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한수산.hwp
타인의 얼굴
-한수산
▣ 줄거리
‘나’는 박인희 교수에게서 은사인 최 교수가 췌장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듣고 병문안을 가면서, 엘리엇의 시를 읽던 학창 시절 강의를 떠올린 바 있다. 최 교수를 만난 ‘나’는 죽을 운명임을 알고도 유머와 따스함을 잃지 않은 모습에 은사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느날 이른 아침에 아내로부터 대학 때의 은사이신 최명하 교수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학창 시절에 들었던 최명하 교수의 강의를 떠올리며, 조문을 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선 ‘나’는 자신 속에 아무도 살아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낀다.
▣ 등장인물
* 나 : 대학 시절 ‘영혼의 빛나는 발견’을 하게 이끈 최명하 교수를 만나, 그가 자신에게 휴식이었고, 종교였으며 추악하지 않은 권력으로서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뒤의 하루하루는 모아 나가거나 쌓아 가는 것이 아닌 하나씩 써 나가는 나날로 생각한다. 그리고 스승의 시한부 삶을 통보받고 병문안을 가서 유머와 따스함을 잃지 않는 스승의 모습과, 격렬하고 단호했던 모습을 대비하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김한다.
* 최영하 교수 : ‘나’에게 따뜻하고 달구어진 돌처럼 언제나 가슴속에 포개져 있던 존재. 만화가, 건축가, 음악 애호가 등의 다면체적 속성을 지녔으며, 마치 써 가지고 온 원고를 읽듯 정연한 강의를 펼치던 영문학과 교수로, 대학 시절 ‘나’에게 힘이 된 인물이다. 자신이 췌장암에 걸렸음을 알고 난 뒤 죽음 앞 둔 한계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새기는 의연함을 보인다.
▣ 구성 - 역순행적 구성
* 발단 : 이른 아침 아내가 대학 때의 은사 최명하 교수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자, ‘나’는 최명하 교수의 학창 시절 강의를 떠올린다.
* 전개 : ‘나’는 박인희 교수에게서 은사인 최 교수가 췌장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전해 듣고 병문안을 가면서, 엘리엇의 시를 읽던 학창 시절의 강의를 떠올린다.
* 절정 : 최 교수를 만난 ‘나’는 죽을 운명임을 알고도 유머와 따스함을 잃지 않는 모습에 은사의 모습을 바라본다.
* 결말 : 조문을 가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선 ‘나’는 자신 속에 아무도 살아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낀다.
▣ 핵심정리
* 갈래 : 현대소설, 단편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과 1인칭 시점의 혼용
* 제재 : 타인의 죽음
* 주제 :
- 타인의 죽음의 관찰 속에 나타나는 의연함과 자기성찰
-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은사가 죽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깨달음
* 출전 : <현대문학상수상소설집>(현대문학 1991)
▣ 작자 연구
한수산[韓水山, 1946.11.13. ~ ] :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하남리 출생.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가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이사를 다녀 어린 시절 한곳에 오래 머물러 살지 못하였다. 춘천고등학교와 경희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6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고,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4월의 끝>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1973년에는 <한국일보>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해빙기의 아침>이 가작으로 입선하였다.
그 이후 <부초(浮草)> 등을 발표하면서 짙은 감성과 화려한 문체로 1970년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1981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던 중 소설 내용 가운데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가볍게 야유한 것이 문제가 되어 ‘한수산 필화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에 휘말렸다. 이 일로 박정만 시인 등 신문사 관계자들과 함께 기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큰 충격을 받아 1988년 일본으로 떠나 오랜 기간 일본에서 생활하였다. 1997년부터 세종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산문시와 같은 부드러운 문체를 구사하여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바탕으로 한 생명의 가치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주로 썼으며, 근래에는 역사소설에 관심을 쏟고 있다. 1977년 제1회 오늘의 작가상, 1984년 녹원문화상, 1991년 제36회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소설 <해빙기의 아침>(1973), <부초>(1977), <4월의 끝>(1978), <바다로 간 목마>(1978), <욕망의 거리>(1981), <밤에서 밤으로>(1984), <거리의 악사>(1986), <모래 위의 집>(1991), <벚꽃도 사쿠라도 봄이면 핀다>(1995), <말 탄 자는 지나가다>(1998) 등과 수필집 <젊은 나그네>(1978), <저녁에는 그대여 아침을 꿈꾸어라>(1986), <이 세상의 모든 아침>(1996), 산문집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2000) 등이 있다.
▣ 해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죽음은 누구나 피할 수 없이 맞는 필연적인 것이며 한 인생의 정상과정이다. 그러나 일찍이 월명사(月明師)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진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른다.”고 말했듯이,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또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죽음에 대해서 모르게 때문이다. 죽음은 생의 끝이기에 죽음 경험은 증언될 수가 없다.
그리스도를 믿는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인간을 위해서 죄와 죽음을 자기가 짊어졌으며, 죽음에서 인간을 구원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을 죽음과의 싸움에서 아주 떼어놓은 것은 아니다. 파스칼이 “사람들은 자기 면전에서 남들이 사형당하는 것을 보면서 그 차례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듯이, 인간은 모든 것의 파괴자인 죽음 앞에서 용감성을 갖고 견디어야 한다.
