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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가천 의대 1학년 2학기 <언어 전략(지도: 김슬옹 교수)>강의
우리들의 생각 모음
자서전조
김윤주
김창희
김민상
안병근
김성준
이수복
박예민
목 차
1. 자 서 전
2. 의약 분업에 대한 칼럼
3. 의사와 관련된 문학과 영화에 대한 감상문
4. 의사들의 용어사용에 대한 생각(조별)
5. 6행시
6. “몸”에 대한 생각
1. 자 서 전
스물일곱에 쓰는 자서전
담당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김윤주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10
낸 날 짜 : 1999. 8. 30
저는 1973년 6월 20일에 한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에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항상 성실하시고 모범적이셨던 두 부모님 덕택에 저는 화목한 가정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랄 수 있었으며, 착한 두 동생들은 저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고마운 존재였습니다.
부산에 있는 사남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저의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으며, 그 뒤 건국중학교와 혜광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많은 훌륭한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점차 사회와 나란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성숙된 청년으로 자라났습니다.
학창시절의 주된 관심은 친구와 공부, 그리고 스포츠였습니다.
늘 스포츠를 통해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축구를 가장 좋아했으며, 이 때의 친구들은 모두 제 인생의 동반자들이 되었습니다.
그 뒤 꿈많던 고교생활을 뒤로 한 채,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여 고려대학교에 입학, 경제학을 전공하였습니다.
미래의 정치가란 큰 포부를 가지고, 저 자신의 인격수양과 올바른 사회 인식을 위해 여러 다양한 모임에 참석하여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여러 아르바이트를 경험하며 험란한 사회적 단면을 느껴보기도 하였습니다.
2학년을 마친 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1994년4월 17일 훈련소에 입소하였고, 그 이후로 18개월동안 단기사병으로 근무하였습니다.
소속부대로 배치된 후 대대 인사행정병으로 보직을 받고 일하게 되었는데, 의무복무 기간이었지만 남자로서 강인한 정신력을 기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으며, 부대에서의 행정경험은 간접적인 사회체험으로 연결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대 후 복학하여 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고등고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세 지향적이고 획일적인 공부는 곧 저를 회의에 빠뜨리게 했고, 고심 끝에, 보다 직접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의사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인생에서의 전환기를 맞이 하였습니다.
첫째 목표는 좋은 여건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주위를 한번 돌아보아야 할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받았던 사랑을 주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주위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할 수 있는 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내가 쓴 나의 관한 첫 번째 보고서
담당 선생님 : 김슬옹 교수님
이 름 : 김창희
학과 / 학번 : 가천의과대학 의예과 1학년/9901-11
낸 날 짜 : 99년 8월 30일, 파일이름:9901-11.hwp
난 오늘 하루종일 내 입속에서 버적거리는 패배의 잿가루를 곱씹었다. ‘자서전’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내 스물두해를 되돌아 볼 때 내 머리속을 맴도는 기억은 내가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사이에서의 끊임없는 방황이었다.
작년 가을 나는 내가 해야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사이에서 마지막으로 고민을 했고 그 결과 지금의 위치에 와 있었다. 고등학교 마지막 무렵 나는 남들이 하는 것처럼 입시원서를 썼고 새칭 명문대학은 아니지만 어렵지 않게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관심을 쏟았을 뿐 해야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못한 것에 후회를 하며 다른 대학에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너무나 매달려 있었고 다시 방황을 하게 되며 다른 대학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그후 3개월여를 고민한 끝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하고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섰다. 처음 내가 스물두해 동안의 방황 끝에 첫번째로 내린 결단이었다.
77년 봄 나는 어느 군인의 막내 아들로 새상에 태어 나게 된다. 그 후 초등학교 4학년까지 여느 군인 가족 처럼 매년 이사를 다니게 된다. 아버지가 다른 일을 하시며 우리가족의 이사는 끝났다.
내 학창시절은 평범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다. 졸업앨범을 뒤져보면 어 이런 아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져 평범한 아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가장 생각없이 보낸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 결과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을 네 번씩이나 옮기게 된다.
내 대학시절은 끊임없는 방황으로 요약될 수 있지만 동시에 끊임 없는 알아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대학 초년 병때 내가 얼마나 사회에 대해 바른 면만을 보고 살아왔나를 알게 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대학생들 벌이는 소위 운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무섭게 만드는 가도 배웠다. 작년에는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한 해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 대학과 야구 시합을 가져 보았고 승부에 짜맀함과 동시에 그 승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이 필요한 지도 알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손을 이용해서 하는 것에 무척 재미를 붙였다. 말을 모르던 시절에도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했고, 중학교 1학년때까지 한 미술은 내게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중학교때 나는 미술에 대한 열정이 없음을 알고 다시는 붓을 잡지 않았지만 지금도 하나 하나의 선이 만나 표현되던 내 아른다운 그림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유달리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동안 살아오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도 좋안한다. 그동안의 외로움에 나도 서서히 지쳐가나 보다.
두서없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섰지만 아직도 나는 나라는 동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때로는 무척 응큼하고 때로는 무척 심각한 나를 드러내기에는 아직 수양이 부족한 듯 싶다.
내 무덤앞 비명에 ‘열심히 살다 가다’라는 말을 남기길 바라며 여기서 내가 쓴 나에 대한 보고서라는 낙서 제 1부를 맺는다.
자 서 전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김민상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07
낸 날 짜 : 1999. 8. 30.
나는 지금까지 약 20여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는 동안 나의 인생관이 확고해 지는 것을 느낀다. 바로 양심, 정직을 바탕으로 한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은 마음 속에 항상 간직되어 언제든지 표출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제든지 표출될 수 있다는 말은 융통성도 함께 발휘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비록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어린시절을 시골에서 보냈기 때문에 동네 친구들과 모여 과일 서리를 자주 다녔었다. 이런 것은 양심을 어긴다는 것만 보아도 위에서 말한 내가 추구하는 것에는 분명히 모순이다. 하지만 어린시절이라는 것과 장난삼아 했다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면 이것은 융통성으로 무마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우리가 서리하다가 잡혔다고 해서 그 피해를 입은 사람은 우리를 경찰서로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 과일 주인 또한 우리가 심심풀이로 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이해해줄 수 있는 충분한 융통성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서로간에 느낄수 있는 무언의 암시가 있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서리가 아이들의 장난으로서 일반화되어 왔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아직은 정이 있는 시골에서는 통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것은 서로를 이해할 때 생기는 경우이고 이해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 텔리비전이나 라디오 신문 같은 것을 살펴보자. 누가 비자금을 받아 구속되었다는 둥, 누구를 살인했다는 둥, 사기죄를 저질렀다는 둥 이러한 얘기가 예전보다 더욱 많이 떠돌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왜 이런 짓을 저질러 주위의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다시 양심, 정직이란 단어와 과연 자기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했는가 하는 반성을 해보아야 함을 느낀다. 이들이 진정으로 이러한 단어와 문구를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차마 그런 일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양심을 뒤흔드는 수많은 유혹이 그들에게 그런 일을 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혹이 강할지라도 자신의 양심을 져버릴 수 없다는 확고한 자기믿음성이 있다면 방송매체에서 나오는 안 좋은 소식을 거의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요즘들어 특히 정치인들에게 심하다. 나도 전라도 사람으로서 5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이가 당선되자 환호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김대중이가 과연 양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더욱 가지게 된다. 그에게도 많은 유혹이 있는데 그는 그런 유혹들을 물리칠만한 충분한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의문사 특별법 제정을 포함하여 8․15사면에서 보여주었던 김현철 사면과 준법서약서를 강제하여 양심수 발목잡기, 국가 보안법의 고수 등을 볼 때 우리나라의 인권 문제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볼 때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김현철 사면만 보더라도(설상 영삼이에게 발목을 잡혔다지만) 국민대다수가 반대하는 일을 여론을 무시하면서까지 해야할 만큼 양심을 저버릴 수 있단 말인가? 김대중이 뿐만 아니라 여당의 의견은 무조건 반대하는 이회창이라든지 권력앞에서 기를 못 펴는 한영애 같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정치인들, 돈 밖에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과연 우리는 양심이 살아있음을 언제 어디서 느끼게 되는가? 나는 마음이 허락하는 양심(서리와 같은 것)은 저버릴 수 있지만 허락치 않는 양심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해 왔다. 유치원에도 오기 전부터 무엇을 먹다가 나온 휴지같은 것도 차마 버릴 수 없어 주머니에 넣어 둔 것이 어느새 15년정도 되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해도 내 양심이 허락치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간단한 다른 예로 계산을 할 때 거스름돈을 더 받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몰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되줄려 줄 테지만 양심이 없는 일부 사람들은 이런 하찮은 것에서부터 자신을 저버려 끝내는 더욱 크게 자신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된다. 이러한 부끄러움도 재빨리 인식하여 고쳐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부끄러움이 대범함으로 변하여 사회의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나는 아직은 나만의 결코 허물을 수 없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는 믿는다. 이러한 양심을 바탕으로 앞으로 겪을 많은 일들을 남들에게 보란 듯이 확고한 의지로서 밀고 나갈 것이다.
자 서 전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박예민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16
낸 날 짜 : 1999.8.30.
첫 언어 전략강의 숙제로 자서전을 쓰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글을 많이 써 온 편이었다. 하지만 자서전이란 제목으로는 글을 한 번도 써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척 당황스럽고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 보니 자서전이 뭐 별다른 것이겠는가? 바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의 가치관의 변화 또는 사고방식에 대한 것이 바로 자서전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가치관을 되돌아 보고 비판해 보고 싶다.
너무 어렸을 때에는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에는 중학교 시절부터 가 영향을 많이 미친 것 같으니 그 전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나는 내가 사는 집 부근의 동네 중학교에 다녔다. 그 동네는 계층이 다양했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때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우리 중학교는 계층이 워낙 다양했기 때문에 끼리끼리 편이 나누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어느 한 쪽에만 끼이지 않고 두루두루 친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공부 못 하는 아이, 사고 많이 내는 아이, 가출 많이 하는 아이, 사람들 나름대로 배울 점이 있었다. 어떨 때에는 이런 아이들이 더 편하고 좋을 때도 있었다. 중학교 때에는 여러 종류의 아이들과 친해짐으로서 많이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중학교때에 중요한 다른 하나는 가장 소중한 친구를 만났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여러 부류의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느라 특별히 친한 사람은 없었다. 이 친구 말고는. 이 친구는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 친구를 굉장히 좋아했다. 하지만 연락이 끊긴지 1년 정도 되었다.
