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크라잉넛, 떠돌이 신사. 15년, 팔도강산 유랑하며 마음대로 춤을 추며 떠들었다오. 어차피 우리에겐 내일은 없었어. 뭔가 거창한 것을 이루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두 다리로 서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대에 서길, 바랐을 뿐. 그러다 오늘, 내일, 일주일, 한 달, 1년 안에 뭘 하자는 소박한 꿈이 계속 이뤄지면서 지금까지, 15년을 왔어. 그 떠돌이 인생역정을 풀어 헤친 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오.
이번 책, 사실 두 번째야. 2002년이었지. 우리 모두가 함께 군대를 가기 전에 한 번 낸 적이 있는데, 그때랑 좀 다르긴 해. 크라잉넛 탄생 15주년도 됐고, 여러모로 의미가 있어. 제목도 봐.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랑 달리 거창하잖아. 하하. 음반 낼 때와 비슷하게 설레. 우리 음악팬들도 참 좋아해주고.
주변에서도 재밌대. 내용이 제목만큼 딱딱하지도 않고, 문체도 현실 그대로의 우리래. 문어체 따위가 아닌,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구어체. 그렇다고 욕까지 담은 건 아니고, 하하. 그래서 우리답게 책을 냈대. 뭣보다 분량이 길지 않아서 좋대나, 뭐래나. 꽐라~
물론, 집엔 안 가져가겠다는 멤버도 있어. 부모님은 물론 아내 흉도 봤으니, 조용히, 쉿. 가족들은 보지 말아주세요~~~ 이런 분도 있더라고. 제목을 보곤, 서점에 가서 어느 코너에서 찾아야 하냐고 묻는. 처세나 자기경영, 이런 분야에서 찾아야 하냐고. 그래서 딱 말해줬지. ‘신간’에서 찾으시면 됩니다. 헤헤. 어쨌든 우리 이름으로 나온 책이 서점에 있다는 게 신기하고 감회가 새로워.
책을 처음 기획할 땐, 지금의 인터뷰 형식이 아니었어. 소설 형식이 가미된, 시쳇말로 쪽팔리긴 하지만 전기 형식이었다고 할까. 그렇게 있었던 일 위주로 하고자 했는데, 진행되는 과정에서 바뀌었어. 물론 이게 자연스럽고 좋아. 그래도 나중에 욕심이 있다면 소설 형식을 빌어도 재밌을 것 같아. 그런데, 누가 쓰지? 하하.
이런 생각을 한 건, 올해 나왔던가. 『에릭 클랩튼』이라는 전기를 봤는데, 가감 없이 일대기처럼 쓴 게 마음에 들더라고. 그래서 우리도 이리 나오면 좋지 않을까 싶더라고. 물론 클립톤처럼 술, 마약, 첫경험 이런 건 아니고. 하하. 우리에게도 작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많거든. 공연에서부터 일상 등의 에피소드들을 잊어버리지 않을 때, 하고 싶긴 해.
그 에피소드, 우리의 이야기에 같이 가 보시려오? 외로운 강 길에 친구 되겠소. 흥청망청 비틀비틀 요지경세상, 발걸음도 가벼웁게, 좋지 아니한가? 우리는 크라잉넛, 서커스유랑단 헤이!! 꽐라~
친구,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이유
크라잉넛, 우리는 김인식, 박윤식, 이상면, 이상혁, 한경록. 다섯의 개별성이 뭉친 하나의 우리야. 리더? 그런 건 없어, 우린 친구거든. 아주 오래된 불알친구. 사나이의 의리와 낭만, 친구, 우정, 그런 것 우린 되게 좋아해. 영화 <친구>의 메인카피였나.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암, 우리를 일컫는 것이기도 하지. 다만, 우린 두려울 게 없었던 건 아니고, 두려운 것을 이겨낼 수 있었지. 바꾸면 이래. 함께 있을 때, 우린 어떤 두려운 것도 이겨낼 수 있었다!
