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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강의 14차 (1998. 5. 12) 제목 : 통제기관으로서의 이궁(離宮) |
1. 서 언
오늘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과 다른 숱한 사물들이 더불어 살아갈 적에, 살아가는 상호관계와 그 상호관계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그 전달되는 바를 우리는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하는 문제를 말씀드릴 터인데요, 그리고 그 통제기관으로써 또는 통제수단으로써, 통제의 근거로써의 이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제가 지난주에 특별한 일이 좀 있어서 다녀온 데가 있습니다. 같이 갔던 분이 두 분 계시는데, 이분들 중 이종현 선생님이 저와 같이 들렸던 장소에서 각자 느꼈던 점과 그 장소에서 생각하셨던 것들을, 다시 말하면, 어떤 데에서 어떤 느낌을 받고 그랬는지 간단히 이야기를 듣고 계속했으면 합니다.
2. 이종현 선생님의 이야기
3일 동안 다녀온 일정인데요. 총 아홉 군데를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곳은 경북 북부와 강원도 지역이며, 강원도 권역에서 구궁 자리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 남한에 있는 권역을 나누면 강원도, 영남, 호남, 충청 권역과, 그리고 강화도는 독자적으로 형성된 곳이랍니다.
우리가 이번에 첫 번째 갔던 데가 소백산에 있는 곳입니다. 풍기에 있는데, 금계바위. 봉화형상을 하고 있는 곳인데요, 여기는 10승 지지의 제1지라고 북창 선생께서 말씀하신 곳입니다. 여기는 산이 많이 상해 있어요. 수정 광산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도 거기를 파괴하기 위하여 광산을 개발하려했고, 지금도 우리가 위의 바위 있는데 까지 올라가지 않았는데, 아래에도 돌 속에 수정이 박혀 있더라고요. 그때도 벼락을 맞아 270명이 몰살당한 적이 있고 최근에도 발굴하려다가 벼락 맞아 죽은 일이 있답니다. 거의 대부분이 지난번에 부석사에 다녀오신 것 같은데, 소백산 오른편 봉우리에서 시작해서 그 곳이 전체가. 여기 여성분들도 계신데, 여성의 자궁이라고 생각하시면 이 금계바위가 여성의 음핵에 해당되는 자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신기했던 것은, 이슬비 내릴 때면 보이지요, 그렇게 이슬비처럼 기운이 내려요. 기운이 내리는 것이 실제 눈으로 잘 보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가 기운이 가장 잘 형성되는 곳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새벽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잘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상상이 잘 되실지 모르겠는데, 산이 흘러 내려오면서 뭉친 곳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아까 제1지라고 했잖습니까? 자연의 기운, 전체 기운을 순화시켜 주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은 구궁으로 따진다면 이궁(離宮)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이곳은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밑이 저수지가 하나 막아져 있는데, 이 저수지가 크지 않아서 크게 훼손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산의 형세 상, 물이 흘러야지 문제가 없는데 막히면 썩기 때문에 썩으면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참고적인 이야기들은 앞에 냇가가 있는데 모기가 굉장히 커요, 그리고 뱀도 굉장히 많다고 하는데, 이곳은 기운이 성한 곳이어서 그렇구요, 그리고 이상향인 청학동 마을처럼 마을이 그 뒤편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6․25때 피해를 입어서, 지금은 들어가 보지는 못했는데, 집들이 많이 있지는 않더라고요. 총 아홉 군데 다닌 곳 중에서는 이곳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가장 기운이 깨끗하고, 기운이 강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여담인데요. 저는 그 소백산 길을 처음 가봤거든요. 그런데 소백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가 새벽 4시쯤 됐거든요. 근데 그날이 유난히 맑았거든요. 하늘을 보니 굉장히 가깝고 별이 굉장히 많았는데요. 우리가 ‘한배달’이라는 사무실이 있는 데를 가봤을 때 ‘금문’이라고 천문을 그려놓은 게 있었는데, 실제로 그 모양을 하늘에서 그대로 은하수 모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띠가 구름처럼 보이는 것이 선생님 말씀으로는 실제로 별이라고 하셨구요. 별을 보니까 천문에 보면 구궁에서 별이 아홉 개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별이 아홉 개 있는데. 신기한 것은 별이 흐려졌다 나타났다 하는 별들이 있어요. 그리고 시간을 두고 반짝반짝하는 별들이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망원경으로 관측하는 것은 천문이 아니고 사람의 육안으로 관찰할 때 천문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은데 그 날은 운 좋게 봤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태백산 밑줄기에 보면 구룡산이라고 합니다. 우산(?)이라고 하는데 구궁으로는 감궁 자리입니다. 아까 첫 번째 자리가 기운을 순화시켜주는 자리였다면 이곳은 앞으로 밀어내는 곳입니다. 여기는 금 광산이었다고 합니다. 이산도 앞쪽이 많이 상해 있습니다. 옛날 공부하시는 어른들이 말씀하신 게 있는데, 공부할 적에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우산에서 3일만 자고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가만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곳이고. 그리고 여기는 뼈를 잘 맞추어 주는 곳, 그래서 디스크라던가 하는 병의 치료가 잘되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체를 강화시켜 주는 곳입니다. 가만히 서 있으면 다리가 흔들리고 무당처럼 뛰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가라앉는 분도 계시구요. 그래서 요즘 미국에서 크게 유행하는 약이 있지요. 비아그란가 하는 약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 가 계시면 쉽게 그런 부분들을 고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공부하면서 오색을 잘 못 봤어요. 누런색과 하얀 색 그리고 검정색을 조금씩 봤었는데, 이곳에는 다른 형태로 푸른색과 붉은 색, 누런색을 봤습니다. 신기하게 보였습니다. 여기가 두 번째 였구요.
