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제는 '소가 된 게으름뱅이'
“옛날 옛날에...너무 너무 일을 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가 있었어요.“
우리는 많은 옛날이야기들을 책 속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게으름뱅이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아주 소중한 책입니다.
"게으름벵이는 왜 소가 됬을까?"
한결어린이집 친구들은 부지런한 어린이답게 행동을 해야겠죠!
소가 된 게으름뱅이 TV동화로 보고, 소 탈을 만들어보았어요
우리 친구들 소 탈을 만들고 써보았는데
소 탈을 쓰면 정말 소로 변신할까봐 선뜻 탈을 쓰지 못하더라구요~^^;;
우리 친구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밥도 일찍 먹고, 심부름도 열심히 해서
소가 되지 않는 부지런쟁이가 되기로 약속했답니다!! *^^*
TV동화로 소가된 게으름뱅이를 보았어요
웃기도하고 울기도 하면서 TV속으로~~~
동화를 다 본 후
연계활동으로 소와 탈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일주일동안 학습합니다^^
TV동화 "소가 된 게으름뱅이"
동화를 듣는 우리 친구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동화나와라! 얍!
게으름을 피우던 아이가 소 탈을 쓰자 소로 변신했어요!!
게으름을 피우던 아이가 소로 변하자
우리 친구들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 졌어요~^^;;
동화를 듣고 우리 친구들과 약속을 했어요!!
엄마 심부름도 잘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밥도 잘먹기로....
우리 친구들이 약속을 잘 지켜 부지런쟁이가 될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도와주세요!!*^^*
꿈에서 깨어난 아이는 마음이 놓였어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부지런이가 되기로 마음 먹었답니다!!
우리 산새소리 친구들도 앞으로 엄마 일도 잘 도와주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친구가 되기로 약속했어요*^^*
동화에 나오는 "소 탈"을 만들었어요!!
먼저 모자이크로 소의 입 부분을 꾸며주었어요!!
동화에서 나온 소의 탈을 꾸며 보기로 해요!
모자이크 <색종이 찢어 붙이기>
색종이를 찢어 꼼꼼하게 꾸며줘요^^
모자이크가 끝나고 색연필로 예쁘게 색칠해주면 완성~!!
탈을 코팅하고 아이들과 소 탈을 써보았는데 선뜻 쓰지 못하는 친구가 많더라구요~^^
완성^^
다행이도 우리 나무반 친구중에 소로 변한 친구는 없었답니다. *^^*
아이들에게 오늘 만든 소 탈을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만장일치로 누나, 형 에게 선물할꺼라고 하네요~^^;;
누나 형은 공부도 안하구 늦잠만 잔다고 이야기 하면서
소 탈을 쓰면 진짜 소로 변할것 같다며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었답니디*^^*
관문체육공원 "소가 된 게으름뱅이" 조형물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을 품고 자라날 수 있는
전래동화의 고장 살기좋은 과천 관문체육공원에서
조형물을 견학하며 뜻 깊은 우리 선조의 지혜와 교훈을 담아 왔습니다.
남태령(南泰嶺), 여우고개 이야기
서울과 과천의 경계에 있는 ‘남태령’은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의 고갯길로 옛날엔 여우가 자주 나타나 ‘여우고개’ 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그런데 18세기 말,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났던 정조 임금이 선친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수원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잠시 쉬게 됐다. 이때 정조가 “이 고개 이름이 무엇이냐?” 고 묻자, 과천현 이방 변씨가 엉겹결에 “남태령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한다. 이에 그를 시기하던 자가 “이 고개 이름은 원래 여우고개인데 어찌 거짓을 고하느냐” 고 질책하자 이방 변씨는 “고개 이름은 본래 여우고개지만 신하로서 임금께 그 같은 상스러운 말을 여쭐 수가 없어 서울에서 남쪽으로 맨 처음 만나는 큰 고개이기에 남태령이라고 했습니다” 라고 아뢰었다. 이에 정조가 이방 변씨의 예의 바름과 기지를 칭찬해 이후부터는 이곳을 ‘남태령’ 이라 불렀다.