우리는 신용산초등학교 때부터 동네 친구였어요. 부모님들끼리도 다 아는 사이예요. 박윤식은 초등학교 때 친구였다가 전학 가는 바람에 헤어졌는데 중학교 때 다시 ?났고요. 그렇게 이상면, 이상혁 쌍둥이 형제랑 한경록, 박윤식은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나왔어요. (p.27)
사람들은 물어. 멤버 교체 없이 15년을 어떻게 함께 했냐고. 사실, 다른 무엇보다 이 점이 가장 자랑스러워. 중간중간 싸움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함께 달려올 수 있었던 건, 아마 사랑과 증오? 하하. 함께 있으면 재밌어서 좋고, 20년 지기 친구들이니 서로를 잘 알아.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도 어떻게 무마하고 해결하는지. 가령, 두 명이 싸우면 한 명이 이건 이렇고 저건 이렇다며 중재자 역할을 하는 단계까지 도달했어.
그러니, 더 좋은 사람이 있다 해도 뽑고 싶지도 않은 거지. 아울러, 의리라는 맥락도 있고, 서로 좋은 의미에서 경쟁한다는 측면도 있어. 우리도 이렇게 해보니, 한 집단은, 친구나 가족적인 분위기로 형성될 때, 가장 좋은 것 같아. 우린 매니저 한 명도 동창이야. 쭉 같이 해왔고, 신뢰고 있고, 끈끈해. 친구라는 개념, 그게 참 좋아.
이익집단이었다고 생각해봐. 그러면 그 안에서도 누가 더 벌고 못 버는 문제로 다툼이 벌어질 수 있어. 일을 하면서 부가 쌓이지 않으면 끝나거나. 친구면서 정으로 뭉친 우리는, 더 벌면 친구를 위해 쓰고, 부족하면 채워주고, 그래. 밴드 안에서 계급이 생기면 힘들지, 계급장 떼고 해야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잘 돌아가는 것 아니겠어, 하하.
뭐, 딱히 우리가 인간성이 모두 좋은 건 아니고, 적당히 안 좋긴 한데, 그것도 균형을 맞출 수 있으니까, 좋아. 친구잖아. 이렇게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즐겁게 살 수 있는 건, 친구 덕분이지. 물론 불알친구니까 당연히 ‘척’하면 ‘착’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전혀 아냐. 다, 그것들도 세월과 함께 쌓이면서 가능해진 부분이야. 술도 함께여서 가능했겠지? 꽐라~
밴드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성이 좋아야 해요. 제일 중요한 게 그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밴드만이 다른 사람들한테 행복을 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진실한 음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p.93)
크라잉넛, 또 다른 시작
알다시피, 우리가 처음부터 음악만 하겠다고 작정하고 나선 건 아니었어. 하나의 놀이에서 시작했다고나 할까. 문제의 수학여행이 시작이었던 걸까, 하하. 그게 뭐냐고? 그래, 때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갔던 수학여행이었지. 당시는 장기자랑하면, 댄스나 막춤이 대세였을 때였다고.
그런데, 음악을 좋아하는 한 친구가 무대에 올라가 기타를 잡고 ‘메탈리카’를 연주하는데… 우와, 완전 충격, 충격. 멋있는 거야. 당시의 우린, 음악을 듣기만 했는데, 실제로 연주하는 건, 처음 보고 들었던 거지. 그래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힘을 얻었고. 뭣보다 여학생들이 꺅, 꺅, 좋아하는 거야. 이거다, 이거. 하하. 다들 한명씩 전자기타를 사고, 그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거지. 꽐라~
크라잉넛, 이름의 탄생은 별 거 아냐. 한 천 번은 들었던 질문인데, 답을 하자면, 책에 나온 이 내용을 참고해 줘.