세 번째 간 곳이, 여기는 길가에 있습니다. 태백에서 봉화 가는 길 사이에 있습니다. 독상암(?)이라고 하는데, 머리 벗겨진 독수리가 날아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저는 봐도 잘 몰라서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면서 애먹으셨습니다. 이번 답사가 다 신기했지만 여기에서 가장 신기함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보통 돌이 살아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 않습니까? 그런데 돌과 나무가 살아있는 모습이 보이는 곳입니다. 직접 보이고, 처음에 앉아있을 때 눈앞이 아른 아른거려요. 뭐가 좀 헷갈리고. 그랬는데 선생님께서 자세히 관찰해보라고 하셔서 보니까, 움직여서 눈이 좀 잘못됐나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시기를 눈이 잘못되면 한 쪽으로만 움직여야 되는데 돌이 움직이는 것이 다 틀립니다. 움직이는 방향도 다르고 움직이는 형태로 다르고, 나무도 다 다릅니다. 여기는 보통사람들도 집중하고 있으면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뱀이 많은 곳이고. 그리고 여기는 자연과 사람이, 내가 상통할 수 있는 곳인데, 실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 있는데 어떤 것이냐 하면, 그곳이 태백산 줄기니까 굉장히 울창한 숲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무 하나가 말라서 죽어가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왜 죽어가고 있는지 원인을 찾아보라고 하였으나, 물론 못 찾았습니다. 길 바로 밑인데 길 건너편에 전주가, 큰 전주도 아니고 작은 전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주하고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그 나무하고. 그래서 그 나무가 크지 못하고 시들고 있는데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생활에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 부분, 잘못되어왔던 생활환경이라던가, 이런 부분에서 커다란 충격을 개인적으로 받았습니다. 하여간 여기는 자연과 상통할 수 있는 산, 아까 말씀드렸지만 머리 벗겨진 독수리가 날아가는 산인데, 산들이 대개 우리들이 갔던 곳이 독자적인 산입니다. 그러니까 기운이, 태백산 같은 경우에는 아홉 가지 기운이 다 있는 산이라면 우리가 이번에 갔던 곳은 한 기운이 특화되어 독자적인 산으로 형성된 곳인데, 이 산도 태백산 내에서 독자적으로 형성된 곳인데, 날아가는 형상을 가지고 있는 곳인데, 태백산이 잡고 있어서 날아가지 못하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궁으로는 6번 궁 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자미원이라고 은하수가 있는 산으로 갔습니다. 자미원은, 사북, 고한 아시죠. 탄광지대인데, 고한이 바로 위고 사북이 밑인데요. 그 밑에 자미원이라고 있습니다. 태백선 기차역도 있습니다. 바로 앞에. 여기는 형상이 어떻게 되어있냐 하면, 산에 돌이 없어요, 큰 돌이 없어요, 작은 돌밖에. 올라가면 산 위에, 정상부위에 자미원이, 은하수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큰 바위가 있는데, 크다 그래서 아주 큰 것이 아닙니다. 그 바위를 기준으로 해서 보면 그 부위 양쪽에 돌무더기가 있어요. 크지 않은 산 위에 정상부위에 은하수가 있는데 앞의 바위하나가 기준점이고 안쪽에 돌무더기가 있습니다. 그 안이 독자적으로 형성되어있습니다. 그 안은 흙이 검습니다. 그곳만 벗어나면 바깥은 흙이 누래요. 그리고 거기의 기운은 비워주는 곳, 無를 만들어주는 곳, 욕심을 없애주는 곳이고 모든 생각을 없애주는 곳입니다. 오래 있으면 원기만 남고 모든 기운이 다 없어지는 곳. 그리고 거기 오래 계시면 자신의 원래 기운을 되찾아가고 자기가 수련해왔던 것들은 되짚어, 되돌아가는 형태가 된답니다. 그리고 여기는, 그 자리에서도 확인했는데, 생물체, 뱀이라든가, 새라든가 하는 동물들이 접근을 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갔을 때도 새가 한 마리 날아왔었는데 그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안에서는 손 모양이 주름잡히고, 목욕 갔을 때처럼 주름이 지고, 손바닥에 손금이 굉장히 많아집니다. 여기는 봉황 부조형, 봉황이 날아가고, ‘부’자는 부복할 부, 그리고 ‘조’자는 조공할 조. 그리고 여기는 강원도 권역의 자미원이고 남한 전체의 자미원은 충청 권역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갔던 곳이 영월의 사자암 입니다. 사자산의 사자암 입니다. 여기는 사자가 머리를 들고 일어서려는 그런 모습입니다. 아까 첫 번째가 기운을 소통시켜주고, 두 번째는 앞으로 밀어주는 곳이고, 세 번째는 자연과 교류를 했다면, 여기는 모든 사물과 교류할 수 있는, 그러니까 靈通하는 곳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이나 미래에 있을 분하고도 충분히 교류가 가능한 곳이라 하고요. 여기는 사자가 일어나는 형상인데 일어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왜 일어나면 안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탑으로 비보를 해야 하는데, 탑이 없어서 선생님이 돌무더기를 만든 자리에, 그 자리가 밭인데, 돌들이 많이 쌓아져서 다행이라고 그러셨습니다.