월치전(越峙錢) 이야기
남태령이 여우고개로 불리던 조선조 때는 숲이 우거져 짐승과 도둑 떼가 많아서 시골 사람이 과천을 지나 여우고개를 넘어 동작나루를 건너 남대문으로 도성에 들어가는 데, 네번의 세금을 내야 통과가 되었다고 한다. (1) 과천에서 세전(貰錢)/ 도둑과 짐승이 많은 남태령을 무사히 넘게 해 달라고 굿판을 벌리는 세금으로 먼 시골에서 온 사람에게는 더 많이 받았다고 한다. (2) 남태령 고개에서 월치전(越峙錢)/개인적으로 남태령을 넘지 못하게 통제하고 일정 수를 모아 군사들이 호위하여 넘겨주고 받는 세금으로 여자는 2배를 받았다. (3) 동작나루에서 도진세(渡鎭稅)/ 한강을 건너는 배 싻 외에 일종의 한강통과세로 받는 세금으로 임산부는 1.5배를 받았다. (4) 남대문에서 입문세(入門稅)/ 남대문을 통과해서 도성안으로 들어가는데 세금을 받았다.
[1]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순수한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전하고 있는 많은 전래동화, 신화, 고전소설 등은 원래 그 근원설화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그 근원설화는 주로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 많습니다.
가령 <심청전>의 경우에는 <맹인득안설화'>, <인신공희설화>가 그 근간이 되어 비슷한 이야기로 인도의 〈 전동자 專童子 〉 · 〈 묘법동자전설 妙法童子傳說 〉 , 일본의 〈 소야희 小夜姬 〉 를 말하고, 우리나라의 ≪ 삼국사기 ≫ · ≪ 삼국유사 ≫ 소재 〈 효녀지은설화 孝女知恩說話 〉 , 전라남도의 〈 관음사연기설화 觀音寺緣起說話 〉 등을 들 수 있어요.
또 <흥부전>도 마찬가지죠. 흥부전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들이 근원설화로 세계적인 분포를 이루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몽고의 <박타는 처녀설화>등이죠.
또 <콩쥐팥쥐>도 우리의 전래동화인데 신데렐라의 이야기와 너무 유사하죠? 그것도 비슷한 근원설화(계모형설화가 되겠네요)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비슷한 이야기로 동서양에 전해오는 거에요.
그러니 소가 된 게으름배이와 같은 이야기는 하나의 근원설화를 통해서 세게의 여러나라에서 비슷한 이야기로 전래되고 있죠. 러시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출처:Daum지식
[2]소가 된 게으름뱅이
하루종일 빈둥빈둥 누워 꼼짝도 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가 있었습니다.
게으름뱅이는 늘 누워 있기를 좋아하고 낮잠 자는 것을 최고로 알았답니다. 친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누워 있기만 하니 모두들 이름보다 '게으름뱅이'라고 불렀습니다.
밥을 먹을 때조차 누워서 먹으려 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인지 알만 하지요?
게으름뱅이가 밥을 먹고는 드러누워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얘야, 밥을 먹고 그렇게 곧바로 누우면 죽어서 소가 된단다."
하고 걱정 하셨습니다.
"흥,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어디에 있담. 차라리 소가 되는게 낫지. 아무때나 드러누워 잠이나 자고 말이야."
게으름뱅이는 누가 무슨 말을 하던 들은 체 만 체였지요.
어느날 어머니가 아프셔서 아침밥을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게으름뱅이는 어머니가 아프시거나 말거나 그냥 누워만 있었어요.
"얘야, 부엌에서 물 한 잔 떠다 주겠니?"
어머니가 아파 부탁을 하는데도 게으름뱅이는 못 들은 척 했습니다.
