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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그놈
사이채
검푸른 파도는 창백한 거품을 쏟아내며 질주했고 동이 트기 전 어둠이 요동질 쳤다. 그렇게 바다는 아침 맞을 채비에 분주했다. 선실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새벽에 잠이 깼다. 밤새 들썩이던 선실 안은 평온했다. 제주도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제주도는 가족과 몇 번 가봤지만 300명이 넘는 2학년 애들과 함께 가는 건 색다른 기분이었다. 흥미롭기도 하고 처음 타보는 배가 불안하기도 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8시 30분이었다. 광제 이 녀석은 어디 간 걸까. 게임을 하고 있겠지. 광제를 찾아가는데 배가 조금 흔들렸다. 8시 48분, 왁자지껄한 설렘을 가득 싣고 달려가던 세월이 돌연 멈춰버리고 봄날에 훈풍은 산산조각이 났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록 서로 겁에 질린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고 아이들이 날린 카톡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다들 사랑해. 진짜 사랑해. 애들아 진짜 사랑하고 나는 마지막 동영상 찍었어.
방송도 안 해줘. 그냥 가만히 있으래.
승무원은 구명조끼도 안주고 남학생이 갖다 줬어.
너무 무서워. 캐비닛이 떨어져 옆방 애들이 깔렸어. 무서워.
아슬아슬한 물살에 실린 뗏목에 바짝 엎드렸다. 서해바다에 동동 떠다니는 꽃이 점점 늘어났다. 목련 진달래 개나리 철쭉 수선화 각양각색의 꽃이 비명 한마디 없이 바다를 빨갛게 물들였다. 유영이는 수선화를 좋아했다. 점점 가라앉는 뗏목에서 손을 뻗쳐 수선화를 잡으려는데 어디에선가 달려온 병풍만 한 거품 하나가 짓궂게 조롱하며 달아나 수선화가 떠밀려갔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기회를 엿보다 파도가 높이 솟구치자 손을 힘껏 뻗어 올렸다. 손에 잡힐 듯하던 아침 햇살이 하얀 장막 뒤로 사라졌다.
아침은 오지 말았어야 했다. 얼음으로 만든 뗏목은 햇살에 녹아내려 서서히 해체됐다. 뗏목을 삼켜 포동포동한 바다는 태연했다.
여기가 어디야?
유영이 물었지만 어디인지 알려주지 못했다. 산호초와 진주가 사는 줄 알았던 바닷속이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랑해.
유영을 덥석 끌어안았다. 품에 움켜쥔 유영은 이미 인어가 돼 있었다. 인어는 스르르 빠져나가 위로 오르더니 장막 뒤로 숨어버렸다.
유영아.
외마디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천정에는 빨간 빛에 휩싸인 뱀 한 마리가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집을 찾지 못한 걸까. 뱀은 구석에 웅크린 인어를 향해 간다. 고개를 떨어뜨린 인어가 운다. 초록빛 눈물이 내 눈에 떨어진다. 눈이 아리다. 얼른 눈을 비벼서 살피니 유영이다.
유영아.
손을 치켜들어 유영을 부르자 후다닥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린다. 엄마가 침대에 누운 나를 끌어 앉고는 울먹인다.
그럴 리 없다. 분명히 유영을 갑판으로 올려 보냈다. 고약한 꿈이다.
휴대폰을 달라고 소리치자 엄마는 내 양손을 잡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 오고 나서 집안에선 텔레비전 소리나 휴대폰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친구에게 딱 한 통화만 하겠다고 부탁한다. 엄마는 마지못해 방을 나가더니 휴대폰을 들고 와 건넨다. 침대에 다시 앉으려는 엄마에게 나가 달라고 부탁하자 잠시 망설이더니 걱정이 가득 담긴 눈빛을 하고는 방을 나간다.
휴대폰이 꺼졌다.
