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통 영화의 원년이라고 불리는 1895년은 뤼미에르 형제(Lumiere brothers)가 프랑스 파리의 그랜드 카페에서 [기차의 도착]이라는 50초짜리 릴을 상영한 데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이들 형제가 영화를 상영하기 이전, 상당히 많은 카메라가 존재하였다고 한다. 에디슨의 블랙마리아(피아노정도의 크기 였다고 한다)에서부터 여러 나라에서 이미 움직이는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굳이 공식 영화 탄생년도를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으로 보는 것은, 현재의 극장처럼 관객들에게 돈을 받고 상영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영화가 태생적으로 '상영'을 목적으로 하며, 영화자체가 '상품'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상영이 가능했던 점은 그들이 발명한 영사기 때문이었는데, 그 보다 앞서 나온 에디슨의 블랙마리아 같은 경우 스크린에 영사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관람해야 한다는 점으로 인해 1895년 상영된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원조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 떄 그랜드 카페에서 상영된 영화는 [기차의 도착], [공장에서 퇴근하는 노동자]와 같이 실제물을 찍은 다큐물과 몇 편의 단편들이었다. [기차의 도착]은 말 그대로 기차가 도착하는 장면을 찍은 영화였고, [공장에서 퇴근하는 노동자] 역시 제목 그대로였다. 한편 [공장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는 일터에서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기 때문에 리얼리즘 계열의 감독들은 '영화는 태생적으로 리얼리즘이며 노동자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한가지. 처음 영화를 보기 위해 카페에 모인 관객들은 [기차의 도착]을 보던 중, 화면 속에 비친 기차가 자신에게 달려오는 것으로 착각하고 이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고 한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는 거의가 이런 식이었고,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영화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 후, 이들 형제는 높아지는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기위해 멀리 동남아에까지 가서 새로운 이국의 볼거리를 촬영하여 상영하기에 이른다. 들고 다니지 못 할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에디슨의 카메라에 비하면 뛰어난 기능을 보유한 셈이지만 영화는 그저 움직이는, 신기한 볼거리 수준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단 하나,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 중 그나마 이야기가 있는 영화는 뜰에 물을 주는 정원사를 촬영한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정원사가 뜰에 물을 주고 있는 중, 물이 나오지 않자 뒤를 돌아본다. 한 아이가 호스를 발로 밟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알아차린 정원사가 아이의 발을 호스에서 띄어내자 바로 그 순간 아이가 물벼락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엄밀히 말해 이 영화는 연출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찍은 것이다. 아무튼 뤼미에르의 영화는 모두 실제 상황을 촬영한 것이었다.
2.
뤼미에르 형제의 근처에는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elies)라는 한 마술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조르주 멜리에스가 뤼미에르의 영화를 보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자신도 영화가 찍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는 뤼미에르 형제에게로 가 자신에게 카메라를 팔 것을 권유했지만 이들 형제는 멜리에스를 생각해서 카메라를 팔지 않았다. 뤼미에르 형제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그저 움직이는 사진을 찍는 카메라일 뿐 더 이상의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유행이 지나면 사라지고 말 것이라 굳게 믿었던 탓이다. 영화를 발명한 사람들이 영화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멜리에스에게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던지, 여러 경로를 통해 간신히 카메라를 손에 넣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뤼미에르 형제의 카메라 말고도 다른 종류의 것들이 여기저기서 유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멜리에스가 촬영을 하던 중 일이 벌어졌다. 길거리에 나가 장의차를 쵤영 하고 있던 중 카메라가 고장을 일으켰던지 얼마간 정지했다가 다시 작동을 한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집으로 돌아와 필름을 보니 장의차가 지나가다 갑자기 우마차로 확 바뀌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연히 장의차 뒤로 마차가 지나간 것이었는데 중간에 카메라가 작동을 멈추었으니 그렇게 촬영된 것이 당연하였다.
이순간 멜리에스는 이 기계의 새로운 힘을 발견하였다. 그때부터 전직 마술사답게 필름에 색깔도 칠해보고(그래서 멜리에스의 영화에는 칼라도 있다), 별의 별 실험을 다 해 본 것이다. 그리하여 1905년 [달나라 여행 Le Voayge dans la lune]이라는 판타지 어드벤쳐 액션 무비가 탄생하였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와는 차원이 틀린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1909년 [Cinderella Up-to-Date]에서는 20개의 씬을 구성하기까지 하였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원 씬(one scene) 원 컷(one cut)인데 비하면 놀라운 발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