"아니, 아픈 에미에게 물 한 잔조차 갖다 주기 싫단 말이냐?"
어머니는 너무 화가 나 참다 못해 울음을 터뜨리며 야단을 치셨습니다.
계속되는 잔소리에 게으름뱅이는 할 수 없이 집을 나왔어요.
"아, 아, 귀찮아. 아무것도 안하고 살 수는 없나. 날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어."
게으름뱅이는 중얼중얼거리며 한 걸음 두 걸음 어기적어기적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일하기가 싫은가?"
하며 어떤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 오는 것이었어요.
보니 길가에 웬 할아버지가 소의 탈을 가지고 흔들흔들거리며 앉아 있는 거예요.
게으름뱅이는 입을 삐죽이며 못 들은 체 그냥 지나 가려는데
"얘야, 이 탈을 한 번 써 보려무나. 그러면 이 탈의 소처럼 한가로이 풀이나 뜯고 낮잠이나 자며 편히 지낼 수 있지. 암, 편해지고 말고."
하시는 거예요.
게으름뱅이는 그 말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정말이예요? 하긴 소가 부럽기도 했었는데. 정말 소처럼 먹고 잠만 자도 돼요?"
할아버지의 손에서 빼앗듯이 탈을 쥔 게으름뱅이는 얼른 그 소의 탈을 썼습니다.
그러자 이게 웬 일입니까? 소의 탈을 쓰는 순간 소가죽이 얼굴에 딱 붙는다 싶어 뭐라고 말을 하는데 '음매애, 음매애'하는 소리가 나지 않겠어요?
게으름뱅이는 진짜 소로 변해 버렸어요.
깜짝 놀라 발버둥을 치려 했지만 이미 할아버지의 손아귀에 잡혀 쇠곤삐까지 끼워졌습니다.
"이놈, 조용히 가만 있거라. 아니면 채찍으로 맞을테니."
할아버지는 소로 변한 게으름뱅이를 끌고 시장으로 갔어요.
게으름뱅이는 채찍을 맞을까봐 두려워 얌전히 끌려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어요.
할아버지는 마침 소를 사러 나온 농부에게 게으름뱅이를 팔았습니다.
그리고 단단히 주의를 주는 것이었어요.
"이 소는 무를 먹으면 죽는다오. 그러니 절대 무를 내보이지도 마시오. 그리고 꾀를 잘 부리니 채찍으로 때리며 일을 시키시오."
"거참, 희안한 소일세. 뭐, 일만 잘 한다면야 상관없지요."
농부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게으름뱅이를 호된 채찍질을 하며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난 사람이지, 소가 아니예요. 엉엉."
아무리 울부짖어도 게으름뱅이가 소로 변한 것을 알 리 없지요. 오히려
"아니, 이 는 왜 이리 시끄럽게 우는거야?" 하며 채찍질만 더 할 뿐입니다.
채찍을 맞으며 농부의 밭일을 하게 된 게으름뱅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고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밭을 갈고 나면 온 몸이 저리고 부서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채찍을 맞지 않으려면 하는 수 없이 일을 계속 해야만 했습니다.
'아, 소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몰랐어. 어머니가 보고 싶구나. 내가 을 나왔을 때 아프셨는데 병은 다 나으셨을까? 집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정말 부지런하고 착한 아이가 될거야.'
게으름뱅이는 그동안 말씀도 듣지 않고 게으름만 피웠던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그동안 너무 게으름을 피워 벌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니 더욱 지난 날의 잘못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매일같이 힘든 일에 매까지 맞자 게으름뱅이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날마다 매를 맞으며 일을 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낫겠어. 그래, 그 할아버지가 무를 먹으면 죽는다고 했지?'
게으름뱅이는 밭일을 마치고 가는 길에 무밭이 없을까 하여 두리번거렸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길을 가는데 바로 앞에 무를 가득 실은 수레가 가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게으름뱅이는 있는 힘을 다해 앞의 수레를 좇아 뛰어 갔습니다.
