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3. '드라마와 코미디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 시트콤, 그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
청춘 시트콤을 연출하면서 자주 듣는 질문은,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 조연출을 하다 드라마 장르인 시트콤 연출로 입봉하게 되었느냐?' 입니다. 시트콤이란 장르가 드라마인지 코미디인지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지만, 시트콤이란 장르는 예능 PD의 마인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제 나름의 소신입니다.
실제로 시트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선배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남자셋 여자셋'의 송창의 PD, '뉴 논스톱'의 은경표 PD, '순풍산부인과'의 김병욱 PD, 'LA 아리랑'의 주병대 PD 모두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잔뼈가 굵은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분명 시트콤은 버라이어티 쇼 만들 듯이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작년 3월 청춘 시트콤 연출로 데뷔한 이래, 매주 다섯 편의 스튜디오 녹화를 진행해 오면서, 저는 녹화전 카메라 리허설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드라마 연출 선배님이 들으면 대경실색할 일이겠지요. 10명 가까운 연기자들의 동선을 따라, 3대의 카메라로 세트 녹화를 하면서, 카메라 리허설 없이 녹화를 하다니... 분명 드라마 녹화의 정석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녹화에 들어가면서 항상 연기자들에게 '대본의 틀 안에서 논다는 기분으로 연기해라, 카메라로 각자의 대사와 표정을 따는 것은 나한테 맡기고...' 하고 주문합니다. 카메라 리허설없이 녹화한다? 초짜의 겁없는 치기인가?
매주 25분물 다섯편을 제작하는 뉴 논스톱의 스튜디오 배정일은 단 하루입니다. 연기자들도 스튜디오 연기에 숙련된 고참들 보다는, 처음 드라마 녹화를 접하는 신인들이 많구요. 그런 상황에서 하루 70개에서 100개 사이의 씬을 녹화하면서, 일일이 카메라 리허설로 동선과 위치를 지정하다보면, 어린 연기자들이 지쳐서 코미디 감을 살리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대사의 맛을 살려야하는 씬은 동선을 극도로 제한한 기본적인 콘티로 녹화하고, 다양한 움직임이 있는 이벤트 적인 장면은 버라이어티 쇼 녹화하듯 애드립 커팅으로 연출합니다. 엄격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녹화하는 것이 어린 연기자들의 끼를 최대한 살려주어 코미디를 극대화하는 요령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 면에서 뉴 논스톱의 대본 방향 역시 버라이어티 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떨 때는 박경림을 향한 조인성의 가슴아픈 사랑이 절절하게 펼쳐지다, 갑자기 양동근의 리얼리티없는 황당무계한 코미디가 펼쳐지기도 합니다. 엽기적인 코미디와 진지한 드라마 라인이 함께 손잡고 간다... 얼핏 부조화가 예상되지만, 그 덕분에 코미디는 쉽게 식상하지 않고, 드라마 라인 역시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진다고 생각합니다. 청춘 시트콤의 진정한 매력은 드라마와 코미디, 이벤트 쇼를 모두 한데 아우르는 넓은 스펙트럼에 있으니까요.
버라이어티 메이킹, 청춘 시트콤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입니다.
지난 1년 뉴 논스톱을 연출해 온 세월은 제가 늘 해보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 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대본을 담당한 권익준 선배님 밑에서 시트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구요. 시트콤에서 애드립 연기, 애드립 연출의 중요성을 많이들 얘기하지만, 사실 시트콤이 주는 코미디의 80%는 대본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대본을 좋은 연기자들이 살릴 수는 있지만, 나쁜 대본을 좋은 연기자들이 연기와 애드립의 힘만으로 살리는데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캐릭터 메이킹, 스타 메이킹, 버라이어티 메이킹... 청춘 시트콤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이 세가지 요소를 제게 가르쳐주신 권익준 선배님께 감사드리며 초보 연출가의 시트콤 연출 입문기, 여기서 마무리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