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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명철이 필요한 삶 19:1~10
1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2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4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5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
6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7 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8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9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10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12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
13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16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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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가난해도 성실함이, 입이 패역하고 미련함보다 낫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 길을 굽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은 그의 영광입니다. 계명을 지킴이 영혼을 지키는 것이며,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김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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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명철이 필요한 삶 19:1~10
간절히 원하지만 그것을 이룰 지식이 없으면 헛것이고, 무엇이든 급하게 행하려 하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잘못으로 굽은 인생이 되고도 어리석게 하나님을 탓합니다. 세상에서는 재물이 있으면 많은 친구가 생기고, 가난하면 친구가 떠납니다. 이런 현실에서는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는 길을 알려 주는 지혜’와 ‘복을 주는 명철’이 필요합니다(8절). 지혜와 명철의 눈으로 보면,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행하는 자’가 입이 악하고 미련한 자보다 낫습니다. 지혜와 명철의 눈을 가진 사람은 타인을 너그럽게 대하고 선물을 베풀며 좋은 친구가 됩니다. 그런 사람은 거짓의 끝이 멸망임을 알기에 거짓을 멀리합니다. 성도는 지혜와 명철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급히 서두르는 사람은 어떤 결과를 얻게 되나요?(2절)
성급하게 행하거나 거짓말하지 않도록 자신을 제어할 방안에는 무엇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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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긍휼을 베푸는 삶 19:11~17
지혜 있는 사람은 쉽게 화내지 않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 주는 행위가 자신의 영광임을 압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겨 돕는 일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이 그 선행을 갚아 주십니다. 한편 미련한 사람은 게으름으로 깊이 잠들고, 태만의 결과로 굶주리게 됩니다. 미련한 아들은 아버지에게 재앙을 가져다주고, 다투는 아내는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골칫거리입니다. 반면 지혜로운 아내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같은 존재입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분노하기보다 사랑으로 덮어 주어야 합니다(벧전 4:8). 또한 부모와 배우자에게 고통과 괴로움이 아닌 감사와 기쁨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미련한 아들, 다투는 아내는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13절)
가족에게 감사와 기쁨을 주기 위해 내가 실천할 일은 무엇인가요?
한절묵상:잠언 19장 2~3절
모든 의로움과 거룩함, 선함과 덕스러움은 하나님 뜻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뜻과 상관없는 인간의 소원은 탐욕으로 변질되기 쉽습니다. 하나님 뜻을 살피지 않고 열심을 내면 개인의 욕망을 따르기 쉽습니다. 하나님 뜻에서 벗어나면 붙잡아야 할 것을 놓치고, 가야 할 곳에 이르지 못합니다. 성도의 마음과 시선은 하나님과 그분 뜻에 고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그분 뜻을 알고, 그분 뜻에 집중할 때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악한 이 땅에서 선하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늘의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 하워드 맘스태드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살게 하소서. 다른 사람에게 성급히 분노하지 않고 모든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심장을 갖기를 원합니다. 미련함과 게으름을 버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상을 성실함과 사랑으로 채우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41 십자가를 내가 지고)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절 사람들은 온갖 거짓말과 아첨하는 말을 동원해서라도 재물을 모으고 싶어 하지만 그럴수록 영혼의 가난을 재촉할 뿐입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다’(시 37:16)는 말씀은, 지금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진리입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재산증식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신앙의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천천히 걸어갑시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평가가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2,3절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과도한 욕망을 품고 열성적으로 추구하다가 결국은 잘못된 길에 들어섭니다. 그러고는 자기가 처한 어려움이 그릇된 열심에서 비롯된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탓합니다. 부동산 투기, 자녀교육 등 강박적으로 우리를 몰아가는 경쟁 사회의 숨가쁜 분위기를 따라가느라 발을 헛딛지 말고 잠시 멈추십시오. 그리고 이대로 가도 괜찮은지 돌아보며 천천히, 분수에 맞게, 자기 인격의 통합성을 유지하며 걸어가십시오.
4-9절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 않고, 자기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부와 권력을 쌓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잠언은 오히려 지혜와 명철을 쌓는 것이 자기 목숨을 진짜 아끼는 길임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가진 자라면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고후 6:10)임을 거듭 확인하며, 재물에서 얻는 이익보다 지혜로운 인격 때문에 받는 보상을 더 귀히 여겨야 합니다.