그리고 나는 1995학년도에 경북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등학교시절이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것 같다. 그리도 또 가장 중요한 시기였던 것 같다. 중학교는 여러 계층의 학생이 있었던 반면에 고등학교는 한 계층뿐이었다. 공부 잘 하는 모범생집단. 각각 장단 점이 있었다. 중학교 때에 여러 아이들을 만나보는 것도 재미있었고 고등학교 때의 생활도 꽤 괜찮았다. 전교생 150명, 한 반에 30명, 그것도 3년 연속 같은 반, 전원 기숙사 생활. 굉장히 한정된 생활이었다. 그 생활도 나름대로 재미있었다. 고등학교때는 입시 준비로 가장 힘이 들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때에는 무슨 일을 해도 입시문제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쉬운 점도 많지만 입시란 조건안에서 흥미진진한 일도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추억도 더욱 많은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입시부담으로 마음졸여하면서도 시험기간에 친구와 우정어린 대화를 나누느라 밤샌 경우도 있고, 밤에 사감선생님 몰래 담타넘고 기숙사를 뛰쳐나와 교문앞 ‘개과천선’술집에 가서 라면을 먹기도 하였다. 힘든 가운데 보낸 생활이기에 더욱 추억도 많고 고등학교친구들도 더욱 더 좋은 것 같다. 그리고 힘든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면서 나의 가치관도 어느 정도 확립된 것 같다. 모두들 그랬겠지만 고등학생에게는 입시가 가장 큰 문제이기에 입시로 인하여 힘든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나는 그런 시기를 보내면서 나만의 좌우명을 확립하였다. 어떤 일로 인하여 내가 힘이 없고 작아보이거나 못난 사람으로 여겨질지라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다른 것은 없다. 단지 나는 소중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다름아닌 자신을 믿으면은 이루지 못할 일이 없는 것 같다.
내나름대로 글을 써 보았는데 자서전 형식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처음 써 보는 것이므로. 이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지나간 일에 대해서 반성도 해 보았다. 자서전의 의미는 바로 이것인 것 같다. 글을 얼마나 잘 쓰느냐가 아니고 글을 통해서 자신을 반성해 볼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자서전을 쓸 때에는 더욱 더 자신있게 글을 써 보고 싶다.
자 서 전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이수복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29
낸 날 짜 : 1999.8.30
자서전이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 위대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라면 그 사람들이 이룩한 업적같은게 쭉 나와있는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같이 보통사람의 자서전이면 뭐 특별한건 없고 그냥 자기 소개와 비슷할 것 같다. 교수님한테 이런 말하면 않되겠지만 나는 솔직히 옛날부터 글쓰기를 싫어했다. 학교에서 국어시간에 숙제로 뭘 써오라고 하면 어쩔수 없이 글자를 맞춰써서 내기는 했지만 내가 원해서 쓴 글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닐 것이다. 친구한테 쪽지나 e메일로는 써 봤어도 진짜 편지는 써 본적이 없다. 큰 문제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 나는 글 읽는것도 싫어한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은
내가 제목을 다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적다. 만화책도 싫어한다 왜냐하면 만화책도 글이 적지 않게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때 문제풀때도 문제 읽기 싫어서 그냥 풀다가 맞는거 고르라고 했는데 틀린거 골라 틀리기도 엄청 많이 했다..장차 나의 미래를 생각해 볼 때 큰 문제다..나는 신문도 읽지 않는다. 글이 많이 있기 때문이고 더군다나 한문도 많기 때문이다.. 난 한문을 정말 싫어한다. 내가 고등학교때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일어와 중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한문을 많이 접했는데공부하면 할수록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무조건 외우고 하는게 정말 맘에 들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이번 기회에 수업시간에 잘 들어서 글씨와 좀 더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한다..이제 내 성장과정을 좀 얘기할까 한다. 나는 도림초등학교-대영중학교-명덕외국어고등학교를 거쳤다. 학교다닐 때 공부도 잘했고 부모님 크게 걱정끼쳐 드린적도 없고 그렇다고 잘한 것도 없고 그냥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아버지가 장남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했는데 우리엄마가 첫 번째에 딸을 낳고 두 번재도 딸을 낳았다..그래서 엄마에게 들었는데 나 임신했을 때 엄마가 아들낳는다고 미꾸라지 살아있는걸 막 먹고 아들낳는다는건 다 했다고 했다.(았!! 내 몸속엔 미꾸라지의 피가?) 그래서 어렸을때부터 알게 모르게 누나들보다 엄마 아빠가 날 더 챙겼던거 같다..어렸을 때 내가 동네에서 장난감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그리고 옛날에 보통 아이들이 게임기 하나 가지고 있을 때 나는 우리집이 부자도 아닌데 게임기도 4-5개 가지고 있고 그랬던걸 생각해보면 내가 좀 편애를 받긴 받은거 같다....어렸을 때 난 굉장히 개구장이였다...맨날 다치고 사고도 많이 쳤다. 동네에 장독대장사가 오면 내가 가서 장독대 다 부시고 제사상 차려놓으면 내가 가서 다 집어 먹고 그런짓을 많이 했다..한번은 옥상에서 뛰어내렸는데 바보같이 코로 착지를 하는 바람에 코피가 너무 많이 나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 여파는 아직도 내 몸속에 남아있다. 겉으로보기엔 튼튼해 보이지만 난 보통사람보다 혈소판 수치가 적다. 그래서 피가 한번 나면 잘 멈추지 않는다. 혈소판이 아주 적으면 혈우병이라고 하는데 난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생물시간에 혈우병에 대해서 배울 때 좀 뜨끔했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의사가 그러는데 밥 잘 먹고 큰 사고만 당하지 않으면 수치가 정상으로 올라간다고 하니 내가 밥을 많이 먹는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어거지이고 밥은 맛있으니까 많이 먹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음..난 운동을 아주 좋아한다..농구도 잘하고 축구도 잘한다. 고등학교때 체육대회에 항상 반 대표로 나갔고 수능보기 며칠전에도 점심 저녁시간에 꼭 나같은 아이들과 나가서 운동을 했고 밤10시에 자율학습 마치고 어두운 운동장에서 옷벗고 축구도 많이 했고 우린 고등학교때 그걸 누드축구라 부르며 여자 아이들에게도 축구시합을 하자고 했지만 단 1번도 하지 못했다. 대학교에서도 체육관에서 고등학교대보단 덜 하지만 농구를 하고 있다 고등학교때는 나만큼이나 운동에 적극적인 아이들이 많아서 더 했던거 같다 지금은 고등학교때만큼 운동에 열성적인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가끔한다. 더군다나 담배피워서 그런지 체력이 많이 떨어져서 고등학교때는 별명이 농부여서 농부답게 몇시간씩 쌩쌩하게 농구,축구 하곤 했는데 지금은 30분만 뛰어도 힘들어서 죽기 일보 직전이다. 나의 체력이 떨어진거는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까부터 나한테 문제가 너무 많다. 문제아다..우하하하하 더 자세한건 앞으로의 글들에 쓰기로 하고 지금 새벽 5시라서 잠을 자야겠다. 그럼 20000
자 서 전
담당 교수님 : 김슬옹
이 름 : 김성준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09
나는 글쓰기에 별로 취미가 없다. 고등학교때 단지 국어보다는 수학이 낫겠다는 이유로 이과를 선택한 나이다. 더구나 자서전이라는 것을 별로 오래 살아보지도 않은 내가 쓰려고 하니 앞이 막막할 뿐이다. 보통 자서전이라고 하면 훌륭한 일을 한 위인들이나 쓰는 것인 줄로 알고 있다. 물론 내가 자서전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교수님께서 유언, 자서전 등을 과제로 내 주신 것으로 보아 이런 글도 한 번 써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짧은 글솜씨로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뭐, 자서전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쓸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일을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지금까지의 나의 성장 과정에 대하여 적을 것이다. 나는 1981년 2월 7일에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쭉 마산에서 살다가 대학 때문에 처음 위쪽으로 올라 와본 셈이다(창원에서 산 적도 있지만 창원, 마산이 아주 가깝기 때문에 마산에서 계속 산거나 마찬가지다). 어렸을 땐 시골에서 살았는데 그땐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다. 동네가 좁다 보니(동네 이름이 달동네이다) 애들이랑 다 친해서 다같이 재밌는 놀이를 하고 놀수 있었다. 대표적인 놀이로는 진놀이. 말치기. 망구 등등 수없이 많다. 그리고 난 어렸을 때 하도 덤벙거려서 사고도 많이 났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렸을 때 진짜 촐랑거리고 덤벙댔었다. 5살땐가 혼자 까불다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밑으로 엎어졌는데 하필 깨어진 플라스틱 조각에 얼굴이 찍혀서 눈 바로 옆이 찢어졌었다. 조금만 옆에 찔렸어도 실명할 수도 있었다. 그 흉터는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진짜 위험한 사고도 한 번 있었는데, 그건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이다. 주위를 살피지 않고 차도를 건너다 사고가 났었는데 승용차랑 부딪혀서 5m이상 나가떨어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운전자가 나이 지긋한 아저씨라서 속도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음으로 좀더 성장한 후의 얘기를 해 보겠다. 나는 구암 유치원-온천 국민학교-중앙 국민학교-합포 중학교-마산 고등학교를 차례로 나왔다. 학교 다닐 때 나는 특별히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잘 했었지만...... 그냥 공부에 뛰어난 재주가 있는 것이 아니었단 말이다. 그렇다고 문제아도 아닌 평범한 아이였다.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찍히지도 않는 그런 아이였다. 부모님은 지금도 내 말이라면 곧이곧대로 믿는다. 그렇게 평범하게 지금까지 지내왔기 때문에 별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인다면 난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다. 지금도 학교 농구동아리에 들어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고등학교때도 체육대회 같은 것이 있으면 반 대표로 나가곤 했다. 그리고 반대항 농구대회에서 준우승 한 경험도 있다. 트로피는 내가 가지고 있다. 묵찌빠로 탈환한 것이지만....... 또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같이 짬만 나면 운동장에 나가 놀았다. 아무리 더워도 나가서 땀을 뻘뻘 흘리고 놀곤 했다. 물론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고 3때조차 그렇게 놀았다. 그 덕분에 수업시간이나 야자 시간에 졸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뛰고 싶은 걸 어찌하겠는가? 그리고 난 책읽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만화책은 제외하고. 반대로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잠자는 것.......
이 정도로 내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별로 쓸 말이 없다. 간단한 내 소개 쯤은 될 수 있을 거 같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글로 남길 만한 훌륭한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나중에 진짜 자서전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2. 의약 분업에 대한 칼럼
의약 분업에 대한 찬성의견 ( 칼 럼 )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김윤주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10
낸 날 짜 : 1999.10.25
파일 이름 : 990110.hwp
보건복지부는 내년 7월부터 의약분업을 실시하기로 함으로써 수십년간 계속 되어온 의약분업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내년 7월부터 모든 병,의원은 약을 조제할 수 없으며, 따라서 종합병원의 경우 병원내의 약조제실을 폐쇄하여야 한다. 단, 입원환자나 응급환자는 예외적으로 병원 자체내에서 약을 투여할 수 있다. 환자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에 의해서만 약을 복용하여야 하며, 의사의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서 약을 조제하여야 한다. 특히 항생제나 주사제인 경우도 모두 포함되며, 이때에도 감기약, 드링크류 등 기초 의약품에는 예외조항이 적용된다.
