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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노협>주간노동정세동향 66호(5/11)
□ 노동소식 : 1)철도노조 12일 파업예정, 공공부문은 단협해지에 맞서 공동대응경고
2)타임오프 날치기 통과 여진 계속돼
□ 노동법 : 종업원 재해보험금 피해자에게 다 줘야
□ 노동시론 : 버스운전을 하며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생각하다
○ 붙임자료 : 기로에 선 한국노총식 운동, 믿었던 정부에 쪽박차다
□ 노동소식
1)철도노조 12일 파업예정, 공공부문은 단협해지에 맞서 공동대응경고
철도노동자들이 오는 12일 3차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전국운수노조 철도본부가 지난해 말에 이어 다시 쟁의행위를 벌이게 된 것은 철도공사가 단협해지를 자행해 오는 5월24일부터 사상초유 무단협 사태가 예고되고 있기 때문. 공사 측은 일방적 개악만을 요구할 뿐 입장변화가 전혀 없다. 철도공사는 교섭을 통한 사태 해결에 나서기는커녕 5월24일 단협 해지를 기정사실화하고 실무교섭에 성실히 나서기보다 시간만 끌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철도와 함께 화물연대본부는 오는 15일 화물운송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개최하고 1일 경고파업을 진행할 것을 결정했다. 이번 결의대회를 통해 정부가 표준운임제 법제화와 화물운송제도개선, 노동기본권 쟁취 등의 요구를 계속 외면할 시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할 것을 천명할 계획이다.
철도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공공부문 단협해지가 전 사업장에 걸쳐 자행되고 있다. 노사간 교섭이 진행되던 기관과 의견 접근을 본 기관, 심지어 협약을 체결한 기관들까지도 단협해지를 강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공기관 사측 단협해지가 시기집중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정부 차원에서 기획된 노조파괴공작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에 맞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단체협약 해지 의도는 파업유도와 노조말살”이라며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한국노동연구원지부, 한국발전산업노조, 공공노조 가스지부와 사회연대연금지부, 서울도시철도노조등은 10일 공동대응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5월12일 철도본부 파업을 엄호하고 5월 말 단협해지 분쇄를 위한 총력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노동과세계)
2) 타임오프 날치기 통과 여진 계속돼
지난 5월1일 근심위(근로시간면제심의위)는 노동조합 활동만을 하는 전임자의 유급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를 날치기 통과시켰다. 하지만 노동부는 10일로 예고했던 타임호프한도 고시를 13-14일 경으로 다시 연기했다. 노조를 말살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하는 노동계와 국회 환노위등의 문제제기 때문이다.
5월 6일,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추미애 환노위원장이 ‘근심위 타임오프 상한제안에 사업장의 지역 분포, 교대제 등을 고려해 근심위 타임오프상한선에서 1/3을 추가하도록' 권고 하였다. 근심위 결정을 기본으로 사업장의 특성에 따라 1/3을 추가하는 방안을 권고한 것을 노동부가 받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환노위는 오는 5월17일 다시 열린다.
민주노총은 5월 10일, 노동부장관-근심위원장을 직권남용죄 등으로 고소하고 근심위 결정에 대한 행정소송과 함께 효력정지신청을 동시에 제출하였다.
금융노조의 탈퇴압박등 위기에 처한 한국노총은 지도부가 단식에 들어가며 한나라당, 노동부와 물밑접촉을 벌이며 10일 경총,노동부와 3자대화를 진행했다. 한국노총은 상급단체 파견자에 대한 타임오프을 2-3년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노동부는 노사발전재단등 기금으로 한시적 해결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한국노총은 11일 오후 이에 대해 판단할 예정이다.
