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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일 을 하다 보면 참으로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이 좋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섭외나 인터뷰가 불가능한 사람인데요 서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가워하고, 마치 오랫동안 사귀어 온 사람들처럼 친근감을 느끼면서
안 될 일들이 술술 풀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경험을 한두 번 해본 사람이라면 역시 크리스천이라는 커다란 울타리가 얼마나 아늑한 곳이고, 또 서로 믿는 가운데 대화의 공감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알 것이다. 탤런트 김혜자 집사를 나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시킨 예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고 할 수 있다.
탤런트 김혜자 집사는 방송국에서도 소문난 고집쟁이다.
그녀는 자기가 현재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가 아니면 그 어떤 오락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지 않으며 더군다나 자기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하는 토크쇼에는 더욱더 출연하지 않은 연기자로 소문이 나 있다.
오죽하면 이런 얘기까지 있을까?
언젠가 분장실에서 평소에 말을 재미있게 잘하기로 소문난 탤런트 박원숙씨가 전원일기에 출연하기 위해 분장을 하고 있는 김혜자 집사에게 한 말이다.
“만약에 혜자 언니가 빠삐용이 되어서 무인도의 감옥에 갇히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혜자 언니보고 함께 탈출하자고 졸라도 언니는 뭐라고 대답할 사람인 줄 알아?”
“뭐라고 그러는데?”
“싫어, 난 여기도 좋아. 여기서 그냥 살 거야.”
박원숙 씨의 이같은 비유와 표현은 절묘할 정도로 정확한 것이다.
그렇다. 김혜자 집사의 성격은 움직이는 것 싫어하고 새로운 것에 적응한다는 것도 싫어하고, 화장하는 것까지도 귀찮아하는 그런 성격이다. 그해서 어딜 찾아가거나, 새로운 것을 시작하거나, 뭔가 노력해야 하는 일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심지어는 자기가 고정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이외에는 어떤 방송 프로그램이든지 어느 누가 사정을 하고 무릎을 꿇고 빌어도 출연하지 않는 사람인데 사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화장을 해야 하고, 머리를 만져야 하고, 의상을 입어야 하고, 몸을 움직여 방송국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란다.
방송뿐만 아니라 어느 신문사나 어느 잡지사의 인터뷰라 할지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김혜자 씨는 좀처럼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로 소문난 연예인,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 연예인으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렇게 방송가에는 좀처럼 섭외하기 힘든 연예인들이 몇 명 있다. 우선 탤런트 윤여정 씨가 그렇고 영화배우 정윤희 씨, 여기에 영화배우 장미희 씨는 그 중에서도 섭외 담당자를 애태우는 데 단연 선두감이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스캔들의 주인공으로부터 잡지나 신문의 가십 기사가 아닌 토크쇼의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본인의 입을 통해 궁금했던 일들을 직접 들어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시청률은 따 놓은 당상일 텐데... ...
그래서 토크쇼 담당자는 더욱더 섭외에 혈안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정윤희를 불러내라. 불러내는 사람에게는 상금을 주겠다.’ 이런 구호까지 사무실 벽에다 써 붙이고 난리들일까?
더구나 각 방송사에서 너나할 것 없이 토크쇼 프로그램을 만들어 걸프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진 상태에서 사람 끌어오기. 아니 사람 모셔오기 작전은 정말 눈물겹기까지 하 다.
‘누가 영화배우 누구누구의 친한 친구라더라. 누구한테 부탁하면 섭외가 될지도 모른다더라.’ 는 희미한 정보라도 있으면 당장 작전 명령이 떨어지고, 그 영화배우가 빵을 좋아하는지, 꽃을 좋아하는지, 꽃이라도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를 미리 파악한 다음에 그것마저 하나의 전략으로 삼기까지 한다.
또한 단기간에 단판을 짓겠다는 생각보다는 시간을 갖고 꾸준히 접근하겠다는 방법도 동원된다.
따라서 누가 생일을 맞이했는지, 누가 언제 이사를 가고. 그 집의 아이들이 언제 피아노 콩쿨 대회에 참여하는지를 미리 파악해서 때 맞춰서 축전을 띄우던가 직접 찾아가 눈도장이라도 박아놔야 한다.
남이 보기엔 참 한심하겠지만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당사자들에겐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를 방불하는 섭외 경쟁에서 체면 찾고 순서 따질 겨를이 없는 것이다.
언젠가 영화배우 남궁원 씨의 아들 ‘홍정욱’ 군이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다고 해서 신문에 기사가 크게 난 적이 있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이라면 무슨 학과이든지 일단 귀가 솔깃해지는 우리에게 좋은 점수로 졸업했다는 사실, 거기에다 영화배우 출신의 아버지와 스튜어디스 출신의 어머니를 닮아서 훤칠한 키에 미남형이기까지 하니 우리 나라의 아가씨들이 얼마나 좋아할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오죽하면 ‘홍종욱’ 군이 쓴 자전 에세이 ‘7막 7장’의 팬 사인회에서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야학생들이 광화문에서 종로까지였을까?