어떻게 보면 간단할 것 같이 보이는 위의 조항을 실행하는데 무려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익집단의 반대, 정치권의 이해관계, 정부의 무책임한 졸속행정 등으로 인해 우리 국민의 건강이 외면당한 채 세월만 흘러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 국민의 항생제에 대한 내성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고, 왠만한 약으로는 낫지 않는 감기로 고생하는 국민의 숫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의사의 처방없이 약을 언제든지 손쉽게 구입할 수 있었기에, 그에 따른 부작용도 이미 한계 수준을 넘은 상태이다. 이번 의약분업의 시행으로 어느 정도 이러한 문제점들이 개선되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뒤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번 결정이 국민 건강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다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하지만, 의약분업의 시행이 그리 간단치 만은 않을 것이다. 벌써 병원의 경영악화를 우려한 대형 종합 병원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으며, 일단은 환영을 표시한 국민들도 실제로 내년에 이 제도가 시행되면 그 번거로움으로 인해 불만을 토로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원만한 제도의 시행을 위해서는 많은 주의가 요망된다. 각 이익집단의 양보도 물론 필요하지만, 우리 의료계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라도 정부가 의료계에 대한 적절한 지원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의료보험수가는 물가 안정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정치적 논리로 흐르다 보니 우리 나라 의료환경을 낙후시킨 측면도 없질 않다. 이제 우리 나라도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안정되었기에, 의료보험수가의 현실화를 통한 의료의 질적향상도 고려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또한, 국민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정부가 맡아야 할 몫인 것이다.
뒤늦게나마 국민을 위한 정책이 실시되는데 대해 환영하며, 의약분업의 성공적인 정착을 기대한다.
‘의약분업 찬성’ 칼럼
담당 선생님 : 김슬옹 교수님
이 름 : 김창희
학과 / 학번 : 가천의과대학 의예과 1학년 9901-11
낸 날 짜 : 10월 25일 1999년
파일 이름 : 의약분업찬성칼럼.hwp
한약 분쟁때 약사와 한의사와의 밥그릇 싸움을 경험한 우리는 과연 이번 의약분업 시행이 또다른 한약 분쟁이 되지나 않나 하는 우려가 앞선다. 많은 병원과 약국 그리고 의약분업으로 생기게 될 부작용들을 우려하는 많은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내년 7월 1일부터 의약분업 제도를 본격 실시키로 보건복지부가 발표했다. 새로운 정책에는 그에 따르는 부작용과 긍정적인 측면이 상존하지만, 일단은 오랜 산고 끝에 시행되는 의약분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보건 복지부 시행안대로라면 종합병원, 치과의원, 보건소등 모든 의료기관의 외래환자들에 대해 의사는 처방만 하고 치료제 구입 및 조제는 약국에서 하게 되며, 약국에서도 조제약을 지어 먹으려면 우선 병원을 찾아 의사의 진단을 받고 처방전을 받아야 한다. 이대로만 시행된다면 의약품 오남용에 따른 피해를 줄일 수 있고, 더물어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도 줄어 들게 될 것이다. 이미 알려진대로 우리나라의 약물 오남용 실태는 심각하다. OECD국가중 우리나라 국민들의 항상제등의 내성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특히 폐렴구균등에 대한 페니실린 내성률이 70-77%로 미국,영국,프랑스 등 의약분업 시행 국가의 평균치 (12.4%)보다 휠씬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현재의 병-의원에서는 처방과 조제를 동시에 하기 때문에 일부 항상제와 같은 치료제를 과다하게 사용함으로써 환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는 경우가 허다 했다. 그러나 의약분업은 이를 원천봉쇠 할 것으로 기대된다. 약값을 부풀려 봐야 의사나 병원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약분업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크게 두가지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다. 하나는 의약분업 시행에 따른 약사와 의사의 반발을 최소화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환자의 불편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우선 병원이나 약국은 그들의 수입에 막대한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의약분업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제도 시행에 있어 당사자들이 제도에 시큰등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제도의 올바른 시행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현재의 병원에서는 그들이 조제하고 판매하는 약품의 수입이 전체 수입에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약국에서도 처방전이 있는 약만을 조제해서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의약품 수요의 감소로 금전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정부에서는 위해 그동안 너무나 낮게 책정되 있었던 의료보험수가를 약 30%정도 올릴 전망이다. 병원의 금전적 손실을 보상해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의약분업으로 약국에서의 판매가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는 의약품에 한해서 의료보험단가를 약 40%정도 내려 그 동안 소비자에게 너무나 비싸게 팔리던 의약품가격을 내리도록 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주사제 포함여부와 응급환자등의 문제가 있지만 제도시행과정에서 원만하게 해결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의약분업 시행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일반시민들의 부정적 자세다. 지금은 병원에 들러 치료와 약의 투여를 동시에 받았지만, 내년 7월 부터는 약을 지어 먹으려도,주사를 한 대 맞으려도 병원과 약국을 최소한 1번씩은 들러야 하는 불편을 격게 된다. 더욱이 의료보험수가 조정과 잦은 병원 출입으로 내년에는 4인 가족의 의료보험료가 약 5만 8000원 정도 추가 부담될 전망이다. 지난달 한국 갤럽이 대한병원협회의 의뢰로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런 불편 때문에 응답자의 70.3%가 병원의 외래조제실 폐쇠에 반대했다. 특히 주사제를 의약분업에 포함기키는 것에 대해서는 91.4%가 반대의견을 냈다. 그러나 국민의 금전적 손실은 의약분업으로 기대되는 의약품 수요의 감소로 충분히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냉동 냉장 차광보관등이 필요한 약제나 일반인이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약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병원에서 관장한다. 또 입원환자의 경우도 종전방식을 따르게하였고, 정기적으로 주사맞는 환자들은 주사제 사전처방을 받아 다음 일자에 필요한 주사약을 미리 구입해 병원에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등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 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했다. 그리고 식품의약품청 평가가기준에 따라 약효동등성이 입증된 약품만이 유통되도록 해 약의 품질이 향상될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불편을 대가로 국민은 질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처음 시행하는 제도인 만큼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시행관정에서 어떠한 새로운 문제점이 나올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의 의료서비스 향상이라는 큰 목표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 중 하나가 바로 의약분업입을 알아야 한다.
의학대학원 반대입장(칼럼)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김민상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07
2002년도부터 시행키로 하였던 4+4제를 전면 보류키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의학대학원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던 나에게 참 기쁜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마 보류의 근거도 수많은 반발 세력을 물리칠 뚜렷한 근거가 없었던 탓일 것이다. 물론 의학대학원을 찬성하는 입장은 반발의 입장보다는 적지만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찬성하는 입장을 들어보면 의대생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거의 모두가 전문의를 취득하기 위하여 인턴, 레지던트라는 정해진 과정을 밟는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밟는 의대생들은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고 따라서 의대를 졸업하면 거의 모두 의사가 된다. 물론 의대를 졸업하면 의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지만 의학의 기초분야를 무시할수도 없는 것이다. 의대를 졸업하고도 여러 연구소나 기관에 들어가서 기초분야에 관한 연구를 계속 할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이러한 기초분야의 발전이 매우 미흡하기 때문에 기초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의학대학원을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찬성의 가장 큰 이유라면 반대의 이유는 이처럼 큰 이유들이 더욱 산재하여 있다.
일단은 4+4제에서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4+4라는 말에서 볼수 있듯이 의대 공부를 해야하는 기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먼저 일반대학을 4년 다니고 다음 4년은 의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의대공부를 해야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이러한 설정은 현실성이 부족하다. 가령 이 의학대학원 제도는 미국의 것을 본떳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교하여 보아라. 미국은 군대를 지원해서 가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의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충분히 이 제도를 시행하는데 큰 걸림돌이 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의 6년제 상황에서보다도 2년을 더 공부해야 된다는 것이므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의대의 남학생 비율이 70%를 윗돌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군대 문제는 결코 무시할 만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덧붙여 생각해 보면 공부를 8년동안이나 할 정도면 집안의 경제력이 어느정도 있어야 할 것이다. 돈이 조금이라도 있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의 의대 진학 비율은 높아질 것이고 반면에 경제력이 없는 부류의 사람들은 차마 진학하기를 꺼려할 것이다. 결국은 지금의 상황보다는 머리가 아닌 경제력의 싸움으로 의대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한 다른 문제점을 살펴보면 의대를 가기 위해서 4년제 대학을 의미없이 졸업할수 있다. 단지 의대에 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른 학과에 들어갔는데 앞으로 의대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전공과목을 소홀히 할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의학대학원에서는 일정 이상의 학점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걱정을 불식히킬수 있다고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해서 학과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의학대학원에 입학하려는 학생들로 인하여 입시과열이 현재 고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옮아갈 수도 있다.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의학대학원 제도를 실시하면 현재의 고등학교 입시열이 줄어들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는데 그다지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로 보인다. 현재 많은 대학들이 정원을 조금씩 감축하고 있는 상태이고 BK21에 의하여 많은 학생들이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는 대학으로 빠지려 할 것이고 여기서 다시 입시 과열이 예상된다. 예전의 입시과열이 학과 때문에 발생하였다면 앞으로의 과열은 대학자체를 두고 일어날 것이 예상된다. 결국은 의학대학원 제도가 고등학교의 입시과열을 해소한다는 측면보다는 대학교에서 새로운 입시과열을 일으킬 소지가 더 큰 것이다.
의학대학원 제도는 이러한 큰 문제점 말고도 작은 문제점들이 많이 있다. 정부의 일단 의학대학원 제도를 보류키로 했다는 것에 찬성의 의사를 표하며 이 제도를 시행하는데 있어서 더욱 많은 고심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예과 기간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은 데 차라리 예과 기간을 좀더 의미있고 알차게 보내도록 제도의 수정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약분업에 대한 칼럼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박예민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16
내년 7월부터 의약분업이라는 제도가 실행된다. 이 의약분업이라는 제도를 두고서 의사와 약사,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각각 장단점이 있다. 그런만큼 갈등도 크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장점이 더 크다고 생각이 된다. 그래서 나는 찬성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다. 먼저 의약분업이 시행됨으로서 국민의 의약품의 오남용을 방지할 수가 이싿. 처방과 조제내용에 대해 의사, 약사의 이중점검이 가능해지고 소비자의 의약품 직접 구매가 크게 제한되므로 의약품 오남용이 확실히 줄어들고 약화사고도 감소할 것이다. 또 세계 최고 수준인 항생제 등의 내성률이 크게 낮아져 약효가 회복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 국민들의 폐렴구균에 대한 페니실린 내성률이 70~77%로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인도 등 의약분업 시행 국가의 평균치 (12.4%)보다 훨씬 높은 것도 바로 의약품 오남용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의약분업이 시행되어야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국민뿐만이 아니라 의료기관에 의한 약물 과다사용이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기관이 약을 과다 사용할 경제적 동기가 없어지므로 약 사용량이 줄어들고 약제비 지출이 7~30%감소하게 될 것이다.
