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4. 11. 18. 월요일.
늦가을 날씨가 무척이나 서늘해졌다.
어깨를 움추리고는 가죽장갑을 양손에 끼고서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 나가서 한바퀴(2,562m)를 천천히 걸으면서 돌았다.
호수 주변 산책로 곁에 서 있는 단풍나무, 왕벚나무, 은행나무 등의 가지에 매달렸던 잎들이 산책로 위에 우수수 많이도 떨어져서 가을바람에 날리곤 했다. 나뭇잎 색깔이 붉고, 누렇고, 노랗고....
집으로 돌아온 뒤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니 아래 사진들이 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17일 담화를 발표하여
지난 11월 16일 북한 국경부근과 종심지역에 각종 정치선동 삐라와 물건들이 떨어졌다며
이를 강력 규탄하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38휴전선 남한지역에서 풍선을 띄워서 북한지역으로 날려보냈다는 뜻인가?
사진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초코렛 등 과자가 들어 있다.
이런 선물 꾸러미를 북한 당국은 싫어하나 보다.
그런데도 이런 선물 꾸러미를 꾸준히 날려보낸 남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금년 들어와 수십 차례나 반복한다는데도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대한 제제조치를 전혀 하지 않는가 보다.
권장할 일이라서 그럴까?
남북간의 긴장을 조성해야만 정치적으로 이용가치가 높다는 뜻인가?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은 과자 등이 든 남한측 고무풍선을 규탄할까?
북한 권력자 순위 2위인 김여정의 얼굴에는 독기를 품었다.
그 표정이 무섭다.
북한이 거부하는데도 이런 잡스러운 선물꾸러미를 북한으로 지속적으로 날려보내는 단체는 어느 기관일까?
올해에도 남한에서 수십 차례 꾸준히 북한으로 고무풍선을 날려보낸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혹시 탈북자 박상학, 박정오 형제가 아닐까 싶다라는 생각조차 든다.
박상학은 서울 송파구에서 산다는 소문이 있다. 진위여부는 알 수 없다.
탈북자 단체들은 돈이 얼마나 많기에 이런 선물을 북한지역으로 꾸준히 날려보내는가?
대한민국 안보기관은 이런 전쟁도발 현상을 모르는 체해야 하는 무슨 이유라도 있는가?
탈북자 단체를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1.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
* 1998년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주로 하는 일은 북한 독재정권에 대한 내용을 담은 내용을 북한에 뿌리는 평화적 방법으로 북한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행 동을 한다고 한다.
- 박상학은 최근까지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음.
2. 큰샘 박정오 대표
* 박상학은 친형, 박정오는 친동생
3. 겨레얼통일연대 장세율 대표(전국탈북민연합회 상임대표)
4.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이민복 대표
5. 북한전략센터 강철환 대표
6.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였던 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
2.
나는 정년퇴직한 지가 만16년도 더 지났다.
연금통장은 아내가 가졌기에 나는 연금통장에는 손을 대지 못한다.
내가 지닌 일반통장에서 용돈을 조금씩 빼서 쓴다.
퇴직한 뒤 동전 한 닢조차도 벌지 못하는 나이기에 내 주머니는 늘 가볍고 허전하다.
그런데도 오늘 오후에는 충남 보령한전 검침원(2) (01X- 3684- 2946)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기회사 직원이 담장을 올라타서 울안에 들어선 뒤 전기장치를 조작했나 보다.
시골집 전기시설을 누군가가 교체했고, 전력 소비량이 450을 넘었다며 비용 액수가 상당하다고 한다.
9만여 원 운운한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부담해야 할 터. 왜 이렇게 많아?
내 시골집은 늘 비워져 있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10년째.
어머니 장사를 지낸 뒤 나는 그참 서울로 되올라왔으며, 이제는 시골집이 빈 집이라도 전기시설은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이따금씩 내가 시골에 내려가서 시골집을 둘러봐야 하기에 전기시설은 꼭 필요로 한다.
TV도 마찬가지이다. 빈 집이라서 전혀 시청을 하지 않으면서도 다달이 TV시청료는 낸다.
어쩌다가 시골집에 내려갈 때마다 잠깐이라도 TV를 켜서 뉴스 등을 봐야 하기에.
퇴직한 뒤로는 땡전 한푼어치도 벌지 못하는 나.
그래도 시골집에 대한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용도로써 비용을 내야 한다.
별 수 없다. 내 용돈을 더 아껴서 쓸 수 밖에.
서울 송파구에 살면서 내가 궁상을 떠는 꼬라지를 조금은 밝힌다
쓰레기장에 내다버린 화분, 화초를 골라 주워서 내 아파트 안으로 들여놓은 것이 무려 150개.
버려진 화분 속의 식물이 안타까워서 이따금씩 주워서 가져온다는 뜻이다.
* 시골태생인 내가 가져오지 않으면 그 식물들은 결국에는 쓰레기로 폐처리되어 죽을 터.
아내는 '집안이 지저분하고, 복잡하고, 더러워요. 그만 주워 오지 마세요'라고 나한테 숱하게 꾸중하고, 지청구를 퍼붓고, 핀찬을 주어도 나는 여전히 그 짓거리를 반복한다.
'다 쓴 물건이라도 한번 더 쓰자.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자'라는 신념을 지닌 나.
가난했던 시절(1950년 ~60년대)를 겪었던 나한테는 물건저장 강박증이 아직도 심하게 서려 있다고 고백한다.
내가 시골집에 가려면 내년 봄철에나 가능하다.
나날이 추워지는 요즘 시골집에 다녀올 구실과 핑게거리는 하나도 없다.
올해에는 종가의 시사 시향을 지내지 않았다.
내 고향 사람은 쌀 2가마니(쌀 8자루)를 서울로, 나한테로 택배 보냈다.
나는 추운 겨울철을 보내고, 해동되는 내년 4월 쯤에서야 시골에 내려가서 고향집을 둘러봐야겠다.
시골집의 전기료, TV 시청료 등에 관한 비용이 그래도 아까워서 오늘은 이렇게 길게 잔소리를 늘린다.
* 텅 빈 집이라도 전기는 늘 돌아가야 한다. 한 대뿐인 냉장고를 돌려야 하며, 내가 이따금씩 시골로 내려가서 낡은 함석집을 둘러봐야 하기에 전기는 꼭 필수적이다.
3.
내가 사는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실내.
제법 굵고, 키가 컸던 알로에 사포나라의 큰 줄기대 세 개가 썩어서 말라비틀어졌다.
* 아직도 알로에 화분 10개 쯤 더 있다.
꺾여진 줄기대를 며칠 간 방치했다가 오늘은 칼로 잎사귀를 자르고, 수도물에 씻은 뒤에 잘게 토막을 내서 중간 크기의 냄비 안에 넣고는 물 부운 뒤에 가스렌지 불로 뜨겁게 삶았다.
삶은 줄기에서 붉으스레한 즙이 나왔다. 맛이 약간은 쓰기에 숭늉에 조금씩 물 타서 마시기 시작한다.
나머지 알로에도 추가로 삶아서 알로에-물을 마셔야겠다.
'안 먹는 것보다는 먹는 게 더 낫다'라는 신념이다. 이런 것도 물건저장 강박증의 현상이다.
알로에 사포나리아
알로에 사포나리아 줄기를 썰어서 ....
사진은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용서해 주실 게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인다.
잠시라도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