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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연습이 아니다
황 금 찬
인간은 연습을 즐겨한다.
그러나 인생자체는 연습이 아니다.
얼마나 마시고 피우는 연습을 했으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업적을 가졌을까.
투수의 왕이 되고 홈런대표가 되는 것도
연습의 꽃이다.
“엄마”란 이 한 마디의 말을 하기 위해
아가는
18개월의
연습을 갖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위해
20년의 세월과 용기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을까.
연습이라.
모든 것을 연습이라 하리라.
그러나 단연 연습으로 끝날 수 없는
큰 3가지가 있다.
의사는
환자를 연습으로 치료해선
절대로 안된다.
정치가가
연습으로 정치를 하면
선한 시민과
약한 국민은 주검의 병이 든다.
지혜와 양심
그리고 사랑이 있으면
평화와 행복이 오게 된다.
인생의 삶에는 반복이 없다.
그것으로 끝나고 만다.
후회는 가장 어리석은 자의
되풀이다.
신비한 날
황 금 찬
신비한 깃발 나부끼며
닫아 두었던
문을 열어라.
하늘 꽃밭에 구름이 피고
별들은 나뭇잎에 앉아
현악기를 연주한다.
계곡 물소리도
발을 멈추고
바다의 시인은 젊은 잉크로
오르페우스에게
사랑의 편지를 쓴다.
나는 오늘 피그말리온
이 세상 모든 여성은
아프로디테로 살아나라
이 신비한 날에.
낙조(落照)
최 은 하
어느 날 뜬금없이 찾아간 영흥도 겨울바다에
두 팔로나 안을 만한 햇덩이가 마침
가까운 수평선 끝자락 안개 속으로
잠겨드는 모습이 그대로 잡혔다.
어디로 돌아서 봐도 천지는
온통 선홍빛으로 넘실거렸고
내겐 흘러 흘러가 사라지는 이름들이
새삼 손아귀에 체온으로 덥혀왔다.
그때도 강물은 소리 없이 흘렀으리라.
그대 부르는 음성은 언제나 떨렸다.
바닷가 모래밭에 힘주어 선 발목이
붉게 철썩이는 바닷물방울로 젖는구나.
하늘 아래 마감하는 시간이나 장면은
숨 막히는 진공으로 타올라
아무런 말도 뱉어낼 수가 없었다.
귀로의 차창 너머 별 서넛이
깊은 밤 꿈자리에까지 따라와 초롱초롱했고
다시는 못 보리라던 그 햇덩이도
한 아름으로 머리맡에서 이글거렸다.
내 안에는 언제나
최 은 하
내 안에는 언제나 다른 사내 하나가 있다.
알다가도 모를 사람
그는 나 같지가 않아서 탈이다.
탈속에서 그는 말없이
천연덕스레 의연하다.
그와는 매양 거품을 일으키기도 하고
절벽을 갈라 세우기도 하며
불더밀 지피게도 하고
돌아선 함묵이게도 한다.
그의 힘자랑은 혀를 빼내어 휘두를 지경이다.
어느 때라도 그를 만날 것 같지만
나타나질 않고 숨어 지내는 습성으로
날 차지해 가두고 곧잘 훼방꾼이다.
그는 아무래도 날 닮지는 않은 성 싶다.
그렇지만 어떤 때 그는 나와 한 울타리
한 배 안의 서로가 아니냐는 투정이다.
상심과 회한으로 날뛰거나
황혼을 마주하고 강변을 거닐 때면
불현듯 나타나 다가서며
위로의 눈빛으로 감싸주기도 하고
힘차게 손을 잡아주기도 한다.
빤한 그의 수작을 아는 터라
나는 나대로 힘 빠진 발길을 끌고
스스로를 달래 타이르며 돌아오곤 한다.
어느 샌가 그는 오간 데 없고
나는 휘청거리며 귀로에 든다.
그의 주인 행세는 날 슬픔에 떨게 하고
정말이지, 영락이게 한다.
지하철에서
황 송 문
마주앉은 아가씨가
책은 지니지도 않은 채
얼굴만 매만지고 있다.
성형수술을 했는지
어설픈 얼굴 둘레로
붉은 목도리를 휘감은 채
둥근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족집게로 눈썹을 뽑는다.