약사나 의사라고 해서 다른 학과를 나온 사람이나 대학을 다니지 못한 사람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국민 평균 생활 수준정도의 생활비를 기준으로 할 때 정말 그것보다 못해서 먹고 살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한국의료체계의 여러가지 문제에도 그래도 의사나 약사는 국민들보다는 덜 피해자였다고 생각한다. 의사나 약사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진다고 해도 국민 건강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면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의약분업이라는 좋은 제도가 산적해 있는 한국의료의 모순을 다 해결할 수는 없어도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그렇게 기능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 진정으로 의약분업을 소망하는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의약분업에 관한 찬성안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이수복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29
낸 날 짜 : 1999/10/25
의약분업은 요즘 의학계와 약학계 사이의 논쟁거리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는 예전부터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약도 지어 먹었고 가벼운 증상이 있으면 동네 약국에서 약을 지어다 먹어 왔다. 그러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약을 타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했으며 다시 약을 타기 위해서는 병원에 가야만 하는등 여러가지 불편한 점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의약분업이 타결될 경우 이런 일들은 아마 없어질 것이다. 환자는 처방전을 병원에서 받은 뒤 오랜 시간 기다릴 필요 없이 동네 약국에서도 처방전대로 약을 지어먹을 수 있게 된다. 의약분업의 이점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국민의 의약품 오남용을 방지 할 수 있다. 처방과 조제내용에 대한 의사,약사의 이중 점검이 가능해지고 소비자의 의약품 직접구매가 감소되므로 의약품 오남용이 확실히 줄어들고 약화 사고도 크게 방지할 수 있고, 항생제들의 내성률이 크게 낮아져 약효가 회복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의약분업 시행국가의 페렴구균에 대한 페니실린 평균 내성률이 12.4%인 반면 우리 국민들의 내성률은 70-77%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의료기관에서 약물을 과다하게 권할 필요가 없게 되므로 약 사용량이 크게 줄어들어 환자들의 경제사정에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의약분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의약분업을 반대하는 입장의 주장을 들어 보면 의약분업을 시행할 경우 약사들의 힘이 의사에 비해 이전보다 약해지고 약사들의 수입이 줄어들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경우이기 때문에 약사들중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의약분업을 시행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은 병원은 지금까지 약을 조제하면서 벌어들였던 약 값을 받을 수 없게 되면서 그 만큼의 이익을 다른 곳에서 얻어야 하기 때문에 진료비나 수술비가 이전에 비해서 터무니 없이 비싸질 염려가 있다. 또한 병원과 약국이 짜고서 병원에서 환자들이 특정한 약국에서만 약을 조제하게끔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의약분업을 시행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들은 행정조치를 통해서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정부에서 이런 문제점들은 지속적인 단속만 해 준다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의약분업을 시행하므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을 생각할 때 의약분업은 하루속히 시행되어야만 한다. 한의학계에서 자신들도 양약을 조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은 터무니 없는 소리이다. 의사는 양의학에 정통했고 한의사는 한의학에 약사는 약학에 정통한 사람들인 만큼 자신의 분야에서는 자신들이 가장 유능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의사가 양약을 조제하겠다는 것은 잘못인 것처럼 의사가 약을 조제하는 것도 잘못된 일인 것이다. 지금은 사회가 전문화 다양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의학계와 약학계도 보다 전문화된 분담체계를 이루어 서로 공생하는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의약분업 찬성안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김성준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09
낸 날 짜 : 1999/10/25
그동안 몇차례의 추진시도가 의.약계의 이견과 정치논리로 번번이 무산됐던 의약분업이 마침내 내년 7월 시행으로 확정됐다. 의약분업 시행은 전국민 의료보장에 이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처방과 조제의 분리로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가능케 함으로써 선진 의료체계를 완성한다는 의미가 있다.
37년 만의 의약분업 시행은 좀 늦은 감이 있으나 처방 없는 임의조제 관행으로 약품의 오.남용이 심각했던 만큼 다행한 일이다. 지금까지 의약분업이 계속 미뤄지면서 우리 나라 국민의 항생제에 대한 내성률은 거의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의약분업 시행방안은 논의과정에서 예외범위가 확대되기는 했지만 그 취지는 충실히 반영됐다고 본다. 감기약, 드링크 등의 기초 의약품은 예외의 범위에 들어가고, 항생제나 주사제의 경우는 반드시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하다.
물론 의료서비스 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인 만큼 첫술에 배부를 리 없고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솔직히 그동안 의약분업의 가장 큰 장애였던 의사와 약사집단의 이기주의가 또 다시 불거져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병원측에서는 자기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에게 주사약을 포함해 여러 가지 약들을 직접 팔지 못해 엄청난 불이익을 가져올 것이고, 약국의 경우 약사가 직접 처방을 내리지 못함으로써 환자에게 필요없는 약을 속여서 지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다. 의사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도 않는데 쓸데없이 약을 많이 조제하도록 처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로 불이익을 겪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의사와 약사간의 비리가 생기지 않을까 조금 우려된다.
관련 이익단체는 논의과정에서 충분히 의견을 표명하고 토론을 거쳐 조정한 만큼 직역 이기주의를 버리고 의약분업 정착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의약분업은 이제 골격이 정해진 상태고 처방료.조제료 산정, 약효 동등성 확보, 분업 예외인 병원 응급환자 범위 결정 등 앞으로 많은 세부 실행방안 마련작업이 남아 있다.
그 과정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분명한 의지와 뚜렷한 원칙을 세워 흔들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 원칙은 소비자들의 이익과 편리성이 우선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국민들의 추가부담이 불가피하겠지만 최소화해야 할 것이며 처방료나 조제료 산정에 있어 의사나 약사의 입장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
또 의약분업이 되면 그동안 약국에서 약을 지어 먹는 데 익숙해진 국민들은 당장 불편을 느낄 것이다. 국민들의 불편과 부담이 커져 불만을 갖게 되면 의약분업 실행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이같은 예상문제들을 미리 챙겨 충분한 홍보를 하고, 병원.약국에 대한 철저한 지도.단속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3.의료와 관련된 문학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문
영화 < 로렌조 오일 > 에 대한 감상문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김윤주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10
낸 날 짜 : 1999.10.25.
파 일 이 름 : 990110.hwp
‘ 로렌조 오일 '
제목만 보아서는 전혀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영화.
그러나, 바로 이 제목을 위해 숨막히게 전개되는 영화가 이 '로렌조 오일' 인 것이다.
자신가 아프기 전까진 그 병으로 인한 고통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희귀병인 경우 당사자를 제외하곤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환자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의 가족들의 고통은 직접 느껴보지 않은 그 누구도 이해하질 못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모든 고통을 아우러며 살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의 순리일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에서는 희귀병으로 인한 환자의 죽음에 가까운 고통, 또 이 보다 더한 그 가족의 고통과 병을 치유해 보고자 하는 집념, 사랑, 그리고 불치병 앞에서 무기력한 의료계의 현실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많은 질병들이 정복되고 있지만, 반면에 새로운 질병들 또한 끊이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나 발생 빈도가 적어면서도 원인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치료가 어려운 병을 우리는 희귀병이라 한다.
비록 희귀병에 걸린 환자의 수가 적을지라도 우리 중 누군가가 그러한 병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한, 그 병으로 인한 소수의 고통도 우리 모두의 고통이라 생각하고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장애인을 감싸 안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인류의 역사가 질병과의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류는 태초 때부터 질병과 싸워 왔고, 또 앞으로도 처절한 투쟁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에서 인류가 보여준 질긴 생명력과 사랑, 우정, 도전 정신이 바로 우리 인류 역사가 지속되어온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현대의 의학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희귀병의 등장은 막기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만약 그러한 인류에 대한 도전이 없다면 인류의 문명이 더 이상 발달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
따라서, 그러한 희귀병의 도전을 회피하기 보다는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극복하려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한편, 이 영화에서는 아이의 희귀병으로 인한 부모의 고통이 대단히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그리하여 영화를 보는 이들도 마치 그 아이의 부모가 된 듯 고통을 함께 느끼고,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서게끔 만들어 준다. 이 세상 부모들이 가지는 자식에 대한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개인의 질병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받는 고통의 무게가 어떠한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특정환자에 대한 방치는 그 환자 개인에 대한 무관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의 삶도 함께 방치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의료계, 의사들...
나 자신이 미래의 의사를 꿈꾸다 보니 의사들의 희귀병에 대한 대응 방식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의사들은 연구예산이 책정되지 않는다고 희귀병에 대한 연구를 기피했고 관심조차 가지기를 꺼려 했다.
예상했던 대로 자본주의 경제논리에 압도당한 의료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자본주의가 맹신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의대생으로서 심각한 우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신의 전령사로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환자들을 돌본다는 고전적인 의사의 모습은 퇴색된 지 오래고 그저 경제적 효율성으로 무장한 상업적 의사들의 모습에서 그 숭고함의 의미는 전혀 투영될 수 없었다. 그것이 어쩌면 의사 개개인의 자질 문제와는 차원을 달리할 지 모를지라도 그 직업의 전문성만큼이나 영역의 독자적 순수성을 지녀야 할 의사집단이 세속적 논리에 압도당하는 현실은 인류에게 있어 크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산물이라 하기엔 그들의 역할이 너무도 크다.
올바른 약이 없던 시대에는 의사의 손길만 스쳐도 플라시보 효과로 인해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의사집단이 신뢰성을 계속해 상실해 간다면 그 의사집단에 대한 믿음이 가져다주던 플라시보 효과마저 사라질 것이 틀림없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목적은 환자가 회복되어 사회에서 제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도록 하는데 있다. 즉, 넓게 보면 인류의 영속에 결정적인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영역에까지 자본주의의 효율성이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희귀병에 걸린 한 어린아이와 그 가족의 비애로만 다뤄졌으는 안될 무언가를 담고 있다.
만약 한 아이가 희귀병에 걸려 무관심속에 죽어간다면, 우리는 의사란 직업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며, 우리는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며,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신들의 천국에 대한 나의 생각
담당 선생님 : 김슬옹 교수님
이 름 : 김창희
학과 / 학번 : 가천의과대학 의예과 1학년 9901-11
낸 날 짜 : 10월 25일 1999년
이 글은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 하는 소위 90년대 소설과 비교해 그리 매력적인 작품은 아니다. 글 자체가 세련되지도 못했고, 결말도 흔해 빠진 행복한 결말이며 전개 과정도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지루하다. 작가는 모든 것을 너무나 세심하게, 그리고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다. 때로는 몇 장씩 이어지기도 하는 등장인물의 설교조의 이야기가 지루할 때도 있다. 너무나 쉬운 전지적 작가 시점을 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쉽고 재미있다. 끝까지 아주 잘 읽힌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 될 수 있다. 하나는 작가가 의도한 도덕성이라는 화두를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충분히 소설적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원생들을 착취하던 주원장이 원생들에 의해 자신의 동상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후 군의관 출신인 조백헌 대령이 병원장으로 와서 역시 나병환자들의 낙원건설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원생들의 불신과 자연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 긴 세월 끝에 제방을 쌓게 되지만 조백헌 원장의 도덕적 성취감에 관한 집요한 노력에서 원생들은 감동되어 화합의 결말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고, 섬 밖에 사람들의 편견과 나병 환자들의 근원적인 열등감이 음성환자인 유해원과 정상적인 서미연의 혼인까지로 발전되는 길고도 어려운 정신적 갈등을 겪은 다음에 얻어지는 화합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인의 명예를 초월한 참된 행위를 도덕적인 시험으로 계속적인 고통을 안과 밖으로 싸우면서 나병환자들을 위해 일하는 조백헌 원장의 모습은 한계상항 속에서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노력의 끝까지를 추구하고 있는 장엄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에 있어서 싸움에 의미는 나병환자의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일이 되면서도 한 개인이 밖으로부터 밀려오는 인위적인 또는 자연의 도전에 대하여 얼마만큼이나 견디고 또 도덕적으로 구김새없이 목표를 세워 실천할 수 있느냐 였다. 그는 이 싸움을 훌륭히 치뤄냈다.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소설적 재미는 크게 세 가지다.