꺼져버린 촛불 심지에 다시 불붙이듯 전원 버튼을 누른다. 여기저기서 보내온 문자 메시지 수십 통이 들어있다. 주소록에서 벌꿀을 찾아 통화 버튼을 누른다. 유영의 애칭이다. 카톡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지만 통화는 오랜만이다. 그의 목소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럴 수가.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다니. 괜찮다. 목소리를 들으면 금방 알게 될 테니까.
유.영.아.
부르르 떨리는 입술로 떠듬떠듬 이름을 부른다.
한참을 기다리자 숨소리가 들린다. 새곤 잠자는 소리인지 나를 부르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달려오는 듯하던 숨소리가 점점 멀어져간다. 흰 장막 뒤로 숨어버린다.
유영을 갑판으로 올려 보냈는데.
오, 나으 사라앙 진호우.
이렇게 콧소리가 흘러나와야 한다. 그래야 유영이 맞다. 그래야 내가 살아있는 게 맞다. 휴대폰을 귀에 꽉 눌러 붙인다.
분명히 갑판으로 올려 보냈는데, 설마, 설마.
대답이 없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유, 영, 아.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오므려 부른다. 목소리가 작아 못 들은 걸까.
유영아.
목청이 터져라 외친다.
입 안 가득 들어 차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막느라 앞니로 아랫입술을 깨문다. 귀에 댄 휴대폰도 덜덜 떨려 왼손으로 휴대폰 쥔 손을 움켜잡는다.
한참 이어진 적막을 깨고 유영이 울음을 터트린다. 덩달아 울음을 터트리지 않으려고 앞니로 아랫입술을 더 세게 깨문다. 목에서 핏발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유영의 울음이 탁 끊기더니 거대한 거품을 뱉어낸 파도소리가 들린다. 죽은 자의 울음과 살아남은 자의 곡소리가 뒤섞인다. 악마의 소리다. 이건 악마다.
이건 악마야.
휴대폰을 방바닥에 힘껏 내동댕이친다. 파편들이 솟구쳐 올랐다 주르르 떨어진다. 파편을 주워 던져 벽에 간신히 매달린 달력을 맞춘다. 4월 달력에 16 숫자가 찢어져 피를 뚝뚝 흘린다. 숫자는 혼란을 일으킬 뿐 아무 소용없다. 숫자는 죄악이다. 숫자만 없었어도.
목구멍에 뜨거운 게 확 치켜 올라온다. 방바닥이 뜨겁다 방안을 뛰어다니다 펄쩍펄쩍 뛴다. 가슴에서 불이 난다. 티를 쫙쫙 찢어발긴다. 가냘픈 가슴팍이 부글부글 부풀어 오른다.
침대보에 피가 떨어진다.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다 흘린 피다. 피를 핥는다. 성난 날짐승처럼 미친 듯이 피를 핥는다.
그래, 간신히 몸을 건진 학생들을 몰아넣은 연수원에서 휴대폰을 못 쓰게 하는 걸 거야. 그렇지 않고는 유영이 내 전화를 안 받을 리 없다. 분명코.
침몰하는 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애들을 왜 다시 연수원에 가둔 걸까. 닫힌 공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 걸까. 그 안에서 재깍재깍 다가오는 공포의 시간들이 재생되면 어쩌려고. 아무리 울부짖어도 아무리 의연하려 애써도 누구도 손 내밀지 않던 기억이 되살아나면 어쩌려고.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는다고 무엇이 달라진다고. 닫힌 공간은 마찬가지다. 어둠은 없을지라도 갇혀버린 공포는 같다.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방바닥에 엎드려 내던진 휴대폰 조각에 귀를 댄다. 뭍에 팽개쳐진 물고기처럼 숨을 할딱인다. 숨소리가 저편에서 고동소리처럼 들린다.
당연히 그렇겠지. 유영이 내 폰을 씹을 리 없어.
방바닥이 차갑다. 퍼덕거리다 지친 물고기처럼 내 숨이 멎는다.
병원에서 퇴원하자 어느 연수원으로 데리고 가더니 합숙하며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다. 학교로 돌아가면 적응을 못할 거라나. 연수원 합숙이나 학교나 뭐가 다르다고. 연수원에서 수업도 할 거라고 했다.