이런 홍정욱 군이 미국에서 금의환향한다는데 가만히 있을 토크쇼 담당자가 어디 있을까?
분명히 홍정욱 군은 누가 봐도 토크쇼 프로그램의 수준 높은 초대 손님 감이었고 분명히 시청률은 압도할 수 있는 거리였다.
만약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담당자가 있다면 그건 분명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어쨌든 문제의 주인공이 공항에 내린다는 정보를 입수한 각 방송국의 토크쇼 담당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방송국에 단독 출연을 시키기 위해 잔뜩 벼르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땐 이미 한 발 아니 수백 발은 늦은 때였다.
모 방송국에서 홍군이 미국에 있을 때 이미 미국과의 직통 전화로 섭외를 시도했고 왕복 항공권은 물론이거니와 방송국 사장님과 단독 점심식사를 하기로 약속까지 했으니 그쪽으로 이미 낙착이 된 셈이었다.
공항에서 홍정욱 군을 놓친 다른 방송국의 담당자들은 허겁지겁 남궁원 씨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출연 요청을 했지만 바로 그 시간에는 이미 선수친 방송국의 담당자가 남궁원 씨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의 향연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로 섭외를 하기 위한 전쟁이 불꽃 튀는 마당에 김혜자 집사를 불러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해 본 토크쇼 담당자가 어디 있겠는가?
때 마침 보름 뒤에 김혜자 집사가 ‘한국선명회’라는 단체의 후원을 답아 소말리아에서 굶어 죽어 가는 어린이를 위해 ‘사랑의 빵’ 성금을 전달해 주러 간다는 신문 기사가 나왔다. 나는 바로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싶어 전화를 했지만 반응은 예상대로 차가웠다.
“아직 가지도 않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그러지 말고 갔다 온 다음에 얘기하자구요.”
‘호오 - 무조건 싫다고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갔다 온 다음에 얘기를 해 보자구?
좋아. 그럼 기다려 보지. 그래서 한 달 뒤에0 다시 전화를 해 보자.’
정확히 한 달 뒤에 소말리아에 다녀오고도 남았을 무렵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 기억하시죠? 한 달 전에 저희 토크쇼에 모시고 싶다고 전화를 했던... ...”
“아, 네 그럼요. 기억하죠. 그런데요. 전 말이죠. 탤런트로서 드라마 외에는 다른 프로그램 에 나가지 않아요.”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 달 전 소말리아에 가시기 전에는 갔다 와서 나오시겠다고 그러셨잖아요.”
“어머, 제가 언제 나간다고 그랬어요? 그때 다시 한 번 얘기해 보자고 했죠.”
“그게 그 말이죠.”
“어쨌든 전 안 나갑니다.”
“아이, 그래도 소말리아까지 다녀오셨으면 다녀온 보고를 해 주셔야죠.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소말리아에서 많은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지 알 수 있죠.”
“그런 얘기는 갔다 온 다음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요구해서 잡지사 기자들을 한데 모아 한꺼번에 다 했다구요. 그 내용이 필요하시면 이달치 잡지를 보시면 아주 자세히 나와 있을 거예요.”
“그래도 잡지하고 방송하고는 다르죠. 그리고 우리 프로그램이 얼마나 인기가 있고 시청률이 높은데요.”
“그래도 안 나간다니까요.”
“아니, 왜 안 나오신다는 겁니까? 이유를 좀 말씀해 주시죠?”
“귀찮아요. 그런데 나가려면 화장해야죠. 머리 손질해야죠. 그리고 거기까지 또 가야 하잖아요. 더군다나 그 방송국은 내가 출연하지도 않는 방송국인데... ...”
김혜자 집사는 소문대로 역시 완강히 거부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 해도 요지부동일 것처럼 말이다.
“정말 안 나오실 겁니까?”
“그렇다니까요.”
“할 수 없죠. 그럼 제가 포기하는 수밖에... ...”
정말로 그땐 자존심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얼른 전화를 끊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토록 완강히 거절하는데 더 이상 부탁한다는 것도 무례한 것 같고... ...
그리고는 머릿속에서 아예 ‘김혜자 집사’라는 사람을 지워 버렸다. 미련을 갖지 말자는 유행가 가사를 생각하면서.
그 다음날 나는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 가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설교를 모두 마치신 후에 갑자기 강대상 위에다 커다란 텔레비전과 함께 VTR을 올려놓더니 비디오 테이프를 틀어 주었다. 그런데 그 테이프의 내용이 바로 ‘죽음의 땅 소말리아’에 관한 것이 아닌가?
‘아니 내 머릿속에 소말리아고 뭐고 다 지워 버렸는데 목사님이 또 생각나게 하시네.’
김혜자 집사가 일 주일 동안 소말리아를 찾아가 금방이라도 죽어갈 것 같은 어린아이 그리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눈꺼풀에 앉은 파리도 쫓아 내지 못하고 힘없이 앉아 있는 어린이. 병에 걸려 차츰 죽어 가는 갓난아기들을 끌어안고 엉엉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비디오에 담은 10분 짜리 다큐멘터리였다.