<타인의 얼굴>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히 고통을 견디는 ‘최명하’교수의 모습을 지켜본 작가 자신의 증언의 기록이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운명으로서 주어진 죽음과의 의연한 싸움, 어쩌면 죽음을 피하려 하기보다 스스로 택함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물리적인 육체의 고통을 감수하여 보다 큰 이상의 실현을 위하여 죽음을 의연히 맞았다. 우리는 이런 치열한 자기반성과 냉철한 책임 있는 삶으로 이끌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최명하 교수가 그처럼 겸손과 인내로 죽음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높은 학식을 통해 학생들에게 감동적인 강의를 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평소 자신의 삶을 성실히 이끌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뜻있는 삶을 산 사람은 결코 죽음을 허무함으로만 느끼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빚진 것을 다 갚지 못하고 생을 마치게 된 것을 제일 아쉬워하고 고통스러워한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은 자신의 현실을 ‘불안’해 하면 할수록 자신의 타락한 현실을 반성하고 지성과 양심에 귀 기울이며 참된 자기, 즉 실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을 되새겨 보게 한다.
▣ 내용 분석
* 최명하 교수는 강의 도중 “나는 이 세상을 둘로 나누라면 토머스 울프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싶다.”라고 말한다. 토머스 울프(1900~1938년)는 누구인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애슈빌 출생으로, 아버지는 묘비의 석재 조각사였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졸업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의 대학원에서 G. 베이커 교수의 지도로 희곡을 전공하였다. 극작가를 지망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뉴욕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여러 차례 유럽을 방문하는 사이에 J. 조이스, M. 프루스트의 영향을 받고 시정이 넘쳐흐르는 독특한 문체로 소설을 쓰기 시작, 1929년 <천사여 고향을 보라>로 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천사여 고향을 보라>는 울프의 출세작으로, 스크리브너스 출판사가 1929년 출판하였다. ‘파묻힌 생활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있으며 자서전적 색채가 짙다. 울프는 38세의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경탄할 만큼 많은 원고를 썼다. <천사여 고향을 보라>, <거미줄과 바위>, <때와 흐름에 관하여>,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가 그의 4대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 <타인의 얼굴>의 이야기 전개 방식
전지적 작가 시점과 1인칭 시점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1인칭 서술자인 ‘나’는 ‘그’가 되어 서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가, 다시 서술자가 되어 스승인 최 교수와의 지난날을 회상하기도 한다. 이따금 ‘나’ 자신을 돌아보는 또 다른 ‘나’를 등장시켜 마치 서로 다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 <타인의 얼굴>에서 ‘나’는 무엇에 대해 갈등하고 있는가?
<타인의 얼굴>에는 인물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이렇다 할 사건이 없다. 그러나 ‘나’는 최 교수의 죽음을 통해 자신도 언젠가는 그처럼 죽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타인의 얼굴>에서 ‘타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때로는 ‘남’이기도 하지만, 자기와 저만치 떨어져 머잖아 닥쳐올 죽음을 확인하는 또 다른 ‘나’, 즉 ‘그’이기도 하다.
* <타인의 얼굴>에서 주인공은 인간이란 고독한 ‘섬’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대인에게 ‘타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사람이란 누구나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얻고 싶어 하며, 그것을 주된 생활 지침으로 삼거나 주된 관심의 영역으로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현대의 인간들은 낮에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온갖 문제에 접촉하게 된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즈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개인의 행동과 사회 구조를 연결시켜 주는 중간 장치로 ‘사회적 성격’이 있다고 봤다. 이것은 예의범절처럼 사회가 그 구성원에게 암묵적으로 따라하도록 요구하는 양식(동조성의 양식)인 것이다. 리스먼은 이런 ‘사회적 성격’의 유형을 전통 지향형, 내적 지향형, 타인 지향형으로 구분하고, 전자에서 후자로 옮겨가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사실이며 논리적으로도 당연하다고 본다.
타인 지향형 사회인 현대 사회의 인간은 일정한 가치관을 갖지 않고 타인이나 세상의 흐름에 자기를 맞추어서 살아간다. 그 ‘타인’은 자기와 동년배의 사람들 중 하나일 수도 있고, 훨씬 윗사람일 수도 있고, 또는 매스 미디어가 매개하는 무명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타인 지향형 인간이 타인들의 동의와 지도를 필요로 하는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남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몹시 신경을 쓰게 마련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이 ‘섬’과 같이 고독한 존재라 하더라도,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 <타인의 얼굴>에서 ‘나’가 ‘타인의 얼굴’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것처럼, 인간은 ‘타인’의 존재와,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확인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 참고 - 작가의 현대문학상(1991) 수상소감
요즈음 들어,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다릴 줄 아는 지혜이며, 차선의 아름다움에 눈 뜨는 일이며, 이 땅 위의 어떤 시작에도 때늦은 것은 없다는 흐름을 아는 일이며, 역사란 결코 반복되지 않는다는 믿음의 시작이며, 아무리 그 파괴의 고통이 작다 하더라도 혁명은 인간성에 반하는 것이며, 개혁이란 하루하루의 자정(自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용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극명함에 더욱 눈이 밝아지는 일이며, 풀이나 나무 그 식물성의 아름다움에 눈뜨는 일이며, 그것은 볼셰비키가 아니더라도 볼셰비키를 이해할 수 있는 ‘용량’을 갖는 일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