연수원에 들어간 날 저녁 아빠가 데리러 왔다. 거기 사람들이 말렸지만 아빠는 집보다 편안한 데가 어디 있고 가족보다 좋은 간호가 어디 있느냐며 막무가내였다. 그러자 연수원에서 나가면 수업일수가 모자라 문제가 된다며 윽박질렀다. 아빠는 그깟 수업일수가 대수냐, 상처 받은 아이들을 한데 모아놓고 무얼 하자는 거냐며 항의했다. 아빠 말이 맞았다. 연수원이 아니라, 수용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멍한 표정들, 풀죽은 모습, 악몽을 꾸는 애들, 깜짝 놀라는 애, 이러다 집단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까. 연수원을 나서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애들에게 함께 나가자고 하고 싶었다.
연수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흘 동안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살아 돌아온 안도감도 다시 떠오르는 공포감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눈물샘에 둑이 무너져 내렸을 뿐이었다. 아니면 가만히 안아주던 엄마 품에서 들린 가느다란 숨소리가 슬퍼서인지도 모른다.
그때 바다는 침묵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광제와 나는 뭔가 쇳덩이를 들어 두터운 유리창을 힘껏 내리찍었다.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유리창이 깨졌다. 앞에 선 광제를 힘껏 밀어 바다로 던졌다. 바다로 쏙 빠져드는 광제를 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 저 녀석 수영을 못한다. 잽싸게 뛰어들려는데 둔탁한 물건이 발뒤꿈치를 치는 바람에 휘청거렸다. 뭔지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간신히 발을 빼내 바다로 뛰어내렸다. 수영도 못하면서 왜 여자애한테 구명조끼를 벗어준 거야. 미친 놈.
바닷속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광제도 보이지 않았다. 시커먼 동굴이었다. 광제야, 부르는 소리가 곧장 내 귀 안으로 곤두박질쳤다. 얼떨결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다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양팔을 잡아 끌어올렸다.
진호야, 진호야, 광제가 날 찾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지만 검은 보트 안에 던져지자마자 보트가 쏜살같이 어디론가 내달렸다.
진호야, 살려줘.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진호야, 진호야, 진호야.
벌떡 일어났다. 어둠이 축축하다.
진호야.
엄마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길길이 날뛰는 나를 부둥켜안고 침대로 쓰러졌다. 엄마의 울음에서 깊은 계곡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난다.
방안은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아침과 똑같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방안에 덩그러니 놓인 내가 수치스럽다. 책상에 스탠드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고 컴퓨터 모니터는 검게 인상을 찌푸린다. 책장에 책들은 모두 등을 돌리고 벽에 걸린 액자에 서양 노부부는 내 방안에 있어 치욕스럽다는 표정이다. 쟤들을 몽땅 치워버려야겠다. 몽땅 불태워야지.
엄마는 한바탕 폭풍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는지 내 등을 다독이며 병원에 가자고 귀에 바람을 넣는다. 심리치료는 내게 필요한 게 아니다. 나는 잠든 척한다.
날이 다 밝았다. 기억이 또렷하게 달려드는 징그러운 아침이다.
거실이 화사하다. 창에 쳐졌던 커튼은 없어지고 신문과 책들로 어지럽던 탁자엔 화병이 놓여 꽃들이 자리를 잡았다. 아침인데도 거실 등이 환하다. 엄마 옷차림도 바뀌었다. 꽃이 가득 핀 블라우스에 흰 바지를 입었다. 나를 위해 분위기를 바꾸었을 테다.
광제 좀 만나고 올게.
엄마의 불안한 시선을 못 본 체한다. 엄마는 광제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단짝인 광제가 돌아오지 못한 걸 알면 충격을 받을까봐 그럴 테다. 수영을 못하는 광제가 구명조끼 안 입을 걸 보지 못하고 무작정 밀어 넣은 건 나다. 내가 시커먼 악마처럼 입을 쫙 벌린 바다에 밀어 넣었다. 광제는 나 때문에 아직도 거기에 남았다. 나란 놈은 뭘까. 아무리 다급했어도 구명조끼를 벗어주거나 적어도 껴안고 함께 뛰어들었어야 했다. 도대체 나란 놈은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 이제라도 광제를 만나 사과해야 한다.