10절 미련한 자가 부와 권력을 누리는 상황은 공동체를 심각한 위기에 빠트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분별력 없는 사람이 바른 분별력을 지닌 사람을 다스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11,12절 분노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일도 피해야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말로 지도자의 분노를 유발하는 일도 피해야 합니다.
13,14절 가장 친밀한 관계인 배우자와 자녀가 지혜롭지 못하면 온갖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를 대조하며 가난, 재물, 말, 분노와 같은 잠언의 핵심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내용입니다. 특별히 가난과 재물을 중점으로 사회정의에 관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는데, 가난한 자가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현상을 묘사하므로 바른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외 거짓 증인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지혜와 명철의 삶, 재물과 인간관계의 현실, 용서와 긍휼을 베푸는 삶, 선행에 대한 도리 등입니다.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 ‘어리석은 사람에게 사치가 어울리지 않은 것처럼 종이 관리들을 다스리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는 말입니다. 즉, 종이 권세를 얻는 것은 미련한 자가 재물을 얻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노예가 권력을 잡게 되면 이전보다 더욱 교만하고 포악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와 권세는 지혜롭고 자유로운 사람만이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 사회의 문제점도 부와 권세를 가지지 말아야 할 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 ‘어리석은 자녀는 아버지에게 재난이 되고 다투는 아내는 계속 떨어지는 빗방울과 같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배경은 가정이고, 특별히 비가 새는 집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면 이해가 빠를 성싶습니다. 가나안 지역은 우기를 빼놓고는 거의 비가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흔히 진흙이나 회를 반죽하여 집을 짓고 지붕은 평평합니다. 문제는 갑자기 비가 올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붕에서 새는 빗방울을 막을 재간이 없어 그 물이 방으로 계속 떨어진다면 정말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한 고통을 다투는 아내로 비유한 것입니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아내를 빗대어 말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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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는 것은 여호와의 채무를 맡은 것과 같으니 그 한 일에 대해 여호와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매우 재미있는 표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빚진 자처럼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선행을 기뻐하신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내륙에 바다가(?) 두 개 있습니다. 실은 호수인데 워낙 물이 부족한 나라라 큰 호수를 바다라 부른 것입니다. 즉, 갈릴리 호수와 사해입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 바다를 생해(生海)라고도 부릅니다. 죽어있는 바다(사해)에 비교하여 살아있는 바다(생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사해는 밖에서 물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나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갈릴리는 물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합니다. 탈무드에서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선을 베풀지 않는 것은 사해와 같다. 돈이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생해와 같다. 돈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 있는 바다가 되어야 한다.’ 성경에서도 구제 즉, 자선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그렇게 높이 평가받는 것은 귀한 돈을 희사하기 때문입니다.
돈 누구나 필요합니다. 아마 돈 욕심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가지려고 하지 내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돈을 남을 위해 내 놓을 수 있으니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선보다 더 폭넓은 것이 있습니다. 선행입니다. 선행에는 봉사, 배려, 구제 등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돈과 물질뿐만 아니라 시간과 정성 그리고 희생이 들어가니 한층 더 높은 차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히브리인들의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을 뵈러 갈 때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있고,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있답니다. 전자는 돈, 친구, 가족이고 후자는 선행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선행은 예부터 귀하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행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리스인으로서 필수사항입니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산다면 그것처럼 가치 있는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아있을 때, 기회가 있을 때 귀한 것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선행에 대해 문을 닫아버리면 그 다음에는 의사에게 문을 열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선행에 대한 최고의 대가는? 하늘의 상급 이전에 또 하나의 선행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채무로 여기시는 것들을 원 없이 행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장차 하나님께로 가게 될 터인데 오늘 본문에 따르면 채권자로 가는 신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처럼 축복된 삶이 어디 있을까요?
