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3 (목) 13일째
코스 Firenze → Roma
주행거리 463km
숙소 제일 민박 (7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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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도심 운전환경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과 세면장을 사용해야 하는데 공동사용이라 역시나 눈치가 보이고 매우 조심스러워 아내와 함께 들어가 겨우 사용했다. 아침식사는 정성스럽게 잘 준비돼 있었다.
어제 저녁 아주머니의 조언대로 먼저 미켈란젤로 언덕을 찾아가는데, 출근 시간과 겹쳐 거리에 온통 오토바이 천지고 무척이나 혼잡하다. 말쑥한 신사복과 정장차림의 남녀 직장인들이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타고 떼지어 다니듯 출근하는 모습도 낯설고 흥미로웠지만, 흥미를 느낄 틈도 없이 그들의 난폭 운전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빽미러에 잡히지 않은 사각지대에서 어느 순간 불쑥 불쑥 나타나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다.
오토바이 뿐만 아니라 자동차 역시 조그만 틈만 있어도 비집고 끼어들며 앞차와 조금만 거리를 둬도 크락션을 울려대고, 보행자 신호인 파란 신호등 조차도 아예 무시하는 등 난폭운전을 일삼았다. 이탈리아 운전환경이 워낙 악명높다는 얘기는 들어왔지만, 서울에서 충분히 단련이 돼 있다고 생각하여 은근히 자신감과 함께 체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나, 실제 상황을 접해보고 나니 도저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이탈리아 피렌체와 로마 도심에서의 운전은 거의 죽음입니다. 절대 피하시는 게 상책입니다.)
피렌체와 로마 민박에 묵는 동안 밤낮으로 경찰차의 사이렌이 울려댔으며 지금도 귓전에 그 소리가 쟁쟁하다. 그만큼 사건 사고가 많다는 걸 의미하며 그들의 난폭한 운전행태와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화장실 여건
민박집에서 아침에 화장실 손님이 많아 진영이는 소변을 꾹 참아오다 집에서 나오자 마자 화장실을 찾아 30분 이상을 헤매야 했는데, 피티궁전에 있는 화장실을 겨우 찾아 해결했다. 화장실을 찾기 위해 중간에 경찰서등 몇군데서 물어 보았으나 화장실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등 이탈리아에서는 시내 도보관광 시 관광객을 위한 별도의 공중 화장실을 찾기가 힘들었다. 현지인이나 가게 등에서 수차례 물어 봤는데 하나같이 레스토랑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엔 식사나 음료수 구입 목적이 아닌 화장실 이용만을 목적으로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게 미안하고 망설여 졌으나, 거리낌없이 이용하는 외국인 관광객 들을 보고 우리도 나중엔 레스토랑 측에 사전양해를 구하거나 미안해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용하였다. 이 나라에선 아마 이런 방식으로, 따로 공중화장실을 운영하지 않고 레스토랑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는 모양이다.
미켈란젤로 광장
피티궁전은 시간이 있으면 보기로 하고, 바로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향했다. 이곳에 오르니 피렌체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고, 모조품 다비드 상이 서있다. 기념엽서를 몇장 산 후 우피치 미술관과 베끼오 다리, 시뇨리아 광장 등을 한꺼번에 둘러 볼 생각으로 우피치 미술관 근처의 주차장을 찾아 나섰다.
아르노 강을 오른쪽에 두고 베끼오 다리를 지나 우피치 미술관에 이르니 늘어선 줄이 장난이 아니다. 조금더 진행하니 우피치 미술관 바로 옆 주차장이 보이는데 만차라 그 다음 블록의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차량견인
우리 외에도 주차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방금전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무료 주차를 한적이 있기에 별 의심없이 주차를 하였다. 그런데 미술관 바로 옆의 다음 블록 주차장에서는 빨간색 소형차가 견인되고 있었고 현장에 경찰들이 서 있어 찜찜했지만, 방금전 우피치 미술관 앞에 엄청나게 늘어선 줄을 보고 마음이 급해 발길을 재촉했다.