한번은 우리가 용산으로 놀러 간 적이 있어요. 그때 길거리에서 호두과자를 팔았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차비고 뭐고 다 털어서 그걸 사 먹은 거예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너무 멀어서 정말 징징 짜면서 갔어요. 그때 호두가 영어로 뭔지 모르지만 땅콩 종류니까 너트를 떠올린 거죠. 그래서 ‘우는 땅콩’ 뭐 이렇게 해서 이름이 나온 거죠. 진짜 썰렁하죠? 그래도 밴드 이름이 우리가 하는 음악이랑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p.28)
그래, 역시 우리가 처음 알려진 건, 「말 달리자」였지. 얘길 안 할 수 없는데, 상혁이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나온 노래인데, 물론 딱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온 노래는 아냐. 그게 머릿속에 맴도는데, 정리는 안 되고 그럴 때, 어느 날 학교에 갔다 오다가 차속에서 번뜩 뭔가가 떠오르는 거야. 그걸 친구들에게 드럼을 치면서 들려줬고, 5분 만에 후다닥 만들어진 곡이야. 호응? 당시 자작곡이 몇 곡 안 되다보니 만들기만 하면 호응이 폭발, 폭발, 하하.
그때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더러운 거예요. “그래, 젠장, 난 아무 것도 모른다!”하고 소리 지르다가 생각해보니 ‘살다 보면 그런 거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그 노래가 나오게 된 거예요. (p.56)
계속 공연을 하면서 그 노랠 불러댔어. 클럽에서만 공연하다가, 처음으로 지금의 상상마당 부근에서 야외 공연을 했어. 잘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태였지. 그런데, 와 보니 사람들이 가득했고, 우와, 사람들이 우릴 많이 알아주는 거야. 또 깜놀(깜짝 놀라다)이었어. 사인이라는 걸 처음 했고, 우리끼리도 연예인이라고 놀리고, 하하. 그때 알았어. 우리 음악도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구나. 노래로,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할까. 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1996년 드럭 레코드에서 발매한 <Our Nation 1> 구석에 실린 「말 달리자」가 뜨는 데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방송사와 라디오 시스템에 기댈 수 없는 인디 밴드가 자신의 곡을 알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크라잉넛은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순수하게 공연을 통해 노래를 알려나간 것이다. (p.35)
치고 박고, 크라잉넛 좌충우돌기
물론, 모든 게 순조로웠던 건 아니지. 우리를 둘러싼 여러 여건과 매일 싸워야 했던 시절도 있었어. 그땐, 음악하기도 쉽지 않았어. 예전엔 클럽 공연이 불법이었거든. 우리가 펑크음악을 하는 최초의 밴드기도 했고. 그러니 정체성을 찾으면서도 헷갈렸어.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펑크를 한다면서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며, 아니꼽게 생각하고. 우리도, 그런 것들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고 반박도 했다. 70년대 영국도 아니고, 여긴 대한민국 아니냐. ‘조선펑크’라고 이름 지으면서 그런 관념들과도 싸웠어. 지금보다 어렸을 때니까, 말로 안 되면 몸으로 싸우기도 했지, 하하.
그땐 정말 이랬어. 우리가 나오면서 펑크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는데, 모던 록이나 헤비메탈 신 등 음악 하는 사람들이 우릴 고깝게 보는 거야. 같이 음악 하는 입장에서 그게 말이 돼? 선후배 아니더라도, 인정하고 교류하고 그랬어야 하는 거 아냐? 자기음악만 하느라 배척하고, 그런 것들이 아니꼬웠던 시절도 있어.
쿠쿠, 그래. 당시, 우리는 시작하는 단계라 친구는 별로 없고 다 적이었던 시절이었지. 조금씩 꾸준히 해나가니까, 출구가 열리면서 친구가 되더라고.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끼리 주먹다짐도 했어. 이유가 뭔지 알아? 술잔에 담배가 빠졌다고 싸우고.