돈 많은 것이나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 자기 영광이 아니라,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 영광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왜 그럴까요? 여기서 "용서하는"이라고 번역한 원어는 "עבר"(아바르)인데, 넘어가다(pass over), 지나가다를 뜻합니다 그래서 "히브리"(עברי/이브리)라는 단어가 이 "עבר"(아바르)에서 파생했는데, 강을 건너 왔다는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당시 강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왜냐하면 강을 건너려다가 거센 물결에 휩쓸려 죽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강은 생명의 젖줄임과 동시에 신의 심판으로 인한 사망의 목줄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עבר"(아바르)는 건너가다는 뜻도 있지만 분노하다, 소멸하다는 뜻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을 히브리 사람이라 부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그를 넘어가서 강을 무사히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창14:13)
그래서 요셉도 히브리 청년이라 일컬음 받았고,
요나도 자신을 히브리 사람이라 했으며,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욘1:9)
하나님도 히브리 사람의 여호와라 하셨으니,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출9:1)
우리도 역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입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빌3:5)
그러므로 우리도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막11:25)
그때에 우리도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1:4)
그리하면, 사랑과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사 머리털보다 더 많은 죄를 용서하여 주신 주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라 일컬어지니,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은 없는 것입니다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
‘속으로 여호와를 원망한다(3절).. 깨달음을 간직하는 사람은 잘되게 돼 있다(8절)’
죄는 인간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고 그 은혜를 원망으로 바꿔버립니다. 자신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가 부족하고 환경과 상황을 이끄시지 않았다고 불평하며 하나님께 그 잘못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먼저 선글라스를 벗어야 하듯 죄 가운데 있을 때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야 세상을 하나님의 시야로 보고 우리 자신의 상태를 하나님의 거울 앞에 제대로 비춰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공급받고 심령의 깊은 곳에 올곧이 새겨가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길에 반복적으로 들지 않고 교만과 거짓의 유혹을 넉넉히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지 않는 선함을 날마다 통회하고 인정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공급되는 진리와 부활의 생명을 누리며 우리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을 본받고 그분을 경외하는 지혜에 늘 머물러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여호와께 빌려드리는 것이니(17절)
가진 능력이나 권세를 자기 것으로 여기는 인생은 늘 원하는 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해 분노하거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자신의 해가 될 것으로 경계하며 나쁜 결과에 대해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허락된 것들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함으로 다른 이들을 멸시하거나 쉬이 조롱하는 위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허락된 관계나 재물, 권세나 성품, 관계까지도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깨닫는 이들은 늘 베풀고 내어줄 준비를 하고, 다른 이들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결국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고 은혜를 입은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와 재물, 재능까지도 결국 모두 여호와께 속한 것이며 사람의 노력으로 발견되고 허락되지만 스스로 창조해 낼 수 없고 스스로 원해서 이 땅에 태어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손에서 다른 이들의 주머니로 옮겨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축복의 물줄기를 만들고 선하신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는 것이므로 결국 하나님의 헤아림 속에 풍성하게 대접받게 될 것입니다. 매 순간 그분의 의와 그의 나라에 쓰임 받는 복된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의 말씀요약
가난해도 성실함이 입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낫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 길을 굽게 하고 여호와를 원망합니다. 재물은 친구를 더하고,
가난은 친구를 끊어지게 합니다. 계명을 지킴이 영혼을 지키는 것이며,
가난한 자를 도움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올바르고 너그럽게(19:1~7)
속도보다 방향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목표와
방식이 잘못되면 헛될 뿐입니다. 가난해도 매사에 성실하고 바르게 행동하면 형통하지만,
부자라도 탐욕에 이끌려 패역하고 미련한 길로 가면 낭패를 당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을 따르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불의의 소득 대신
진리를 좇으며 다른 이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너그러운 사람이 복된 삶을 살아갑니다.
- 묵상 질문: 사람들은 어떤 이를 좋아하고 어떤 이를 멀리하나요?
- 적용 질문: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내 인생의 롤 모델은 누구인가요?
정직하고 은혜롭게(19:8~12)
분노가 아닌 용서가, 거짓이 아닌 정직이 영광과 복을 얻게 합니다.
마음을 잘 다스려 분별력 있게 행하면 곤혹스러운 상황에서도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미련한 자가 돈을 많이 갖거나 자격 없는 자가 권세를 가지면 사회가 위험합니다.
권력자는 사자가 부르짖는 것처럼 백성을 위협하지 말고 은혜와 긍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쉽게 화를 내거나 남을 험담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은 벌을 받습니다.
공정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결국에는 인정을 받습니다.
