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대하는 자세
해마다 사람들은 “전에 없던 더위다”라고 하는데
지금 상황으로 볼 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본래 보통 사람들 마음이야 지난 일을 잊곤 하니
공평한 하늘이 어찌 올해만 심하게 했겠나
온몸에 종일토록 땀 국물이 흐르니
부채질만한 것 없어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여름 들녘 인부들이야말로 고생일 터이니
초가집 좁더라도 근심겨워 말아야지
年年人道熱無前 년년인도열무전
卽事斟量也似然 즉사짐량야사연
自是凡情忘過去 자시범정망과거
天心均一豈容偏 천심균일기용편
渾身竟日汗漿流 혼신경일한장류
揮扇功高不暫休 휘선공고부잠휴
想到夏畦人正病 상도하휴인정병
茅廬雖窄亦寬愁 모려수착역관수
-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전집(星湖全集)』 2권 「고통스러운 더위 2수[苦熱二首]」
해설
옛사람들은 더위의 고통을 주제로 한시를 짓곤 하였다.
당나라의 시인 왕곡(王轂)의 「고열행(苦熱行)」 에서 ‘온 천하가 벌건 화로 속에 있는 것 같네(萬國如在紅爐中)’와 같은 구절은
지금 읽어도 더위를 잘 표현한 듯하다.
이후 이 작품을 본떠 ‘고열(苦熱)’을 제목으로 삼은 시가 많이 지어졌는데 주로 혹독한 더위에 대한 묘사와
더위를 물리쳐 줄 시원하고 상쾌한 상황이 도래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시를 통해 상상으로나마 더위를 잊고자 하는 고육지책이었으리라.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며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현실 개혁과 실용적 사상을 지향한 선생의 학문 세계는 우리 사상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선생 역시 ‘고열苦熱’을 제목으로 삼아 시를 지었는데, 더위를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
선생에게 더위란 매년 지나가고 다시 찾아오는 천도의 순환으로,
더위라는 현상에 매몰되어 천도의 순환이라는 본질을 잊는 보통 사람의 망각을 경계하였다.
또한 더위에 허덕이는 자신의 처지를 미루어 생계를 위해 무더위에 밭일을 하는 사람들을 걱정하는
‘추기급인(推己及人)’의 자세를 추구하였다.
이에 반해 나는 어떤가.
무더운 날씨에 습도까지 높아 끈적이는 요즘 한시라도 에어컨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더위에 허덕여 남 걱정을 할 여유가 없다.
늘 겪어왔던 더위임에도 올해 같은 더위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선생이 말한 보통 사람임이 틀림없다.
무더위 속에서도 학문적 성찰과 남다른 인품을 발하는 선생 앞에 부끄럽기 그지없다.
평균기온이 해마다 올라 이제는 전에 없던 더위라고 할 만하다.
하늘이 올해만 유독 덥게 만들었다고 해도 꼭 틀린 말도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생의 가르침이 무용한 것은 아니다.
혹한이라 해서 선생의 태도가 달라졌을까.
더위든 추위든 아니면 그 어떤 상황이든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세와
자신보다 어려운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글쓴이 / 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