책과는 천리만리
담을 쌓고 사는지
겉 사람 겉멋이 들어서
회칠한 무덤 같은 얼굴을
처삼촌 벌초 중이다.
숲도 없는
민둥산을 보면서
나라 걱정에 혀를 찼다.
PVC
황 송 문
나의 부모님은 해와 달
나의 육신은 地球星
나의 오장육부(五臟六腑)는 五大洋 六大洲
거미줄 같기도 하고
지하철 노선 같기도 한
상수도 하수도가 얽혀 있다.
아무데나 버리는 담배꽁초가
하수도 구멍을 메우고
호텔에서 빠져나온 휴지가
강물을 더럽힌 끝에 도시는
동맥경화에 뇌경색을 앓는다.
나의 혈관에 끼어있는
도시의 온갖 쓰레기들,
말끔히 몰아내지 못한 채
코빅스정과 수루메틴정으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고 있다.
오래된 습관
김 년 균
오랜 날 지나오던 길을 걷는다.
수천 구비 넘다 지친 가련한 세월 제치고
가물가물 솟아오른 산등성이, 눈비가 빗발치는
돌밭길을 허겁지겁 밤새워 헤맸지만
다른 길은 못 찾고 오랜 날 지나오던
그 길을 또 다시 서성인다.
알 수 없구나.
오늘도 폭격을 맞은 듯이 밟히고 찢긴
그 길은 다시 일어설 기력도 없이
저마다 십자가 아래 눕고,
껍질만 남은 하늘은 눈 한 번 깜짝 않고
여전히 골목까지 내려다본다.
돌아서야지. 이젠 떨어져 눕기 전에
남은 일 내버리고 떠나가야지.
마음은 남몰래 열두 간의 집을 짓고,
방마다 드나들며 새 옷을 갈아입는다.
그러나 옷은 여전히 천근이 넘고,
어느 틈에 닥지닥지 나붙은 먼지와 때가
거드름을 피우며, 온갖 추태를 부리며,
어느 때에나 돌아설는지
아무리 씻어도 털어도 그대로 남는다.
오랜 날 지나오던 그 길,
이다음에도 다닐 곳은 그 길뿐이리.
지쳐서 앓아눕다 세상 버리면
누군가 산 밑에 묻어 줄 구덩이를 파고.
마음은 콩밭
김 년 균
혼자만 잘난 듯이 세상눈치 안 보는
가여운 이들,
좁쌀풀 또는 어수리,
돌나무만도 못하네.
사는 일이야 얼추 같다고들 하지만
마음은 다들 천리 밖에 있기 마련인데,
그 마음 언제나 콩밭에 두고서
세상을 서럽게 하네.
하늘의 곱지 않은 눈총을, 터질 듯한 노여움을
아직도 모르는지, 한심하기만 하네.
질경이 또는 억새풀,
패랭이만도 못하네.
남해대교 돌아오며
김 하 영
달그림자 바다물결에 흔들리고
남해대교는 거기 드높이 걸렸더라.
나는 다시금 추억의 주인으로
함께 할 이름 더불어
속으로 드높이 성을 쌓고 있었지.
이 나이껏 바람으로 떠돌던 하늘 아래
눈빛 맞추어 손길 모아 잡아
뜨거이 되새기고
누구라도 이 자리에선
모닥불 피워 축원하리.
아직도 눈에 선한 길목
나의 유년은 어디에 남았을까
밤길은 아침으로 밝아오고
언제나 떠나온 시간은
새로이 날 짚어 살려낸다.
눈 내리는 날
김 하 영
폭설은 날더러 바다로 가라 합니다.
어제까지의 기억 살라버리고
어서가라 서둘러 등 떠밉니다.
내 사는 도회의 회색 거리는
켜켜이 은빛으로 덮이지만
눈 부릅뜨고 달겨드는
어둠을 밀쳐내며
폭설은 뒤 돌아보지 말고
빠져나가라 자꾸 재촉합니다.
이런 날은
동구 밖에까지 나와
날 기다리며 서 계시던 어머니
바다를 배경한 어머니 음성이
마구 너울져옵니다.
저렇게 폭설은 내려 쌓이고
어서 바다로 가라 이릅니다.