□ 노동법 : 종업원 재해보험금 피해자에게 다 줘야
종업원을 위해 단체보험에 가입했다면 재해 발생 때 피해 종업원에게 보험금 일부가 아닌 전부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민사8단독 임경섭 판사는 9일 공사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다친 김모(38)씨가 회사 대표 이모(58)씨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2천93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임 판사는 판결문에서 "종업원 단체보험은 종업원의 복리후생을 확충하기 위한 것으로, 기업의 손해를 충당하고 남은 보험금만 종업원이 받기로 하는 등의 명시적인 약정을 하지 않는 한 보험금 전액은 종업원에게 실질적으로 귀속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법원은 "피고가 일주일 전에 보험금을 받고도 이를 숨긴 채 보험금의 30%에 불과한 돈만 원고에게 지급하면서 합의각서를 받았고, 원고가 보험금액을 알았다면 합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참작하면 합의각서의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2006년 12월 부산 북구의 한 공사현장에서 크레인 기사로 일하던 김씨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회사 대표인 이씨가 이 사고로 종업원 단체보험을 들어 놓은 보험회사로부터 4천230만원을 받고 나서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은 후 김씨에게 1천300만원만 지급했고, 이를 뒤늦게 안 김씨가 소송을 제기했다.(연합뉴스)
□ 노동시론(時論)
버스운전을 하며 노동자가 행복한 세상을 생각하다
단상1
어느 날 아들이 물었다 “아빠, 아빠가 원하는 세상이 오기는 오는 거야? 안 오는 거 아냐?” “동현아! 세상은 바뀐단다. 80년 광주도 그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광주사태라고, 빨갱이가 한 짓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대다수의 사람이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해. 광주때 무고한 학살을 자행한 전두환은 대통령을 했지만 징역살고 나왔어. 이처럼 세상은 변화하는 거야.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말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과연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게 맞나? 27년 전 정규직이지만 십만원도 못 받던 노동자의 생활과 미래. 지금의 백만원 조금 넘게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활과 미래. 그래도 그때는 정규직이었는데, 지금은 비정규직이잖아. 더 나빠진 거 아닌가? 우리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투쟁한다. 비정규직이 철폐되면 노동자의 생활은 행복한가?
어! 손님이 언제 다 내렸지-. 정류장을 다 들린 건 맞나? 모르겠다. 정류장을 들렸으니 손님이 없어졌겠지.
단상2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인데, 얼마 전 학교 미술시간에 ‘20년 후의 본인의 모습을 그리라’는 과제에 그림 세 가지를 그렸다고 한다. 첫 번째 그림은 그동안 못했던 게임을 하며 결혼할 여자가 누구인가 상상하고 있는 모습이고, 두 번째 그림은 직장동료가 산재를 당해 산재인정을 요구하며 파업 대열에 끼여 파업투쟁을 하는 모습으로. 세 번째 그림은 게임을 패러디한 것으로 사회를 총20레벨로 나누었다고 한다. 레벨을 학력에 비유해서 1레벨에서 10레벨은 하층등급, 11레벨에서 20레벨은 상층등급으로 나누어 표현한 것이다.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카드가 필요한데 카드값이 비싸서 월급을 적게 받는 하층은 카드를 구하기 어려워 레벨 상승이 힘들다는 것. 또한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다른 캐릭터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것. 아들은 자기의 레벨을 5레벨로 해서 월급 160만원을 받고 사는 모습으로 그렸다고 한다.
2년 전 누나가 촛불집회에 가자고 할 때 자기는 안 가겠다고 하던 아들인데, 엄마 아빠의 생각이 은연중에 스며들어 가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생각하며느끼는 나의 이 묘한 감정은 무엇인가? 썩은 미소, 똥 싸고 밑 안 닦은 느낌. 아들이 기특하게 자라서 기쁜데 암울한 느낌^^. 세상을 바꾸겠다고 살아가지만 내안에 꽈리를 틀고 있는 이명박 때문인가-?
“아저씨! 아저씨! 길 잘못 들었어요.” 아이고! 워메! 큰일났네. 정신차리고 침착하게 불법유턴하고 에고! 급한데! 모도시 한번하고 좌회전 하고 상황수습. 아이고- 죄송합니다-.
단상3
김정임여사께
할머니! 김정임여사님!생신 축하 드려요.~*^^*
나이가 몇인데 생신선물을 편지로 떼우려 하느냐고도 할수있지만, 가장 감동적인 선물은 진심이 담긴 편지라고 생각해요.(진짜로) 제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할머니의 모습은 저랑 가게 놀이하는 모습이에요. 제가 과자를 집어들고 졔산대에 올려놓으며 “얼마에요?” 라고 물으면 깔깔 웃으시며 금액을 말해주시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어요. 어린 마음에 칼을 써 보고 싶어서 두부라도 홀라당 잘라버리면 쏟아지는 칭찬 세례에 누가 들으면 요리 신동이 나온 줄 알았을 거예요. 또 그놈의 자랄 고비는 십년이 넘었고요.
