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효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일이며 그 중에서 가장 긴요한 것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일일 것이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천륜(天倫)이요, 인륜(人倫)의 대사(大事)이며,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이 아닐 수 없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새삼 말할 필요가 없지만 예로부터 자식이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불효가 하도 막심하여 성현들의 관심사 가운데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문제가 바로 부모에 대한 효(孝)의 문제였다.
흔히들 스님들이 부모와 처자를 버리고 입산 출가하는 것을 보고 불교는 부모의 은혜도 모르는 종교라고 혹평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스님들이 입산수도하는 것은 자기 일신(一身)의 이익과 안락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서 일체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불교만큼 효를 강조하는 종교도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보면 어느 때 부처님께서 여러 스님들과 함께 사위성 밖 남쪽으로 가다가 해골 무더기를 보고는 오체투지(五體投地)하여 절을 하셨다. 이 모양을 본 아난존자와 스님들이, “부처님은 삼계(三界)의 큰 스승이시고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데, 어찌하여 해골더미에 예배 하시나이까?”하고 물으니, “이 한 더미 해골이 나의 전생(前生)의 조상도 되었을 것이요 또 여러 대에 걸쳐 나의 부모도 되었을 것인즉 내가 예배하는 것이다. 아난아! 이 해골을 가지고 두 몫으로 나누어 보아라. 만일 남자의 백골이면 희고 무거울 것이오. 여자의 백골이면 검고 가벼울 것이다.”라고 대답하셨다.
이에 아난존자가, “부처님이시여! 사람이 죽은 뒤에는 마찬가지 백골이옵거늘 어떻게 백골이 다르다고 하시나이까?”하고 묻자 부처님께서는 “여자는 살았을 적에 아들 딸 낳고 아기를 한번 낳을 적마다 서 말, 서 되의 피를 흘리며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어야 하므로 백골이 검고 가벼우니라.”하시고, 이어서 부모님의 열 가지 큰 은혜(父母十重大恩)를 하나하나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열 가지 큰 은혜(父母十重大恩)>
첫째, 배 안에서 열 달 동안 길러낸 은혜,
둘째, 낳으실 때 고통 받는 은혜,
셋째, 젖먹이고 길러준 은혜,
넷째, 마른자리 진자리 가려준 은혜,
다섯째, 오줌똥 가려 주신 은혜,
여섯째,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뱉아 먹인 은혜,
일곱째, 생명을 걸고 지켜주신 은혜,
여덟째, 자식을 교육하여 사람답게 한 은혜,
아홉째, 먼 길 가면 걱정하는 은혜,
열번째, 끝까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은혜
설명을 마치신 부처님은 “가사 어떤 사람이 왼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수미산을 백 번 천 번을 돌아서 가슴이 터져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서 골수가 흐른다 하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은혜를 갚을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이는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지중(至重)한가를 일깨워 주는 것으로써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하겠다.
공자님께서도,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이며 참다운 효란 부모의 몸과 입을 잘 받들어야 함은 물론이요, 부모의 마음과 뜻을 잘 받들어야 하는 것.” 이라고 말씀하셨다. 부모에 대한 효도는 살아 계시는 동안 음식을 잘 해드리고 용돈을 넉넉히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것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뜻을 잘 살펴서 그 뜻에 맞도록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 효도의 길이라고 본다.
공자의 삼천 제자 가운데 가장 효를 철저히 잘한 분은 증자(曾子)와 민자건(閔子騫)이라고 한다. 증자는 어떻게 부모님께 효도를 했는가 하면 자기의 아버지가 친구를 데리고 와서, “그 음식이 남아 있느냐? 하고 물으면, “예 남아 있습니다.”하고 가져다 드렸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받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민자건은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계모를 얻었는데 거기서 아들 삼형제가 태어났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 민자건은 아버지를 수레에 모시고 먼 길을 가는데 그의 아버지가 아들이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상히 여긴 나머지, “네가 왜 그렇게 떨고 있느냐?”고 하면서 아들의 옷을 만져보니 옷 속에 솜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갈대가 들어 있었다. 계모가 솜 대신 갈대를 넣었기 때문에 추위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얼마나 화가 났던지 곧장 집으로 달려가서 새로 얻은 부인을 내쫒으려고 하였다. 그러니까 민자건은 아버지를 붙잡고, “어머니가 집에 계시면 저 혼자 떨게 되지만 어머니가 집밖에 나가실 것 같으면 이 어머니에게서 난 세 아우가 벌벌 떨게 됩니다.”라고 하면서 계모를 내쫓지 말라고 애원하였다. 민자건은 그렇게 효자였다.
『효경(孝經)』이라는 책에도 효자노릇 잘한 어떤 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들은 날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는데, 그 아버지는 항상 아들이 돌아오는 길목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들이 나무를 해오면 동구 밖에서 아들의 나무 짐을 받아서 자기가 짊어지고 오는 것이었다. 그 아버지는 그렇게 해야만 자기의 마음이 편하다고 했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나무 짐을 건네주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짐을 지고 아들은 그 뒤를 따라가는 광경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다 그 아들을 불효자식이라고 비난했지만 사실은 그 아들이 진짜 효자인 것이다. 그 아들은 남의 체면이나 이목(耳目)보다는 부모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서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 드릴 수만 있다면 자신이 비록 동네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해도 개의치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를 위해서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다하겠다는 진정한 효성심(孝誠心)이 그런 효를 하게 했던 것이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웃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경로효친(敬老孝親)사상을 윤리생활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이웃나라로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란 칭송을 받았으며, 공자님 같은 분은 “동방의 예의 바른 나라인 동이(東夷)에서 살고 싶다.”고까지 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미풍양속은 근세에 들어와서 물밀 듯 밀려오는 서구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관계로 또한 우리사회가 급격히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 하는 과정에서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봄 텔레비전에서 집중 보도된 바도 있지만 지금 전국 각지에서 노부모를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고 한다. 그중 제주도에서 유기하는 사례가 가장 많다고 하는데 그 이유인 즉 다시는 부모가 집으로 찾아 올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식은 부모의 행동을 보며 자란다. 그러므로 내가 부모에게 불효하면 내 자식 또한 불효(不孝)하기 마련이다. 이는 한 치의 착오도 없는 인과(因果)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자식에게 효도를 바라거든 내가 먼저 부모에게 효의 본(本)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