진호야, 오늘 병원에 가는 날이야.
의사는 외상 후 장애 치료를 받아야 한단다. 말 몇 마디로 숨만 쉬어도 발딱거리는 심장을 어떻게 치료한단 걸까. 도대체 누가 누굴 치료한다는 걸까. 어른들이 먼저 할 일은 살아나온 우리를 치료할 게 아니라, 어디론가 숨어버린 애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아니면 어른들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래, 그게 맞다. 왜 그걸 모를까.
제발, 진호야.
광제 좀 만나고 올게.
단호한 어조에 엄마는 날 설득하는 걸 포기했는지 차로 데려다 주겠다며 텔레비전이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한 장식장으로 다가간다. 저 텔레비전은 내가 병원에서 돌아온 후 한 번도 켜지지 않았다. 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음악방송을 크게 틀어놓아 실랑이를 벌이곤 했었다. 왜 그랬을까. 오빠이면서 그 정도도 참지 못하고.
엄마는 장식장에 놓인 자동차 키를 들고 따라나선다. 제지회사 영업과장인 엄마는 휴직계를 냈다. 엄마는 차분한 성격이면서도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 원래는 사무직이었지만 나를 낳고 나서 영업직을 자원했다고 한다. 혼자 가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기어이 차문을 열고 나를 밀어 넣는다.
동네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가로수마다 현수막이 걸렸다. 눈을 감는다. 나와는 무관한 글귀들이다. 무관한 게 아니라, 볼 자격이 없다. 친구들은 아직도 그곳에, 숨 막히는 그곳에 남아있는데.
엄마는 몇 번이나 내 눈치를 보며 차를 몬다. 좁은 길엔 하나둘씩 현수막이 보이더니 큰 거리엔 현수막이 즐비하다. 도무지 낯설다. 분향소에 다 온 모양이다. 가슴이 떨린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쉰다. 화랑유원지겠구나. 분향소를 화랑유원지에 설치했구나. 넓고 인적이 뜸한 곳인데 괜찮을까.
임시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린다.
엄마, 혼자 갔다 올 게.
친구를 만나는데 아이처럼 창피하게 엄마랑 함께 가기는 싫다. 다른 애들도 저 안에 엄마랑 함께 있지 않을 거다.
장막들이 수십 개 서 있고 한가운데 하나가 우뚝 솟았다. 크고 작은 흰 장막은 봄날과 힘겨루기라도 하듯 한낮 햇볕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분향소.
분향소 입구로 가니 검은 정장 차림을 한 사람들이 줄지어서 사람들을 맞는다. 다가서자 검정 리본을 건네준다. 시선을 떨어트려 손에 쥔 리본을 바라본다. 이걸 왜 가슴에 달라는 걸까. 나는 조문을 온 게 아니다. 친구들을 만나러 온 거지. 웃통 벗어젖히고 농구하던 녀석들을 스탠드에 앉아 수다 떨던 애들을 보러 온 거다.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 스탠드에 아이들이 네 줄로 질서정연하게 앉았다. 쟤네들 저기서 단체사진 찍나? 늦게 가면 선생님한테 야단맞을 텐데. 광제, 이 녀석은 내게 알려주지도 않고. 나쁜 놈.
스탠드를 향해 달려간다. 반도 못 미쳐 검정 남자 둘이 달려들어 양팔을 붙잡는다. 한 남자의 팔을 물어뜯었다. 나는 짐승이 되어 날뛰었다.
밖으로 끌려나왔다. 저 안에 친구들이 있다. 며칠 전만 해도 깔깔 대며 함께 등교하던 애들이다. 쟤들은 왜 저 안에 있고 나는 왜 이 밖에 선 걸까. 왜.