이렇게 할머니의 칭찬과 사랑을 먹으며,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어요. 거실에 걸려있는 가족 사진 속 일곱 살의 저는, 열일곱의 저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제가 무척 행복하다고 느껴요. 양길순씨가 우리 엄마여서, 김형수씨가 우리 아빠여서, 김선혁씨가 우리 할아버지여서, 그리고 김정임씨가 우리 할머니여서.
당신의 넘치는 사랑이 있었기에 일곱 살의 여진이가 있고, 열일곱의 여진이가 있고, 스물, 서른, 마흔 일곱의 여진이가 있을 거예요.
가게 일 보랴, 집안일 하랴, 아들딸 걱정하랴, 고단했던 당신의 세월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 가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주름은 추하지 않고, 당신의 움직이지 않는 왼손발은 짐이 아닙니다. 맏딸, 누나, 엄마, 할머니, 어머님... 이 모든 이름으로 살면서 ‘김정임’이라는 이름을 반납한 당신이기에 누구보다 더 큰 축하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그 축하를 손녀가 드릴께요.
정말x100 사랑하고 생신 축하드려요. 그리고 내 할머니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평소엔 전화 한통 잘 안하다가 생신때만 고개를 빼꼼 내미는 불효녀 여진올림
딸내미가 어머님 생신때 준 편지입니다. 어머님이 전화를 붙들고 나에게 “나는 이런 생일선물 내 평생 처음이다. 울면서 편지를 읽었다. 몇 번을 편지를 읽으면서 계속 울었다. 그리고 너무 너무 행복하다.”하셨습니다. 행복은 아마도 너무 커서 잡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고 작지만 우리 곁에 있는 사랑하는 마음의 전달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나의 어머님은 가게에서 나오는 셋돈이 있어 병원비를 낼 수 있는 여력이 있습니다.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여력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기에 팍팍한 생활에 찌들지 않고 소박하지만 소중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돈이 없어도 교육받을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 나이들어 기력이 없어도 존중받고 살 수 있는 사회.
장애인이 차별없이 사회의 한 주체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회.
직장의 주인이 진짜로 노동자인 사회. 그런데 경제가 팽팽 돌아가는 사회.
노동조합 간부이면 누구나 이런 사회의 모습을 그릴 수 있고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경로까지도 잘 설명하고 이런 요구를 가지고 총파업 투쟁하는 민주노총을 그려봅니다. 그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사랑과 행복을 느끼며...
에고! 에고! 앞차하고 또 벌어졌네. 뒷차는 붙고. 포기하고 천천히 가자. 한번 안 쉬고 바로 잡아 돌려서 나오지 뭐.
(서울일반노동조합 김형수)
0 붙임자료 : 기로에선 한국노총식 합리적 노동운동
참세상 김용욱기자
믿었던 정부에 ‘하박상쪽박’ 찬 한국노총
노동조합의 운명을 가른 2009년 11월 30일
2009년 11월 30일 새벽, 노조법 개정논의에 항의하며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점거 농성 중이던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농성장에서 몇 시간 사라졌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인 오후 1시 30분, 장석춘 위원장은 한국노총 지도부와 국회 정론관에 섰다. 장석춘 위원장은 기자들 앞에서 대국민 담화문을 읽어 내려갔다. 담화문 내용은 한 마디로 한국노총의 합리적 노동운동 노선에 따라 투쟁은 접고 대화와 타협으로 노사정 합의를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장석춘 위원장은 이날까지 한나라당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정책연대를 파기하고 총파업 돌입을 선언하겠다고 엄포를 놨던 터다. 당시 장 위원장의 전격적인 대국민 담화와 협상 선언은 노동계 전체에 엄청난 억측을 낳았다. 항간에선 장 위원장이 사라진 새벽 동안 한나라당 지도부를 만나 뭔가를 주고받은 것 아니냐는 소문까지 떠돌았다.