첫번째로 제목에 대한 것이다. 글을 읽기 전에나 읽는 과정에서 계속 나의 머리를 감도는 것이 바로 당신들이 천국이라는 소설 제목이었다. 왜 당신들의 천국인가? 소설 결말 부분에 상욱의 편지에서 제시되는 다소 장황한 이청준의 천국에 대한 해설을 보면 일면 수긍이 가고 한편으로 흥미롭기도 하다. 상욱의 편지 마지막 부분을 보면 당신들에 대치되는 1인칭 주체는 나병환자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들, 즉 나병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신들의 천국이란 곧 원장들의 천국을 가르킨다. 환자를 환자답게 만들어 그 천국의 울타리 안에 안주 키는 것은 원장들의 관점에서의 천국이지 환자들 자신이 선택한 그들의 천국은 아닌 것이다. 매우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굳이 이러한 부정적 의미를 글의 제목으로 쓰진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상욱의 편지만을 보면 당신들의 천국이란 원장들의 천국을 말하지만 결국에는 나병환자들의 천국이 되어가는 소록도를 우리는 글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곧 당신들의 천국이란 나병이라는 스스로의 운명과 의지와 싸워 성취해낸 그들만의 공간일 것이다.
두번째가 소설 전반에 흐르는 긴장감과 문제의 해결 과정이다. 소설 처음부분에 주로 나오는 조백헌 원장과 나병환자들의 심리적 대립을 작가는 무척이나 긴감있게 서술하고 있다. 동시에 결말부분으로 치달을수록 그러한 심리적 대립이 차츰 희석되어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읽는 독자로 하여금 글에게 밀고 당김을 당하는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동시에 적지 않은 감동까지 부수적으로 독자는 받을 수 있다. 누구나 이 글을 읽었다면 엄청난 희생을 바쳐 일한 간척사업의 성과가 드러나지 않아 나병환자들과 원장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아 유혈사태까지 벌어질뻔한 순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돌둑이 솟아 오르는 순간 누구나 감동을 넘어서는 희열을 느꼈을 줄로 안다. 시련끝에 성과로 독자들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방법은 오래된 소설에서 쓰는 고전적인 방법이다.
세번째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한 번쯤 되돌아 보게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나병환자들은 우리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끔찍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인간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래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초등학교때부터 배웠다. 그때부터 배운 사실을 우리는 지겹게도 잊고 산다. 공동체를 이루어야만 된다면 그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사회는 유지 될 수가 없다. 기둥이 많아야 건축물이 안전하다. 그러나 기둥이 하나 둘 빠져 나가면 건축물이 붕괴한다. 이 글에 나타난 소외된 계층,사회적 약자로서의 나병환자들의 실상이 무척이나 가슴아프게 와 닿는다.
그리고 작가는 사회구조와 근원적인 모습까지도 우리가 다시금 살펴보길 바라고 있다. 이 글의 배경적 공간은 소록도라는 한정된 공간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들의 그대로 농축되어 있다. 사회라면 어디에나 있는 지배권력과 피지배 계층간의 관계, 소외 받는 사람들, 그 속에서 생기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의 자질과 집단을 이루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궁극적으로 행복이라는 곳에 다다를 수 있는가 등의 내용을 우리는 이 글에서 읽을 수 있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와 무관하지 않을 듯 싶은데, 작가는 집단을 이끌 어떤 실천적인 힘이 존재하기를 바라면서도 그런 힘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전혀 구김이 없어야 하며 항상 목표는 집단 전체의 행복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하지 못한 힘은 집단에 의해 준엄한 심판을 받게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그리고 사회전체의 행복과 사회구성원들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는 작가는 공동운명을 바탕으로 해서 생기는 사랑과 믿음으로 힘을 가진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이 화해롭고 조화로운 질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글 속에서 외부인과의 결혼과 원장과 환자사이의 신뢰가 구축되는 장면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밝혀 낼 수 있다.
이 글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원론적이고 특별한 것이 없다. 물론 현대적인 감성에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끝까지 읽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 상황과 맞물려 생각할 때 지배 권력에 대한 적절하고도 세밀한 비판을 가하고 있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가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과 지배 권력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철학과 믿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감각적이고 찰나적인 글이 나무하고 있는 이때 생각할 기회를 준 작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패치아담스’를 보고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김민상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07
이 영화에 앞서 나는 패치라는 단어를 찾아보았다. 헝겊조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더욱 자세한 뜻과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또한 알고 싶었다. 일단 예상대로 ‘헝겊조각, 헝겊을 대고 깁다.’ 라는 말이 있었고 그 밑에 ‘수선하다, 고치다‘라는 뜻도 볼수 있었다. 당연히 여기에서 쓰인 뜻이 ’고치다’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영화는 실존인물을 보고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인물은 아주 따뜻한 인간성을 가진 헌터아담스라는 의사로서 굉장히 진실한 의사였나 보다. 이렇게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정도면... 어쨌든 그 헌터아담스의 아담스와 고치다의 패치를 합해서 패치 아담스라는 영화 제목이 탄생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보면 아담스는 20대 초반에 자살을 기도한 뒤 정신병원에 가게 된다. 그때까지는 진정으로 자기가 할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하는 의미를 상실한채 존재가치를 부정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그 정신병원에 가서 만난 동료 환자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의해 그 인생이 바뀌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정신병원에 간 것은 오히려 잘 되었다는 마음이 든다. 그 동료 환자의 말이란 질병을 보지말고 사람을 보라는 말로써 패치아담스가 정신병원을 나와서 의과대학에 진학할 생각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국 그는 이런 연유로 해서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그 환자가 한 말을 떠올리며 진정한 의사상을 그려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3학년 때부터 환자와 접촉할수 있다는 교칙이 있음에도 그는 꽃무늬 와이셔츠에 빨간코 등 광대복장을 하고 웃음으로써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점은 기존의 규제에 얽메인 제도에 굴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결과적으로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을 소신 껏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이러한 규제가 두렵고 다른 교수들의 눈에 거슬리는 것을 꺼려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패치아담스는 자기가 할 일을 알고 의과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본분을 깨닫는 것이다. 물론 의과대학의 1학년이라면 환자에게 접근하여 병을 치료하는 그러한 본분은 없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자기가 정신병원에 있을 때부터 생각해 온 꿈을 펼쳐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본분을 높게 정하였고 그에 따라서 의대 초년생 때부터 할 일 못할 일을 해보는 것이었다. 어쨌든 규제에 얽메이지 않으면서까지 이토록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아담스의 행동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나도 지금 예과 1학년생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학교의 사정으로 인하여 밖의 많은 것을 접하지 못하여 보는 것이다 듣는 것이나 모두 제한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나도 규제에 그렇게 얽메이지 않는다. 단지 예과 1학년이라는 명분으로 시험기간인데도 공부를 그다지 많이 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말할 것도 없다. 결국 나도 학교에 규제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데 규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규제에 신경을 안 쓰는 이 행위가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패치아담스는 비록 규제에 얽메이지 않으나 자신의 행위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준다. 이러한 연유에서 지금 나의 행위를 반성하고 있고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생각해 보고 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1학년이란 특권 때문에 1학년이 끝나가지 전까지는 어렵다고 본다.
한편 그렇게 지내던 패치아담스는 애인이 정신병원 환자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게다가 대학측에서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패치아담스를 퇴학시키려고도 한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아담스지만 그는 자신의 주관을 끝까지 밀어붙여 결국은 환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학교 생활과 환자와의 관계에서는 많은 현실적인 부분들이 고려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그는 공부도 거의 안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는데도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다. 그리고 환자에게 진정한 의사상을 심어주고 싶어서인지는 몰라도 돈이 없는 환자에게 그냥 진료를 해준다거던지 환자만 오면 다른 것은 일단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환자를 보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패치아담스의 훌륭함과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정신을 좀더 극렬하게 나타내려고 하였을 따름이다. 또한 패치아담스의 이러한 능력들이 더욱더 커질수록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흥미와 재미와 감동을 더욱 느낄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관객을 위한 작품를 만들려하다가는 자칫 근본적으로 현실성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라는 것에 모순이 될 수 밖에 없다. 결국 패치아담스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려고 했던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을 너무나 과장되게 표현했다는 것에서 약간의 이해못할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가 더욱 현실성을 가지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더라면 좋았을 아쉬움도 남았다.
여기에서 다시한번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물론 의사는 환자에게 무료진료와 같은 것을 해줄수는 있다. 의사는 공급자이고 환자는 수요자이기 때문에 의사의 결정여부에 달려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많은 장애물이 있다. 가장 큰 문제라 하면 의사도 가정이 있음으로써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가정을 위해서, 아니 자신을 위해서라도 경제적인 문제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의사가 무료로 환자를 진료했다고 치자. 그러면 환자는 단지 돈을 안내고 진료를 받았을 뿐이겠는가? 아니다. 환자가 무료로 진료를 받았다면 분명히 그에 해당하는 돈의 일부라도 생활 어느부분에서든지 지출되었을 것이다. 가령 의사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의료보험비를 올려 의사에게 무료진료할 기회를 부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간에 무료진료를 받은 것에 대한 차익은 지출되게 마련이다. 그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를 무시하면서까지 의사가 환자에게 진정한 의사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무료로 진료를 한다는 것은 현재상태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경우다. 우리나라가 복지선진국도 아니고 아직 복지나 인권 측면에서는 갈길이 멀었기 때문이라도 위와 같은 경우가 일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도 나중에 의사가 되겠지만 이러한 문제에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과연 앞으로 인턴, 레지던트, 전문의 과정을 거치면서 겪게 될 문제이지만 정말로 환자를 위할수 있을까 하는 막막한 생각에 빠져든다. 정말로 환자를 위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욕심에 내가 산간벽지 같은 데 가서 누굴위해 봉사하거나 무료봉사를 하는 것만큼 이타주의적이지는 않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결국은 여느 의사와는 전혀 다를게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주는 주관과 그 길을 걷도록 보조해주는 양심이 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러한 양심과 주관을 믿는다. 지금의 생활을 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이들은 정부기관의 안일한 이기주의 때문에 아니면 의사 개인의 권위나 이기주의로 인하여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지금 내가 보고 들어 느낀 이 암담한 현실을 나중에 의사가 된후에 다시 떠올리며 진정한 의사로서 자리매김할수 있을지를... 결국 나의 한계에 부닥쳐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다른 의사와 마찬가지로 그저 직업이려니 하면서 환자를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많은 것들이 그렇게 쉽게 나의 기억속에서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의료개혁의 절실함을 느끼고 이것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현재로서는 가닥을 잡은 상황이기 때문에 나중에까지 잊지않고 연장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라지만 점점 지식을 쌓아가며 환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배우고 느끼고 체험하고 싶다. 또한 패치아담스의 박애주의적 인간상은 진정으로 본받고 싶다.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박예민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16
지금까지 장편 소설에 대한 재래의 독법은 우선 수많은 등장 인물, 엇갈리는 숱한 사건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을 최대의 특징으로 삼아 왔다. 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이나 사건은 독자와 더불어 성장한다. 말하자면,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나 암시가 미리 주어지지 않고 무심한 현실의 한 단면을 제시하듯 그대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므로 인물과 사건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서 차츰 변모와 발전, 소멸을 거듭하면서 이윽고 어떤 파국, 혹은 어떤 절정에 이른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장편 소설들의 기본적 전개 방식은 귀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청준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전개 방식에 있어 일종의 연역적 방법을 택하고 있으며, 장편소설로서는 드물게도 몇 안 되는 등장 인물만을 갖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은 길이의 문제만을 제외하면 사건과 효과의 단일성 등 재래의 장편 소설 조건에 부응하지 않는 체계를 갖고 있다. 즉, 이 소설의 세계는 작가가 선택한 어떤 보편적 원리의 추적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작품 구조에 의해 형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소록도 병원장인 조백헌의 이야기다. 모두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는, 현역 대령인 조백헌이 소록도 병원장으로 취임하여 그 곳 환자들에게 새로운 천국을 만들어 주기 위해 득량만 매립 공사에 착수하는 데서부터 그 공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21개월 동안, 나환자와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제2부는, 매립 공사를 둘러싼 9개월 간의 병원장의 정신적 방황을 그리고 있다. 제3부는, 소설의 대단원을 이루는 부분으로서 조 원장이 섬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후, 3월 달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 소록도에 돌아오게 되고, 2년 후, 4월 달에 두 사람의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되는 것을 그리고 있다.