평론가들과도 많이 싸웠어. 함께 술 마시다가도 취하면 태클을 거는 거야. 또 막 이래. 너희들은 이촌동 사는데, 펑크 할 자격이 안 돼! 그런 식의 공격, 많이 받았어. 그런 시절에 「말 달리자」는, ‘너희가 펑크를 알아’에 대한, 우리의 답이지. 그래, 우린 모른다. 다 죽어버려. 너네가 말하는 건 말이 되냐. 하하.
그렇게 평론가 등이 따지고 들 때, 우리는 언더에만 머무르지 않기로 했어. 밖으로 뛰어나가자! ‘스트리트 펑크쇼’도 하고, 방송에도 나간 거야. 인디 신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밖으로 나가서 하겠다는 생각으로 파파박, 뛰어나갔어. 그게 먹힌 건지, 어떤 건지 몰라도, 상전벽해라고 할까. 옛날에 대놓고 뭐라 그러고 평론에 안 좋게 썼던 사람들이, 요즘엔 우리 옆에서 술 먹고 공연도 기획해 주고 있다고. 얼굴, 다 기억하고 있어, 하하. 아마, 모를 걸. 우린 세계를 정복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규. 꽐라~
간섭받지 않는 창작의 자유, 인디
우리는 여전히 인디 밴드야. 우선, 우리가 생각하는 인디는 이래. “영어로 인디펜던트(independent)라고 했을 땐, ‘자생성, 독립’ 이런 걸 의미하는 거거든요. 음악을 만드는 정신이나 시스템이 자생성을 갖추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라고요.”(p.101)
인디의 장단점을 꼽자면, 우선 인디는 소자본으로 할 수 있는 일종의 창업이야. 돈에 구애받질 않아. 예를 들어, 지금의 많은 아이돌이나 대형기획사 소속 가수는 투자에 대한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비슷비슷해지지. 그런 논리에서 자유로워지기가 힘들어. 하지만, 인디는 그렇지 않아. 자유로울 수 있지. 어떤 실험도 할 수 있지.
음악계에서 주류란 흔히 대형 음반사를 중심으로 천편일률적으로 찍어져 나오는 수많은 대중가요를 가리킨다. 주류 음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천편일률성과 몰개성이다. 기획사에 의해 만들어진 그룹들은 ‘섹시’, ‘큐트’, ‘청순가련’, ‘짐승남’ 등 몇 가지 역할을 요구받고 로봇처럼 기능한다. 샘플링이라는 방식으로 빈번히 활용되는 표절과 베끼기가 이제는 일정 수위를 넘을 정도다. (p.157)
그러니까, 우린 다른데 눈치 볼 필요가 없어. 여기저기서 협찬을 받으면, 그래, 스폰서를 받으면, 이런 저런 노래도 때에 따라선 부르면 안 되고, 악기까지도 제한을 받기도 해. 인디는 그런 게 어딨어. 소자본이라, 돈이 없어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고 맹점인 것도 사실이지. 하나, 그 제약이 때론 또 다른 스타일을 탄생시켜. 즉, 창조성이 더 필요하고, 없는 환경에서 최대한 실험하다보니 창조적인 것도 나오고.
우릴 인터뷰했던, 커피 만든다는 사람이, <아이다호>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이야기를 꺼내더군. 구스 감독이 데뷔작 <말라 노체>를 찍을 때, 돈이 없었대. 다만 마음속엔 마을과 구름, 길, 청년이 있었을 뿐. 돈이 없어서! 캐스팅도 비전문배우들을 데리고, 흑백 필름으로, 세공되거나 다듬어졌다는 느낌 없이, 84분짜리 첫 영화를 찍었대. 그야말로 거친 것들의 조합. 구스 감독 왈. “이 영화를 찍을 때 가난했다. 환경이며 조건이 열악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차라리 어떤 스타일이 되었다.”