4일 뒤 노동부와, 경총, 한국노총은 노조법 개정안의 토대인 1204노사정 합의안을 내놓고 손을 맞잡았다. 한국노총 내부는 들끓었다. 복수노조 문제와 노조전임자 문제를 전부 재계에 유리하게 합의해줬다는 비난으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지도부 성토가 이어졌다. 한국노총 산하 연맹들과 지역본부장들의 지도부 사퇴, 노사정 합의 폐기, 한나라당 정책연대 파기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나 장석춘 위원장은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가 한국노총에 유리하게 결정 날것이라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총사퇴 요구를 봉합해냈다. 한국노총 위기는 여기서 멈추는 듯했다. 지도부가 가장 강하게 믿었던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통해 정치적으로 한국노총 주장이 먹혀드는 것 같은 착시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임오프 한도가 올해 노동절 새벽 강행처리 되고 산하 금융노조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착시효과는 끝났다. 한국노총이 막판 협상에서 조차 정부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났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태기 근심위 위원장은 한 목소리로 4월 30일 자정께 2차로 낸 공익위원 조정안에 장석춘 위원장과 의견 접근이 있었다며 노동계의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2차 조정안을 재계도 거부하자 공익위원들이 재계와 한국노총의 의견을 담아 최종안을 강행처리했기 때문에 의견접근이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모두 이 2차 조정안을 거부하기는 했지만,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이 2차 조정안에 일정 긍정적인 의사를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노동계를 싸잡아 의견접근을 이뤘다고 주장한 것이다. 투쟁력이 뒷받침 안 된 협상은 큰 파고를 일으키지 못하고 의견접근이 이뤄졌다는 주장 속에 강행처리 됐다.
합리적 노동운동 노선, ‘하박상쪽박’으로 귀결
한국노총이 철석같이 믿었던 한나라당 정책연대는 타임오프 논의과정에서 아무 힘이 되지 못했다. 대화와 타협, 양보교섭, 노사상생으로 상징되는 한국노총의 합리적 노동운동은 타임오프 한도 결정으로 파탄에 이르렀다. 합리적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생존권이 침해당해도 대화와 타협을 기초로 파업보다는 대외 이미지 제고와 다소 양보를 통해 일정한 실리를 얻겠다는 노선으로 요약된다.
2008년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의 해외자본유치 활동과 2009년 노사민정 대타협 주도, 노조법 개정안 노사정 합의, 2010년 타임오프 협상을 이끌었던 합리적 노동운동은 재계와 정부의 찬사를 받았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과 쪽박이었다. 이는 IMF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담은 노사정위 합의안을 수용하면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노선’의 실패가 부른 뼈저린 기억과 비슷하다. 민주노총은 이때부터 사회적합의주의 폐해를 깨닫고 노사정 합의체 참여엔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투쟁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한국노총이 그나마 실리라도 획득했다면 쪽박을 차는 일은 없었겠지만 노동절 새벽 통과된 타임오프 한도는 그마저도 정부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실리를 취할 힘은 정책연대로도 부족했음이 드러났다. 김태기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장은 타임오프 한도의 기준을 ‘하후상박(소규모 노조엔 전임자 수를 후하게 대규모 노조엔 박하게)’ 원칙으로 정했다고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하박상쪽박(소규모 노조에도 박하고 대규모 노조는 아예 쪽박을 찬)’ 격이었다.
한국노총의 해외자본 유치활동은 노동조합의 과격한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파업이나 단체행동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외국자본에 보여줘야 했다. 이는 헌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의 포기로 이어진다. 2009년 노사민정 대타협도 임금양보와 무파업 선언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였지만, 임금은 임금대로 까이고 구조조정은 구조조정대로 당해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당시 노사민정 대타협 참가를 반대한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한국노총은 투쟁할 능력도 안 되고 투쟁하는 지도부도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이미 한나라당과 한 몸이라 노사민정 대타협에서 고용과 임금문제를 모두 내주고 악용만 당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노총의 이런 행보 속에 한나라당과 3년 여간 이어온 정책연대는 일부 지도부의 정치권 줄타기 통로가 됐고 뒤통수와 퍼주기의 온상이 됐다는 내부 비난의 목소리까지 나왔다. 한국노총은 자신들이 불리할 때마다 지역 노사민정 협의체 참여 중단,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를 선언했지만 정치권 줄타기 통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금융노조는 정책연대에 목 맨 한국노총 지도부에게 “한국노총은 정부와 한나라당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면서 “ 정책연대의 댓가는 전임자 반토막과 노동조합 말살로 귀결 되었을 뿐”이라고 정책연대의 즉각적인 파기를 촉구했다.