표면적인 구조만으로 볼 때, <당신들의 천국>은 조백헌이라는 야심 많고 정열적인 한 인물의 무용담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진정한 의도는 그 조백헌의 단순한 제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한 복합적인 비판에 있다. 그 비판을 가능케 하는 인물이 이상욱과 이정태이다.
제1,2부의 기술은 조백헌에 관한 이상욱의 시선에 의지해 있다. 그의 시선은 조백헌이 자신의 동상을 세우려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소록도에 천국을 세운다는 미명 하에 조백헌이 실제로 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명예욕이나 과시욕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를 감시의 눈으로 지켜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소록도의 과거 때문이다.
¯ 소록도에서는 일제 시대의 병원장이었던 주정수가 나병 환자들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미명 하에 개인의 명예를 얻는 데만 열중하고 환자들은 강제로 노역시키고 임금까지 착취했다. 학대의 방법도 교묘하고 극한에 달하여 심지어 단종(斷種) 수술까지 자행되었다. 표면적 성과에 의해 공로자가 된 주정수는 그를 기념하는 동상 앞에서 환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
이러한 처참한 과거가 있었기에 소록도에는 바깥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뿌리가 깊이 내려져 있었다. 조백헌 원장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의지와 인내로 나환자들을 회유하고 결실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했다. 이러한 조백헌 원장의 사랑 정신에 결국에는 이상욱도 감동하게 된다.
작가는 또 이정태 기자의 눈을 통해 복지 사회의 건설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력과 사랑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문둥이들만을 위한 천국¯여기에 또한 원장님의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모습의 철조망이 마련되고 있었던 것입니다.(·)원장님께서는 저들을 그냥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특수한 조건과 양보 위에 그것을 수락할 수 있는 문둥병 환자로서만 이해하려 하심으로써 오히려 저들로 하여금 원장님 자신의 문둥이 천국을 짓게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청준(57)씨의 장편 <당신들의 천국>은 유토피아의 본질과 한계를 문제 삼는다. 아니, 이 소설에서 유토피아는 본질적으로 한계를 수반하는 얼치기 유토피아, 그러니까 디스토피아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상정된다. 그렇다는 것은 `천국'의 주체가 `우리들'이 아닌 `당신들'이라는 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째서 `우리들의 천국'이 아니라 `당신들의 천국'인가? 이 물음에는 이 소설의 야심만만한 문제의식과 작가 이청준씨의 세계관의 무게가 함께 걸려 있다.
앞머리에 인용한 글은 조 원장 아래서 보건과장으로 봉직했다가 섬을 떠난 이상욱이 조 원장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상욱은 나환자들의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조 원장의 포부와 실천을 처음부터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물이다. 조 원장이 행동의 인간이라면 상욱은 관념의 인간이다. 조 원장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현실적 능력과 기반을 지니고 있다면 상욱이 자신을 구현하는 방법은 부단한 비판과 반성을 통해서다.
소록도에 나환자들의 천국을 건설하려는 조 원장의 포부는 다양한 양상으로 표출된다. 원생들의 불만과 요구사항을 듣는 건의함 설치, 섬 운영의 결정권을 행사할 환자들의 장로회 조직, 병에 감염되지 않은 환자의 자식들과 병원 직원 아이들의 공학 단행, 환자들만의 축구팀 구성과 각종 대회 출전, 농토를 확보하기 위한 간척공사·. 하지만 처음 개봉한 건의함들이 한결같이 텅 비어 있던 데에서도 보듯이 조 원장의 의욕은 일쑤 환자들의 무관심과 냉대에 부닥친다.
조 원장의 선의가 환자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까닭은 이상욱과, 환자들의 우두머리 격인 황희백 장로에 의해 각각 자유와 사랑의 문제로 치환돼 제시된다. 상욱에 따르면 환자들의 천국을 건설하려는 조 원장의 계획이 치명적으로 빠뜨리고 있는 것은 비판의 자유다. 원장의 의도가 아무리 미쁘고 그 결과물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천국의 거주민인 환자들이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행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가짜 천국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황 장로는 상욱의 자유조차도 사랑이라는 좀더 근본적인 덕목이 없이는 불완전한 것임을 역설한다. 자유가 천국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면 사랑은 그 종교적 근거를 이룬다. 자유와 사랑이라는 두가지 요건, 그리고 실제로 천국 건설을 추진할 실천적 힘이 결합돼야 한다는 것이 <당신들의 천국>에 나타난 유토피아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들의 천국>은 일차적으로는 물론 소록도라는 구체적 섬을 무대로 그 섬의 주민들인 나환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인 조백헌 원장은 실제로 두차례에 걸쳐 8년 가까이 소록도병원 원장을 지낸 조창원씨를 모델로 삼고 있다. 나환자 선수들과 일반 선수들과의 축구 경기, 오마도 간척사업 등은 조창원 원장 시절의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동시에 이 작품은 정치적 알레고리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소설 첫머리에 군복 차림으로 부임하는 조 원장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빗댄 것임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조 원장과 박정희의 유비는 더 이어진다. 오마도 간척사업을 독려하기 위한 지시문에서 사업을 반대하거나 비방하는 일, 미신과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등의 일을 금지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목은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긴급조치의 `자기완결성'을 연상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청준의 소설은 관념적 소설이라고 일컬어진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그는 우선 일상적 생활 양식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관념화된 양식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행위의 세련을 가져오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단순화 또는 축소화되어 있는데, 이는 개인의 뇌리 속에서 또는 사회 의식 속에서 서로 충돌 화합 타협 대립하는 관념들의 양상을 집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청준은 이러한 관념의 의식을 파고드는 독특한 방법을 통하여 독자에게 인식시키는 작업에 능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당신들의 천국>은 소재, 주제,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가의 능력과 깨끗하고 지적인 문체 등으로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이 거둔 최대의 수확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 사이의 역학 관계와 대립 관계를 드러내 보인 후, 이 대립을 해소하는 길은 '사랑'임을 강조하고 있다.
패치 아담스를 읽고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이수복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29
낸 날 짜 : 1999/10/25
패치 아담스란 영화는 환자를 웃음으로 치료하고자 하였던 한 의사의 실화이다.
처음에 `아담스`는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읊조리고 있다. 결국 의미없는 자신의 삶에서 정신병원이란 길을 `스스로` 택하게 된다. 정신병원을 스스로 들어가자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정신 병원은 `아담스`에게 사람의 목표를 갖게 해 준다.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정신병원에서 삶의 목표를 찾다니.. 하지만 그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던 건 의사가 아니였다. 바로 환자였다. 그 정신 병원의 의사는 너무나 환자에게 딱딱한 환자가 하는 얘기에는 관심도 없는 의사였다. 그런 의사에게 환자들은 육체적 치료는 받을 수 있겠지만 정신적 치료는 받지 못하지 않을까?
그는 정신병원의 환자 속에서 환자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너무나 똑똑해서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박사로부터 그는 손 뒤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손을 보는 법을 배웠고, 있지도 않는 다람쥐를 무서워하여 화장실에도 못 가는 루디와 함께 다람쥐를 잡는 체하며 루디를 화장실에 가게 하므로써 자신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서야 비로서 길을 찾은 아담스는 이제 `헌터 아담스`가 아닌 치료하다는 의미를 가진 `패치 아담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인생의 길을 떠난다.
그는 이제 분명한 자기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을 돕고,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싶다`고 당당하게 정신병원의 의사에게 말한다. 그런 당당함.. 우린 그런 당당함을 가지고 있을까? 어렸을 적 `저는 무엇 무엇이 되고 싶어요.`라고 작은 입을 옹알거리며 우린 말했었다. 하지만 그 꿈들을 지금까지 지니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린 명예도 생각해야 하고 장래의 편안한 삶도 생각해야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들도 의사가 정말 되고 싶어서 `패치`처럼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서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들 가운데 그러한 목표를 가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 한다. 죽는 날까지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깨닫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패치는 그의 생 가운데 삶의 목표를 가졌던 것이다.
그는 버지니아 의과 대학에 입학해 의학을 공부한다.
하지만 주위 환경들은 그가 공부하길 원하는 그런 환경들이 아니였다. 3학년이 되어서야만 환자들을 만날 수 있고 강단에서 가르치는 내용도 그가 수긍하지 못하는 것들이였다.
학장은 이렇게 말한다.
의사에게 힘을 주는 것은 환자이며 환자는 의사를 믿는다.
하지만 인간은 믿을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거짓말하고 쉽게 피로를 느끼고 실수하는 존재일 뿐이다.
제 정신의 환자라면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된다.
우린 여러분은 철저히 교육시켜 보다 나은 존재인 의사로 만들 것이다.
이말은 들은 패치를 제외한 다른 의학도들은 감명이라도 받은 듯 박사를 친다. 하지만 패치는 찝찝한 표정을 짓는다.
나 또한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인가을 믿을 수 없다? 단지 믿을 수 없는 존재를 교육시켜 의사로 만든다. 수긍할 수 없다. 단지 교육만으로 의사가 된다면 그건 의학지식 많은 로봇에 불과하지 않을까?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한다면 어찌 자신의 생명을 의사에게 맡길 수 있을까?
왜 의사가 되려하나? 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패치는
사람들을 돕구 싶어. 사람들이 가장 취약할 떄 돕는 거야. 치료는 물론 충고와 희망도 안겨주고 그래서 의사가 되고 싶어.
나에게 그런 질문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내가 생각하기에 의사는 극단적으로 부와 명예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의사와 다른 것을 바라지 않고 환자만를 치료하는 순순한 의도를 가진 의사 이 두 유형으로 나누어 진다고 생각한다. 패치는 후자의 경우일 것이다. 나는 중간이라고 생각한다. 부와 명예를 바라지만 환자를 돈벌이로만 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패치처럼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환자만을 치료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능력이 되는한 성실히 환자를 치료할 것이고 그에 해당하는 대가를 얻을 것이다.
패치는 의사가 되려면 질병 만큼이나 사람을 많이 알아야 한다며 환자들에게 다가 간다. 환자에 대해 알고 싶어하기 보다는 병명, 증세, 징후, 치료방법에만 관심있는 의대생들 가운데서 패치는 그 환자의 이름을 물어본다. 그것을 의아해 하는 의대생들.. 왜 그것을 의아해 하는 것일까? 당연한 것이 아니고.. 환자의 증세를 설명하고 나타날 징후들을 설명할 떄 환자들은 불안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패치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할 떄 그녀의 표정은 휠씬 부드러워진다.