인디는 그렇게 스타일이 될 수 있어. 공산품처럼 몰개성적인 무엇이 아닌, 특별하고 독특한 무엇. 그것이 우리가 인디를 계속하는 이유이며, 클럽과 공연 활동에 주력하는 이유야. 한 달에 한 번 후배들을 DGBD(‘드럭 drug’과 ‘블루 데빌 blue devil’을 합쳐 만든 클럽)로 초청해서 한 무대에 서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우리는 95년부터 클럽밴드로 시작했고,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클럽공연이야. 여기서 팬들과 직접 만남으로써 우리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인디 뮤지션들과 공연하면서 흐름을 느낄 수 있지. 우리가 녹슬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이랄까. 하하.
크라잉넛은 이미 주류 밴드 아니냐는 오해가 있다. 인디 밴드로는 유일하게 10만 장 이상 팔린 앨범이 두 장이 넘으며 2002년 월드컵 당시 대규모 응원단에 들어갔고 TV에 간간이 얼굴을 비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활동 기반은 여전히 클럽이고 공연이다. (p.102)
함께 하는 공연이름이 ‘크라잉넛 쇼’인데,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팀을 섭외해. 무대를 통해 좋은 뮤지션을 소개하고, 장을 열어주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사실, 예전 클럽 드럭에서 공연할 때는, 매주 거기 있는 밴드들하고만 만날 공연을 하다 보니, 바깥을 몰랐어. 하지만 지금은 후배 팀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는 바깥을 알게 되고, 그 친구들은 우리와 공연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보여줄 수 있으니 윈-윈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크라잉넛이 다른 인디밴드와 교류한다는 건, 나이테를 쌓는 것과 같아. 서로가 서로에게. 함께 만나 공연한 기록 내지는 추억으로 남고. 이게 다 공연 뮤지션으로 남아있어서 가능한 거지. 오래 되면 될수록 나이테가 쌓여갈 거고, 술잔도 엄청 쌓일 테고. 꽐라~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후배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거죠. 그렇게 인디 음악 신 전체를 탄탄하게 일구는 것도, 후배들과 교류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p.133)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삶 거부하기, 철들지 않는 즐거움
우리, 15년 활동하다보니, 어느덧 30대 중반이야. 캬~이렇게까지 오래할 줄도 몰랐고, 우리가 어느덧 그 나이가 됐는지도 실감이 안 나네. 하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삶과는 약간 동떨어진 것도 사실이야. 그 나이 즈음에 나누는 주식, 부동산, 자식교육 등의 이야기보다, 아직 악동 짓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사실 그래. 철들지 않는다는 게,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른 것일 수도 있어. 이 책에서 얘기하고 싶은 건,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과감하게 살자, 그렇게 살아도 괜찮더라, 그렇게도 우린 살아왔다. 지금 시대, 청년이나 젊은이 들에게 너무 철들기를 강요하는 시대야. 좋은 대학 나와서, 토익 점수 따고 좋은 직장 가고, 결혼 잘 해서 아이 잘 키우고…
꼭 그렇게 짜인 길, 최소한 우리에겐 그 삶은 아니라고 봐. 그렇게 가는 친구들을 많이 봤는데, 대부분이 그렇게 사는 인생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더라. 차리라 홍대 밴드 친구들이 밝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영원히 철들지 않겠지? 하하. 꽐라~
어떤 어른들은 일단 돈부터 벌고 안정적인 기반을 닦은 다음 나중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그래요. 그렇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과연 그런 마음으로 매일매일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요? 대충대충 설렁설렁 하지 않을까요? 그러고는 행복하지 않다고 투덜대고 주변에 대고 화를 내고 다른 걸로 보상받으려 할 거예요. (p.42)
어허, 그렇다고 오핸 하지 마. 우리도 그렇게 또라이는 아냐. 우리도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며 주변에서 충고도 많이 받았어. 하지만, 우린 거기에 따라 사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많이 바꿨어. 좋아해서 이 일을 계속 했고, 또 하고 싶으며, 이 일을 해서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다른 사람까지 즐길 수 있어서 우린 행복해. 우리 힘으로 만들었으니까!