두 남자와 실랑이를 하는데 뚱뚱한 검정 여자가 다가와 뭐라고 하자 내 팔을 풀어준다. 여자가 팔짱을 낀다. 승지 엄마다. 승지 엄마가 왜 여기서 나타나는 걸까. 승지는 어디 있느냐고 묻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슨 대답이 나올지 두려워서다. 승지 엄마는 내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눈에 핏발이 섰다.
승지 엄마가 팔짱을 풀지 않고 분향소 안으로 이끌어 간다.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왼쪽에서 방명록에 무언가를 쓰고 검정 차림을 한 사람에게서 국화 한 송이를 받아 영정 앞으로 줄지어 간다. 차례가 되어 방명록 앞에 서니 백짓장이다. 멍하니 서 있으니 검정 여자가 사인펜을 손에 쥐어준다. 사인펜을 그냥 내려놓고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에는 국화 한 송이를 손에 들려준다. 국화도 돌려준다. 몇 걸음 더 옮기자 우리 학교 교복이다. 안영호 주달진 진민지 염수정 우리 반 애들이 아니다. 두 칸 지나 맨 아랫줄에 얼굴 찡그린 우리 반 윤세창이다. 제일 먼저 휴대폰을 들어 카톡을 날린 녀석이다.
엄마, 배가 이상해.
무슨 말이야?
배가 한쪽으로 기우나봐.
설마.
아닌가?
선생님한테 물어봐. 아니, 문제가 생기면 방송하겠지.
알았어, 엄마. 걱정 마.
카톡을 끊은 세창은 반장 정균을 불렀다.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하자 반장은 파도가 심해서 그럴 거라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이런 겁쟁이야 하는 눈빛이 분명했다.
세창아, 반장 말이 맞을 거야. 기다려보자.
내가 나섰다. 세창이는 겁이 많은 아이라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세창이 윗줄에 반장 정균이다. 고정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 인기가 많았다. 승지 엄마가 뒤로 팔을 잡아당긴다. 옆 사람이 나 때문에 지나가지 못했나보다. 반장은 3반 부반장 정수린과 사귀었다. 수린이는 좀 통통한 편인데 히죽 히죽 잘 웃는 애였다.
박창훈 최미애 설진영 모르는 애들이지만 이름과 얼굴을 한 명씩 눈에 담는다. 설진영은 눈빛이 반짝거리고 머리도 반짝거린다. 참 예쁘다. 왜 본 적이 없지? 얘들은 모두 내 동창이다. 전에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졸업하고 나면 동창회 때 다시 만날 애들인데 눈인사도 안 하고 지냈을까. 서운하다. 미안하다.
홍영진이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별로 얘기를 나눈 적이 없다. 쌍둥이 주미와 주선, 규호. 보광제, 이 녀석은 어디 있지. 인교 진나라 소희 춘임 임동일. 그 옆에 보광제다. 치사한 녀석, 내겐 말도 안하고 저기 가서 앉아 있다니. 중학교 일 학년 때 지어준 네 별명 황제 그건 취소다. 이젠 배신자, 보배신이다. 광제야, 미안해. 너를 껴안고 뛰어내렸어야 했는데, 변명 같지만 그때 정신이 없었어.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 내가 너를 죽였어. 복받친다.
광제야, 정말 미안해.
승지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광제의 얼굴을 부둥켜안는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바닥을 뒹군다.
내가 어떻게 하면 네가 돌아올래. 야, 이놈아. 말 좀 해봐. 대답하란 말이야.
처절한 외침은 오래 가지 않아 붙잡혔다. 검정 남자 둘이 달려와 나를 붙잡고 광제 사진을 빼앗았다. 광제는 다시 스탠드 앞줄에 앉았다. 승지 엄마가 나를 껴안고는 등을 다독인다.
다시 광제 앞에 선다. 사각 틀을 쓰고 앉은 녀석은 태연하게 윗니를 드러내고 웃는다. 그래 넌 웃어야 봐줄만하다. 유영이랑 함께 올 걸 그랬나? 너도 유영이를 보면 반가울 텐데. 셋이 어지간히 몰려다녔는데. 그러고 보니 병원에서도 연수원에서도 유영이를 보지 못했다. 나처럼 바로 집으로 간 걸까?
