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컬러풀
작성자 : 김초롱
여름의 햇살이 기분 좋은 8월의 어느 날, 41번 버스에 올랐다.
창문으로 지나가는 가로수들을 보며, 낯익은 길을 따라 버스가 도서관에 도착했다.
맑은 초록빛으로 둘러싸여 있는 기와지붕의 2층 건물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선하게 웃고 있었다. 정류장에 내려 도서관 뒷길로 들어섰다. 도서관 뒤편은
그늘이 져 있지만, 나무들의 초록 잎과 그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어우러져
숲속 나무 그늘 아래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오랜만에 찾은 이곳. 도서관 좌측
입구에 들어서자 정숙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서늘한 공기와 조용한 실내는
무겁고 발걸음 소리까지 위축되게 만들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열정으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떠올라 왠지 모를 기분 좋은 설레임이 느껴졌다.
복도를 지나 이층 열람실로 향했다. 한 계단, 한 계단 계단을 오르며 4년 만에 찾은 이곳이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 졌다. 2층에 들어서자 방학이라 그런 걸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각자 자신만의 공간 속을 여행하고 있었다.
4년 전, 답답하던 나의 사춘기 시절. 왠지 도서관에 가고 싶었다.
그 곳에서 뭔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그리고 찾은 책이 ‘컬러풀’이였다.
손때 묻지 않은 책 한권이 귀여운 표지와 함께 가볍고 즐거운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편한 마음으로 집어 들고 책상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사람이란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결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라 로시코프>. 머릿속에 쾅하고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난, 행복하지 않고 불행하다고 느껴졌다. 달콤한 행복이란
나에게서 너무 멀리 있는 남에 이야기였고, 난 한없이 불행한 존재 같았다. 그런 나에게
이 문장은 나를 혼란 속으로 빠지게 만들었고 이 책속에 내가 찾는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책의 내용은 ‘나’는 전생의 기억을 잃은 영혼. 전생에서 엄청난 죄를 저질렀는지
윤회 사이클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다시는 인간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프라프라라는 천사가 나타나 “축하합니다! 당첨됐습니다.”하면서 재도전할 기회를
주겠다고 한다. 재도전이란,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인간 세상에서 다시 한 번
수행을 쌓는 것. 수행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나’의 영혼은 무사히 윤회 사이클로 복귀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별로 내키지 않지만 고바야시 마코토라는 소년의 몸을 빌려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다. 마코토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독한 소년이었다.
재도전하는 과정에서 ‘나’- 사실은 자살한 마코토-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때로는
너무 늦은 깨달음이 아닐까, 돌이킬 수 없는 깨달음은 아닐까 불안해하면서도
많은 것을 깨달아 간다. 사람이란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에서 누군가를
구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기도 하는 법임을 알게 되고. 이 세상이
너무나 컬러풀하기 때문에 우리들 모두는 언제나 헤매곤 한다고도 말한다.
세상이 한가지색 만으로 핑크빛이거나 회색이지는 않다. 세상은 컬러풀한 것이다.
때로는 사랑스러운 핑크빛이기도 하고 희망찬 하늘색 이기도하고 울적한
회색빛이기도 하다. 나 자신을 마냥 슬프고 불행하다고, 내 인생은 하늘빛 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칼라풀이라는 단어는, ‘사람이란 자기가 생각한 만큼 결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는 말과 함께 생각의 전환을 가져 왔다.
혼단스럽고 답답하던 회색빛 삶속에서 세상의 색깔을 찾기 시작했다.
유난히 햇살이 좋은 아침 기분좋게 일어나 느끼는 설레임의 색. 길을 걷다 때마침
건너려던 횡단보도에 초록 불이 켜질때의 작은 행복의 색. 못 풀던 수학 문제가 풀렸때
느끼는 성취감의 색. 친구들과 점심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눈는 이야기의
달콤함의 색까지. 내 주위에는 내가 스스로 그늘지우고 있어서 못보던 밝은 색들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인생이 칼라풀하다는 말의 뜻을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사춘기를 지나왔다.
4년 만에 다시 그 책을 찾았다. 사춘기의 혼란을 다독이고 성인이 된 나는, 다시 그 책이
만나고 싶어졌다. 컴퓨터로 검색해 책 번호를 적고 일본 서적으로 가서 책을 찾았다.
4년이란 시간만큼, 가볍고 즐거운 느낌을 풍기던 넌, 어느새 손때로 지나온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갑다 친구야” 성인이 된 내가 다시 어린시절 친구를 찾듯 책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책장을 넘겼다. <‘사람이란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결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라 로시코프>. 인생은 달고 쓰고 짜고 매운 오감으로 다 표한하지
못하는 오묘한 맛. 광고의 카피처럼 ‘에스프레소가 맛있어지는 나이’.
달콤한 카라멜 마끼야또 보다 에스프레소가 맛있어지는 나이. 나는 인생의 달콤함 보다
쓴맛을 즐기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 에스프레소 보단 아메리카노가 좋지만,
조금씩 조금씩 커피의 씁쓸함을 즐기며 언젠가는 내 인생의 에스프레소도 즐기겠지.
22살 여름의 끝에서 책을 덮는다.
다시 널 만날 때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나의 풋풋했던 한 여름을 기억하고 싶다.
경주시립도서관 사이버 독후감에서 [펌]
첫댓글 가까운 지인의 글을 올려보았습니다..
따님도 글을 잘 쓰네요,,ㅎㅎ
경주시립도서관...음~.................. 글 잘 보았습니다.
오잉~~ 벌써 눈치 채셨남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