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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여자 1위…박희숙(1) 박희숙 약력 ·1963년 6월 23일 경기도 파주에서 1남6녀의 막내로 출생 ·서울 대림여중-일신여상-방송통신대 가정학과 졸업 ·코오롱-한국벨트-현희건설 거쳐 2002년부터 제일화재에서 근무 중 ·1999년 달리기 시작, 2001년 풀코스 첫 완주(4시간8분, 서울마라톤대회) ·풀코스 41회, 울트라 12회 완주, 페이싱 봉사 16회 ·최고기록-풀코스 3시간07분49초, 하프코스 1시간33분52초, 10km 41분53초 ·서울마라톤클럽, 광화문마라톤모임 회원 ·1987년 결혼한 송진우(49)씨와의 사이에 1녀 ·164cm, 57∼58kg, B형 박희숙(44)씨는 지난 11월 19일 열린 제7회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에 출전하면서 우승을 꿈꾸지 않았다. 유력한 우승 후보인 일본의 사토 미츠코가 참가하기 때문이었다. 사토는 2005년 같은 대회에서 1위로 골인한 강자였다. 또한 김효자·구현경씨 같은 출중한 러너들이 대거 참가해서 1등을 바라는 건 과욕이라고 생각했다. ‘2002년 서울울트라에서 9시간56분으로 2등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또 2등으로 들어오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일본 선수 추월한 뒤 독주 시작 그런 생각을 한 데는 훈련이 부족한 이유도 있었다. 2주 전인 11월 5일 열린 중앙 마라톤에서 나름대로 전력 질주(3시간09분02초, 여자 7위)한 뒤 회복하느라 울트라 대비 훈련을 제대로 못 한 것이다. 100km에 함께 참가하기로 결정한 남편(송진우·49)은 문제가 더 많았다. 4시간45분대 주자인 남편은 일이 많아 연습이 턱없이 부족했다. 매사에 느긋한 부부는 조깅이나 가볍게 하면서 태평스럽게 지내다가 대회 이틀 전인 금요일 밤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대회 전날은 아무래도 수면이 부족할 것 같아서였다. 토요일에는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역시 금세 잠이 못 들고 뒤척이다가 새벽 2시 30분에 기상했다. 라면을 끓여서 찰밥과 함께 먹는데, 대회장인 서울 올림픽공원으로 데려다 주기로 약속한 선배가 ‘아파트 앞에 왔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부리나케 집을 나서 선배의 차로 편안하게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부부는 주력 차이가 많이 난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은 뒤에서, 아내는 중간에서 출발했다. 그녀는 우승 욕심을 접었기 때문에 자신의 페이스대로 차분하게 달리기로 했다. 그녀를 괴롭히는 신체적 결함(?)이 있다. 대회 중에 화장실에 자주 들러야 하는 것이다. 남자와 달리 여자는 쭈그려 앉았다가 일어서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뺏긴다. 한창 달리다가 볼일을 보고 일어날 때는 고통도 심하다. 이건 남자들이 모르는 일이다. 그녀는 대회 중에 많을 때는 서너 번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도 한다. 이 날도 예외는 없었다. 10km 못 미친 지점에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대변을 보기 위해서였다. 1등의 꿈을 버렸기 때문에 편안히 볼일을 보고 나왔다. 나중에 65km 반환점에서도 죽을 한 그릇 먹은 뒤 화장실을 한 번 더 다녀왔다. 아무튼 볼일을 보고 그녀 딴에는 천천히 나아가는 중인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강력한 우승 후보인 사토가 앞에서 가고 있는 것이었다. ‘저 선수가 오늘은 초반 탐색전이 심하네’라는 생각을 하며 사토 뒤에 바짝 붙었다. 그런데 그녀가 아무리 천천히 달려도 사토는 치고 나가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하며 사토를 추월해 버렸다. 사토는 그녀를 잠시 따라오는 기색이더니 이내 뒤처졌다. 그때부터 그녀의 외로운 독주가 시작됐다. 42.195km 표지판을 지나면서 시계를 보니 3시간38분이었다. 2위 그룹과는 거리가 많이 벌어진 것 같았다. 이때부터 ‘오늘 잘 하면 우승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기사에서 계속) [Best of Best]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여자 1위…박희숙(2) [왼쪽사진은 지난해 11월19일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박희숙씨가 당당히 1위로 골인하는 모습] 아내는 우승, 남편은 컷오프 탈락 이날 파워젤은 4개를 가지고 나와 바지 뒷주머니에 보관한 뒤 20km마다 한 개씩 먹었다. 초반에는 급수대에서 달리면서 컵을 집어 물을 마셨다. 그러나 후반에는 급수대에 멈춰 서서 영양을 보충했고,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실시했다. 