여섯 번째는 정선의 아루라지 아시죠? 아루라지 가기 바로 전인데요. 상왕산이라고 그럽니다. 상왕산, 중왕산, 하왕산이 있는데, 하왕산은 보통 가리왕산이라고 많이 들어보셨죠? 가리왕산도 산이 큰데. 여기는 하늘에서 두 기운이 겹쳐서 내려오는 곳입니다. 여기는 아루라지 강에서 물이 내려오는 줄기예요. 몇 킬로 되지 않고, 길가예요. 앞에 물이 흐르고 산 밑으로 도로예요. 앞에 강이 있기 때문에 넘지 못하고 내려온 기운이 멈춰 있는 곳입니다. 아까 여기는 두 기운이 겹쳐 내려오는 곳이라 했죠. 이곳이 음양을 나눠주고 좌우를 나눠주고 …를 나눠주는 곳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곳은 오래 있으면 안 되는 곳이구요. 거기는 찾아가기는 쉽습니다. 아루라지 같은 경우는 여름에 많이 가시니까. 가시면 한 번 해보십시오. 해본 게 어는 쪽 손이든 상관없이 한 손을 명치와 이궁 사이에 놓고 다른 한 손의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을 상단전에 놓으면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집니다. 떼굴떼굴 구르고, 배가 막 용트림을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날 오대산 두루봉이라고 비로봉 맞은 편 왼편이죠. 바닷가 쪽입니다. 이곳은 어떤 곳이냐 하면, 올라가 보시면 정상이 아닌데도, 능선인데, 사방이 열려 있습니다. 열려있다는 것은 막힌 곳이 없어요. 사방이. 태백산 올라가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태백산은 사방이 열려있지 않습니까? 그런 형태입니다. 그래서 모든 기운이 그 곳으로 몰려오는 곳. 몰려오는 데 열려있기 때문에 좋은 기운, 나쁜 기운 구별하지 않고 다 오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바닷쪽으로 앉아 있으면 거울처럼 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덟 번째 갔던 데는 강원도 봉평에 가시면 회령봉이라고 있습니다. 호랑이가 또아리를 틀듯이 완전하게 감싸고 있는 곳입니다. 여기는 욕심과 희망이 일어나는 곳. 그래서 들어오면 나가고 싶고, 들어가 있으면 사람들이 오기를 바라는 곳이라 하는데, 이런 곳에서 공부하시면 임꺽정같이 되기가 쉽답니다. 공부하면 그걸 펼쳐보고 싶어서. 그리고 여기 가 계시면 왼손에 힘이 빠지는데, 오래 있으면 왼쪽에 마비가 옵니다. 우리가 같던 곳이 무당 굿하는 곳이 많았거든요. 한 집에 아주머니가 계셨어요. 근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면 우리는 시험해 봐야 하지 않습니까? 오면서 봤거든요. 다리를 절고, 왼 다리를, 팔도 불편해요. 호랑이가 있으면 그 호랑이의 입 부위에 우리가 가 있었는데요. 그 자리에 있어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옛날에 무당공부 하던 곳들이 많은데, 그 선을 넘어가지 않았는데도 아픈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이곳은 오전에 기운이 성한 곳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지산 수래냄이라는 곳을 다녀왔는데요. 치악산이 원래 이름이 선지산이라고 합니다. 치악산에 까치 전설이 있죠. 상원사에. 그래서 치악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수래냄이라는 것은 수래(수뢰?)가 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해를 토해내는 곳이라고 하는데 보니까 거기에는 너머라고 써놨는데 우리말로 있는 지명이 이렇게 얼토당토않게 되가지고 앞으로는 너머로 될 정도입니다. 여기는 집착을 상징하는 곳인데, 용이 다리를 갖고 꽉 앉고 있는 형상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있으면 오른쪽 어깨가 아프고 오래 있으면 간경을 다치는 곳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북서쪽이 완전히 열려있는 곳입니다. 여기를 기준으로 해서 오른쪽이 소래너미산이고, 그 왼편으로 치악산이 시작되는 곳, 치악산의 별채(?)라고 합니다. 우리가 갔을 때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한 쪽 부위를 다 깎는 큰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썰매 장을 만드는 것 같아요.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워낙에 인간들의 욕심이 많아 가지고 이 산은 망가져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심으로 충분히 버텨낼 수 있기 때문에 망가져도 된다고 아주 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3일간의, 꽉 찬 3일간의 답사를 마쳤는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있으면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3. 박 현 선생님의 이야기