광 대
정 지 운
가을은 언제나
허물 벗는 아픔으로 다가선다.
쓸쓸한 광야를 걷듯
맨발로 무너져 오는 슬픔
유리알 위에 미끄럼 치는 희망
햇살은 가슴을 움켜쥐고
흐느끼고 매달리고 그리고 통곡하고
그저 빈 시선으로
파란 휘장을 들춰본다.
원망어린 눈빛으로
다시 가슴을 후려친다.
선 곳을 잃고
앙금 되어 시리게 쌓이는 얼음덩이
도둑고양이 걸음으로
외로이 무대에 오른다.
상처 난 머리 감추고 분장하고
가 을
정 지 운
불꽃놀이처럼 툭툭
터져 오르는 햇살
녹음의 맥을 짚어
잎새를 타고
미끄럽게 내려 쌓이는
숲으로 가자.
비취빛 구름 걸쳐 쉬는 저편 산마루
물소리, 바람소리
꾀꼬리 청아한 목소리로 반겨주는
숲으로 가자.
찌든 생활에 깊게 패인 주름
일상의 관습을 잠시 털고
풀숲에 자그마한 육신을 눕혀
마음도 쉴 수 있는 숲으로 가자.
한적한 곳, 아늑한 깊은 곳으로 찾아가자.
시끄러운 아귀다툼 소리가
그 곳에는 없으리니
우리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자.
조용한 걸음걸음으로
가난한 우리들의 머리 위에도
햇살을 퍼부어 주고 있다.
살아 있다는 축복의 숨소리를
마시고 싶다.
그대 눈을 감고
두 팔을 힘껏 펼쳐보라
우주가 가슴 가득 안기리니
숲속으로 가자.
바람 부는 날 6
- 그리움의 肖像
이 동 백
그대 바람이네.
하늘 가 떠도는 한 떨기 구름이네.
그리움이 깊어
그예 한 줄기 강물로 흐르네.
강 건너 그대를 두고
오늘도 물길 따라 오르내리네.
떨리는 손끝에 힘주어
한 줌 물수제비를 띄우면
그대, 환한 물비늘로 파닥파닥 살아오를 수 있을까.
허공 가차이 어디선가 그대 목소리
노을빛으로 생생히 메아리 지네.
다시 옷깃을 여미고
그대 앞에 서면
새벽강 물안개로 늘상 피어오르기만 하네.
산성 ‧ 한밤 ‧ 안개
유 소 향
꽃송이 하나
어지러운 떨림으로
가득한 山城의 밤.
아득한 산자락에
한마당 내 춤사위는
산허리 휘감아
안개에 젖고 있었다.
밤이 깊을수록
신열은 가슴앓이고
장대비는 비수로 날려 온다.
안개의 빗장을 열고
쏟아져오는 별빛 따라
외치는 마디마디는
어느 허공에 서리로 닿아
나를 끌어 올리는가.
한밤 안개발에
한 두어 꽃잎은 날리고
山城은 튼튼하기만 하다.
연말 정산
정 민 욱
지나온 많은 날들 속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열정으로 털어내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지워내고 나면
얼마나 남을까
다 알지 못하는 고마움도
생각하지 못한 마음도
말 한마디 못한 채
그저 마음에 두고 아쉬움만 가득한 채
정산하지 못한 세금이다.
전화를 하고
문자 메세지를 날려도
그저 다하지 못한 마음에
연말 정산은 언제나
소액마저 환급되지 않는
아쉬움만 가득한 세금이다.
첫 눈
정 민 욱
설레임
그 기다림의 끝에서
꽃으로 피어나고
다가오는 시간들 속에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한 잎 두 잎 꽃으로 지는
아쉬운 기억 속에 한 조각 한 조각
추억으로 그려지는 모자이크 풍경화
하늘의 꽃보다
이야기로 피고 지는 나비들이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삽화를
추억으로 그려놓고
아련한 기억 속에
첫눈은 설레임
그 기다림의 끝에서 오는 기쁨.
소록도에 뜬 보름달
유 회 숙
달그림자 비친다.