줄이 길어 몇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화장실도 다녀올겸하여 아내는 줄서있고 진영이와 함께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만났다는 베끼오 다리를 잠시 구경한 후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이 눈에 띄지 않아 어느 가게 점원에게 화장실을 물으니 시뇨리아 광장에 있다고 가르쳐 준다. 그러나 시뇨리아 광장에 도달하여 아무리 찾아봐도 화장실이 눈에 띄지 않는다. 광장 한켠에 있는 큰 레스토랑의 점원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으니 한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네 레스토랑 화장실을 이용하라며 안쪽을 가리킨다.
고마운 마음으로 사용한 후 아무래도 차가 걱정돼 진영이는 엄마에게 보내고 난 바로 주차장으로 가보니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계속 차들이 견인되고 있었고, 우리 차가 주차된 곳으로 급히 가보니 아뿔사 차가 보이지 않는다. 주차할 때 눈여겨 봐놨던 옆의 다른 차들을 보니 다른 차들은 그대로 있고 우리 차 자리에 빨간색 다른 소형차가 주차돼 있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주차장 표시의 큼직한‘P' 밑에 조그맣게 몇 글자가 씌어있긴 한데 이탈리어로 돼있어 읽을 수가 없다. 3분 거리의 옆 주차장에 가서 견인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경찰한테 물었다. 옆 주차장에 주차된 내차가 보이지 않는데, 혹시 견인된 것이냐? 대수롭지 않은 듯 가볍게 그렇다고 한다. 왜?라고 물으니 그곳은 그 주변 사무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주차장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말문이 막혔다. 다시 외국인 관광객에게 주차금지를 알리는 별다른 사인이 없지 않느냐?라고 따져 물었더니, 자주 접하는 항의에 답변이 귀찮다는 듯 눈길을 피한 채 심드렁하게 같은 얘기만 반복한다. 어쩔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차를 찾으려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물으니 현재 견인 작업하고 있는 트럭을 가리키며 그 견인 트럭을 타고가면 된다고 한다. 난 지금 관광중이고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을 남겨두고 혼자 갈 수가 없다고 하자 그럼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하며 그곳 주소를 적어준다. 설마했던 일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건만, 내게 발생한 이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아직도 미술관 앞에 줄서있는 아내와 진영이에게 가 차가 견인됐으니 그냥 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주차장 주변에 견인차 들이 줄줄이 대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나쁜 넘들.... 이런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견인차 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을텐데, 그렇다면 주차장 안내판에 영어로 된 주의문구를 표시해 놓던지 아니면 사전에 그 자리에서 안내좀 하고 있을 것이지 일부러 모른 채 하고있다가 관광객이 주차를 하고 사라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견인하고 있는 꼴이라니... 외국인 관광객을 완조니 밥으로 여기는 처사임에 틀림없다.
아까와 같이 견인하여 출발하는 트럭이 있으면 그걸 타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견인 대기중인 차만 있지 하필 필요한 이 순간엔 견인 중인 차도 없다. 기초수준의 영어를 몇마디 알아듣는 견인차 운전사에게 주소와 지도를 내밀며 그곳까지 가는 버스를 물었더니 지도상에 나와있지 않은 시 외곽 쪽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한다.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택시(10유로)를 타고 98유로(약 15만원)를 지불하고 차를 찾았다.
다시 안전한 주차장을 찾아 주차를 하고 못다한 관광을 하려고 하니 난감하다. 아니 그보다 관광할 기분이 전혀 아니다. 아내와 진영이 역시 같은 생각이다. 진영이에게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이곳에서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라파엘로와 같은 천재화가 들이 탄생하고, 그들이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 해준 배경과 위대한 상인 메디치가에 대해 보여주고 싶었건만 예기치 못한 사건 때문에 포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로마를 향해
과감히 미련을 접고 바로 로마로 출발하였다.
