갑자기 별천지가 나타난 것이다. 계곡을 따라 방부목으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오르면 소골못이다. 입구에 소골못 0.3㎞, 큰골못 0.9㎞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소골못은 계곡을 L자로 막아서 만든 못이다. 못 둑 위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오르면 왼쪽은 깊은 계곡이 흐르고 있다. 계곡의 물은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채운 후에야 흘러간다. 이를 영과후진(盈科後進)이라고 한다. 무룡골에서 발원한 물이 이 계곡을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여 구덩이를 채운 후에 흘러 남창천에 합류하여 진하 앞바다로, 더 나아가 태평양에 이를 것이다.
계곡 옆과 못 주변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소골못에서 조금 더 가면 큰골못이 나타난다. 큰 계곡을 통째로 막아 만든 저수지다. 풍광이 좋은 이곳은 아랫동네와 아파트 주민들의 산책로이며, 운동과 등산을 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큰골못의 주변에는 배드민턴장이 있고 어린이 놀이터와 운동 기구가 설치되어있다. 나의 손자들은 이곳을 호수공원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곳을 혼자서 산책하기를 즐긴다. 글감을 찾거나 사색을 하면서 걷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다.
왜 이곳에 저수지를 만들었을까? 대규모 아파트 단지 위쪽에 위험하게끔, 그것도 두 개씩이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오싹하다. 저수지를 보면서 입구의 주차장 모습이 떠오르고, 계곡에 흐르는 물을 보면서 조금 전에 본 막다른 길에서 두 운전사가 싸우던 모습을 연상한다. 물은 법을 만들지 않아도 아무런 분쟁이 없이 수억 년을 잘 지내고 있질 않은가.
아마 지금의 아파트 단지가 모두 예전에는 논이었을 것이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논이었을 때는 농업용수의 저수지였다가. 아파트가 들어서자 이곳이 산책로가 된 것이리라. 물은 사람들이 필요해서 자신의 갈 길을 막아도 원망하지 않고, 웅덩이를 만나면 채우고 나서 다시 갈 길을 간다. 흐르는 물과 세월은 거꾸로 가지는 않는다. 다만 세월은 막을 수가 없지만 물은 막을 수가 있다는 것이 다르다. 그렇지만 물은 막아도 일시적일 뿐이다. 언젠가는 아래로 흘러 바다로 갈 것이다.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고 한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뛰어나지만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세상 만물에 생기를 주고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본연의 성질대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막히면 돌아가고 기꺼이 낮은 곳에 머문다. 상선약수는 물의 성질처럼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고 도와주면서도 자기를 주장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삶의 자세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인다.
먼저 못에 들어왔다고 먼저 내려가야 한다고 고함을 치지도 않고, 늦게 들어온 물을 먼저 나가라고 삿대질을 하지도 않는다. 항상 화합해서 잘 어울린다. 선후배를 가리지 않는 소골못과 큰골못의 물은 힘을 합해 연꽃도 키우고, 비단잉어와 거북이도 기르고 있다. 해도 달도 별도 구름도 품어준다. 잔잔한 미소로 우주 만물의 거울이 되어주는 물, 어떤 경우도 자신의 원칙을 버리지 않는다. 추우면 얼고, 더우면 끓고, 항상 아래로만 향한다. 논이었을 때도 논에 물을 채워 곡식을 영글게 했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도 사람들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풍경을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익을 위해서 가두었지만 원망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물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