그녀의 먹성은 유명하다. 무슨 음식이건 어찌나 맛나게 잘 먹는지 지켜보던 사람마저 신나게 먹게끔 만든다. 이날도 후반에는 급수대에 마련된 초콜릿과 주먹김밥 등을 먹었다. 특히 콜라를 많이 마신 게 레이스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 고비는 90km 못 미친 지점에서 찾아왔다. 갑자기 몸이 무거워졌다. 뒤를 돌아보니 2등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서 무너지면 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스스로를 격려한 뒤 92km 급수대를 그냥 통과해 버렸다. 마침 봉사를 나와 있던 박영석 서울마라톤클럽 명예회장이 1등으로 달려오는 그녀를 반기며 뛰어나오다가 “물 마시고 가라”고 외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98km 지점을 지나면서 “드디어 해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입상은 자주 하지만 우승을 잘 못해 ‘2∼3등 전문선수’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는데, 그 꼬리표를 오랜 만에 뗄 수 있을 것 같아 무척 기뻤다. 실제로 그녀는 2001년 서울울트라 63.3km와 2005년 제주감귤 마라톤 풀코스에서 1등 한 게 ‘유이한’ 우승 경력이었다. 환대를 받으며 골인한 그녀는 남편이 걱정됐다. 남편이 들어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전거를 빌려 타고 마중을 나갔다. 100km를 달린 직후에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데도 별 문제가 없었다. 4km를 달려가 마지막 급수대 자원봉사자에게 휴대전화를 빌렸다. 그리고 여기저기 배치된 자원봉사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안부를 묻자 “골인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대답들이 돌아왔다. 다시 결승점으로 돌아온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시상식에 참석한 뒤 휴게실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는 중에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남편이 82.5km 제2관문에서 제한시간(11시간20분)에 걸려 중도 탈락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회수차에 태워진 남편은 저녁 7시경 올림픽공원에 돌아왔다. “우승을 해서 너무 기쁘지만, 남편이 완주하지 못해 아쉽네요. 이번에 ‘부부 완주상’을 받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래서 내년에 또 참가할 구실이 생겼습니다(웃음).” 부부는 전철을 타고 귀가했고, 그녀는 사흘 뒤인 수요일부터 가벼운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11월 26일, 예정된 일본 가와구치호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3시간50분에 골인하는 무쇠다리를 뽐냈다. 그녀는 1주일에 80∼90km 가량 달린다. 월요일엔 완전 휴식을 취하고, 화요일에는 1000m나 1600m 인터벌 훈련을 실시한다.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10km 또는 15km 지속주 훈련을 하고, 금요일엔 짧은 거리의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며, 토요일에는 거리주나 지속주 또는 대회 페이스로 달리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일요일엔 25∼30km LSD(천천히 오래달리기)를 실시한다. 헬스클럽을 다니지 않아서 보강운동은 집에서 잠자기 전에 간단히 실시한다. 매트를 깔고 복근운동과 팔굽혀펴기를 하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실전에서 더 강한 대회용 선수” 평일에는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전거로 7분 달리면 도착하는 목동운동장 트랙에서 연습한다. 1시간 30분∼2시간 운동하는데, 그녀와 함께 달리는 팀을 선수 출신인 정성남(62) 감독이 지도해 준다. “정 감독님은 지금 대장암 투병 중이세요. 그런데도 새벽에 경기도 일산에서 직접 차를 몰고 와서 저희들을 가르쳐 주세요. 제 훈련 프로그램은 모두 감독님께서 짜주신 겁니다. 감독님의 정성을 봐서라도 훈련을 소홀히 할 수 없어요.” 일요일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한강둔치에 나와 서울마라톤클럽 ‘반달’(반포달리기)의 페이스메이커로 나선다. 이렇게 트랙과 한강만 달리다 보니 그녀는 언덕에 약한 편이다. “제가 지구력은 유난히 강해요. 그런데 스피드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올겨울에는 지속주와 언덕 훈련 그리고 체력 보강 훈련을 중점적으로 하려고 해요.” 그녀의 힘은 정평이 나 있다. 