자기희생의 거룩한 결단, 그 뒤를 따라오는 배신
한국노총은 정부와 재계에 대한 합리적 타협의 후과로 매번 찬사와 배신을 번갈아 받아 왔다. 2009년 2월 25일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대강당에서 열린 한국노총 대의원 대회는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에 대한 찬사로 가득 찼다. 대회에 참석한 재계, 정부, 여당 정치인 등 외빈들은 한 목소리로 2.23 노사민정 대타협을 이끌어낸 장석춘 위원장에게 찬사를 쏟아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이번 노사민정 대타협은 한국노총 위원장님의 노력이 컸으며 대의원 여러분이 대승적 견지에서 협력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찬사의 말을 전했다. 축하의 바통을 이은 당시 이영희 노동부 장관도 “장석춘 위원장과 한국노총 임원의 지도력과 대의원의 노력과 협력으로 대타협이 가능했다. 지난해 장석춘 위원장님이 취임한 이후 외국 투자 유치에 앞장서는 등 대화와 협력을 통한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이끌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날 대의원 대회엔 여당대표도 참석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도 “경제위기에 가장 어려운 근로자들이 대타협으로 자기희생의 거룩한 결단을 내린 것에 감사한다”며 “여러분의 소망인 전임자 문제,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노총과 정책 협의회 등을 통해 한국노총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해결하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하겠다”고 말해 전임자 문제엔 한국노총에 손을 들어주겠다는 식의 발언도 곁들었다.
그러나 노사가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던 노사민정 합의는 이날 바로 휴지조각이 된다. 2009 대의원대회가 있던 날 오전 한국노총과 함께 대타협을 선언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0대 그룹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기로 결정했다"는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 합의를 발표했다.
한국노총은 즉각 반발하고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전에 초임 삭감을 들고 나온 것은 대타협의 합의정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도발이 아닐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한국노총의 반발은 노동조합의 일방적인 고통분담 분위기를 막지 못했다. 정부는 공공기관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대졸초임 임금삭감 등의 정책으로 단기적이고 질 낮은 일자리 대책만 쏟아냈다. 이는 결국 한국노총 내 일부 공공부문 노조의 반발로 이어지기도 했다. 금융노조도 노사민정 대타협을 강하게 반발했지만 한국노총은 내부 비판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노동부도 한국노총을 이용한 노사민정 대타협의 여세를 몰아 양보교섭과 임금동결 분위기를 이어갔다. 노동부는 지난해 내내 양보교섭의 성과를 지속적으로 홍보했다. 올 1월 13일 노동부가 2009년 노사 양보교섭·협력선언과 100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교섭 타결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양보교섭·노사협력선언은 6,394건으로 2008년 2,689건에 비해 2.4배 증가했다. 노동부는 “산업현장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 양보교섭과 협력선언은 크게 증가하였고, 협약임금 인상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특히, 노사가 자발적으로 고용유지, 임금동결·반납, 무파업, 기업내부 유연성 증대 등을 약속한 양보교섭이 3,722건으로 전체 58.2%를 차지해 전년에 비해 32배 이상 급증했다.
이런 결과를 예상한 한국노총은 정부-재계-한국노총이 함께 개최한 2009년 6월 4일 노사민정 합의 100일 평가 토론회에서 지도부의 입을 통해 강하게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당시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토론회 축사에서 "솔직히 왜 대타협을 했는지 착잡하다"며 "정부가 노사민정 합의정신을 위반하고 공기업 초임을 삭감했다. 내년엔 전쟁이 온다"고 경고했다.
이날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도 "노사민정 합의이후 대졸초임삭감, 공기업 초임 삭감과 구조조정, 공기업 단협에 대한 감사원의 직접적 개입은 위기 극복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합의에 참여한 한국노총이 움직일 여지를 없게 하고 조직원에게 비난을 받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성토했다.