깜짝 놀란 농부가 채찍을 휘둘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어요.
무더미에 몸을 내던지며 수레에 올라 타자 수레의 무들이 와르르 쏟아졌어요.
얼른 하나를 덥썩 물었습니다.
'어머니, 죄송해요. 그동안 제가 너무 잘못했어요.'
씹히는 무를 꿀꺽 삼키는 순간 '퍽'하고 무언가에 얻어 맞았습니다.
마루에서 낮잠을 자던 게으름뱅이가 꿈을 꾸다가 마당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었어요.
"아니, 이제까지 모든 게 꿈이었단 말이야?"
게으름뱅이의 얼굴은 아직도 눈물에 젖어 있었어요.
"아, 다행이야. 정말 무서운 꿈이었네. 이제부터 진짜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될거야."
그날부터 게으름뱅이로 불리웠던 소년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음은 물론이지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부지런히 일해 마을에서 가장 성실한 사람의 본보기가 되어 '게으름뱅이'라는 놀림 대신에 '부지런이'라고 불려졌으니까요.
여러분 중에도 설마 부모님 말씀 안 듣고 게으름 피우는 친구는 없겠죠?
[3]과천 관문체육공원이 '소가 된 게으름뱅이'라는 조형물 설치에 따라 이야기가 있는 친근한 문화적 쉼터로 거듭나고 있다. 과천시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현명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교훈성을 부각시킨 '소가 된 게으름뱅이'라는 전래동화 이야기를 통해 주민들에게 테마가 있는 문화적 쉼터를 제공하고자 국비지원금(1억5천만원)에 시비 1억9천여만 원을 보태 지난 3월부터 본격적인 조형물 설치작업에 들어가 6개월 만에 완공했다.
특히 이 조형물은 조선 광해군 때 유몽인 선생이 과천 남태령의 옛 이름 여우고개를 배경으로 간교한 여유가 우매한 사람들을 현혹하여 소로 둔갑시킨다는 내용의《어우야담》을 토대로 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따라서 조형물은 빈둥대며 먹고 누워 있기만 좋아하는 게으름뱅이가 소의 탈을 쓰고 소가 되었다가 무를 먹고 사람으로 다시 돌아온 뒤 부지런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의 청동조형물을 총 일곱장면에 걸쳐 한 장면당 폭 2~3m, 높이 1~2m 크기(실제 크기)로 간단한 줄거리와 함께 설치됨으로써 시각적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여인국 시장은 축사를 통해 "주민들의 여가 및 체력단련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는 관문체육공원이 이야기가 있는 테마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된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시민이 주도하는 역동적인 지역문화예술 창출을 위해 과천 곳곳을 문화와 예술,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품격 있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 과천 ‘소가 된 게으름뱅이 조형물’ 제막식
출처:과천시/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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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어우야담 - 완역본 *..역........사..*
- by 초록불
- 2007/04/19 20:36
- orumi.egloos.com/3124513
- 덧글수 : 18
어우야담 (전2권 세트)
그림을 클릭하면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유몽인 지음, 신익철, 이형대, 조융희, 노영미 옮김/돌베개 |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번역은 한 권이다. 다른 한 권은 원문 수록본이다. 그냥 책으로 볼 사람이라면 번역본만 사면 된다. 번역본은 4만원이다.
원문을 가지고 있으면 세밀한 부분을 확인할 때 사용할 수 있기는 하나, 특별히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는 돈 낭비가 될 것이다. 다만 가지고 있어보면 도깨비라고 번역해 놓은 것이 魅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든가, 김종서에게 야인들이 쓴 독이 蠱라는 점에서, 무협소설의 고독을 연상해 본다든가 하는 이점은 있을 수 있겠다.
아, 그리고 원문본에는 부록으로 인명 사전이 실려있다.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해설해 놓은 부록이다.