대리석을 깎아 놓은 듯
아파트 옥상에 달이 떴다
내가 만난 달은
지난 여름 폭염주의보 속에
소록도 바다에 뜬
조금은 이지러진 달빛 싸한 보름달
바다 건너 잘 가시라고
또 오시라고
소록 우체국 계단에서
말없이 한참을 서서 배웅하던
천 길 낭떠러지 푸른 가슴
타는 저녁놀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은
바다 가운데 보름달로 떠오르고
한 줄기 보리피리 소리
사슴섬 짙은 고요를 흔든다.
시어(詩漁)를 보셨나요
유 회 숙
비릿한 어둠
탁탁, 어둠을 털어낸다.
소금기 배인 가슴
바다가 열리고
어시장 골목이 팽팽하다.
좌판 도마 위에
바다를 건너온 등 푸른 무늬
흥건히 젖은 파도소리
허공으로 솟구친다.
단단해진 상투어 입을 다물고
서로를 품은 자반고등어
갈치 참치 병어 임연수어
파장 흥정에 서둘러 자리 뜬다.
캄캄한 달이 지는
그 사이
바다로 돌아간 詩漁를 보셨나요.
201호
-다운엄마의 하루
정 희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 앞에 졸린 눈 치켜뜨고
자정 가까이 박음질 하는 그녀
앞판 뒤판 이어 붙여
소매를 달고 실밥을 뜯어내면
옷 한 벌, 뚝닥
인생을 완성 시킨다.
남편 없이 딸과 재봉틀 앞에서
희로애락을 박음질하는
다운 엄마,
졸음 막으려고 라디오 볼륨을 키운다.
딸아이의 미소를 기다리며
한 땀 한 땀, 촘촘히 박는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오늘도
제부도
송 선 애
속절없이 너는 내게로 와서
등에 기대어 목 놓아 울다가
도마뱀처럼 꼬리를 끊고 내달렸다가
혈흔 같은 상처만 남겼노라고
짜디짠 참회록의 행간(行間)속으로
아련한 전설을 부려놓고 간다.
무령왕릉에서
송 선 애
사람의 향기가 기어다니는
음습한 흙속에
천년의 시간이 고여 있다.
널방 속 온기는
흩어진 유물사이로 주저앉고
석수(石獸)만이 무덤을 지키고 있다.
불꽃처럼 타올랐던 금관도
치장했던 삶도
봉인된 문서들처럼
잠들어 있다.
太古의 정적을 깨고
햇살은
사람의 향기를 불러 모아
말간 하늘로 길어 올리고 있다.
알리바이를 없애는 男子
박 기 동
늘 아침마다 거울을 쳐다보며 번듯하지 못한 내 얼굴에 칼을 댄다. 세이빙크림으로 거친 수염부터 칼질을 한다. 항상 그래왔듯이 정치가 어떠니 현실이 어떠니 일상을 향해 거품을 문 무딘 주둥아리 주변에 사정없이 돋은 잡초 같은 수염. 수염은 이렇듯 세상을 제대로 감싸고 살지 못해 근질근질해서 토악질 해대는 내게 보란 듯 입술주변과 턱밑에서 유독 돋아난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까칠한 언행을 내세우기 위해서라도 칼날을 세워 확실하게 벌초한다. 때론 몇몇의 완강한 잡초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손톱으로 뽑아 보지만 그땐 이미 이성을 넘어서 상처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는 알까? 반지르르하다 못해 파르스름한 내 입과 턱밑에서 풍기는 이중성을 알까 아니면 구원의 눈길을 보낼까 다시 이를 확인하고 알리바이를 없애는 남자의 얼굴을 떠올릴까.
월요일 아침은 바쁘다. 지난 이틀간의 과다한 거품에 제법 구레나룻 폼을 잡고 자란 이놈들을 빡빡 밀어 젖히고 얌전한 넥타일 매고 출근하는 이 남자의 알리바이는 갸륵하다 그녀가 보아도 완벽하다.
설악산, 가을 백담사에서
박 기 동
입은 것들은 단풍 들고
벗은 것들은 노숙자의 길로 접어들고 있네
풍경(風磬) 소리에 취해 오래 바라보니
어느 사내 저 맑은 물속으로 이미 빠져 있었네.
