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쓰매와 쓰매끼리..
어제는 집안 어른께서 별세하셔서 충남 온양에 있는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고인은 저의 아버님의 사촌 누님으로 제게는 당고모가 되시는데 올해 98세 셨습니다.
4~5년 전쯤 제가 간쓰매와 쓰매끼리라는 글로 소개를 드렸었고, 비록 시골에서 사시면서
농사일을 하셨지만, 가수 태진아 님의 사모곡에 나오는 학처럼 선녀처럼 사셨던 어른이십니다.
제가 초등학교 5~6학 쯤에 있었던 일 이었는데, 그때는 고모님 댁에서 과수원을 하셨습니다.
복숭아 과수원으로 기억하는데, 학교를 파하고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모님 댁의
과수원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복숭아 수확을 끝내고 새들의 먹이로 나무에 몇 개씩 남겨 두었던
복숭아를 보고는, 누구라 할것도 없이 모두들 과수원 담장을 넘어갔는데, 나무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친구들이 부추겨서 결국은 제가 나무에 올라갔고, 높은 가지 위에 매달린 복숭아를 손에 잡는 순간
나무 가지가 부러지면서 제가 거꾸로 떨어지면서, 조금 다치기도 했지만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저녁에 자리에 누워 있는데 손님이 오신듯 밖이 요란하더니, 당고모님께서 제가 있는 방으로 들어오셨는데
저는 차마 고모님의 얼굴을 뵐 수가 없을 만큼, 죄송하고 부끄럽고 그랬는데 아무런 말씀을 드릴수가 없었습니다.
고모님께서 제 손을 꼭 잡으시면서, "에고, 이 사람아! 복숭아가 먹고 싶으면 집으로 와서 달라고 하지" 그러시는데
눈물이 핑 돌면서 정말 죄송했지만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뒤 고모님께서 가시면서 "앞으로는 과일을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과수원으로 와서 달라고 해라" 하셨는데, 모기 소리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로 "네" 했습니다.
고모님이 가시고 잠시 뒤에 부엌일을 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접시에 무얼 담아서 들고 오시면서 "이거 먹어라" 하시기에
일어나 보니 복숭아였습니다. 고모님이 오시면서 복숭아를 한 광주리 들고 오셨다면서 내게 먹이라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중, 고등학교를 외지에서 다니기도 했고, 우리가 살던 시골집도 정리를 하시고 서울로 올라왔던 관계로
어쩌다가 명절 때나 성묘차 시골에 가면, 아버님을 모시고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다니는 정도였고, 어른들끼리 담소를
나누었고, 나는 그 댁 형님과 차 한잔 나누고 오는 정도였으니, 당 고모님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했던 기억은 없습니다.
그러다가 4~5년 전 겨울에, 바람이나 쏘인다고 시골 선산에 갔다가, 당고모님 댁 며느님이신 형수님을 길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다가, 당고모님께 인사를 드리려 십수 년 만에 찾아뵙고, 고모님께 인사를 드리니 아주 반가워해 주십니다.
그 댁 형님과 거실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있는데, 고모님께서 밖에 나갔다 오시면서 "아가! 쓰매끼리 좀 찾아와라" 하시는데
순간, 쓰매끼리가 아주 익숙한 단어인데 잡자기 그게 뭔지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뭘까 하고 있는데, 그 댁 젊은
손주 며느님이 "할머니! 손톱 깎으시게요?" 하는 걸 듣고 그게 손톱깎이라는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전에는 그리 불렀습니다.
손톱깎기에 함께 붙어있는 통조림을 따는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 손톱깎기를 찾으신듯 한데 그게 그리 정겹게 들렸습니다.
그러자 고모님께서 "아니다! 가게에 가서 간쓰매를 사 왔는데, 저 사람이 이거 좋아한다" 하시면서 이거 따서 드시게 해라
하시면서 손주 며느님 손에 통조림 2개를 건네시는데, 그게 복숭아 통조림이었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울컥하면서 눈물이
흐르는데, 그만 참을 수가 없어서 고모님을 끌어안고 한참을 펑펑 울었습니다. 나는 고모님께 과수원에 몰래 들어갔고, 과일
나무를 부러트린 것에 한 번도 사과를 드리지 못했는데, 고모님께서는 60년 가까운 그때의 일을 기억하시고, 제게 복숭아를
먹게 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제야 고모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 그대로 60년 만의 사과였습니다.
그러자 고모님게서는 " 아니다! 그때는 과일이나 먹을게 귀할 때니 얼마나 먹고 싶었겠느냐" 하시면서 제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그때는 앞으로 고모님을 자주 찾아뵈어야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그 이후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하고 그만 조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정에 절을 드리면서 그때의 일이 생각나서 고모님께 죄송하기도 했지만, 아쉽고 안타까움에 또다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그것이 그 모든것을 사랑으로 감싸고 베풀어 주신 고모님께, 제가 드릴수 있었던 진정한 의미의 사과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긴 글 읽어 주신 소중한 님들께 수고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이 글과 마음을 사과 이벤트에 가름할까 합니다..