고속도로에서 로마 톨 게이트를 빠져나와 바로 우측 출구로 나가야 하는데, 헷갈리게 하는 표지판의 지명을 보고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하여 그만 다른 길로 빠져 한참 링을 탔다. 로마의 링은 엄청 커서 우리나라의 외곽순환도로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든 것 같아 다시 빠져나와 휴게소에서 길을 물어 어렵사리 해피 캠핑장을 찾았다. 너무 늦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것도 잠시. 웬걸 리셉션에 방을 요청하니 방이 하나도 없단다. 오늘이 목요일이지만 내일부터 주말이 시작되어 이미 예약이 완료됐다는 것이다. 난감하였다. 하는 수 없이 주변의 방갈로가 있는 가장 가까운 캠핑장을 물어 그곳으로 다시 출발했는데, 역시 말만 듣고 찾는게 쉽지가 않았다.
한참을 헤메다 캠핑장 표시를 보고 찾아갔는데, 이번엔 텐트 이용만 가능한 곳이었다. 또다시 다른 곳을 어렵게 어렵게 찾아 갔는 데 이번엔 리조트 급의 무척 큰 캠핑장이었고, 다행히 모빌 캬라반이 있단다. 캠핑장이 커 리셉션에서 캬라반까지는 차를 한참 몰고 가야 할 거리였다. 얘기해 준 캬라반을 보니 가격(86유로)에 비해 시설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캠핑장을 어렵게 찾았건만... 아쉽지만 이곳을 떠나기로 의견을 모으고 다시 나왔다.
아무데나 눈에 보이는 현지 민박이라도 찾을 요량으로 차를 모는데 쉽지가 않았다. 기왕이면 시내 가까운 곳에 호텔을 잡을 생각으로 로마시내 이곳 저곳을 몇바퀴 도는데,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러다 또 늦을 것 같았다. 로마의 민박집 이용 여건과 평이 대체적으로 좋지 않아 망설여 졌지만 아무래도 민박에 다시묵어야 할 것 같다. 민박집의 푸짐한 식사 제공과 인터넷 이용, 여러 한국인 여행객 들과의 대화... 이런 점 때문에 진영이가 무척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로마의 민박집은 테르미니 역에 모여있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테르미니 역 근방으로 차를 몰았다.
로마 제일민박
민박집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리스트에 나와있는 민박집에 바로 전화하지 않고, 일단 어제 묵은 피렌체 외갓집 민박 아주머니에게 부탁을 드려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피렌체 외갓집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하여 시설좋은 가족실을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한군데를 소개해 준다. 전화를 하니 자기네 집은 가족실이 다 찼으니 다른 곳을 소개해 주겠다고 한다.
잠시후 아주머니 한분이 걸어 나왔다. 억양이 북쪽에 가까운데서 금방 조선족임을 알아볼 수 있었고, 수다스럽지 않고 소박해 보이며 사교적인 계산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 같아 편하게 느껴졌다. 차에 태우고 민박집에 가는 도중 주차여건 부터 물으니 집앞 도로 주차장이 있으니 걱정할 게 없다고 한다.
민박집에 도착하니 조선족 아주머니 2분이 운영하고 있었고, 이곳으로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인터넷 설치도 안돼 있었고,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다. 대체적인 평과는 다르게 시설도 깨끗하고 좋았다. 특히 우리는 가는 곳마다 가족실에 묵었기 때문에 불편한 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사온 계기가 얼마전 로마당국의 단속에 걸려 일년치 수입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비로소 아주머니가 집안에서 지나치리만큼 조심스러워하며 조용 조용히 얘기하는 게 이해가 됐다.
아주머니는 고향 연변을 떠나 이곳으로 온지 5년째이며, 남편은 고향에 홀로 남아있고 딸은 시칠리아 섬에서 어학연수 중에 있는데 추석, 설 명절때도 가족이 함께하지 못하는 생이별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같은 동포로서 마음이 무척 아팠고, 가족 해외여행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