어느새 우리 땅콩들이 미중년이 됐어요. 지금도 가끔 믿어지지 않는데 우리가 30대 중반이더라고요. 친구들은 주식 얘기하고, 학부모 돼서 고민하고 그러는데 우리는 여전히 철이 들지 않았어요. 악동 짓은 여전하고, 아침까지 술 마시며 달리고, 진짜 훌륭한 공연 보면 가슴이 뛰고, 좋은 공연 해내면 가슴이 터져버놸 것 같거든요. 조금 점잖아지기야 했죠. (p.7)
아마도 그건 ‘재미’가 있기 때문이겠지. 우린 공통적으로 공연을 재밌게 생각해. 공연은 사람들과의 소통인 것 같아. 노래를 만든다는 것, 즉 살면서 느낀 것을 멜로디로 만들어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게 재밌고, 무대에서 관객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는데, 그것도 재밌어. 특히,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듣고 생각하게 되면, 노래가 삶도 움직일 수 있잖아. 그게 재밌어.
15년 세월을 한결같이 달릴 수 있었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재미, 누가 뭐라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재미. 크라잉넛 음악의 다양한 스펙트럼 역시 바로 이 ‘재미’에서 나온다. (p.63)
그러니까, 재미있으면 질러. 정신 못 차리고 하는 거지. 왜 그 잘나고 훌륭한 검찰에서 떡검이 되는지 알아? 이거야, 이거. “너무 일찍 정신 차려서 하고 싶은 거 포기하고 공부만 하고, 현실과 타협하다 보니 ‘떡검’이 되고 그러는 거잖아요.” (p.42)
쪽팔리게, 검사까지 돼가지고선 떡검이 뭐야, 그치? 자신의 재능을 그렇게 풀고 키워야겠어? 그건 재능보다 집이나 땅에 온통 몰두하니까, 그렇다고. 오늘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 집으로 돈을 벌고, 그렇게 돈이 돈을 버는 게 얼마나 웃겨. 집은 그냥 있는 거고, 사는(living) 건데, 안 그래? 우린, 문화를 만드는 게 지금까지 사람이 해 온 일 중에 가장 훌륭한 일인 것 같아. 무엇이든 자기 재능을 닦아서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그것으로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게 제일 좋은 투자 아닐까?
그래서 책에서 얘기한 거야. “재능이야말로 그 사람 마음속에 있는 땅이고 집이다.” 부동산은 외부에 있는 것이라 못 갖고 다니잖아. 하지만, 재능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이고, 언제든 꺼내서 쓸 수 있는, 진정한 자기 것이잖아.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만족할만한 정신적인 부를 축적할 수도 있는.
각자의 재능을 갈고 닦아서 그걸로 돈을 버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재능이야말로 그 사람 마음속에 있는 땅이고 집이잖아요. 그 땅을 갈고 닦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어요. 행운도, 정보도, 기회도 아니에요. 스스로가 땅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전 음악인이 된 거고요. 많은 돈을 벌진 못하지만 제 자신이 땅이고 집일 수 있어서 행복해요. (p.67)
크라잉넛, 낭만에 대하여
대한민국 사회에서 ‘집’은 행복의 척도잖아요. 너나없이 내 집 마련에 혈안이 돼서 20대도 직장 들어가면 주택청약적금부터 들고요. 30~40대가 돼서 집이 없으면 다들 불안해하잖아요. 특히 나이 많으신 어른들에겐 집만 한 보장 자산도 없다고 그러고요. 그렇지만 일을 하고 살아가는 이유가 오로지 ‘내 집 마련을 위해서’라는 건 너무 허무한 거 같아요. (p.66)
자, 그러니, 즐기고 놀아보자고. 젊어서 놀라고 하잖아. 내일이 불안하다고? 천만에, 불안증폭사회라 그래. ‘자기 창조적 불안’을 조장하고 강요하는 세력이 준동하는 호들갑에 휩쓸리지 말자고. ‘지구촌 불안 동지’가 되기 때문에 갖게 되는 마음의 ‘부란(腐爛)’. 즉, 썩고 문드러진 마음을 우리 크라잉넛과 함께 날려버려~ 오늘을 즐겨.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즐긴다고 하니까, 와장창 놀자, 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고, 유식한 말 하나 써볼게. ‘知之者(지지자) 不如好之者(불여호지자), 好之者(호지자) 不如樂之者(불여낙지자)’ 흠흠, 이 말, 알지?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뭐, 즐기는 사람이 제일 잘한다는 그런 얘기잖아.