노동기본권 강탈당했어도 정책연대 목매는 한국노총
개정 노조법 시행령이 확정 된 후 2010년 3월 10일. 한국노총 창립 64주년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도 장석춘 위원장의 노조법 노사정 합의 결단에 대한 재계, 정부, 정치권의 찬사가 또 쏟아졌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한국노총은 일부 노동계의 무책임한 투쟁 돌입보다는 실질적인 대화를 중시하고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대국민 선언 등을 통해 노사정 합의를 주도한 바 있다”면서 “무엇보다 장위원장의 포용력과 리더쉽이 중요했다. 2010년에도 한국노총이 한국경제를 담당하는 한축으로써 그에 걸 맞는 책임과 역할을 다하도록 힘을 모아주기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도 노조법 결단을 축하하고 “한나라당에 심부름을 시키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도 “이번 과정을 통해 한국적 노사상생 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해준 장석춘 위원장과 지도부 결단에 대해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찬사를 받았던 ‘지도부의 결단’은 지도부 천막농성과 총사퇴 요구로 돌아왔다. 심부름을 시키면 열심히 하겠다던 한나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타임오프 한도를 다시 정하겠다는 모양새만 취하고 실제 행동엔 나서지 않고 있다.
합리적 노동운동 이후엔?
장석춘 위원장은 이번에도 정책연대 파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노동부장관 사퇴와 정책연대 파기 예고 선언에 6일 오전 김무성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가 긴급하게 장석춘 위원장을 찾아왔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던 장석춘 위원장은 농성장을 벗어나 한국노총 사무실에가서 기자들과 함께 김무성 대표를 맞았다. 이날 오후 3시 경찰은 한국노총 농성천막을 철거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저녁 8시 30분께 국회 앞 한국노총 지도부 단식 농성장을 다시 방문했다. 두 번째 방문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한국노총을 만나 직접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전하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방문을 놓고 한국노총은 “김무성 대표가 ‘한국노총 출신 의원들과 잘 협조해서 한국노총이 수용할 수 있는 문제로 반드시 해결해 보겠다’며 ‘원내대표 되고 외부와 처음하는 약속인 만큼, 진정성을 알아달라. 2~3일 내에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여전히 정책연대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김무성 대표도 원내대표로써 첫 시험무대인 지방선거에서 한국노총이라는 변수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한나라당이 얼마나 한국노총의 요구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대통령은 9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노사개혁도 중요 과제 중 하나”라며 “이번 노동법 개혁을 통해 선진국형 노사문화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타임오프 한도 강행처리에 힘을 보탰다. 정책연대를 하고 있는 한국노총조차 정부주도의 노사관계 재편에 반발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한국노총 소속 산별연맹의 여러 관계자들에 따르면 더 이상 정책연대로 이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애초 풀릴 문제면 날치기 처리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다. 이렇듯 현 정부의 노사관계 선진화 자체가 노동기본권을 후퇴를 기본으로 하고, 심지어 근로기준법까지 후퇴 시킬 계획을 세운 상황에서 현재 한국노총 식 노동운동이 할 수 있는 것은 퍼주기 협상을 통한 지분 유지 밖에 남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공공부문이든 사기업이든 노사관계 전반을 들여다보면 이명박 정부는 합법적 노동조합 활동 까지도 전부 무력화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노동기본권 자체를 부정하고 모습도 보이고 있는 MB정권과는 타협을 하면 할수록 노동조합이 더 많은 것을 내줘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노총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투쟁력을 중심에 둔 노동운동을 펼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정책연대의 한계가 완전히 드러났고, 노동기본권과 노동조합 말살을 현실로 체감하는 상황에서 한국노총의 운동노선에 변화가 없다면 정권의 2중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는 높아지고 있다.
한국노총은 애초 대의원 대회에서 노조법 개정 투쟁을 위한 총파업과 정책연대 파기를 결정한 바 있다. 현 국면에서 대의원 대회 결정 사항과 다른 투쟁 전술로의 전환, 투쟁 실패, 협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라는 현장의 요구는 한국노총도 운동노선과 조직운영의 혁신이 새로운 과제임을 알려주는 징후로 읽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