사람이 살아가는 게 또는 모든 사물이 존재하는 게 다 질서입니다. 우리가 요즘 들어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 중에 불확정성이란 이야기도 있겠지만 우리가 모른다는 이야기죠. 질서를 모른다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산에 계신 어떤 분이 이 도시에 나왔습니다. 지나가던 차에 꽂혀 있는 라디오에 달린 안테나를 보게 됩니다. 그 안테나 주변에는 아무 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 안테나가 있음으로 해서 전파를 잡아서 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해줍니다. 우리들은 그걸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 질서를. 그러나 그 질서를 모르는 측에서 보면 그것은 엄청난 요술입니다. 조그만 쇠막대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따름이지요. 그런데 그게 있음으로써 전파의 질서가 나름대로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름대로 질서가 있습니다. 질서 없는 것은 하루도 단 찰나도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단순하게 내 몸 속에 있는 질서, 내가 놓여있는 이 상황의 질서, 내 마음이 가고 있는 먼 미래까지 상황의 질서, 그러한 질서들에 대해서 어쩌면 눈감고, 어쩌면 내팽개치고, 어쩌면 대수롭지 않게, 그냥 그렇게 살다 가지요. 아까 이종현 선생님이 살짝 드렸던 말씀들 중에는 실제로 그러한 황당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거꾸로 라디오의 안테나로 생각하시면 다 나옵니다. 그리고 제가 워낙 이번 길에 특별한 일이 좀 있었기 때문에 제 일이 먼저였고 같이 간 분들이 느끼는 것은 차후였기 때문에 그리 시간을 많이 드리지 못했습니다. 30분씩 한 시간씩 밖에. 제 마음에는 두어 시간, 아니 반나절씩 드리고 싶었지만 중차대한 급한 일이 있고 해서.
그런 곳에 있으면 사람들은 분명히 그곳이 안테나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더 많은 것을 느껴야 마땅합니다. 예를 들어서 아까 태백에 갔을 적에 정말 돌이 살아있는지 죽어 있는지 알 수가 없지요. 그래서 이종현 선생님이 정말 이 돌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했지요. 눈감고 계십시오. 그럼 한 손에는 죽은 돌을 한 손에는 산돌을 올려드립니다. 몇 번을 해도 틀릴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이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틀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영적인 세계가 있다고 친다면, 예를 들어서, 그 영적인 세계를 아무나 느낄 수 없으나 느낄 수 있는 이가 있듯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없다하더라도 반드시 느끼는 곳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처럼 모든 것을 그렇게 하는 안테나 비슷한 곳이 있는 곳들, 그런 곳을 다녀온 얘기를 때로는 조금 바꿔하고 때로는 조금 순서가 틀렸습니다만, 여하튼간에 그러한 것 자체에 안테나가 있고 그 안테나를 중심으로 해서 모든 질서가 짜여 있다고 하면 우리 몸도 마찬가지로 자체 내부의 질서가 있는 것이고, 몸과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 여섯 가지의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우리 마음도 그러한 질서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고, 육합질서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고, 그 질서, 그러한 질서의 최초의 앞자리에 맨 앞자리에 이궁이 버티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을 얻지 못하면 아무 것도 얻을 게 없습니다. 그러한 점과 관련해서 조금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흔히 무전 친다는 얘기 아시죠. 긴 음, 짧은 음해서 무전을 치지요. 근데 그 무전 자체는 긴 소리 짧은 소리의 결합에 지나지 않습니다. 근데 그걸 가지고 다시 글자로 해독하는 우리들의 질서가 있지요. 물론 우리들은, 무전을 칠 수 없다고 보면 그 질서를 배우지도 못했고 터득하지도 못했습니다. 근데 그걸 가지고 분명히 전달하는 그런 체계가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런 의사소통, 그 의사소통 뿐 아니라 모든 통신의 체계들을 갖고 남들과 만나게 됩니다. 모든 말들이 그렇고 모든 그림과 형상들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경우에 흔히 영어로 텔레파시라고 하는 것. 텔레파시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있다고 그럽니다. 오늘은 제가 삐딱한 얘기만 골라하고 있습니다만, 곁다리로 나가는 얘기만 골라하고 있습니다만, 옛날 말에 의하면 공자께서 말씀하시지 않는 ‘자불어 괴령난신’이라 했는데 괴령난신에 해당되는 이야기만 골라하고 있습니다만, 그럴 때도 가끔 있겠지요. 뭐, 정법만 서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편법도 가는 경우가 있겠지요. 