학장을 피해 우연히 들어간 방에서 패티는 침대에 누워있는 생기없는 아이들을 만난다. 패치는 인사하고 이름을 묻는다. 결코 어떤 병에 걸렸냐구 먼저 묻지 않는다. 그는 의료도구(관장기)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 아이들에게 무서움의 대상으로 그는 장난을 치는 것이다. 감기 걸려서 코가 빨간 사람이 되기도 하고 꿀벌이 되기도 하고 닭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침대에서 일어나 그의 그런 모습을 호기심으로 지켜보고 즐거워한다.
너무나 좋아 보이는 모습이다. 그 순간만은 아이들에게 아픔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는 학장에게 경고를 듣지만 계속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즐겁게 해준다. 학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환자들과 계속 만난 패치는 제적 당할 위기에 까지 몰린다.
하지만 그는 그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드디어 친구인 카린과 트루먼과 무료병원을 건립하지만 학생이라는 신분과 장비 부족으로 힘들어 하고 그러던 중 카린이 정신병자에 의해 죽게된다.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자신의 치료 방식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된다. 그 자신이 카린을 죽였다고 생각한 패치는 병원을 떠나게 되고 하늘을 향해 자신에게 뭘 원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한 마리의 나비로 인해 그는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무얼 깨달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다신 병원으로 돌아간다. 그는 죽은 카린의 마음을 느낀걸까?
그러던 그에게 퇴학통지서가 온다. 하지만 패치는 굴하지 않고 재소하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의사는 타인을 돕는 사람이라는 뜻 아닙니까? 언제부터 의사가 외경의 대상이 되었죠? 언제부터 의사란 것이 혼자를 치료하는 친구에서 변질됐죠?
의료행위를 했다고 물으셨는데 도움을 필요로 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받아 돌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살핀다는 뜻이라면 전 분명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인간의 신비로운 신체를 경외해야 합니다. 생명보다 점수에 연연해선 안됩니다.
그러면 간판뿐인 의사가 될테니깐요.
그의 당당한 외침속에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도 뭉클하고 그 영화속에서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도 역시 감동했는지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결국 졸업을 했고 현재도 여전히 의료활동을 하며 많은 사람을 돕고 있다고 한다.
패치는 너무나 착하고 환자들이 바라는 의사의 모습을 보야주었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환자가 의사 밑에 있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요즘 병원의 모습을 떠올리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의사는 거만한 자세로 환자에게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몇 마디하고 환자의 질문에는 귀찮아한다. 환자는 의사에게 어쩔줄 몰라하며 굽신거린다. 병원이 회사라면 환자는 거래처이고 의사는 세일즈맨이다. 세일즈맨은 거래처를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만 한다. 패치는 그런점에서 최고의 세일즈맨이다.
< 코 마 >를 읽고
담당 선생님 : 김슬옹
이 름 : 안병근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23
작품 코마는 미스터리 분야에 새로운 장을 여는 의학 스릴러이다. 더구나 소독 냄새 풍기는 병원 복도에서 미스터리 기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읽은 순간 어느새 나는 책의 내용에 매료되고 있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의 난 작가 로빈 쿡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찬사를 써서 그에게 존경을 보낸다. 그러나 이 책은 나에게 몇 가지 의문을 던져 주었다. 첫째, 장기 이식과 뇌사의 인정여부, 둘째 사회적 통합의 요청, 셋째 산업사회에 의한 인간 생활의 획일화, 넷째 여성의 불평등 문제이다. 여기서 위와 같은 의문과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말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장기이식과 뇌사의 인정여부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대 사회에서 의학 기술의 발달은 눈부실 정도이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생명이 있는 장기를 사람들간에 서로 뒤섞고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점점 커져 가고, 이에 따라 생명의 연장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까지도 가능하게 되었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뇌사를 인정하느냐의 문제로 다각적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와 함께 뇌사 환자의 신체 장기를 다른 환자에게 이식할 수 있는 의학 기술이 뇌사의 인정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장기 이식을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차질을 빚어 많은 암거래가 성행하기도 하는데, 특히 동남 아시아의 여러 곳에서는 자신의 기관을 판매하는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가 장기 이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 자체가 비극의 씨앗은 아닌지 고민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강요된 자의가 과연 정당할 수 있는 것인지, 혹은 수요를 맞추기 위해 이 작품에서처럼 강요된 뇌사와 산 자에 의한 장기 이식이 정당한 것인지를 우리 스스로가 대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데 비해 이렇게 빨리 변하는 상황을 규정해 줄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사회학적 용어로는 '아노미'현상 이라고 한다. 장기 이식의 문제도 이러한 현실의 일부로서 많은 문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새로운 시대 상황을 규정해 줄 윤리가 시급히 완성될 필요가 있으며, 법도 새로운 윤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타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장기 이식의 의미가 변질되자 않도록 사회 생활을 규정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사회적 통합의 요청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책에서 사회적 통합의 요청에 관한 부분은 여러 번 등장한다. 특히 마지막 수잔과 스타크의 대화에서 이 내용은 명확히 드러나게 된다. 우리 사회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 출세주의자, 기회주의자, 투기 선호자, 부정 축재자가 많다. 그런데도 이들이 사회적 이탈자로 간주되지 않고 도리어 성공한 자로 은근한 부러움을 받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가족도 이들을 찬동하는 동료들도 환영한다. 저임금의 근로자들이 고용주에 의한 신뢰감이 없고 고용주에 생활 윤리에 대한 증오감이 강하기 때문인 것이다. 즉, 우리 사회의 사회적 통합은 시급히 요청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 방향으로 그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까? 특히 스타크에 의해 현저하게 드러나게 되는 소외계층의 사회적 합일에 대해 그 방향을 모색해 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직한 인간상의 확립이다. 가치의 합의를 얻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건전한 사회적 성격이 형성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는 급격한 사회 변화와 더불어 이르나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타자지향형이 혼재 하고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인간성에 대한 합의가 없다. 바람직한 인간성의 덕목은 나열되고 있지만 사회가 권장하고 칭찬하는 인간과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인간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이 잘 살아야 한다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내 아이가 어떤 아이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들의 기준에서도 그저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의 인간상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정견이 없다.
인간 개혁이 있어야겠다. 인간의 개혁 없이 사회개혁을 할 수 없다. 인간을 진실로 사랑하고 인간을 우대하고 인간을 목적시하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해야겠다. 국민 소득의 상승이나 생활 수준의 향상보다는 나은 인간이 되는 이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다음 세대가 오늘의 세대보다 나은 인간성을 갖게 되고, 나보다는 나의 아들이 보다 바람직한 인간이 되고, 사회의 간부보다는 선진들이 보다 바람직한 인간이 되도록 온 사회가 바라고 노력할 때 사회의 진정한 발전이 확약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산업사회에 의한 인간 생활의 획일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
책 중간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의료사고가 나자 메모리얼 병원의 학생들이 일제히 그 병실로 달려가자 작가는 제 3자적 입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역시 메모리얼 병원은 좋은 곳이다. 일제히 신호의 부름을 받고 달려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산업사회에 있어서는 인간의 삶을 위한 여러 가지 조건들이 이른바 합리화되고 기계화되면서 문화적인 개성은 사라지고 획일화 되어 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획일화는 다만 기술적인 지능만을 가진 인간을 창조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고 행동의 목표와 의미를 반성하고 하는 이성은 거의 마비되어 간다. 원래 기술적이 지능이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난지 않는다. 이러한 도구화 된 지성으로서의 기술적인 지능은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도 쉽게 이용될 수 있다. 즉, 자기의 생각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합리적으로 효율화된 체제의 의해서 주어진 궤도를 따라서 생각하고 미리 예정된 판단을 내린다. 스스로 생각하는 번거로움을 포기하고 복잡한 구조의 삶의 상황 안에서 스스로 판단하는 어려움 앞에 항복한 로봇, 이것이 산업 사회 안에서 조종당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기술적인 지능은 가졌으되 자율적인 이성은 마비된 인간, 정신적인 가치에 둔감하면서 감성적인 자극에 민감한 인간, 이것이 산업 사회의 인간이다. 산업 사회가 가진 거의 무한한 잠재력과 윤리적인 책임을 생각하면 이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이다. 이성을 잃고 감성적인 자극에만 예민하게 반응함으로써 조종당하기 쉬운 대중적인 인간들은 상황에 따라서는 완전히 질서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윤리의 필요성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윤리학은 그 시대와 사회에 적합한 윤리적 형식을 발견하는 데 힘써야 한다. 윤리학은 시대에 뒤떨어져서는 아니 된다. 언제나 시대에 적합하며 한 걸음 앞서는 것이 되어야 한다. 윤리학은 그 시대의 윤리 현상을 조사 정리하며 앞으로 나갈 방향을 지시해 주어야 한다. 그것은 윤리학의 대상인 윤리현상이 시대성을 띠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우리는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알맞은 윤리학을 수립하여 획일화에 의한 인간성 마비가 아닌, 참다운 인간성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성 차별에 관해 논해 보자.
책 내용 여러 곳에 성 차별적 내용에 대해 우리는 눈을 고정시킨다. 의대3년생인 수잔 휠러는 여성 락커룸이 없어 휴게실에서 항상 옷을 갈아 입을 생각에 분개한다. 정치와 경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 분야 또느 크고 작은 단체에 있어서 우두머리의 자리는 대부분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최고 책임자의 자리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이른바 저명 인사로 알려진 사람들의 수도 남자가 여자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근래에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게 되어서 사정이 크게 달라지고는 있으나, 전체 인구로 볼 때 남자와 여자의 수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며, 아직도 남자의 세력이 월등하게 우세함에는 변함이 없다. 여자가 남자보다 일을 적게 하거나 일할 기회가 적다는 데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일을 하되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 또는 높은 평가를 받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사실에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주로 여자들이 많이 하는 일은 남자들이 하는 일에 비하여 낮은 평가를 받게 되는 까닭은 무엇이며, 높이 평가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여자에게는 적게 돌아가는 사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이제까지 문화의 전통을 세움에 있어서 남성이 주도권을 잡았다는 사실과, 높은 평가를 받는 일의 기회가 따르는 지위에 대한 사회적 경쟁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일반적으로 약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대체로 사회의 지배적 계층이 주도 세력이 되어 지배적 계층에게 유리하도록 형성하게 마련이다. 우세한 체력을 바탕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우위를 차지하게 된 남성은 관습과 제도, 종교와 도덕 등 여러 분야의 문화를 형성함에 있어서 여성보다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며, 따라서 남성과 여성의 이해 관계가 서로 어긋나는 문제를 안고 있는 관습과 도덕 또는 제도의 여러 국면은 남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형성되었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앞으로 남성과 여성의 정상적 관계는 대립이나 투쟁의 관계과 아닌 협동과 상호 보완의 관계여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여자에게 실력 향상의 기회를 열어 주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선 여성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며, 이 믿음이 서기 위해서는 여성이 실천을 통하여 실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여성들이 실력에 대한 믿음을 얻지 못한 이유는 실력을 양성할 기회와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음에 있다는 가설 위에서 여성에게도 남성과 평등하게 실력 양성의 기회를 주는 과정이 앞서야 할 것이다.