즐긴다는 건, 그래. 과거를 즐길 수는 없고, 미래를 생각해서 오늘을 포기하겠다는 것도 아니듯이, 즐긴다는 자볃는 현재 이 시점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니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거고, 즐길 수 있다는 거지. 이렇게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어. 지금 살고 있으면 내일도 살 수 있다!
그게 우리에겐 음악이야, 음악! 그래서 지금이 우리에겐 가장 에너지가 충만한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이제 좀 음악을 알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무대에서도 좀 더 자유로워졌어. 관객과 호흡하고, 서로 에너지와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힘이 있는 시기. 어제? 별로 기억도 못하고 돌아볼 필요도 없어. 지금이 가장 활발하니까.
하긴, 십 수 년 전에는 메이저, 마이너 코드만 알았는데, 지금은 나인코드, 식스코드도 아니까, 음악적으로도 엄청 발전한 거다, 하하하. 더구나 음악을 잘 하려면 어떤 연습이 필요한지도 알 것 같아. 즉, 음악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터득하게 된 거지. 우린, 음악에 대해선 ‘타협은 없’는 욕심쟁이들이거든.
우리의 음악적 뿌리는 펑크예요. 이젠 거기다 다른 옷을 덧입히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무장르인 동시에 전 장르인 음악을 하는 거죠. (p.115)
참, 술, 알코올 이야기도 빠트릴 순 없지. 우리에게 술은 낭만이야. 술 마시면 다 괜찮아지는 낭만밴드가 크라잉넛이라고! 상면·상혁의 할머니께선 책에 술 얘기 많이 했다고 혼내시더라고.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도 보고하라고 하시고, 하하. 한 번만 더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 마시면 아주 개박살이 날 거라는 소리도 듣지만, 이런 게 다 낭만 아니겠어? 꽐라~
우리 정서가 좀 올드한 게 있는 것 같아. 7080세대라 그런가? 하하. 낭만에 대해 동경하다보니, ‘서커스’라는 단어도 쓰고, 유랑극단 같은 모습도 그려놓은 거지. 요즘, 정말 낭만 찾기 힘들잖아. 그래서 낭만이 각박한 현대사회에 대한 반항 같기도 하고. 일부러 노래에 그런 정서를 넣기도 해. 사람들에게 여유를 갖게 하고, 한 번 돌아보고 숨 쉴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낭만과 유머는 꼭 필요해!
우리는 크라잉넛 떠돌이 신사 한 많은 팔도강산 유랑해보세 마음대로 춤을 추며 떠들어보세요 어차피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
떠돌이 인생역정 같이 가보세 외로운 당신의 친구 되겠소 흥청망청 비틀비틀 요지경 세상 발걸음도 가벼웁다 서커스 유랑단 Hey~
- 「서커스 매직 유랑단」 중에서 -
우리, 크라잉넛의 낭만은 조금은 특별한 게 있긴 해. 꼭 보헤미안이 되지 않아도, 우리 자신이 하는 일을 주어진 환경과 상황 안에서도 되게 자유롭게, 위트와 유머를 구사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우린, 그런 밴드야. 그런 서커스 매직 유랑단~ 꽐라~
사실 로커의 일상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술 먹고 까불고 욕먹고 싸움질하고… 아, 이건 아닌가? 이런 일상이 모여 재밌는 일상이 나오거든요. 공연 끝나면 장장 19시간 뒤풀이를 해도 누가 뭐라지 않는, 그런 게 밴드의 삶이고요. (p.144)
연말, 함께 달리고 내년에도 잘 달려보자!