그런데 그런 것도 마찬가지로 구성되는 질서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쩌면 모스 부호와 너무도 비슷할 지도 모릅니다. 텔레파시가. 모르는 자는 그것을 우연히 얻게 되었을 뿐이고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에게 그것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그 질서를 모르기 때문에. 질서를 안다면 모든 것은 전달이 됩니다. 그리고 최소한 전달을 위한 자극이 가능해집니다. 그를 자극해서 전달할 수 있게끔 해줍니다. 만약에 모스 부호처럼 양의 어떤 기운과 음의 기운이 그 배열 상에서 둘․둘․하나, 하나․ 둘․ 둘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면 그것이 하나의 영상으로 표현된다고 그 영상이 다시 그러한 바로 개인에게 전달된다면 그걸 통해서 이른바 텔레파시가 가능해지겠지요. 어쩌면 생존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고등 생명체들의 공동의 언어가 이루어지겠지요. 아까 정선의 어떤 곳에 가서 봤다 그랬는데 그런 곳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오래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오른팔, 왼팔 제멋대로 휘두르고, 오른 배, 왼 배 마음대로 노는 것을 살짝 느끼셨을 테지만. 오래 가 계시면 그 분들의 거리를 점점 떨어뜨려서 300m, 500m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까지 갖다놔도 그 분들로 하여금 약간의 훈련만 시키면 거기서 그것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돌아오면 안 되겠지요. 돌아와서 되려면 더 많은 훈련이 되어야겠지요.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이론으로 수영을 배우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지만 이론으로 많이 해놓으면 수영장에 들어가면 도움이 좀 되겠지요. 그처럼. 바로 그러한 핵심의 자리로서 이궁이 있다는 사실. 여러분들의 배속에 이궁이 있다는 사실. 그 이궁을 통하지 않고서는 밖에 있는 것과 만날 수 없고, 안에서도 서로 만날 수 없고, 또 안에서도 서로 일치할 수 없다는 점. 모든 살아있는 병의 근원, 병이라는 것은 탈이라고 했는데요. 탈이라는 것은 질서로부터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한자의 발음이 탈이어서 탈이 아니고 질서로부터 벗어난 것입니다. 병들어서 망가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게 탈이 나있다, 탈난 이유가 세 가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떤 경우에나. 아래와 위가 서로 교통하지 않아서 생기는 탈, 상하가 불교해서 생기는 탈. 그리고 위(上)가 지탱하는 것이 실제 힘보다 너무나 많이 지탱해서 생기는 탈, 下는 虛한데 上은 盛해서 생기는 탈이죠. 上盛下虛해서 생기는 탈. 그리고 내외가 안팎이 서로 사맛지 않아서 생기는 탈, 안팎이 서로 조응하지 못해서 생기는 내외불치로 인해서 생기는 탈, 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이 세 가지 내외, 상하, 이 모든 것은 중심에 있는 것이 이궁입니다. 그래서 이궁의 뜻을, 한자로 이렇게(離宮) 써놓고 말입니다. 이것을 할 적에 실질적인 뜻을 흔히 불이라고 구궁상에서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불 자체의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화합이란 뜻입니다. 조화를 이루어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것의 출발점이자 하나로 단위 지어진 존재에서 그 첫 출발점이자 그것이 끝나는 곳이죠. 그래서 이궁은 전에 말씀을 그렇게 드렸습니다. ‘만류가 하나로 돌아간다면 그 하나는 어디로 갈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모든 흐름이 하나로 돌아간다면 그 하나로 돌아갈 적에 어떤 길을 타고 갈 것이냐. 모든 이 현상에 존재하는 전자, 전파들이 그 어떤 곳을 향해서 가고 있고, 그 어떤 한 곳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면 과연 어떤 안테나를 거쳐서 갈 것이냐’에 있어서 첫 안테나이자 마지막 안테나가 이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 몸에서, 그리고 이 첫, 마지막을 둘러싸고 있는 숱한 체계들이 있죠. 그래서 이궁에 관련된 단련을 잊지 말고 해보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한 가지를 더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이궁을 단련하시다보면 여러분들은 여러분 스스로의 병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그 수련을 하는 사이에 여러분들 자신의 병에 대해서 생각지 말라고 또한 아울러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들 스스로가 하면서 내가 이런 곳에 아마 탈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여러분들은 살아있는 것으로부터 강도질을 하게 됩니다. 