- 묵상 질문: 인생의 영광과 복은 어디에서 비롯되나요?
- 적용 질문: 화내지 말고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요?
절제하고 근면하게(19:13~17)
가치 있는 삶은 무분별한 방종을 청산하고 자유를 절제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육체의 정욕대로 행하면 타락과 멸망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자기 기분대로 남편의 화를 돋우는
아내는 집안 전체를 무너뜨립니다. 편한 대로만 사는 게으른 사람은 굶주려 죽습니다.
육신이 다소 고달플지라도 계명을 지키고 행동을 삼가며 가난한 이웃을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를 지키는 파수꾼이 됩니다.
- 묵상 질문: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왜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 되나요?
- 적용 질문: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믿는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입니까?
➲ 가난해도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1~3절).
행복은 주신 것으로 만족하며, 감사할 때 누릴 수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행하는 자...’(1절)가 행복을 아는 자입니다. 성실하게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온전하게 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돌아보고, 성실한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식이 없는 열심과 스스로 조급하게 일을 처리하여 발을 헛디뎠음에도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2~3절)합니다.
나의 형편이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동하여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내 자신을 판단하시는 것은 재물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진실하고 겸손한가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도록 성실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진짜 믿음은 위기를 만났을 때 드러납니다.
평상시에는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하나님과 주변의 사람들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떠나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앞에서 영적 신중함을 놓치지 말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깨달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길을 택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가난해도 성실하게 살아가면서 나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누구라도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4~9절).
세상은 가난한 자보다는 도움이 되는 부유한 사람을 더 가까이 하고 싶어 합니다(4절). 그러나 성경은 이웃이 가난하다고 해서 그를 무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죄를 짓는 패역한 행위라는 것을 자주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거짓 증거한 자에 대해서도 엄격히 처벌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5절). 그러므로 늘 바른 마음, 바른 생활을 해 나아가야 합니다.
‘너그러운 사람’(6절)은 높은 권력과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아량을 베푸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 곁으로 사람들은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고 배척하는 이기적인 마음(7절)을 버리고, 지혜를 얻는 자, 명철을 지키는 자가 되어 인생의 형통함을 경험(8절)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믿음의 영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 증인, 거짓말을 내뱉어 망하지 않아야 합니다(9절).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를 부르실 때에도 세상의 돈 있는 사람, 권력을 쥔 사람, 많이 배운 사람들로 제자 삼지 않으셨습니다. 야고보는 공동체 안에서 외적 조건으로 차별하는 문제에 대해서 강력하게 질타했습니다.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경건은 환난 중에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과 가난한 성도들의 믿음을 부요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외적인 조건과 상황만 보고 경솔하게 행동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잣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판단 해서도 안 됩니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차별하지 말고, 주께서 내 자신을 긍휼히 여겨 주셨던 것처럼 그들을 품어주고, 안아주는 그런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절제하며 슬기롭게 살아야 합니다(10~14절).
미련한 자에게 사치가 어울리지 않는 것과 같이 종이 방백을 다스리는 것은 더욱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10절)입니다.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각자 역할들에 맞게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11절). 진정한 용서는 궁극적으로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자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자가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12절)..
‘풀 위의 이슬’은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지역에서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곧 왕의 은총이 백성의 생명을 유지하는 길임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련한 아들은....다투는 아내는...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13절).. 지속적으로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은 결국 집을 무너뜨립니다. 가정은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아감으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할 곳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정의 행복은 많은 재물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슬기로운 아내 즉,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믿는 믿음 안에서 얻어지는 것(14절)입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키고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립니다(10:12). 오래 참으시고, 용서하시기를 즐겨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 마음의 분노를 절제하고, 이웃을 용서하는 슬기롭고, 지혜 있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물질의 풍요가 행복의 절대적인 조건이 아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돈이 가져다 주는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으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불신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직면한 상황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해 은혜를 걷어차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매사에 절제하며, 모든 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여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원활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주신 천국과 같은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기본에 충실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5~20절).
게으른 자의 삶은 그의 삶의 전반에 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풍족한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15절). 인생의 풍족함은 제물이나 권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16절) 얻는 것이 진짜입니다. 행실을 절제하여 의로운 생활을 유지하면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가난한 이들에게 긍휼한 마음을 갖는 것은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갚아 주시기 때문(17절)입니다.