이미 죽어서 바싹 마른 시체를 옮기고 있는 사람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들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으며 김혜자 집사 또한 한없이 울고 또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맨 마지막 장면에서 그 아이들을 끌어안고 김혜자 집사가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얘기했다.
“바로 여러분이 보내 주시는 후원금 만 원이면 이 아이들은 한 달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눈시울을 적시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더구나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목사님은 그 비디오를 모두 보여 주신 다음 작은 빵조각 같이 생긴 플라스틱 저금통을 하나씩 전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여러분, 이 저금통에 작은 정성을 담아서 모두 채워지면 교회로 가져오십시오. 그것을 소말리아로 보내겠습니다.”
나는 그 저금통을 받아 들고는 다시 생각했다.
‘내가 이 저금통에 돈을 넣어 보낸다고 해서 얼마나 도움이 될까? 차라리 다시 한 번 김혜자 집사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야.’
그 다음날 다시 방송국에 나가자마자 김혜자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글세 안 나간다니까 왜 또 전화하셨어요. 이러시면 제가 짜증낼 거예요.”
“잠깐만요. 제가 말씀 좀 드릴 게 있는데요.”
“무슨 말이데요. 말씀하세요.”
“제가 어제 교회를 갔다가 김혜자 씨가 소말리아에서 찍어오신 비디오 테이프를 봤거든요.”
“어머 교회에 다니시나 보죠?”
“네, 저도 교회에 다닙니다. 아주 열심히요.”
“반갑네요, 그런데요?”
“그런데 말이죠, 전 그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선 왜 수많은 연예인들 중에 하필이면 김혜자 집사님을 소말리아에 보내셨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이럴 땐 아예 허심탄회하게 집사님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김혜자 집사님을 선택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소말리아의 참담한 실상을 직접 목격하게 하기고 돌아와서 우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하는 심부름꾼으로 삼으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소말리아에 관심을 갖게 하고 도움의 손길을 모으도록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신 것이죠. 그래서 시청률이 높은 토크쇼에서 그런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출연해 달라고 부탁까지 드리고 있는데 이것을 거절하시면 결국 집사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직무 유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집사님이 저희 프로그램에 나오신다면 최선을 다해 소말리아에 대해 홍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도 생각해 봤는데요. 우선 집사님이 등장하시자마자 토크쇼 MC들에게 사랑의 빵 저금통을 선물하시는 겁니다. 그러면서 소말리아에 관한 비참한 상황을 설명해 주시고 도와달라고 호소하시면 되잖아요. 그리고 아예 저금통을 수 백개 준비해서 방청객들에게도 집사님이 직접 나눠주시는 겁니다. 물론 그런 모습도 모두 방송을 하구요.
집사님, 제가 자신을 하는데요 분명히 좋은 반응이 있을 겁니다. 잡지에 인터뷰하는 것보다 몇 갑절의 효과가 있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그래도 외면하시겠습니까? 소말리아에서 굶어 죽어 가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귀에서 들리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외면하는 직무 유기를 하실 겁니까?“
얼마나 길게 얘기를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방송을 못하게 되더라도 할 얘기는 해야겠다 싶어 한참을 떠들고는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 저한테 맨 마지막에 뭐라고 하셨죠?”
“직무 유기하고 했습니다.”
수화기를 통해 긴 한숨이 들려왔다.
“좋아요, 녹화가 언제라고 했죠?”
“빨리 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하죠.”
“알았어요. 그럼 다음 주 월요일까지 그 방송국으로 갈게요.”
전화를 내려놓고 나는 한참이나 시선을 옮기지 못했다.
‘ 아 - ’
이번엔 내게서 긴 한숨이 나왔다.
며칠 후 녹화를 하기에 앞서 대본을 구성하기 위해 미리 김혜자 집사를 만나기로 한 곳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얼굴 한 번 보고 싶었어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 나에게 직무 유기라고 하는 것일까? 이제까지 나보고 직무유기한다고 한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난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얼마나 충격을 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는지, 난 그 이후로 밤마다 내 머릿속에서 직무 유기...
이 말이 계속 맴돌더라구요.”
김혜자 집사는 역시 한국 최고의 스타답게 일단 허락하고 참여하겠다고 한 방송에 대해서는 정말 열심히 도와주었다. 한번도 토크쇼에 출연한 적이 없었던 탤런트 김혜자 집사가 토크쇼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노래까지 불렀으니 말이다.
그 방송이 방영된 후에 ‘한국선명회’의 연락처를 묻는 전화와 어떻게 하면 도와 줄 수 있느냐는 전화가 방송국에 쇄도했다. 나중에 관계자로부터 어느 교장선생님은 전 교생에게 사랑의 빵 저금통을 나눠주겠다고 수천 개씩이나 가져갔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후로 김혜자 집사는 또 다시 어느 방송국의 어느 토크쇼에도 출연하지 않았다.
김혜자 집사는 단 한 번 토크쇼에 출연한 유일한 경험을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