갔을 적에 어느 나무가 있고, 어느 돌이 있으면 그 살아있는 돌을 향해서는 살아있는 또 다른 돌을 던져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산길을 어느 도인과 어느 똑똑한 지식인이 같이 가고 있습니다. 어느 도인이 앞에 이슬이 맺혀있으니 이슬을 털려고 나뭇가지를 꺾어서 휘젓고 갑니다. 그걸 보니까 그럴싸해서 또 한 사람이 나뭇가지를 꺾어서 갑니다. 한 사람은 살생을 했고 한 사람은 살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돌을 갖다가 차력한다고 빠갰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나도 이만한 힘이 있어 하면서 빠갰습니다. 어떤 사람은 살생을 했으나 어떤 사람은 살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살생했든 안 했든 간에 북한산이든 관악산이든 여러분들 가보시면 산에 있는 공원마다 있는 좋은 소나무처럼 보이는 나무들, 좋게 보이는, 보기 좋은 소나무들의 중덩이에 전부다 새까맣게 새빨갛게 까져 있어요. 아주머니들이 아저씨들이 산에 올라가시고 나무들과 박치기를 하면 좋다고 중덩이를 자꾸 문대 가지고 나무는 감당을 못하는데 말입니다. 나중에 그 나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문댑니다. 그건 강도질입니다. 내 마음속에, 내 몸 속에 병이 있다고 작정하고 먼저 이궁을 단련하면 그처럼 사방천지로부터 그 기운을 뺏어 쓰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이종현 선생님이, 한 번 더 여쭈어보면, 자미원에 갔을 적에 어느 나무가 있어 가만히 있으니 스스로 나무가 안아달라고 하지요. -(이종현 선생님) 꼭 안아달라고 했습니다. - 그런 경우에는 빼앗지는 않습니다. 서로 주고받을 수는 있습니다. 주고받기 전에 내가 먼저 줄려고 해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받는 것은 모두 강도행위가 됩니다. 칼 든 강도와 사랑을 훔치는 강도와 자연을 훔치는 강도는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이치를 모를 적에는 얼마든지 돌도 빠개도 되고, 그까짓 무생명체, 그까짓 식물하나 먹을 수 있고, 빠개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선 안 되듯이, 그렇게 해선 안 되듯이 이궁을 단련할 때 가장 먼저 주의할 것은 내 스스로 혹시 탈난 곳이 있다면 이 수련으로 말미암아 병을 고치리라는 생각은 완전히 버리시라는 겁니다. 설령 못 고치더라도 강도질해서 고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강도질은 때로는 옆에 있는 내 짝으로부터 강도질 할 수 있고, 내 자식으로부터 강도질 할 수 있고,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로부터 강도질 할 수도 있습니다. 내 가장 사랑하는 사물과 사람으로부터 강도질 할 수도 있습니다. 내 병든 몸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나눠주는 마음으로 이궁수련을 하지 않으면 그 안테나는 머지않아 스스로 부러질 겁니다. 마침내 부러질 것입니다. 왜 미인박명이 되는지 알아요? 미남박명이란 말은 없습니다만. 왜 미녀가 박명이 되냐 하면, 속설을 하나 말씀드리면 일리 있는 속설입니다. 미인이라고 해서 다 건강한 것은 아니에요. 미인이 얼굴이 곱다는 것이지 건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근데 미인은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 가운데는 모든 것을 버리는 마음으로 쳐다보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숱한 사람들이 그 순간순간에도 강도질을 하고 있는 겁니다. 조금씩 또는 많이. 그리고 강도질이 아니라 할지라도 교환하고 있는 겁니다. 교환할 때 모든 교환이 다 평등한 것은 아닙니다. 인연 따라 이르게 마련입니다. 어떤 이는 많이 주고 적게 받아 그것이 평등한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질서에 관한 거니까 여기서는 말씀드리지 않는 게 좋겠지요. 언젠가 말씀이 닿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빨리 갈 수 있겠지요. 누군가에 의해서 강도질 당해서 그러나 미인 아니라고 해서 오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웃음). 객담으로 말씀을 드렸구요. 근데 그 미인이 모든 마음을 나눠준다고 생각하고 살았으면 아마 오래 살 거예요. 더 오래 살 거예요. 더 많은 것들이 다가왔을 거예요. 오히려 좋은 교환이 이루어졌을 거예요. 여하튼 그렇게 해서 바른 교환을 하기 위해서 단련을 하고, 바른 교환을 하다 보면 여러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은 하나하나 녹아내리게 됩니다. 저절로. 모든 것을 뭘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이궁단련을 해선 절대 안 됩니다. 내가 어떤 성과를 내겠다는 마음으로 수련에 임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내가 수련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수련에 임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 생기는 것이 있다면 참으로 고마운 것이요, 행여 내 자신 속에서 순환만 깨닫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내 몸에 대해서. 