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금요일 오후 늦게, 월요일부터 나와서 여성시대 진행을 할 수 있겠냐는 전
화를 받고는, 참 얼떨떨했습니다. 놀랍기도 했고요.
93년 말 귀국해서87년 봄까지 기독교 방송의 <양희은의 정보시대>를 맡았는데, 같은
시간대의 <여성시대>를 들을 기회가 어의 없었죠.
그러다가 아침방송을 그만두고부터는 내게도 이렇게 느긋한 아침시간이 있을 수 있구
나 하면서 즐렸고 <여성시대>도 애청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떠나살던 7년을 빼 놓고는 하루도 라디오 방송을 안한 적이 없는 라디오와
의 20년 세월인데, 프리랜서란 이런 거구나! 내게 있어 라디오란 그냥 숨쉬기와 같다
고 생각했는데, 그 일에서 놓여나니까 와! 그 가벼움이란,,, 생방송을 매일 진행한다
는 건 그렇게 내 뒷덜미를 당기는 일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시원섭섭한 그 세월을 접고 나니, 새삼 반성문이 써지더라구요.
왜 나는 가수로서 노래하는 일에 그만큼 열심히 달라붙지 않았던가? 방송 진행하는 마
음과 정성을 노래에댜 쏟았더라면 어떠한 가수가 되었을까?
노래는 늘 하기 힘든 숙제 같아서 일단 그 일부터 해낸 다음에 쉬어도 쉬는 것이고 놀
아도 흔쾌할 텐데,,,
노래 아닌 다른 어떤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꺼림칙한 건 사실이지요.
남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제가 느끼기엔 노래를 한 것이 없으니까 이럴 수도 어쩔 수
도 없는 처지인 셈이고, 제대로 그만두기 위해서 제대로 한번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셈이지요.
각설하고, 6월 7일 첫방송 이후 지금까지 부담과 두려움으로 나의 아침은 시작됩니다.
느긋하게 즐기던 아침시간이 끝나버렸지요. 하도 목 뒤가 뻣뻤해 와서 집어넣었던 부
황통을 꺼내어 어깨며 목 등판 가득 부황도 떠 봤습니다. 9년 동안의 손숙씨의 빈 자
리 또한 커서 이 자리엔 누가 들어와도 솔직히 밉상입니다. 적지 않은 세월동안 사람
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편안해져서 누가 와도 그만 못합니다. 일단은 낯설
기 때문에!! 내가 잘 아는 바로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시대는 정말로 큰 프로그램입니다. 전임자가 장관자리로 옮겨가서도 아니요. 같이
진행하던 남성진행자들의 정계진출이 많아서도 아니죠.
세파에 시달려도 흔들리지 않고, 사심없이 욕심없이 세상을 향해 말갛게 눈과 귀를 열
어놓고 있는 분들이 사연을 보내고 또 애청하기 때문이지요.
<여성시대>를 들을 때는 같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코끝이 찡하거나 사연이 그저 좋았는
데, 막상 스튜디오 안에서 봉투를 열고 사연을 보니, 요즘 보기 힘든 연필로 쓴 사연,
편지지도 갖가지, 문제집 뒷장, 큰 달력을 8등분한 제활용지, 누런 갱지 등등 각자 살
아온 역사만큼 편지지와 봉투, 사용한 필기도구도 다양했습니다. 그 사연을 읽노라면
진한 감동이 도장처럼 가슴에 '콱' 찍힙니다.
사실, 우리의 힘겨운 땀을 식혀주는 건 비바람이나 태풍이 아니라, 솔솔부는 산들바람
이듯 당당하고 잔잔하 이야기들이 더불어 사는 우리네 갑슴에 힘과 열정을 되돌려 줄
수 있겠지요.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는 법은 있어도 태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지 않습니까?
'나만 어려운 건 아니네, 나만 이런 생각하고 사는 건 아니네', 하는 든든함, 더불어
사는 든든함...
저는 여성시대 동네 한 모퉁이에 그냥 퍼질러 앉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