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미디어] '잃어버린 10년(1990년대 장기 불황)' 때보다 더 춥다
글로벌 금융위기, 그 후 1년 세계 10개국‘생존의 현장’ 리포트8
불황에 엔고… 이중고 겪는 일본
일자리 잃고 노숙자 되기도… 구조조정 칼바람에 최악 실업률
불안한 기업들 고용 기피
美·유럽 수출기지 고베항 컨테이너 취급량 20% 줄어
"가족을 1년에 2번밖에 못 만났어요. 비행기 값이 6만엔이 넘는데, 20만엔 정도 월급으론 어림없잖아요?"일본에 체류하는 외국인 근로자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인 근로자 사토 요시노리(佐藤良則·50)씨의 지난 6년간 생활이다. 고향은 홋카이도(北海道). 아내와 어린 자녀 2명을 남기고 2003년 홀로 가나가와의 어느 자동차 대기업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기숙사 임대료·관리비·광열비 등을 내고 나면 14만엔 정도 손에 남았다. 가족을 생각하면서 남은 돈을 고향에 보냈다. 그의 아내는 헬퍼(helper·가사 일을 돕는 직업) 2급 자격증을 얻어서 따로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회사는 작년 12월 26일 그를 해고했다. 정식 고용자가 아니었으니 정확한 용어로 '계약 해지'다. "기숙사에서도 나가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같은 회사에서 함께 '잘려나간' 비정규직은 1400여명. "곧이어 정사원들도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고 사토씨는 말했다.
지난달 3일 오후 사토씨는 가나가와(神奈川)현 야마토(大和)시 원룸 주택을 찾아간 조선일보와 금융연구원의 크로스미디어(신문·방송·인터넷 등이 같은 내용을 함께 보도하는 첨단 융합 미디어 방식) 취재진에게 이렇게 실업의 고통을 토로했다.
- ▲ 지난달 초 도쿄 스미다(隅田)구 골목길에 늘어선 노숙자 텐트.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에선 일자리와 집을 잃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대거 노숙자로 전락했다./도쿄=민봉기 기자 bongs85@chosun.com
'1억 총중류(總中流)'란 수식어를 자랑하던 중산층의 나라, 일본. 작년 글로벌 경제위기 직후 가장 가혹한 해고 사태가 시작됐다. 도요타 6000명, 닛산 2만명, 소니 1만6000명, 파나소닉 1만5000명. 2000년대 중반 일본 경제성장을 주도하던 수출 산업이 불황과 엔고(엔화가치 상승)의 이중고(二重苦) 속에서 해고 사태를 주도했다.
지난 연말연시 해고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하켄무라(派遣村)'를 도쿄 도심에 만들어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 쟁점화시킨 사회운동가 유아사 마코토씨. 같은 날 취재진을 만난 그는 "기업과 근로자가 공존하는 '일본적 경영'이란 이제 환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4월 이후 성장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공장에서 쫓겨난 해고자들은 공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래를 불투명하게 본 수출 기업들이 고용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일본의 실업률은 5.7%로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잃어버린 10년(일본에서 1990년대 장기 불황을 부르는 말)'의 마지막 시점이던 2002년 실업률 기록(5.5%)을 넘어섰다.
◆한산한 고베항
8월 6일 효고(兵庫)현 고베(神戶)항. 일본 제조업 밀집지역인 간사이(關西) 공업지대의 수출 관문이다. 막 출항하기 시작한 홍콩 국적 화물선 'OOCC FORTUNE'호의 갑판 상당 부분이 비어 있었다. 컨테이너가 빼곡히 들어찼어야 할 자리다. 고베시 항만총국 마쓰모토 고시로 계장이 설명했다.
"부두에 4단으로 쌓여 있던 컨테이너가 2∼3단으로 줄었어요. 컨테이너 취급량은 지금도 전년 같은 시기보다 20% 이상 감소한 상태입니다. 미국과 유럽으로 가는 수출 물량이 주로 몰리는 고베항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컸지요." 중국 쪽 수출 물량을 주로 처리하는 인근 오사카(大阪)항이 컨테이너 취급량에서 이미 전년 수준을 회복한 것과 대조적이다.
고베항은 수출 주도, 특히 미국에 의존해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일본 경제의 현실을 반영한다. 효고현 항운협회 가토 히데오 전무이사는 "수출선 다변화, 항만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술력으로 탈출구 모색
일본은 또다시 '기술력'으로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의 도쿄 오다이바 전시 공간인 '도요타 메가웹'. 1개 층 전체가 지난 5월 발매된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3세대)'로 채워져 있었다. 쓰카고시 도미오 '암럭스 도요타' 기획실장은 "도요타가 하이브리드 시대를 주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문제는 복잡한 기술을 요구하는 '하이브리드 시대'가 장기간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실용화 단계에 접어든 단순 구조의 전기자동차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와소켄(大和總硏)의 샤오민제(肖敏捷)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고부가가치가 높은 복잡한 기술력만으로 성장을 이끌 수 없다"며 "일본은 오히려 불필요한 기술력을 줄여 코스트를 낮춤으로써 아시아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