그래서 저절로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것, 아까 자미원 궁을 말씀드리면서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만, 하나하나 되밟아 돌아간다 하는 것은 내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가고, 내 태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 부모조차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 길을 되밟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제대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특징은 지킴과 버림입니다. 어떤 것은 지켜 질 것이요, 어떤 것은 버려질 것입니다. 허나 우리의 삶 속에서 지킬 것이 지켜지며 버릴 것이 버려지는가. 내가 지킬 것이라는 것이 과연 人法에 있어서, 이 인간의 법에서 내가 무장하고 있는 도덕으로의 버릴 것이 과연 버려지는가? 내가 지킬 것이 과연 지켜질 것인가에 대해서 늘 확신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안테나를 따라서 형성되는 그 질서에 끌려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다시 오늘에 와서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에 말씀드렸던 주제로 넘어갑니다. 始見死生之樞極 하라. 有相無相發於中 이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삶과 죽음의 들보를 보라. 상 있고 상없는 모든 것들이 중으로부터, 가운데로부터 발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말씀을 그렇게 드렸습니다. 여러분들 숨을 쉬더라도 숨을 집어넣고 끄집어내지 말라. 그거는 호흡이 아니다. 숨쉬기 운동이라고 그랬습니다. 숨을 끄집어내고 밀어 넣는 것은 호흡이 아니다. 내 속에 있는 단중으로부터 스스로 호흡하게 하라. 스스로 호흡하게 하는 그 체계로 들어가는 데 있어서의 제1은 바로 이궁을 단련하는 길입니다. 이궁이 단련되지 않으면 스스로 호흡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호흡할 수 없게 되면 여러분들 앉아서 아무리 오래 버티더라도 세 시간이상 호흡할 수 없습니다. 육체적 무리를 감안한다면 며칠을 버틸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름 있는 승려 성철스님이 9년을 면벽 수도했다하거니와 믿을 수 없습니다. 진정 9년을 면벽 수도할 수 있었다면 사람이 생을 끝내는 모습은 아름다운 노을을 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 노을이 아니었다면 단 하루도 제대로 면벽 수도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9년 동안 호흡을 했다 할지라도 그는 스스로(자신이 의도적으로) 호흡한 것입니다. 단전이 호흡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의도적으로 호흡한 것입니다. 스스로 호흡하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호흡이 마침내 밑에 있는 호흡을 일으켜 세우는 역할, 기둥을 일으켜 세우는 역할, 안 나오는 TV를 붙잡고 안테나를 꽂았다 떼었다 할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야외 안테나를 세우는 역할, 그래서 튼튼한 통로를 트는 역할, 그것이 또한 이궁의 수련입니다. 그 이궁의 수련이 이루어져야만 우리는 몸 감각에서 내 스스로가 아닌 진정한 육아로서의 육체로서의, 體로서의 내가 아닌 眞我로서의 身我로서의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신체라고 하지만 신과 체는 천지차이 아닙니까? 體는 '뚱이' 아닙니까? 굳이 설명하자면 몸뚱이고 身은 몸뚱이가 아니잖아요. 몸이죠. 몸이고 한편으로는 이것이 마음이 있었던 곳 아닙니까? 첫 씨앗이 있었던 곳 아닙니까? 진정한 씨앗이. 身은 그 운행의 체계였던 것이죠. 돌이 흙이 되고 흙이 남기 되고(나무가 되고) 남기 풀 되고 풀이 불 되고. 이 뚱이는 변함이 없는 것이죠. 생겨나지도 않았으니 소멸하지도 않는 거죠. 마음이 생겨나지도 않았으니 생겨날 것도 없고 깨끗해지지도 더러워지지도 빼지지도 더해지지도 않는 것처럼 마찬가지죠. 생로병사를 겪지도 않죠. 생로병사를 겪는 건 이 身이었죠. 운행의 체계였죠. 운행하기 때문에 생긴 거였죠. 근데 이 운행에 있어서 주인을 體로 할 것인가, 진정 身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핵심을 다루는 그 갈래선이 이궁에 달려있는 거죠. 이궁의 단련은 그래서 더욱더 여러분들이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궁의 단련이 이루어지면 여러분은 이중적인 자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이중적인 자기를 느낄 적에 현상들은 많이 있습니다. 내가 나아닌 내가 또 있는 것 같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안 피우는 것 같다. 내 속에 있는 귀신이 피우는 것 같다. 모르면 핑계 댈 것이 귀신밖에 없잖아요. 귀신이라 하기에 조금 정정하면 내 수호령이 담배를 달라고 하시나. 