오늘도 어떤 삶의 환경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경솔하게 판단하여 행동하지 말고,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살아갈 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쉽게 분노하는 마음을 잘 다스려 예수님을 닮은 믿는 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기를(잠 19:1~14절)...
1절 :
사람들은 온갖 거짓말과 아첨하는 말을 동원해서라도 재물을 모으고 싶어 하지만 그럴수록 영혼의 가난을 재촉할 뿐입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다'(시 37:16)는 말씀은, 지금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진리입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재산증식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신앙의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천천히 걸어갑시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평가가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출처 : 매일성경
그렇습니다.
미련하게 보이고 시대 감각에 뒤떨어져 보여도 성실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물질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용할 양식에 족한 줄로 알고 살려고 힘씁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데,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하시는데 모른 척 하실까요?
주님 믿는 배짱으로 오늘도 있는 것에 족한 줄로 알고 살겠습니다.
지식 없는 소원, 즉 하나님이 없는 소원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모두가 허상입니다.
허상을 따라가지 않기 원합니다.
미련함도 하나님이 없는 삶입니다.
일을 결정하고 추진할 때는 하나님 없이 다 하다가 잘 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미련함을 갖지 않길 소원합니다.
주어진 오늘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길 원합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부분은 돈(재물)에 의해 움직이는 듯 합니다.
차도 큰 거 타고 다니는 것과 작은 차를 타는 것에서부터 차별이 됩니다.
어느 해인가 한국에 가서 비자 문제로 대사관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방에 있다가 여러 볼 일을 한꺼번에 보려고 친지가 빌려준 티코를 타고 상경했습니다.
대사관 쪽으로 차를 돌리는데 주차가 아주 복잡했습니다.
자리를 찾아 주차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랜저가 한 대 또 들어왔지요.
그곳에서 안내를 하던 직원이 우리가 탄 차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그 차가 들어오자 얼른 뛰어가 주차를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왜 그런가 했습니다.
동행한 자가 말하기를 차 크기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고요.
참 씁쓸한 기분이었지요.
그러나 더 큰 부자이신 하나님이 계시니 기 죽지 않지요.
가난한 형제는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는다니 참 안타깝습니다.
게으르고 악해 일하기 싫어하여 가난한 자 되는 것을 피해야 하겠습니다.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미련한 자는 돈이 있어도 적절한 곳에 사용할 지혜가 없는 자라고 봐야겠지요.
죄의 길로 가는데 사용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종이 방백 위에 올라 다스리는 것이라 했네요.
자기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임을 생각해 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슬기라네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은 자기의 영광이라고 하고요.
다른 사람을 감싸고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노하기를 더디할 것입니다.
분노를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쉽게 분내지 않도록 감정조절을 할 해야 하겠습니다.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아내가 슬기로운 여자이겠지요.
다투는 아내하고 사는 것은 지붕이 새서 집안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같다고 합니다.
아내된 자로서 남편에게 시비만 걸고 트집만 잡고 자기의 주장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 늘 살펴야 하겠습니다.
아내의 본분은 돕는 것입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같이 붙들어 주는 존재입니다.
나 때문에 가정이 불안하고 남편이 맘을 못 잡는다면 그 가정은 불행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의 따뜻한 말, 세워주는 말, 인정하는 말이 남편의 마음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 사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어야겠습니다.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것이라니요!!!!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요.
그것을 반드시 갚겠다 하시네요.
하나님은 분명 그대로 갚아주시는 것이 아니라 몇 배로 갚아주시겠지요.
가난한 사람을 향하여 불쌍한 맘을 갖는 것은 선행이 아니네요.
도움을 줘야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5-17)
이 말씀을 대하면 얼마나 부끄러운지요.
말로만 하는 사랑!
용서함을 구합니다.
그리고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뻗길 원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보잘것없고 늘 넘어지는 이 연약한 인생을 긍휼히 여기사
다시 손잡아 일으켜 놀라운 하나님의 잔치로 초대하시고
그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여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귀한 영혼 영혼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사랑과 그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전하는
거룩한 통로로 살아가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땀 흘려 복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기쁨이 회복되고 그 발걸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누리는 자유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하고
순종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11월17일 인천대공원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