캐롤이 흐르는 풍경
김 아 랑
스페인 캐롤 새라는 곡이 있는데
성탄이 온다고 호세카레라스가 부릅니다.
카탈로냐지방의 노래라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만든 작곡가
피카소 ,카레라스가 이 지방에서 테어났데요
예수님이 세상을 구하시려고 '
이 땅에 오신 것을 노래하는데
구슬프게 흐릅니다.
크리스마스 전 후에 오십만 통 이상
편지가 도착하는 나라 핀란드
핀란드는 백 명당 하나 꼴로 호수가 있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사냥을 금지하고
새들과 짐승의 먹이를 밖에 둔데요
묘지마다 촛불을 켜두어 눈과 함께 빛난데요
신비롭고 환상적이며 경건한 12월이래요
전쟁을 자주 겪은 나라라고
성탄곡도 애수에 찹니다.
나의 연인은 가버렸다고
사막을 건너며
김 아 랑
피닉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비행기 안
연애의 출발은
어느 날 갑자기 너 없으면 죽고 말아 라는
김경린 노시인의 연애론에
난 그저 조용히 미소를 띠며
창밖의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는 순간
깊은 숙연함이 감돌고
손끝을 아리는 둥지, 새의 날개죽지가 만져지고
목청을 떠는 가느다란 새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이름을 손바닥에 지긋이 눌러썼다.
비행기가 네바다 사막을 건너는 사이
시인은 다시
사랑은 굶주림이요 끝없는 고통을 주는
열망이라는 가사를 건넸다.
나는 다시 한 번 미소를 띠며
붉고 보랏빛으로 변하는 네바다 사막의 석양에
마음속에서 오래 거수경례를 올렸다.
그리고 광부들이 갱에 들어가기 전 날려 보낸다는
카나리아와
갱 입구에서 숨죽여 듣고자했던 광부들의 귓가에 울리던
카나리아의 가늘게 떠는 노래와
갱의 깊은 레일 속으로 바퀴를 굴리는 생의 삼각관계를
그리며 잔잔히 떨고 있었다.
......그리고 석양 속에서 비행기는 사랑을 앓는 여자의
어둡고 우울한 항로를 헤매듯 덜컹댔다.
겨울 밤
이 병 훈
긴 밤,
눈 털리는 소리에
대밭에서 선잠 깬 새가
어디론지 날아간다.
은은한 달빛을 덮고
곤히 잠든 고향집 마당
눈 덮인 장독대도
꿈을 꾸는 저녁
간장 항아리 속
어머니의 손맛은
새의 날갯소리에도
깊은 맛이 들겠지
디딤돌
이 병 훈
세찬 빗줄기도
아버지의 등에 업혀 가면
편안하게 잠이 들던
내 인생의 보루(堡壘)
하늘을 머리에 인 채
거북이처럼 엎드려
역경을 견디고 있다.
행여, 어린 자식
진흙탕에 빠질세라
지저분한 밑바닥에 엎드려
깡마른 등을 내밀고 있다.
호수에 달 가듯이
학처럼 지나가라고……
바 다 · 2
-겨울 바다
정 명 숙
지난 여름 찾았던 바다에
다시 들렸다.
물결은 출렁이다가 모래밭에 눕고
눈부신 햇살 마주한다.
매서운 바람 몰아치고
수평선은 허공을 드넓힌다.
파도 타던 갈매기
목청 높여 솟아오르고
오늘도 파도는 바위에 부서져
물보라로 다시 일어선다.
바람 부는 날
정 명 숙
바람을 앞선 한줄기 파장은
수백 킬로미터를 내달려와
기상레이더에 점점이 전파의 선을 긋고
흔들리고 뒤엉켜 떠밀려오며
무엇 제대로 하나 풀지 못하는 손
파란 핏줄기 돋아 휘젓고 있다.
구름은 하얀 달빛을 가르다가
바다의 풍랑으로 휘돌다가
사막 가운데 선인장 꽃으로 피어나다가
푸른 하늘 치달아 오르다가
한 줄기 바람으로 울부짖는다.
바람은 빛으로 다가와
쓰러지고 되짚어 일어나는 일상으로
소리 내어 흩날리다
밤하늘별이 되어 깜빡인다.
바람은 바람 따라
너울너울 허공을 휩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