승지 엄마가 팔을 잡아끈다. 준수 나윤영 사랑니 빼야 한다고 호들갑 떨던 진규 모두 다 있다.
왜 나만 빠진 걸까.
승지 엄마가 내 팔을 잡은 손을 떨어트린다. 승지다. 내 앞에 승지가 앉았다. 치아교정기를 안 보이게 하려고 입을 꽉 다물었다. 치아교정기를 빼고 환하게 웃으면 무지하게 예쁠 텐데.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살아 우리보다 엄마끼리 더 친하다. 뒤돌아 승지 엄마를 껴안는다. 승지 엄마의 가슴이 팔딱팔딱 뛴다. 이렇게라도 외동딸이 보고 싶은 걸까. 차마 보내지 못해 여기에 계신 걸까. 어떻게 마음을 추스르고 도우미를 하실까. 다시 승지를 보고 서 눈을 감는다.
승지야, 내가 네 엄마 아들 노릇까지 할 게. 걱정 마. 걱정 말아.
발을 옮기는데 팔이 허전하다. 뒤돌아보니 엄마와 승지 엄마가 서로 껴안고 섰다. 엄마는 언제 들어온 거지.
한 걸음 떼어 애들 얼굴과 이름을 일일이 눈에 담는다. 구명조끼를 입자마자 객실 구석에 기대어 계속 카톡을 날리던 윤희다. 그렇게라도 해야 불안한 마음이 덜하다며 내게도 카톡을 하라고 성화였다.
아빠, 보고 싶어. 대박 사랑해.
힐끗 쳐다보니 아빠와 주고받았다. 윤희는 아빠와 단둘이 살았다.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다음 칸 맨 윗줄로 눈을 치킨다. 다리가 풀려 털썩 주저앉는다.
성도 강유영. 얼굴을 보니 맞다. 유영이가 왜 저기에. 사지가 부들부들 떨린다. 유영아, 불러보지만 목구멍이 막혀 나오질 않는다. 숨이 막힌다. 분명 내 조끼를 유영에게 입혀 갑판으로 올라가라고 했는데.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자 엄마가 달려와 끌어내 분향소를 나왔다.
“그래 잘 갔다 왔다. 애들과 작별인사는 해야지.”
퇴근해서 돌아온 아빠가 말했다.
밤이 되자 엄마는 집안에 모든 불을 켜놓았다. 창밖에 서성거리는 어둠을 가리려고 커튼을 쳤다. 그래도 악몽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날이 밝자 다시 분향소로 향했다.
강호야, 은비 누나야. 밤마다 카톡했는데 눈팅만 하고 왜 답장을 안 하는 거야?
오빠, 나 지혜야. 오빠가 내게 살 좀 빼라고 할 때마다 짜증냈지. 미안해. 오빠 말대로 살 뺄 테니 꼭 봐줘야 돼.
사랑하는 아들아, 16년 5개월 동안 아들 해줘서 고마워. 진짜 행복했어.
이 땅에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너희들에게 미안하다.
사진 앞에 놓인 쪽지들을 들여다보지만 금세 눈물방울이 굵어져 더 이상 읽어나가지 못하겠다.
유영은 오늘도 환하게 웃는다. 눈이 초롱초롱하고 이마가 예쁘다. 자기는 열두 살 피부라 늘 생얼이라고 자랑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유영은 2학년에 올라와 같은 반이 되던 날, 날 찾아와 왜 자기에게 대시를 안 하냐며 화를 냈다. 언제나 씩씩한 아이였는데.
그날 버스에서 가장 먼저 내린 유영은 인천 부둣가로 달려갔다. 유영은 며칠 전부터 신이 났다. 배 여행은 처음이라 기대가 컸다.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명장면을 꼭 해보겠다며 흥분했다. 나에게 꼭 하자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냈다.
진호야, 배에서는 나를 떠나면 안 돼. 넌 내 그림자야.