풀코스 마라톤을 처음 완주한 2001년 63.3km 울트라에 처녀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면서 ‘박희숙의 힘’을 만방에 떨쳤다. 요즘도 1주일에 두 번은 아파트 22층까지 다섯 번 오르내리는 훈련을 실시하고, 팔굽혀펴기는 한 번에 1백 개를 거뜬히 해치운다. “잘 먹어서 그런가 봐요(웃음). 제 몸무게는 평소 57∼58kg이에요. ‘3kg만 줄이면 서브3는 문제없는데 너무 잘 먹어서 탈’이라고 매번 감독님한테 혼나고 있죠.” 달리기를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다친 적이 없다. 처음 풀코스 대회에 참가한 뒤 발톱이 빠진 게 지금까지 가장 크게 다친 일이었다. “평생 즐겁게 달려야 하는데 무리하고 싶지 않다”고 그녀는 말한다. 대회에 참가하면 입상이 분명한데 대회 참가를 자제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녀를 지도한 적이 있는 진수선 감독은 “박희숙씨는 대단히 약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훈련하면서 80% 이상을 쏟아 붓는 아마추어들은 정작 대회에서 목표를 달성 못 하고, 부상당하는 일이 잦다. 박희숙씨는 훈련을 대충하는 것 같은데, 막상 대회에 나가면 일을 낸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실전에서 더 강한 ‘대회용 선수’다.” (아래기사에서 계속) [Best of Best] 서울울트라마라톤대회 여자 1위…박희숙(3) [사진설명;지난 12월 17일 ‘반달’에서 페이스메이커를 한 뒤 서울마라톤클럽 채성만 회장(왼쪽에서 첫째), 박영석 명예회장(왼쪽에서 셋째)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오른쪽 끝은 남편 송진우씨다.] 첫 풀코스를 4시간8분에 완주 달리기는 1999년에 시작했다. 하루는 신문에서 달리기로 출퇴근하는 사람의 기사를 봤다. 광화문마라톤모임의 코디를 지낸 나금풍씨가 주인공이었다. 그 기사는 그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강에 나와 10∼15km를 달렸다. 왜 그랬는지 쉽게 설명이 안 된다. 달리면 그냥 기분이 좋고 행복했다. 서울마라톤클럽과 인연이 깊다. 처음 출전한 대회가 2000년 서울마라톤대회 하프코스였고, 이듬 해에는 같은 대회 풀코스에서 머리를 얹었다. “지금까지 풀코스를 41회 완주했어요. 그런데도 첫 풀코스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4시간8분에 골인한 뒤 주최측에서 제공한 밥을 추운 날씨에 허겁지겁 먹었다가 아주 심하게 체하기도 했어요.” 귀가한 뒤에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남편이 응급실로 싣고 갔다. 10개의 발톱 중에 성한 발톱이 하나도 없는 꼴을 보곤 남편은 “다시는 마라톤하지 말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 그런데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그녀가 낚시광인 남편을 마라톤으로 전도한 것이다. “저는 반달에 2000년부터 나왔어요. 그때부터 박영석 당시 회장님이 남편과 함께 나오라고 독려하시더라고요. ‘서울마라톤에는 부부 달림이가 많다. 부부가 함께 달리면 금실이 더 좋아진다’는 게 회장님 말씀이었어요. 결국 제 성화에 못 이겨 남편도 2001년부터 반달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반달에 나올 때 친구와 동행했다. 달리기가 끝난 뒤 담배를 피우려고 했는데, 서울마라톤클럽은 담배를 피울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차 뒤에 숨어서 담배를 피웠다. 그때 친구에게 “이거 영 체면이 말이 아닌데, 달리기를 하러 계속 나올 거면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제안했다. 반달에 계속 나오면서 자연스레 금연에 성공했다. 남편은 지금까지 풀코스를 13회 완주했다. 그러나 훈련보다 서울마라톤클럽 스태프로 봉사해야 할 일이 더 많아서 기록 단축에 전념하지 못했다. 요즘은 사진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 앞으론 사진 촬영으로 봉사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2007년에는 서브3 하고 싶다” 그녀는 1963년 경기도 파주에서 1남6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일곱 살 때부터 서울에 와서 학교를 다녔다. 직장생활을 오래했다. 일신여상을 마친 뒤 코오롱에 입사해 6년을 다녔고, 다시 한국벨트에서 6년, 그리고 (주)현희건설에서 8년 6개월을 근무했다. 2002년부터는 제일화재 강북지점에서 일하고 있다. 슬하에 딸(혜림·고3)만 한 명 있는데, 딸을 낳았을 때 출산 휴가를 가진 것 말고는 여고 졸업 뒤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남편은 코오롱에 근무할 때 만났다. 당시 무역회사 영업사원이던 남편의 거래처가 코오롱이었는데, 그녀의 선배가 다리를 놔줘서 2년 동안 교제하다가 1987년 9월 19일 결혼식을 올렸다. |
첫댓글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