인터뷰 마무리할 때가 다 됐나봐. 커피 만든다는 이 양반이 묻네. 존 레논, 좋아하냐고. 12월8일이 30주기라며,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그러네. 참, 별걸 다 물어. 꽐라~ 어쨌든, 우리가 존 레논 형님을 죽이지 않았어! 참, 영화도 개봉한다고 그랬나. <존 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 존 형님, 영화 잘 보겠습니다. 꾸벅.
여하튼, 존 레논은 비틀스 멤버 중에서도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꾸려고 가장 노력한 사람이지. 다른 멤버들은 아티스틱(artistic)하고, 특히 폴 매카트니는 음악적으로 천재인데, 다른 멤버들이 존 레논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면, 그건 세상에 대한 사랑이지 않을까.
응? 64살이 되면,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냐고? ‘환갑 크라잉넛’ 운운하긴 했지만, 우리가 직접 언급한 건 아니라고. 하하. 글쎄, 그때가 되면 우리 노래가 꽤 많아질 텐데, 연습하려면 정말 빡셀 것 같네. 또 음악도 하고 있겠지만, 여러 다른 일도 하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구체적인 건 잘 모르겠고. 어떤 인디 밴드 팀을 봐주고 있거나, 프로듀싱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때 가면 음악에 관한 모든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 뭣보다 국산맥주가 지금보다 훨씬 맛있어졌으면 좋겠어. 흠흠. 아, 환갑이 되면 40주년 콘서트도 해야 되겠네. 지금 40주년 콘서트 하는 가수가 누구지? 아, ‘패티 김’ 선생님 정도인가? 밴드로 40년을 하고 있다면, 책을 또 내야지. 밴드로 10년 넘어 하기도 힘든데, 40년이면, 어휴.
어라? 이 양반이 왜 물어봤는지, 말하네. 아, 비틀스의 노래, 「When I'm Sixty Four」. <롤링 스톤>이 존 레논과 인터뷰하면서 물었대. “당신이 ‘64살이 되면’ 오노 요코와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 존 형님이 이렇게 답했다네. “아일랜드 해안가에 사는 멋진 노부부이거나 뭐 그 비슷한 사람들이 되어서 우리의 광기를 스크랩해놓은 책을 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와, 아일랜드. 우리도 거기 가서 맥주 마셨으면 좋겠다. 여러분, 우리랑 함께 늙어갈 거죠? 하하.
새해 인사? 아, 벌써 그래야 할 시기구나. 내년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 시간표를 만들어서 3일만 지켜보자고. 1월3일까지. 작심삼일! 아자. 농담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겠다는 게 당장 힘들지 몰라도, 가령 음악을 좋아한다면, 기타를 칠 수 있는 정도의 용기는 냈으면 좋겠어. 음악을 듣지만 말고, 악기를 하나라도 할 줄 알게 되는 거, 그게 재밌거든. 그게 음악을 하는 인생이거든.
또 우리 책도 많이 사주면 고맙고, 아, 맞아 DVD. 그게 졸라 재밌어, 최고, 최고. 사실, 책보다 DVD가 더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그게 더 돈이 되거든, 하하. 책을 샀으면 DVD를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해 고민해 주삼. 특히 세뱃돈 받으면, 가까운 서점이나 인터넷에 들어가서 꼭 사 주시라. 꽐라~
참, 12월31일, 2010년의 마지막 날, 상상마당에서 콘서트를 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당이라 언플러그드로 할 거거든. 서둘러, 서둘러. 늦으면 못 볼지도 몰라! 꽐라~ 재수 좋고 재미 좋으면, 카운트다운도 함께 하면서, 해피 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