광제가 내 옆에 바짝 달라붙었다. 광제는 뱃멀미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자기는 투표할 때 애들이 대부분 비행기로 가자고 할 줄 알았단다. 학교에서 버스를 탈 때부터 귓불에 멀미를 예방하는 파스를 붙이고 알약도 먹었다.
항구라고 해서 별다른 건 없었다. 바다 냄새도 비린내도 나지 않았다. 선착장과 큰 여객선, 작은 배들이 옹기종기 정박했다. 도시 한쪽 끝에 자리한 배 주차장처럼 보였다.
배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시커먼 동굴 안으로 차들이 쉴 새 없이 들어갔다. 쫙 벌린 악어 입처럼 세월호는 자동차며 화물차며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집어 삼켰다.
7시에 출항한다던 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십오 분이 지났지만 아무런 안내방송도 없었다. 광제는 왜 배가 제시간에 출발을 안 하냐며 불안해했지만 대부분의 애들은 객실에 짐을 풀자마자 오락실로 달려갔다. 나더러 자기 곁에 꼭 붙어 있으라며 신신당부하던 유영은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여자애들과 몰려다녔다. 우리의 수학여행은 그렇게 출발했었다.
분향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학교에서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연수원에 안 들어가면 학교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수업일수를 채우지 못하면 3학년 진급이 어렵다며.
엄마와 아빠는 이 문제로 진지하게 토론을 벌인다. 두 분은 토론을 좋아한다. 가족에 관한 일이면 정말 열심히 토론해서 결론을 내고, 그 다음에는 합심해서 실천한다. 내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지만 거실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부모님은 격앙되었다.
엄마는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 캐나다로 이민을 가자는 주장이고, 아빠는 환경을 바꾼다고 모든 걸 머리에서 지워내지 못하니 차라리 여기에서 극복해내야 궁극적인 해결방법이라고 한다. 동생 진이도 학교에 가면 선배들 생각나서 힘들다며 엄마 의견에 동조한다.
침대에 엎어져 귀를 틀어막았지만 윙윙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꿀벌들이 꽃을 찾아 빨간 바다 위를 날아다닌다. 꽃은 벌써 가라앉아 자취도 없는데. 꿀벌 하나가 내게로 달려와 자세히 살펴보니 꿀벌이 애칭인 유영이다. 벌처럼 날렵하고 도톰한 입술이 꿀처럼 달콤해서 붙여준 이름이다. 유영아, 눈물샘이 뚫린 듯 눈물이 스멀스멀 흘러내린다. 침대가 눈물로 흥건히 젖고 나자 엄마 발소리가 방으로 향한다.
두 분이 긴 토론 끝에 합의사항을 만들었는가보다. 가족이 한 달간 여행을 다녀와서 그때 내 상태를 보고 이민을 가든지 학교로 복귀하든지 결정하자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내게는 별다르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 그냥 부모님이 하자는 대로 따르겠다고 대답한다.
여행을 떠날 준비는 몇 시간 만에 다 해결되었다. 아빠와 엄마 모두 직장에 휴가계를 냈고 동생 진이도 학교에 허락을 받았다. 여행지를 묻지는 않았다. 여행이 도움이 될까, 무엇을 잊으라는 걸까.
밤은 역시 악몽을 불러냈다. 분향소에 있던 애들이 한 명씩 나타나 저마다 뭐라고 한 마디씩 하고는 사라졌다. 광제는 걱정스런 얼굴로 수영을 못한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는 사라졌고, 유영은 네가 내 그림자라며 자기에게 오라는 손짓을 하며 뒷걸음질했다. 꽃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울음만 잔뜩 삼킨 빈 바다였다.