어우야담은 잘 알려진 것처럼 선조-광해군 때의 대신으로 인조반정 때 역적으로 처형당한 유몽인이 쓴 책이다. 그가 쓴 이 야담집은 정말 매우 훌륭한 책으로 조선 시대에 대한 생생한 자료다.
나는 이 책을 축약본으로밖에 접하지 못해서 늘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완역본이 나온 것을 알고도 그 높은 가격 때문에 선뜻 구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하는 작업들과 관련하여 도저히 이 정도 투자를 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사들였는데, 매우 만족스럽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야기 중에도 처음 보는 것들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자린고비가 밀가루를 단속하는 이야기에서는 완전히 뒤집어지고 말았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낸다" 저 말의 근본이 되는 말을 한 사람이 오성 이항복이라는 사실도 여기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인어를 잡아 기름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이야기와 같은 신비한 이야기들도 수록되어 있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뭐 특별히 더 할 말이 없다. 하드커버본으로 장정이 매우 고급스럽고, 지질도 좋다. 충실한 색인이 뒤에 달려 있고(인물 지명 기타 등으로 세분화 되어 있다.) 번역도 공을 들여 열심히 했다. 어우야담의 수십가지 판본을 다 비교 분석하여 모순되는 부분을 제거하고 번역했으며, 번역된 문체도 깔끔하다.
물론 모자라는 부분도 어쩔 수 없이 보이기는 한다. 가령 치우기에 대한 설명은 처음 나오는 것보다 뒤에 붙어 있는 주석이 더 정확하다. 동일한 항목에 주석이 두 개나 붙어 있는 것은 역자들이 나뉘어져 있을 때 나오는 현상 중 하나다. 편집자가 좀더 꼼꼼히 살펴봤어야 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그러나 정말 이런 부분은 옥의 티(아차! 또 틀렸다. 맞춤법 상 옥에 티가 맞다고 한다.)에 불과하다. 훌륭한 책을 훌륭하게 만든 출판사가 손해 왕창 보고 문닫는 일이나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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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담 유몽인 지음, 신익철, 이형대, 조융희, 노영미 옮김/돌베개 |
출처:Daum카페'알게실 문학당'
[5] 과천시 남태령 고개 이야기
서울 사당동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남태령은 옛 문헌에 호현(狐峴, 여우고개) 또는 엽시현(葉屍峴)이라 하였다. 옛날 길손이 줄지어 넘나들던 산길의의 본래 이름이 여우고개였다. 조선시대에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는 부친 사도세자가 불우하게 일생을 마친 것을 슬퍼하여 수원에 있는 능에 수시로 참배를 다녔다.
정조가 수원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는데 한 길은 동작나루를 건너 이 고개를 넘어 과천을 지나 수원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다른 한 길은 노량진에서 시흥 안양을 지나 수원으로 이르는 길이었다. 정조는 처음 한 동안은 과천을 거치는 길을 택했으나 사도세자를 죽게 했던 영의정 김상로가 과천 태생으로 그의 무덤을 거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중에는 시흥 안양을 거치는 길로 노정을 바꾸었다.
어느 때인가 정조가 과천 길을 택하여 수원으로 향하다가 이 고개에서 쉬어 가던 중 시종들에게 고개 이름을 물었다. 이때 과천현 이방이 남태령이라고 대답하자 본래 이 고개 이름이 여우고개인 줄 알고 있었던 정조는 거짓말을 한 이방을 나무라고 그 이유를 물었다. 이에 이방이 "본래 여우고개라 하지만 임금께 요망스러운 이름을 댈 수가 없어 꾸며댄 이름으로, 도성에서 남쪽으로 가다가 첫 번째 큰 고개이므로 남태령(南泰嶺)이라 한 것이옵니다."하고 아뢰었다. 정조는 이를 가상히 여겨 그때부터 여우고개를 남태령으로 고쳐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출처:Daum가페'홍파1회'
[과천]한결어린이집 생태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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