한 등급 올려 가지고, 아니면 그건 지식인으로써 받아들이기 힘들면, 조금 점잖게 내 속에 있는 기운이 뭔가 꿈질거리나? 그렇게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자기가 아닌 또 다른 자기가 있는 현상을 분명히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게 어디서 발견되는지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게 첫째 가슴에서 발견될 적에. 가슴에서 나 아닌 어떤 힘이 뭔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발견될 적에 여러분들은 이궁 및 모든 수련을 정지해야 합니다. 모든 수련을 정지하고 다시 순서대로 공부해 나가야 합니다. 금강심촉좌를 다시 하고, 지중식을 다시 하고, 묵룡토주납을 다시 하고 성환도인을 다시 하고, 구궁‥‥를 다시 해야 합니다. 가슴에서 느껴지면 즉시 멈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기초적인 초등학생도 하는 호흡이라 해서 게을리 하면 안 됩니다. 저건 어린애들이 먹는 음식이라서 우유를 안 먹는 것 아니잖아요. 어른들의 병은 애들이 먹는 이유식을, 저건 애들이 먹는 거라서 어른들이 안 먹기 때문에 병이 생기는 지도 모릅니다. 어른은 어른다운 것을 먹어야죠.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아울러 먹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장 무식하고도 유식한 유능한 지식인은 모든 계산은 잘 하지만 초등학교 때 지식은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초등학교 때 교과서를 일 년에 하루 이틀은 뒤져봐야만 유능한 지식인입니다. 알맹이 있는 지식인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장 기본적인 호흡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렇게 돌아가면서 가슴에서부터 안 느껴질 때가지 기다려야 합니다.
둘째, 머리에서 느껴질 적에. 머리에서 뭔가 나아닌 또 다른 소리가 들려올 적에. 마찬가지로 즉시 멈추어야 합니다. 멈추지 않는 경우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따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고 이런 경험이 있던 분들은 따로 나중에 말씀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여하튼 머리에서 느껴질 적에도 즉시 돌아가서 한없이 서글픈 마음으로, 내가 왜 이럴꼬 하는 마음으로 장틀을 한없이 반복해서 서주세요. 내가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마음으로 서 주세요. 내 속에 있는 이 육신으로 말미암은 내가 이것을 태워서, 로켓이 밑에 있는 연료를 태워서 위에 있는 것을 추진해 버리듯이 이 육신을 태워서, 불을 태우듯이 태워서, 살라서, 그것을 사르라고 하지 않습니까? 살라서 이 심신을, 이 알을 추진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을 추진하기는커녕 이걸 다 까먹기도 바쁜 판입니다. 까먹었는데 이건 다 태웠는데, 연료는 다 태웠는데 날아가지는 않아요. 연결을 안 시켜 놓은 것이죠. 그럼 로켓은 중간에 가다가 핑하고 떨어집니다. 달나라는커녕. 마찬가지로 이런 상황으로 가면 바로 그렇게 됩니다. 하물며 거기다가 또 하나가 추가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이것을 태워서 이것을 날릴지 여러분들은 이것을 태워서 진정한 진아를 날릴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나도 너도 아닌 뭔가에 손을 객을 추진해서 날리면서 살지, 여러분들이 연을 날리면서 연을 날리면서 살지, 여러분들의 마음을 연을 삼아서 연을 날리면서 살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개별적으로 특이한 경우에는 이렇게 진행되어도 괜찮은 경우가 있고 이러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거는 보편성, 일반성은 아닙니다. 열에 일곱은 이렇게 되면 중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열에 일곱이 아닌 나머지 세분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중지하고 또는 중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시면 그때는 상의를 해야겠지요.
셋째, 이것이 골반에서 느껴질 적에. 이제 이것에 불이 붙으면서 이것이 추진되는 단계에 이른 것입니다. 마침내 로켓의 진정한 꼭대기 밑 부분에 추진력이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궤도를 따라가 가지고, 그 궤도를 따라서 로켓을 날려줄 때가 된 것입니다. 이제 비행기는 이륙의 모든 준비를 끝내고 활주로 앞에 서서 시동을 켜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로 나침반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골반에서부터 올적에 골반에 터져 나가야만, 어떠한 식으로든 골반이 터져 나가야만 그때부터는 주인이 바뀌는 겁니다. 이건 이제 아니고 이게 주인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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