단원동은 아직도 적막을 걷어내지 못하고 현수막과 노란 리본만이 봄바람에 설렁거린다. 아빠는 학교 앞을 지나가지 않으려는지 돌아가는 길을 골랐다. 그 바람에 학교에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못마땅해 하는 표정을 몇 번이나 지었지만 내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교문 옆에 현수막이 걸려 있고 군데군데 노란 리본이 매달렸다. 교문 왼쪽에는 꽃다발과 편지, 빵, 과자 등이 놓였다. 남자 두 명이 서서 학교로 들어가는 차를 통제했다. 운전대를 잡은 아빠가 뭐라 하자 남자들이 길을 터줬다.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온다. 어디로 가는 걸까. 애들이 모두 내게 손가락질을 해댄다.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한 걸까. 2층에서 뒤로 돌아 계단에 주저앉는다. 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그래도 교실을 꼭 한 번 보고 싶다. 애들과 함께 지내던 교실에 가서 추억의 한 자락이라도 건져내고 싶다. 다시는 못 오게 될지도 모르는데. 난간을 잡고 일어나 다시 계단을 오른다.
3층 복도가 텅 비었다. 복도를 걷는데 몸이 으스스하다. 어디선가 곡소리가 들릴 듯하다. 2학년 1반 교실이 텅 비었다. 2반 교실이 텅 비었다. 3반 교실이 텅 비었다. 4반 교실이 텅 비었다. 문을 스르륵 열고 들어간다. 윤희, 세창, 정균 자리를 지나 내 자리에 앉는다. 며칠 비웠는데도 책상에 먼지가 앉았다. 한 송이, 두 송이, 책상 열일곱 개에 국화 한 송이씩 놓였다.
왼쪽은 광제 자리다. 한 반이 된 첫날 절친 하자며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했던 녀석이다. 광제가 구명조끼를 안 입은 걸 미리 확인만 했어도 밖으로 밀어내지 않았을 텐데. 가슴 한쪽에 찬바람이 들어갔는지 아프도록 시리다. 한 손으로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넌 내 그림자야, 넌 내 그림자야, 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린다.
유영의 자리다. 그 애는 국화가 아니라 수선화를 좋아했다. 생일에도 만난 지 백일에도 수선화를 선물해달라고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게 한 번 남친은 영원한 남친이라며 해결하라고 떼를 썼다. 내게 종알종알 수다 떠는 걸 좋아했으며, 눈웃음치는 눈매가 예뻤으며, 특히 이마가 예뻤다. 내 손을 잡고 걷는 걸 좋아했으며, 손이 따뜻해서 놓고 싶지 않았다. 매운 떡볶이를 좋아하는데 매워서 쩔쩔 매는 나를 놀리곤 했다. 국어선생님을 좋아한다더니 국어 시험점수가 높아졌으며, 여행작가가 될지 기자가 될지 저울질하기도 했다. 나는 그 애의 그림자까지 사랑했다. 배를 타면서 자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라고 했는데, 그만.
유영과 광제는 국화가 되어 돌아왔고 나는 빈손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나는 너희들을 가슴에 뼈에 눈동자에 살갗에 뇌리에 붙들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구나. 그런다고 속죄가 될까. 이 매듭을 풀 재간이 없어. 국화 열일곱 송이가 일어서더니 윙윙거리며 벌떼처럼 얼굴에 달라붙는다. 한 치도 피할 수 없다. 그래, 나도 국화가 되어 얘들과 함께 있어야 맞지.
국화 열일곱 송이를 모아 가슴에 끌어 모아 세월호 갑판으로 뛰어올라간다. 친구들의 생명이 내 손에 달렸다. 빨리 배에서 뛰어내려 구명보트에 타야한다. 아비규환이던 선실을 빠져나오니 갑판이 솟구쳐 올라온 고래 등처럼 기울어져 설 수가 없다. 하나, 둘, 셋,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뛰어내린다. 품안에 꼭 껴안은 국화 열일곱 송이가 뿔뿔이 흩어져 내려 빨간 바다에 퐁당퐁당 곤두박질친다.
햇살이 춤을 추듯, 이 꽃 저 꽃에서 피어나 바람에 날리는 향기처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꿀벌 하나를 쫓아 난다. 학교 옥상을 지나 도로를 지나 공원을 지나 아파트 위로 철로 위로 공장 굴뚝 위로 날아 다시 바다 위를 난다. 빨간 바다에 흰 장막처럼 넘실대는 파도가 뚝뚝 피눈물을 흘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