이상으로 위와 같은 의문사항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확연한 결론을 내리진 못 했지만 여러 가지로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에 상당한 즐거움을 느꼈다. 작품 코마는 의학 소설로서, 미스터리물로서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강조하는 휴머니즘 소설로서 우리와 같은 의대생들게는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패치 아담스>를 보고
담당 교수님 : 김슬옹
이 름 : 김성준
학과 / 학번 : 가천의대 의예과 990109
패치 아담스라는 영화는 앞으로 의사가 될 나에게 있어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 준 영화였다. 비록 언어전략 숙제 때문에 보긴 했지만 재미도 있었고 정말 볼 만한 영화였다.
패치 아담스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우선 놀랐다. 본명은 헌터 아담스인데
패치라는 이름은 우연히 가지게 된 이름이었다. 헌터 아담스는 자기자신을 거의 포기하고 자살을 시도하다가 정신병원으로 갔는데 거기서 어떤 갑부의 컵을 고쳐주었더니 그가 헌터 아담스를 패치라고 부르게 된다. 패치는 우리말로 고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 감싸다라는 뜻도 있다. 나중에 가서 생각한 거지만 이것이 환자의 아픔을 고치고 감싸주다라는 두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패치 아담스는 거기서 자기자신의 해야 할 일을 알게 되면서 뒤늦게 의과대학을 입학을 하게 된다. 패치 아담스는 정신병원에서 느낀 자신이 생각하는 의사의 본분을 몸소 실천을 하고 그렇게 계속 살아가게 된다.
의사하면 생각나는 권위의식에 굴하지 않고 저항을 하면서 말로만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몸소 보여주었던 것 같다. 죽음이라는 것을 극복하려는 의사로서가 아니라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도록 노력을 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저항을 한다고 해서 진지하게 진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를 하나의 도구로써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써 따뜻하게 즐거움을 주고 삶의 희망을 잃고 있는 환자들에게 활력소를 주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고 감동 깊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늦게라도 진정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어는 하지만 그것을 함으로써 생기는 여러 가지의 어려움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으로 인해 자기의 꿈을 포기하고 살아 오는 것 같다. 그런 어려움을 이기고 늦게라도 자기의 일을 찾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패치 아담스도 거의 자기자신을 포기한 채 죽음에까지 이를 뻔 했다가 뒤늦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그 일을 함으로써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었다.
또 이번영화에선 배꼽 빠질정도로 우스운 이야기와 나였다면 감당하기 어려울것같은 비극도 공존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몇 가지 여러 각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중 중요한 것이 환자와 의사와의 감정 이입적 관계를 재조명해 본다는 측면과 의료계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 등이 그것이다. 죽음을 왜 두려워 하는가? 로빈윌리암스의 이 연설은 한마디로 그렇구나하는 탄사가 나왔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의사와 환자간의 교감을 터부시하며 나가서 지극히 기계적인 인간관계를 가져오는 문제가 새겼다는 관점에 동의 한다. 그리고 미국이 의료체계는 어떤지 모르지만 역시 그네들 나름대로 문제를 안고 있고 그것을 언급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참으로 헐리우드는 오락성을 이용해서도 사회문제를 이슈화 시키는 기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또 한번 부러울 따름이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헌터 아담스의 우울한 얼굴은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어떤 일을 해봐도 의미와 보람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자살'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크나큰 현대인의 병... 그러나 그의 인생에 대한 좌절감은 우연한 계기로 인해 크나큰 변화를 맞이한다. 이 영화의 제목과 일맥상통하는 '패치 아담스' 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 지나칠 만큼 낙천적이고 쾌활한 패치 아담스는 3학년이 될 때까지 병원에 출입할 수 없는 학교규정을 어기고 환자들에게 웃음과 꿈을 돌려주고자 노력한다. 병마에 고통 받는 어린이, 죽음을 앞둔 암환자, 까다로운 환자, 환자의 가족들 모두 그의 앞에서는 한순간 모든 아픔과 분노를 잊고 웃음을 되찾는다. 패치 아담스는 학교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학장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되고, 또 다른 학생들과 달리 거의 매일 병원에서 환자와 노닥거리는 것 같으면서도 성적은 잘 나오기 때문에 주위 동료들에게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그러나 결국은 동료들도 패치 아담스의 따뜻한 마음씨를 공감하게 되고 그를 이해하게 된다. 그의 룸메이트는 대대로 의사 집안이라서 의사가 된 친구이다. 그 룸메이트는 패치 아담스의 행동에 거부감을 느끼고 패치 아담스의 능력조차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완전히 패치 아담스와 대조되는 인물로 비추어진다. 하지만 결국 그도 패치 아담스를 이해하고 그의 후원자가 되어 준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작은 오두막에서 그의 동료들과 의료행위를 시작하는데 학장에 의해 무자격치료로 고발 당한다. 하지만 재판장에서도 환자들이 곧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의사이며, 의사는 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라 삶을 증진시키는데 더욱 힘을 써야 한다는 마지막 열변을 토한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 헌터 아담스의 실화를 패치 아담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여 단순히 질병 그 자체에만 신경 쓰는 의사들의 시선과 권위주의적인 면을 신랄하게 조롱하였다.
나도 솔직히 의사라는 것이 환자에게 봉사하기 위해 가지는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의과 대학에 입학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패치 아담스는 보통 학생과는 달랐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약간은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학교의 경우 방학 때 봉사활동을 하긴 하지만 그것도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일정 시간 이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저번 여름방학 때 첫 봉사 활동을 하였는데 그 당시 나는 시간이 무척 아깝다고 생각했었다. 두 달 중에 고작 일주일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의사의 길을 걸어나갈 것이라면 지금의 마음가짐으로는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술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어차피 의사가 될 것이라면...
패치 아담스는 의사로서의 위엄과 권의보다 환자들과의 교감과 인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영화이고, 죽음을 적으로 생각해서 극복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죽음을 순수하게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영화이다. 또한 의사의 의무는 환자의 병을 단순히 고치고 약을 처방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교감을 통해 병을 이길 수 있도록 지도하고 격려하고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주는데 있음을 지적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른 의대생들과는 달리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환자들도 하나의 인간이며 의사들도 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4. 의사들의 용어사용에 대한 생각 < 조별 토론 >
(1) 현재 의학용어, 무엇이 문제인가?
보사부는 94년 7월 의료법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의료용어의 한글전용 조항을 추가했다. 즉 의사가 쓰는 진료기록부와 처방들도 앞으로는 한글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행령의 근본취지는 환자들의 권익을 위해서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6.25 이후 모든 의과대학에서 영어교재를 사용하게 되었고 의학용어 역시 영어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의학전문 용어들은 우리 한글체계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글화라는 작업은 단순히 한자어를 음만 따서 한글로 표기하는 데 불과했다. 예를 들어 『측색동 측전각 증후군』(側索同側前角症候群.등골 측면부위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증세)이란 병명(病名)이 있다. 이렇게 한글로만 써주면 환자 자신이 모를 뿐아니라 이 병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의사들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는 국어 문법체계조차도 20세기 초에 들어와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미 2백년 전에 문법체계가 갖춰진 다른 외국어에 비하면 훨씬 뒤져 있는 셈이다. 일본인들은 이미 상당히 오랜 번역의 역사를 갖고 있어 대다수의 의과대학에서 일본어 교재를 쓰고 있으나 그들 역시 교수들은 학문의 흐름 또는 발표를 위해 전문의학용어를 영어로 이해하고 있는 형편이다. 모든 것을 한글로 기록한다 해도 의사로서 또는 환자의 알 권리의 측면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만 있을 뿐이다.
(2) 의학용어의 개선 방안
의학용어의 한글화는 한 훌륭한 언어문화를 가진 나라로서 반드시 권장되어야 할 사항이나 이를 위해서는 한문용어를 단순히 한글로 변화시킨 것에서 탈피해 더욱더 이해하기 쉬운 진정한 우리말로 바꿔야 한다.
앞으로의 남북통일에 대비해서도 이미 이런 작업에 착수해 상당한 업적을 이룩한 북한의 의학용어 체계를 참조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에 북한용어도 비교 수용하기로 전문의학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움직임이 의료계 내부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대한의학협회는 남북한의학용어비교연구 소위원회(위원장 정인혁.연세의대교수)를 구성하여, 남북한 의학용어 비교를 통한 용어의 우리말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위원장은 "북한 용어에서도 용어 원칙이 좋은 것이 있으면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곳에선 현재 남한과 북한 용어를 컴퓨터에 입력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북한 용어는 조선말대사전 6개국의학용어사전을 바탕으로 했다.
대한안과학회는 최근 '안과학술용어시안'이라는 책자를 전회원에게 배포하고 이에 대한 회원들의 의견을 묻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새로운 안과학술용어집을 제작하기 위해 만든 이 시안은 지금까지 의학교과서 등에서 사용되어 온 일본식 용어들을 한글식으로 바꾼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당뇨병성망막증 => 당뇨망막증, 노인성백내장 => 노인백내장처럼 불필요하게 긴 말은 짧게 했다. 산립종(다래끼), 비측(코쪽)등과 같이 쉬운 우리말이 있는 것은 이를 병용하게 했다. 또 궁상시야계 => 활모양시야계, 윤상망막증 => 고리모양망막증처럼 불필요한 한자어는 한글로 바꿨다.
90년 한글이 많이 가미된 해부학 용어 책자를 발간해 화제를 모았던 대한해부학회는 이 용어집에 실린 해부학 용어들을 재정리, 한글화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개정된 새 용어집에는 흉부(가슴), 둔부(볼기), 상지(팔) 등과 같이 한글과 한자어가 병용되던 용어에서 과감히 한자어를 없앴다. 전두골 => 이마뼈 , 척추골 => 등뼈처럼 한자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꾼 것도 특징이다. 또 내측(안쪽), 경추골(목뼈)처럼 일부 한자어는 우리말을 병용하도록 했다.
5. 6행시
김민상
김을 뿜고 올라가는 용처럼
민족의 번영과 이상을 위하여
상처를 거울삼아 힘차게 용솟음쳐 보자꾸나. 비록
최고는 아닐지라도 남들의
충고와 비판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환희의 새벽을 보람찬 기운으로 일구어내리라.
박예민
<옛날 이야기>
박달나무 꽃 필적 주옥같은 얼굴의
예
민이와
왕용이는
민중들의 축복을 받으며
용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녔답니다.
김윤주
이렇게 좋은 날에
수려한 그대와 화려한
복장을 갖추고
김포공항으로 신혼여행 떠나는 나는
윤택한 삶보다, 아낌없이
주는 삶을 살리라.
김창희
김씨 가문에 영특한 아이가 태어났으니 그 이름이
창희더라, 세상을 밝힐
희소식이더라
허망한 세상을 구제할
영웅이될
숙명을 타고난 아이더라.
안병근
1.
안 산에 예로부터 유명한 호떡집이 있었으니.......
병 신도 먹다 살아나더라!!!!!
근 데 이 소문을 듣고 찾아나선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 호범과 수복 이더라.
이 이제서야 찾았구나. 호범 말한다
호 떡이나 하나 먹자
범 상치 않던 수복 말한다
이 셋기야!!! 안돼!!!!!
수 북히 먹어야 돼~~~~~~~
복 에 겨운 호범이. 그럴까?
2.
안 가야!! 안가야!!!! 후세에 길이 남을 안가야!!!
병 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려는 구나!!
근 면하기도 하다. 근면해!!
김 씨 성을 가진 여인을 이제 만나는 구나!!
희 망차구나!!!! 희망차!!!!!!! 그 이름이여!!!! 김희선....
선 하고 영원히 둘이 아름답게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