산애 올림..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맞아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복숭아 통조림을 좋아합니다.
오늘 발인을 했는데, 편안히 잘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찮다면 하찮은 일을 60년 동안이나 잊지않고 계셨던 고모님..
사과 드릴 이야기라지만
정작 고모님은 그 당시
조카가 다친 것은
당신 탓이라 여기시며
가슴이 얼마나 아프셨길래 잊지 못하고 계셨을까...
사과 하셨다는 조카를 보시고
고모님은 저 하늘에서 빙긋이 미소를 짓고 계실 겁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추천!
네, 그러셨을겁니다.
그러니 제가 가자마자 가게에 가셔서
통조림 사오실 생각을 하신게 아니었을까 합니다.
간쓰매 뚜껑 따기 위해
통조림 따는 기능이 부가적으로 붙어있는
쓰매끼리를 찾으신것 같은데
그것을 아직도 따로 생각하셨으니
한번 더 사과하세요~~ㅎㅎ
지금은 손톱 깎기도 제각기 기능성을 강조해서
다양한 제품이 나옵니다만, 예전 이었거나 시골집등에서 쓰는
손톱깎기에는 병따개와 통조림 따개가 함께 나와서 사용하고는 했습니다.
그래서 통조림을 사 오시면서 손톱깎기 생각을 하셨던 듯 합니다..
산애님이
우리 옆 동네가 고향이군요
이제 첨 알았습니다
마을 사람들하고
점심 먹으러 온양에
가기도 합니다
고향에 내려오시면
합덕에 오세요
맛있는 거 사드리께요
합덕시장 골목은
제 영역이니까
산애님은 아산.인주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셨구요
홑샘님은 당진.합덕에서 살고 계시지요 ..ㅎ
어쩌다 보니 제가 자유게시판 방장을 세번 했습니다.
세번째 방장을 2019년도에 했는데, 3년전 이맘때쯤 카페 회원 2명을 모시고
홑샘님 성모동산을 방문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읍내에 나가 식사도 하고
홑샘님 댁에서 고스톱을 하기도 하고 늦은 시간까지 놀다가 온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아산 인주이고 공세리 성당에서 영세를 받고 복사를 했었다고 말씀 드렸는데
워낙 많은 회원들께서 놀러 가시니까 제가 했던 이야기를 깜빡 잊으신 모양입니다.
아래 믹스님이 말씀 하신대로 제가 태어난곳은 서울이지만 어른들 고향인 아산에서 유년을 보냈습니다.
기회가 되는 대로 한번 뵙도록 하겠습니다..
@믹스
믹스님은 마치 우리 카페 백과사전 같으세요.
언제 어느곳에서나 있었던 일들을 마치 자판기에서 요청한 상품이 나오듯
척척척 하고 나옵니다. 그 놀라운 기억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얼마전 범띠방 혜지영님 글에 예당 저수지에서 저와 저의 아내 이야기가 나오는걸 보고
믹스님의 열렬한 팬이 되기로 결심(?) 했습니다. 저를 어여삐 여겨 주세요..
@산애 ㅎㅎ 죄송합니다 산애선배님
제가 워낙 선배님을 좋아 했거든요
이해를 해 주십사 청을 할께요
요즘은 충주에서 아주 정착하신건가요 ^^*
@믹스
저도 믹스님 좋아 합니다.
다른 회원들이 우리 둘이 사귄다고 해도 좋습니다.
충주에서 정착은 아니고 화순으로 가야 하는데 아직도
재판이 끝나지 않아서 하루 하루 대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더 늦기 전에 공장을 가동이라도 해 놓고 쉬어야 할 텐데 이러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후회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나도 그런 후회되는일이
있어 사과하려해도 이세상 사람이 아니여서 생각날때 마다
저 사람에게는 지금 베풀어야지
하면서 나중에 후회 하지 않으려고 실천 한다고 하면 웃을까요 ㅡㅡㅡㅡ
후회 없는 삶은 아마도 없을겁니다
아마 누구나 그럴겁니다.
마음 같아서는 후회없는 인생을 살고 싶지만
시간이 흘러서 되돌아 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소중한 추억 잘 간직하시고
복숭아 철 마다 또 꺼내시어
인생 역을 잘 지나가셨음 합니다^^
네,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이제는 고모님과의 추억이 더는 만들어 지지 않겠지만
복숭아를 먹거나 복숭아 통조림을 보면 고모님 생각이 날것 같습니다..
아 고향이 정이 있네요
네, 누구에게나 그러겠지만
제 유년의 기억에는 참 아름다운 일이 많았습니다.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절 이라고 생각합니다..
ㅎㅎ간쓰매군과 쓰메끼리양
시방도 비누를 사분이라 부르고 쓰메끼리 찾는 노인들 많지요
비누를 사분이라고도 했군요.
나는 치약 대용으로 쓰던 치분은 기억을 하는데
사분은 운선님으로 부터 처음 듣습니다. 제가 너무 어려서 그런듯 합니다.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